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린 로이펠드의 검은 집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 카린 로이펠드가 새 보금자리를 위해 디자이너 장 마르크 에르비에에게 보낸 러브콜. 우아한 취향으로 가득한 그녀의 파리 하우스가 비로소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저의 ‘검은 집’에 오신 걸 환영해요!” 지난여름 어느 날, 전설적인 스타일 아이콘 카린 로이펠드(Carine Roitfeld)가 활짝 웃는 얼굴로 파리에 자리한 새 아파트의 문을 열어주었다. 집과 잘 어울리는 검은색 티셔츠와 허리를 바짝 조여 입은 남동생의 1960년대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으로. “평소 일할 때는 청바지를 절대 입지 않는데, 공식적으로는 아직 휴가 중이니 그러려니 하세요.(웃음)”
많은 이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로이펠드는 블랙을 사랑한다. 그녀를 꼭 빼닮은 침실 한 칸짜리 28평 아파트 역시 온통 검은색이었다. “집이 꼭 검은색 상자 같죠.” 로이펠드가 윌리 리조(Willy Rizzo)의 빈티지 소파에 앉아 가죽 재떨이(이것 역시 검은색이었다!)에 담배를 비벼 끄며 이야기했다. 그녀의 옆에는 절친한 친구이자 디자인 파트너인 실내장식가 장 마르크 에르비에(Jean-Marc Hervier)가 앉아 있었다.
로이펠드가 이 집을 구입한 것은 2022년 초로 새 출발이 필요하다고 느낀 때였다. 아담한 아파트에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그녀는 제일 먼저 짐을 간소화해야 했다. 새집에 놓인 미술품과 사진, 패션 아이템은 전부 고민 끝에 선택한 것들이었다. 그런 다음 별다를 것 없었던 미드 센추리 아파트를 완벽히 ‘로이펠드’화하기 위해 그녀는 에르비에에게 연락을 취했다. 수년간 티에리 뮈글러 밑에서 일했으며 조지 마이클의 ‘지나치게 펑키한’ 뮤직비디오와 프랑스 TV 프로그램 제작에도 일조한 에르비에는 현재 파리의 갤러리 두 군데를 운영하는 모험심 많은 디자이너다.
로이펠드의 삶 역시 그에 못지않게 도전적이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파리 <보그> 편집장으로 활약한 뒤 지금은 매거진 <CR 패션 북> 발행하며, 그 사이 ‘세븐 러버스(7 Lovers)’ ‘카린(Carine)’ ‘포기브 미(Forgive Me)’ 등의 향수까지 출시한 로이펠드는 패션뿐 아니라 인테리어와 디자인 영역에서도 조예가 깊다. 남다른 심미안을 지닌 어머니의 영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결과다. “손전등, 커피, 크루아상을 들고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에 벼룩시장으로 나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요.” 덕분에 로이펠드 역시 일찍부터 사물에 대한 우아한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온통 검은색인 향초, 성냥, 디퓨저 등으로 구성된 카린 로이펠드의 홈 컬렉션을 통해 로이펠드가 그 분야로 한발 더 깊이 내디뎠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테리어에 대한 그녀의 확고한 취향과 훌륭한 안목은 에르비에와의 협업을 매끈하게 기름칠해주었다. “우린 가장 먼저 모든 것을 철거하는 데서 시작했어요.” 그 후 이들은 텅 빈 사각의 공간을 파리의 가장 유명한 쇼핑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거실 겸 다이닝 룸, 아담한 부엌, 욕조와 화장실, 놀랄 만큼 고요한 분위기가 흐르는 침실로 구획해나갔다. “집이 카라반 같죠. 저는 많은 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바로 그런 집이야말로 제게 필요한 것이었더군요.” 로이펠드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로이펠드는 1972년에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이 리모델링한 엘리제궁의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은 1970년대 스타일로 집을 꾸미고 싶어 했다. 퇴폐미를 살리기 위해 로이펠드와 에르비에는 가구 디자이너이자 사진가였던 윌리 리조의 시그니처 작품 몇 가지를 골라 들여놓았다. “제가 윌리 리조를 거의 숭배하는 수준이라서요.” 로이펠드가 수줍게 웃었다.
남은 공간은 21세기에 탄생한 동시대적 작품으로 채워졌다. 로이펠드의 베스트 프렌드 릭 오웬스의 작품과 장 기욤 마티요(Jean-Guillaume Mathiaut)가 로이펠드를 위해 디자인하고 에르비에가 판매를 맡은 오크나무 가구 컬렉션 테이블도 그중 하나였다. “전부 섬세함이 깃든 브루탈리즘의 전형이죠.” 로이펠드가 거들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에서 약간 록 무드도 느껴져요.” 동굴 같은 느낌의 침실에는 검은색 일본산 벽지를 둘렀는데 이는 에르비에가 원래 벽지에 고심해 고른 검은색 페인트를 덧칠해 완성했다. 에르비에가 덧붙였다. “우리가 정확히 원하는 색깔의 벽지를 찾는 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침대 시트 역시 로이펠드가 검은색 가죽으로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었다. “검은색이 좋아요. 매치하기 쉽거든요. 뭐든 다 잘 어울리죠. 소재든 패턴이든 디테일도 훨씬 더 잘 보이고요. 제 취향에 완벽히 부합하는 색이에요.”
완벽한 것이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대형 사진이건, 조그만 장식품이건 집에 놓인 모든 장식품은 로이펠드 생애의 가장 소중한 순간과 사람들이 떠오르는 ‘진짜’ 영혼이 투영된 것들이다. “아버지 쪽 가족이 러시아 혈통이에요. 그래서 집에 러시아와 관련된 물건도 좀 있죠. 선반 위에 있는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가져온 할머니의 성화처럼요. 테이블 위에 진열해둔 발레 뤼스(Ballets Russes)에 관한 책에도 애정이 한껏 깃들어 있죠.”
한쪽 벽에는 앤디 워홀이 촬영한 파라 포셋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리처드 아베돈이 촬영한 페넬로페 트리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30년 가까이 우정을 쌓아온 톰 포드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또 다른 벽에는 칼 라거펠트가 그린 로이펠드의 스케치 작품도 걸려 있었다. 샤넬에서 10년 넘게 함께 일한 동료 라거펠트를 기리며 그녀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3년 동안 브랜드 칼 라거펠트에 남아 있었다.
크고 작은 거울로 벽면을 도배한 또 다른 구역은 어릴 때 발레를 배운 로이펠드만의 프라이빗한 연습실이다. 검은색 벽난로 안쪽에서도 조각난 ‘블랙 미러’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특히 밤에 그 거울에 반사되는 집의 풍경이 아주 아름다운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보여줄 수가 없군요.” 집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던 로이펠드가 자세를 고쳐 앉더니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깊이 빨아들였다. “확실히 적게 둘수록 삶은 더 쉬워지는 것 같아요.” (VL)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