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패션사 수업: 라이크라, 파워 수트, 개념으로서의 의류
1980년대의 성장 동력은 ‘파워(Power)’다. 그것은 건전한 주식 포트폴리오, 건강하고 탄탄한 신체, 깨진 유리 천장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뉴욕 증권 거래소의 종소리, MTV 음악, 개인용 컴퓨터의 키보드 소리에 맞춰 1980년대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패션 또한 참신했다. 라이크라는 몸에 달라붙어 전례 없이 보디라인을 드러냈고, 파워 수트가 탄생했다.
1985년 10월호 <보그>에 실린 한 사설이 이 시기를 완벽하게 요약한다. 헬무트 뉴튼이 촬영한 ‘파워 드레싱’이란 제목의 화보에는 가스탱크를 채우고, 수영장을 청소하며, 울타리를 다듬는 남성들 위에 여성들이 올라탄 모습으로 등장한다. 게재된 글은 다음과 같다. “패션을 엔터테인먼트, 판타지, 도발적인 요소로 바라보는 다른 시각. 남성이 여성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 남성을 바라보는 여성. 주목받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 옷을 입는 여성. 남성은 판타지를 부추길 수 있다. 그러나 방향과 분위기를 결정하는 건 여성. 지금, 변화의 공기가 느껴진다.”
# 1980년대 여성 트렌드
파워 수트: 정장 입는 여자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십 년간 사랑받던 유연한 느낌의 폴리에스테르 수트는 좀 더 구조적이고 각진 버전으로 빠르게 대체된다. 새로운 버전의 수트가 여성은 권력을 원하고, 그에 걸맞은 옷을 입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 특히 1974년 신용기회균등법의 성과로 여성이 기회를 얻은 것도 한몫했다. 경기는 호황이었고, 여성은 경제활동에 참여하길 원했다.
클로드 몬타나(Claude Montana), 엠마뉴엘 웅가로, 티에리 뮈글러, 장 폴 고티에, 이브 생 로랑 같은 디자이너들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갑옷처럼 입는 수트와 스커트를 탄생시켰다. 정장의 어깨는 과장되고 패드가 들어갔으며, 더블 브레스트 실루엣으로 실제보다 몸이 커 보였고, 페플럼 디테일은 착용자를 당당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룩을 중성적이라고 할 순 없다. 비즈 장식과 패브릭, 대담한 컬러는 전통적인 남성 수트와 달랐다. 파워 수트는 여성성을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포효하듯 강렬하게 외친 것이다.
여피족의 부상: 프레피 룩이 등장하다
도시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Young Urban Professional) 또는 상류층 지향의 젊은 전문직 종사자(Young Upwardly-mobile Professional)의 머리글자(YUP)와 히피(Hippie)를 합성해서 만든 말 여피(Yuppie)는 1980년 <시카고> 매거진의 한 기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즉각적으로 분열을 일으켰다. 명칭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허세와 무미건조한 취향의 표식으로 여겼다. 최악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의 무분별한 젠트리피케이션을 의미했다.
1980년대가 끝날 무렵, <보그>는 1989년 기사에서 “섬뜩한 작은 여피 수트(남성용 핀스트라이프와 터무니없이 작은 소녀의 나비넥타이는 여성을 남성적이고 강력하게 보이려는 본래 의도와 달리 답답하고 칙칙하게 보이게 만든다)는 감사하게도 드디어 뉴욕의 7번가(패션 애비뉴)에서 멸종 위기종 목록에 올랐다”고 분명한 입장을 내놨다.
패션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여피 룩은 유행한다. 1984년 발간된 장난기 가득한 <여피 핸드북(The Yuppie Handbook)>은 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여성들은 랄프 로렌의 스커트 수트에 푸시 보우 블라우스를 매치한 뒤 코치 가방을 들고 펌프스 대신 러닝화를 신었다. 남성의 경우 핀스트라이프 스리피스 수트를 입고 버버리 트렌치 코트를 걸친 후 롤렉스 시계를 차고, 스쿼시 라켓을 드는 식이었다. 기본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옷장 속 아이템을 조합한 것이었다.
<보그>에서 더 찬사를 받은 또 다른 여피 룩은 랄프 로렌이 만든 것으로, 미국 남서부의 전형적인 패션에 영국 신사의 전통적인 패션을 융합한 스타일로 미국 캠퍼스 룩의 새 지평을 열었다. 여피 룩에 상상력이 부족했다면, 프레피 랄프 로렌 룩은 판타지와 폴로 셔츠에 힘입어 탄생했다.
보디콘: 화끈한 패션
“뜨거운 것보다 더 뜨겁고, 좁은 것보다 더 좁은, 어떤 몸보다 더 몸을 의식하는 우리. 떠오르는 신인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는 이미 프랑스 패션계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미국인을 유혹한다. 내추럴 뷰티, 신체가 가진 자연스러운 드라마를 강조하는 옷으로 말이다.” 1982년 12월호 <보그>에 실린 글이다.
라이크라 소재의 보디라인을 조각하는 드레스로 ‘밀착 드레스의 제왕(The King of the Cling)’이란 별명을 얻은 알라이아는 운동복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골지 크루넥과 커프스, 레이서백 슬리브가 특징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밀착 디자인을 선보인 건 알라이아만은 아니었다. 앤 클라인에서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후 1984년 자신의 레이블을 론칭한 도나 카란도 여성의 몸매를 랩 같은 드레스로 감쌌다. 노마 카말리(Norma Kamali)도 운동복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1981년 스웨트 컬렉션에서 프렌치 테리 소재로 주름 미디스커트, 우아한 래글런 소매의 스웨터 드레스, 케이프를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제 막 패션 비전을 펼치기 시작한 지아니 베르사체가 이 분야를 선도했다.
꾸뛰르의 귀환: 라거펠트 그리고 라크로와
중동의 경제 호황과 신흥 부유층의 탄생으로 1980년대 꾸뛰르에는 새바람이 불었다. 이브 생 로랑은 여전히 자신의 레이블에서 군림하고 있었고, 칼 라거펠트는 1983년 샤넬의 부흥을 위해 임명되었으며, 크리스찬 라크로와(1988년 F/W 컬렉션의 튀튀 스커트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엠마뉴엘 웅가로, 지안프랑코 페레 등 꾸뛰르계의 신예들이 패션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다.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미친 영향은 매우 즉각적이었다. 1983년 6월호 <보그>는 “갑자기 모두가 샤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현재 샤넬 꾸뛰르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때문이다”라고 썼다.
뉴 로맨틱: 새로운 런던의 룩
파워 수트와 보디콘 드레스가 결합하면서 런던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패션이 탄생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말콤 맥라렌이 재창조한 뉴 로맨틱이 그것이다. 1981년 ‘해적(Pirate)’ 컬렉션은 큰 찬사를 받는다. 19세기 댄디 룩을 재해석한 화려한 유니섹스 컬렉션으로, 구불구불한 패턴이 들어간 러플 블라우스와 삼각형의 해적 모자를 선보이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제시했다. 이 컬렉션은 펑크의 ‘브리콜라주(도구를 닥치는 대로 써서 만든 것)’ 스타일링과 글램 록의 여성성이 결합된 새로운 스타일의 시작을 알리는 듯 보였고, 런던의 클럽 키즈(보이 조지와 연극배우 리 바워리)가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몇 년 후, 1984년 존 갈리아노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레 앵크루아야블(Les Incroyables, ‘레 미제라블’에 대한 레퍼런스)’이란 이름의 역사적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혁명적인 프랑스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이었다. 코케이드에서 따온 컬러 팔레트와 밝은색 팬츠 위에 블라우스, 웨이스트 코트를 레이어드한 이 컬렉션은 트렌드를 포착한 갈리아노를 세계 패션 무대로 끌어올렸다.
뉴 로맨틱 룩을 추구한 디자이너로는 리파트 오즈벡(Rifat Ozbek), 마틴 키드먼(Martin Kidman), 스티븐 존스(Stephen Jones) 등이 있다.
개념으로서의 옷: 일본 디자이너의 활약
1980년대에는 이세이 미야케,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의 명성이 지속되었다. 각 디자이너는 관점이 유니크했지만, 패션에 혁신을 가하는 공통된 방법론이 있었다. 개념이 핵심이었고, 기술을 사용했고, 관습은 과감히 버렸다. 이세이 미야케는 1970년, 꼼데가르송은 1969년, 요지 야마모토는 1972년에 각각 자신의 라인을 론칭하거나 설립했는데, 1980년대가 되자 이들이 파리를 정복했다.
이세이 미야케의 1980년 F/W 컬렉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붉은 플라스틱 뷔스티에, 꼼데가르송의 1987년 S/S 옴므 플러스 쇼에서 튜닉 길이 더블 브레스트 재킷을 입고 런웨이를 거닌 장 미셸 바스키아, 요지 야마모토의 1986년 F/W 컬렉션에서 빨간색 튤 버슬 코트가 강렬한 순간으로 꼽힌다.
룩에 담긴 아이디어는 섹슈얼한 매력이 아니라 생각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보그>는 1983년 9월호에서 아래와 같이 평했다. “올해 일본에서 온 옷과 종종 어둡고 의도적으로 루스하며 오버사이즈인 그 파생물은 필연적으로 논쟁을 이끌어냈다. 그중 일부는 열렬히 지지하고, 일부는 격렬히 반대했다. 사람들은 ‘일본 옷은 시기를 잘 타고났다. 강한 영향력을 지녔으며, 패션의 진화다. 레이어링, 깊은 색감, 천연 원단, 큼지막한 셰이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라고 평했다. 그들이 우리가 입는 옷에 영향을 미칠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서서히 주류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옷이 그렇듯 기억에 남을 것이다.”
건강해진 패션: 피트니스 열풍의 시작
1980년대에는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동안 <보그>의 여러 헤드라인은 건강을 향한 대중의 관심과 매력을 대변한다. ‘운동: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1982)’, ‘여성 임원들의 운동 루틴(1985)’, ‘임산부도 운동을 해야 할까?(1988)’, ‘땀 흘리지 않는 운동?(1988)’ 등이 그 예다.
한편 의류 브랜드는 운동복(강렬한 색상의 레깅스에 라이크라 보디수트를 입고, 레그 워머와 스웨트 밴드를 매치하는 스타일)을 쏟아냈다. 셀러브리티들은 운동 비디오로 돈을 벌었다. 1982년에 출시된 제인 폰다의 운동 비디오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VHS 테이프로 꼽힌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도나 카란, 존 갈리아노, 샤넬의 칼 라거펠트, 이브 생 로랑, 클로드 몬타나, 엠마뉴엘 웅가로, 티에리 뮈글러, 크리스찬 라크로와, 장 폴 고티에, 제프리 빈(Geoffrey Beene), 랄프 로렌, 빌 블라스(Bill Blass), 스티븐 버로우즈(Stephen Burrows), 오스카 드 라 렌타, 앤 클라인, 소니아 리키엘, 미쏘니, 끌로에, 겐조, 이세이 미야케, 조르지오 아르마니, 발렌티노, 벳시 존슨(Betsey Johnson), 메리 맥패든(Mary McFadden), 크리스챤 디올의 마르크 보앙, 잔드라 로즈, 밥 맥키(Bob Mackie), 페리 엘리스(Perry Ellis) 그리고 패트릭 켈리(Patrick Kelly).
#1980년대 남성 트렌드
퇴폐적이던 여성 패션과 달리 1980년대 남성 패션엔 냉기가 돌았다. 1970년대 디스코 스타일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고, 패션은 클래식한 테일러링에 사로잡혔다.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의 리처드 기어에게 입힌 의상은 바지 주름은 없애고 오버사이즈 칼라는 줄여야 한다고 외쳤다. 룩은 세련됐다. 남성들에게 패션은 7번가가 아니라 월스트리트가 주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성들 또한 다양한 트렌드를 접할 수 있었으며, 종종 여성 패션을 반영하거나 반대 경우도 등장한다. 남성용 파워 수트는 핀스트라이프의 더블 브레스트에 넓은 라펠과 넥타이가 일반적이었다. 남자들은 여기에 카키색 팬츠와 캠퍼스 스타일의 니트웨어를 입으며 여피 프렙 룩을 연출했다.
1980년대에는 힙합이 부상했는데, 장르의 개념을 완전히 재정의했다. 힙합은 단순히 음악적 스타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의 룩을 가진 하나의 무브먼트, 운동이었다. 할렘의 대퍼 댄(Dapper Dan)은 LL 쿨 J를 비롯해 팻 보이즈, 잼 마스터 제이, 빅 대디 케인 등의 의상을 제작했다. 캉골 버킷 캡, 골드 체인, 애시드 워싱 청바지, 조깅 수트는 힙합 스타일의 상징이 되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진화하는 가운데 패션에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문화적 배경
1981년 다이애나 스펜서는 디자이너 부부, 데이비드 엠마누엘(David Emanuel)과 엘리자베스 엠마누엘(Elizabeth Emanuel)이 디자인한 레그 오브 머튼(어깨 부분은 부풀고 소맷부리가 좁아지는 형태) 슬리브 디자인의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찰스 왕세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 드레스는 이후 10년간 웨딩드레스 스타일로 사랑받았고, 이 밖에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모든 룩과 헤어스타일은 주목받았으며, 모방하는 이가 많았다.
같은 해 MTV가 등장하면서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새로워졌다. 마돈나는 1985년 영화 <마돈나의 수잔을 찾아서>에서 독특한 빈티지 룩으로 음악 아이콘이자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 <조찬 클럽>, <핑크빛 연인> 같은 청소년 전용 영화로 10대 문화가 꽃을 피웠다.
#패션사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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