다이어트 보조제 ‘오젬픽’이 만든 얼굴?
“지금 모든 사람이 그 약을 이미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법을 묻고 있어요.” 뉴욕의 피부과 전문의 폴 재러드 프랭크(Paul Jarrod Frank)가 언급한 이 약물의 이름은 바로 오젬픽(Ozempic). 몇 달 전 <보그>에서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실상은 차세대 다이어트 보조제로 더 많이 활용되는 이 주사의 정체를 낱낱이 밝힌 적 있다. 더불어 이 약물의 유행과 남용이 증폭시키는 체중 감량 문화와 신체 왜곡 현상까지도. “오젬픽의 주성분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간에서 생성되는 글루카곤의 양을 감소시킴으로써 식욕을 억제하고 위장 운동이 둔화되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포만감을 느끼는 시간이 더 길어지죠.” 성형외과 전문의 제니퍼 리바인(Jennifer Levine)의 설명처럼 뛰어난 다이어트 효과로 할리우드부터 SNS까지, 오젬픽은 그야말로 ‘핫 토픽’이었다. 올 상반기 한반도에 상륙한다는 뉴스로 수많은 ‘다이어터’를 설레게 만드는 것도 잠시, 최근 이와 연관 깊은 신조어가 하나 등장했다. 이름하여 ‘오젬픽 페이스’. 그 실체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임신으로 급격히 불어난 체중을 위해 3개월간 오젬픽을 투여하며 10kg 가까이 감량한 여성은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날씬한 몸매를 되찾은 대가로 늙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얻었다고 밝혔다. 더없이 성공적인 다이어트로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 당첨금에 가슴이 무너지는 세금이 붙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갑작스러운 피부 노화. ‘오젬픽 페이스’란 약물 사용 후 맥없이 수척하고, 쪼그라들고, 탄력 없이 축 늘어진 얼굴을 가리킨다. 포도와 건포도를 비교해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피부과 의사와 미용업계 종사자는 이런 환자를 부쩍 많이 접한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볼륨이 줄어들며 노화가 가속화된 피부. 오젬픽의 후폭풍은 약물의 인기만큼 거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부과 전문의 소피 쇼터(Sophie Shotter)는 이 피부 변화의 요인은 약물의 특성보다는 ‘급격한’ 체중 감량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얼굴은 매우 입체적인 구조물로 표정을 짓거나, 눈·코·입을 지탱하고 움직이기 위해 여러 근육이 존재하죠. 그리고 그 구획마다 지방 덩어리(Facial Fat Pad)가 형성돼 피부를 지탱합니다. 급격히 체중을 감량하면 그 지방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며 뺨이 꺼지고, 팔자 주름이 깊어지며, 다크서클이 심해지는 증세가 나타나죠.”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피부과 김수영 교수는 설명한다. 다시 말해 살을 빼는 동안 피부는 변하는 체형에 맞춰 수축하고자 보이지 않는 고군분투를 벌인다. 물론 운동과 식단 관리를 통한 체중 감량이나 약물을 이용한 다이어트가 기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전자의 경우 꾸준한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살이 빠진다는 점에서, 피부가 피하지방이 감소하는 만큼 수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번다. 이에 비해 오젬픽이나 위고비와 같은 약물은 효과가 지나치게 빠르고 강도가 세다는 것이 바로 ‘오젬픽 페이스’의 원인이다. “오젬픽은 사용자 3분의 1이 10kg 이상 체중이 감량되었고, 위고비는 16개월 동안 평균 15.9kg 감량하는 등 그 효과가 매우 강력합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삭센다는 그보다 비교적 감량 효과가 적었죠. ‘삭센다 페이스’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은 이유예요. 주로 이런 피부 노화는 위절제술 등의 수술을 겪은 비만 환자에게서 나타났죠.” 김수영 교수는 이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을 짚어낸다.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1kg 이상의 체중 감소가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15kg 이상을 감량하면 피부 노화가 체감될 만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안면 근육이 약해지는 만큼 이 증세는 나이가 많을수록 더 빠르고 쉽게 찾아온다. 얼굴에 한해서 만큼은 지방은 적보다 동지에 가깝다. 살이 빠지는 부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는데, 결국 정도를 밟지 않으면 부작용을 안고 살 수밖에 없는 걸까?
물론 오젬픽 페이스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해결책은 존재한다.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특정 연령이 되면 얼굴과 엉덩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시술이 발달한 요즘은 양자택일도, 불가능한 것도 없다. 부유층 사이에서 체중 감량 약물과 볼륨을 되살리는 필러의 조합은 매우 일반적이다. “열에너지를 통해 주름을 개선하는 ‘소프웨이브(Sofwave)’ 또는 고주파 절연침을 활용한 ‘프로파운드(Profound RF)’ 같은 탄력 시술을 병행합니다. 전략적으로 피부 볼륨을 되살리는 것이죠.” 피부과 전문의 소피 쇼터는 여기에 콜라겐 재생을 촉진하는 주사제 ‘스컬트라(Sculptra)’를 사용한다. 볼이나 턱살 등 꺼지거나 늘어진 부위를 빵빵하게 채워 얼굴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꺼짐이 심한 부위는 필러만큼 효과적인 시술이 없지만, 오젬픽의 특성상 투여를 중단하면 식욕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요요 현상이 오기 쉽기 때문에 레이저 시술을 통해 피부를 재생하는 시술을 우선시하는 것이 좋다. 필러로 채운 부위에 다시 살이 찌면 피부가 불룩해지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을 하면서 피시 오일이나 오메가3, 필수지방산, 비타민 등이 함유된 영양제를 적절히 섭취하는 습관은 필수다.
감량 범위가 20kg 이상이라면 더 극단적인 방법이 필요할 수 있다. 바로 ‘딥 플레인(Deep Plane)’으로 무려 9,700만원에 다다르는 가격의 안면 거상술이다. 이 시술과 자가 지방을 얼굴로 이식하는 수술(800만원에서 1,200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든다)을 병행하면 오젬픽 페이스의 흔적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다. 1개월 치 투여량의 가격이 120만원인 오젬픽까지 생각한다면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건강과 자신감을 되찾아준다는 점에서 투자할 만한 가치는 있다.
자, 이쯤 되면 혼란스럽고 허무한 감정이 들 수 있다. 외과적 수술을 통해 광대뼈나 볼에서 지방을 제거하고 눈 밑의 지방을 재배치하는 최신 시술 트렌드부터, 필러나 레이저를 이용해 사라진 볼륨을 되살리는 오젬픽 페이스까지. 때때로 시술을 향한 전 세계적인 집착이 도를 넘어선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치료보다 예방이 낫다는 것이다. 적정 체중만큼 건강해 보이는 피부를 위해 좋은 것은 없다. 오젬픽 페이스가 대두되는 주요 원인은 급격한 체중 감량이지만, 굳이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은 우리 여자들이 신체적 이상향을 위해 기꺼이 이 약물에 몸을 맡기는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마른 체형일수록 적은 감량만으로도 피부 노화를 급진적으로 경험하게 되니까. 그렇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우리는 오젬픽 페이스로 고통받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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