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 2’ 우승 이후의 베베
경계를 뛰어넘어 몰아치는 푸르고 강렬한 파도, 베베. 댄서 7인이 향하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 2> 우승 이후의 이상.
멋있으면 다 언니라고 했다. 춤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오직 열정과 실력만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낸 여덟 크루의 ‘언니’들이 벌인 진검 승부. <스트릿 우먼 파이터 2(스우파 2)>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베베(BEBE)’는 처음부터 좀 특별했다. 오늘날 K-팝에서 가장 핫한 안무를 제조해내는 바다 리를 중심으로 러셔, 태터, 민아, 채채, 키마, 소원으로 구성된 코레오 크루, 베베는 초반부터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에 자주 등장했다. 처음 베베를 접한 이들은 어쩌면 귀여운 뉘앙스의 팀명과 몽글몽글한 하늘색 로고에, 또는 말갛고 앳된 인상의 리더와 멤버들의 무해한 미소에 그저 흐뭇한 시선을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베베가 세계적인 인지도를 보유한 댄스 팀과 쟁쟁한 선배들과 경쟁하는 5개월의 대장정 끝에 결국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기 쎈 언니들’의 거친 판에 뛰어든 베베의 일곱 댄서는 무대 아래에서는 (리더 바다의 표현대로) 그저 ‘일곱 명의 걱정인형’이었을지 모르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잘 노는데 공부도 잘하는’ 반칙적인 설정을 얄미울 정도로 구사해냈다. 무대가 부서질 것 같은 댄스 실력은 물론 리더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다진 단합력, 오늘날 K-팝 신의 레벨을 한 차원 끌어올리면서도 누구나 따라 추고 싶어지는 트렌디한 안무 구성력까지. 소년 만화 주인공처럼 춤 하나로 서사의 정도를 걸어온 베베는 모든 미션마다 ‘폭룡적’인 바이럴을 불러일으키며 대체 불가한 에너지의 아이콘으로 각인됐다.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걸어둔 베베는 정작 가장 ‘언니’스러운 걸 크러쉬를 선사하며, ‘이름값 못하는’ 팀이라는 흥미롭고도 자랑스러운 역설을 매 순간 보여준 셈이다.
춤으로 화제를 모은 예능 프로그램이 이전에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온 국민을 하나의 박수 소리(‘헤이 마마’)와 엄지 불꽃(‘스모크’)으로 대동단결시키고 각종 댄스 챌린지로 SNS 피드를 점령한 건 <스우파>만이 만들어낸 신드롬이었죠. <스우파> 시즌 1의 역대급 성공 이후, 더욱 많은 기대를 받고 시작된 시즌 2에 참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바다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너희 여기 왜 나왔어?’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정말 노력했어요. 특히 우리는 배틀러가 아니었기 때문에 배틀 미션과 기 싸움이 가장 걱정이었어요. 코레오 댄스에서는 일대일로 눈을 마주치며 춤을 출 일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방송 시작 전부터 서로 편을 나눠서 일대일로도, 팀으로도 기 싸움에 지지 않기 위한 트레이닝을 많이 했어요.
러셔 사실 탈락 배틀도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보여줄 일이 없었으니 다행이죠(웃음).
우승 정말 축하해요. <스우파 2> 방영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바다 아티스트로부터 같이 챌린지 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왔어요. 제가 댄서다 보니 그 전까지는 챌린지 안무를 짜주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그걸 같이 하게 된 게 신기하죠.
태터 처음엔 체감하지 못했는데, 추석 때 고향 대구에 가서 동성로를 돌아다니는데 많은 분이 알아보시더라고요. ‘핑크 바지 걔’ 아니냐며. 민아 저보다 엄마가 동네 유명 인사가 됐죠(웃음).
<스우파 2>에 참가하기 위해 결성된 프로젝트성 크루도 많은데 베베는 이미 2022년부터 활동해온 팀이더라고요.
바다 맞아요.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댄서로 팀을 만들고 싶었어요. 초기 멤버인 러셔, 태터와 함께 팀을 좀 더 키우기 위해 오디션을 열었고, 잘하는 친구들만 뽑자는 생각으로 춤 실력뿐 아니라 인성이 어떤지도 정말 신중하게 평가했어요. 이 팀의 목적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앞으로 쭉 함께하는 ‘패밀리십’에 있거든요.
태터 오디션 당시 총 3차까지 면접을 보고 심사숙고해서 댄서를 뽑았어요. 대면 면접이 끝나고 아침 7시에 집에 갈 정도였으니까요. 깊이 있는 대화를 많이 나눠본 후 멤버를 꾸렸기 때문에 팀의 단합력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팀이란 결국 서로 소통을 잘하는 팀이니까요.
소원 뭔가 한평생 같이할 팀원을 구하는 것으로 보였달까요? 그래서 더 들어오고 싶었어요.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땐 같이 오디션 본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자랑도 못했지만요.
힙합에 중심을 둔 ‘울플러’, 화려한 쇼맨십을 어필하는 ‘마네퀸’ 등 각 크루별로 색깔이 있다면 다른 댄스 팀과 가장 차별화되는 베베만의 캐릭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바다 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에너지가 미쳤다’는 것. 사실 방송에 참여한 모든 크루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매력과 힘을 갖고 있다고 봐요. 춤 실력을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죠. 하지만 베베의 에너지 하나만큼은 다른 일곱 크루도 전부 인정하는 사실이에요. 두 번째는 ‘마네킹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네킹처럼 뭐든 입혀주는 대로 잘 소화하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옷 입어봐, 이 안무 입어봐’ 하고 던져주면 어떻게든 전부 찰떡같이 해냅니다. 모든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 곧 베베의 시그니처죠.
<스우파 2>에서 보여준 베베의 춤이 중성적이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각진 포인트 안무나 스포티한 의상처럼, 유독 캐주얼하거나 스트리트 느낌이 부각된 것 같아요. 리더 바다의 스타일인가요?
바다 아무래도 팀 멤버들이 다 저에게 춤을 배운 친구들이라 제 스타일에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저도 베베도, 절대 중성적인 춤만 추지 않아요. 평소 우리 영상을 보면 아주 다양한 느낌을 소화하는 걸 아실 거예요. 분위기 있는 안무도 굉장히 많이 해왔거든요. 다만 <스우파 2>에서는 우리 같은 중성적인 캐릭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베베의 그런 면을 전략적으로 선택했죠. 물론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자, 베베라는 팀이 지닌 차별점을 강력하게 증명하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런 이미지로 화사의 ‘Chili’ 신곡 미션의 경우 다소 갈린 평가를 받았는데, 어땠나요?
태터 당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베베가 베베 했다”였어요(웃음).
바다 저는 댄서인 동시에 안무가잖아요? 오랫동안 춤을 만들다 보니 대중의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고 있어요. 우리만의 스타일로 풀어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아쉽게도 아티스트의 선택은 받지 못했지만 챌린지 점수로는 1위를 하며 대중의 눈에 들었던 안무였죠. 그 점이 정말 기쁘고 뿌듯했어요. 베베만이 지닌 스타일을 멋지게 밀어붙이면서 아티스트가 우리에게 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안무하려고 하죠.
그로 인한 고비도 있었죠. 백현의 ‘Psycho’ 한 곡으로 만든 긴 호흡의 메가 크루 미션은 ‘모 아니면 도’였던 것 같아요. 아마 <스우파 2>에서 베베가 만난 가장 큰 위기였을 텐데,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무대를 바꾸고 싶나요?
바다 솔직히, 만약 당시 작업하는 도중에 이런저런 피드백을 받았다면 바꿨을 것 같아요. 더 나은 무대를 위해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건 늘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때의 베베에게는 그 무대가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회가 없어요. 그런 선택이 지금의 베베를 만들어온 거라고 봐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베베다운 똑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무대에 관해서만큼은 아주 철저하고 완벽주의자지만 바다 씨의 일상이나 실제 성격은 의외로 굉장히 허술하던데요?
바다 정확해요(웃음). 일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만큼 다른 건 웬만하면 ‘오케이’로 설렁설렁 넘어가요.
키마 <스우파 2>를 하면서 ‘지금까지 바다 언니의 한 면만 봤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슬퍼하고, 화내고, 장난치고,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이젠 멤버들이 어떻게 조는지도 서로 알아요(웃음).
그렇다면 다른 멤버들은 어떤 성향인가요? <스우파 2> 덕분에 서로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했을 것 같아요.
바다 소원과 채채는 막내 역할을 충실히 해요. 다른 멤버의 의견을 든든하게 지지해줘요. 러셔, 민아, 태터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에요. 거기에 ‘더 멋있게 해보자’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더하는 건 키마고요. 아, 키마와 채채는 안무 킬링 파트를 잘 짜요. 멤버들 모두 처음에는 눈치도 보고 서툴렀지만, 이제는 많이 편해졌어요.
러셔 6개월간 매일 붙어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됐죠. 그 전엔 서로 화내거나 부딪칠 일이 없잖아요. 많은 대화를 통해 무엇이든 잘 풀어나가는 법을 더 깊이 배웠어요.
‘춤’에 대해 각성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바다 ‘저스트절크’ 제이호 선생님이 첫 스승이었어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춤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며 안무를 보고 울기도 했죠. 저도 그런 댄서이자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고, 그런 춤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그때 처음 했어요. 그 전까진 댄서라는 직업 자체보다는 아티스트에 관심이 많았다면, 그걸 깬 계기가 되었죠.
키마 원래 낯을 엄청나게 가리는데, 춤출 때만큼은 모든 걸 쏟아내게 돼요. “네가 이렇게 춤을 춘다고?”란 말을 들으면 새삼 ‘내가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 더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민아 어릴 때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배웠는데, 목표가 항상 바뀌었던 것 같아요. 그저 앞에 있는 목표를 좇아서 따라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있었어요. 사실 여기 있는 모두 다 그럴 거예요. 춤이 제일 좋아서 춤을 계속 추게 된 거죠.
러셔 맞아요. 어릴 때 여러 가지를 접했는데, 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끊겼어요. 그런데 춤은 계속 배우고 있더라고요. 눈뜨고 보니 대학생이 됐고요(웃음). 이 끈기라면, 죽을 때까지 춤을 출 수 있겠다 싶었어요.
팀뿐 아니라 멤버들도 골고루 성장하고 존재감을 알리게 된 완벽한 ‘성장 서사’가 아닌가 싶어요. <스우파 2>에서 가장 뿌듯했거나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을 자평하자면?
바다 아무래도 가장 뿌듯한 건 ‘스모크 챌린지’로 이어진 계급 미션이요. 그걸 출 때의 저는 완전히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부끄러운 순간은… 제가 안무 준비 중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후 팀원들에게 “아무것도 안 한 거네?”라고 말한 거예요. 나중에 다 같이 방송을 보면서 그 장면이 나왔을 때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죠. 팀원들이 제 ‘온·오프 모드’를 알기 때문에 너그러이 이해해줘서 고마웠어요.
채채 저는 ‘K-팝 데스 매치’ 미션이 좋았어요. 방송으로 공개되기 전부터 대중 평가를 받은 영상이었는데, 굉장히 반응이 뜨거웠던 게 기억나요. 부끄러운 순간은 너무 많죠. 화면 나올 때마다…?(웃음)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채채야, 더 해야 해!”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잡혔더라고요.
태터 저도 개인적으로 뿌듯한 건 K-팝 데스 매치였어요. ‘츠바킬’의 유메리가 던져준 테크닉을 소화해야 하는데, 현대무용을 오래 한 저조차도 처음 해보는 거라 겁이 났어요. 팀원들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상대 팀에게도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결국 해냈을 때, 아주 오랜만에 큰 성취감을 느꼈죠. 중간중간 실패하던 과정이 흑역사가 아닐까 고민했지만, 그건 우리 서사의 일부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민아 K-팝 데스 매치 미션에서 표정 연기를 했는데, 그때 광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열심히 웃었죠. 이불 킥 모먼트는 없습니다.
지금 베베의 가장 큰 욕심은 무엇인가요?
바다 많아요. 일단 무대 욕심이 엄청 많아요. 우리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무대를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안무를 잘하는 팀이니 많은 아티스트와 팀 작업도 많이 하고요. 월드클래스가 되는 것도 목표예요. 그리고 언젠가 제 댄스 콘서트도 열고 싶어요. 다들 와주셔야 해요!
키마 이 기세를 몰아 끝까지 가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유명한 아티스트와 협업해서가 아니라 춤 그 자체만으로 주목받는 댄서가 되고 싶고요. 러셔 저도 좀 더 춤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의지가 강해요. 색다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경험도 쌓고 싶어요.
태터 꿈은 크게 꿔도 되죠? 목표가 있다면, 언젠가 다 같이 월드 투어 워크숍을 떠나는 것. 팀 베베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해외 경험을 하고 싶어요. ‘월드와이드 베베!’
그러고 보니 <스우파 2>에서 팀 소개 멘트가 “Breaking Boundaries(경계를 부수다)”였죠.
바다 맞아요. 제작진이 팀 이미지에 맞게 지어주신 건데, 팀명 어감에도 잘 어울리고, 우리에게 딱 맞는 표현이라 모두 굉장히 좋아하고 있어요. 무대에서 음악이 나오기 전, 이 멘트가 들릴 때마다 괜히 벅찬 마음이 들어요. 경계를 부수고 한계를 뛰어넘는 것. 그게 바로 베베가 지금까지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추구하는 궁극적인 방향이니까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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