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 기억되는 자극, 향의 섹시함에 관하여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자극, 향의 섹시함에 관하여.

나는 향 제품을 즐기지 않는다. 비염이 있어서 냄새에 민감하기도 하고, 요즘은 어지간한 스킨케어 제품과 샴푸에도 향이 들어 있어서 뭘 더하기가 부담스럽다. 화학물질이 두려워서 방향제도 쓰지 않는다. 파촐리가 들어간 밤(Balm)을 썼다가 “파리 노숙자 냄새 같아서 트라우마가 몰려온다”는 소리를 남편에게 들은 후로는 향 사용을 더 조심한다. 그날 밤 남편은 악몽을 꿨다. 그러니 내 공간은 늘 무뚝뚝하다. 이런 환경은 역설적으로 향의 위력을 절감하게 만든다.
좋은 향기가 흐르는 상업 공간에 가면 닫혀 있던 감각이 동시에 깨어나면서 내 몸이 우주의 모든 이야기를 송수신하는 정밀한 안테나가 되는 기분이다. 여자들과 허그를 나눌 때 머리칼과 목덜미에서 달콤한 과일 향이 나면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댄다. 방정맞은 입은 기어이 “너 냄새 좋다”는 말을 흘려 보낸다. 경우에 따라 무례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즉시 사과한다. 하지만 주인의 손길이 닿으면 갸르릉거리는 고양이처럼 나는 이 버릇을 고치기가 어렵다. 상대는 매번 ‘이 여자가 레즈비언이었나?’라는 의문을 담아 나를 쳐다본다. 말했다시피 나는 남편이 있다.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젖은 소금과 해조류 냄새 혹은 수영장 소독약 냄새를 풍기고, 샤워한 지 12시간이 지나면 시트로넬라, 유칼립투스, 염소 치즈를 섞어놓은 것 같은 체취가 나는 남자다. 나는 가끔 그의 겨드랑이에 코를 묻는다.
“여성 여러분, 남자는 당신의 핸드백은 절대 기억 못해요. 향수를 기억하죠.” 크리드 가문의 6대 조향사 올리비에 크리드가 했다고 널리 알려진 말이다.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인지신경학자 레이첼 허즈(Rachel Herz)의 2002년 연구에 따르면 짝짓기 상대의 외모보다 냄새를 더 중시하는 건 여성이고, 남성은 그 반대다. 그러니까 저 말은 남자들에게 더 유용한 조언이다. 하지만 향기가 성적 매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저 문장의 함의에는 공감한다. 향은 본능적인 욕망을 자극하고 이끌림을 관장한다.
고대부터 여성의 초월적 매력은 향으로 묘사되곤 했다. <호메로스 찬가>에서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탄생 순간부터 꽃처럼 향기로운 바람을 동반하고, 천상의 기름으로 자주 몸을 씻는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부두에 도착할 때 그녀의 배에서 흘러나온 향기가 강기슭까지 미쳤다고 전한다.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이 장면을 더 극적으로 발전시켰다. “The winds were lovesick with them.” 그 배의 향기 때문에 바람마저 상사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미인계로 오나라를 멸망시킨 중국 역사 최고 미녀 서시에게는 향기로 왕을 홀렸다는 전설이 따르고, 청나라 건륭제가 사랑한 신장 위구르 출신 후궁 용비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체취가 났다 하여 ‘향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대 문화, 지역색 등을 기반으로 전설의 향을 재현하는 건 현재도 조향사들이 즐기는 과제다. 주인공이 클레오파트라라면 동방박사의 세 가지 선물에도 포함될 만큼 중동에서 고급 향료로 치던 몰약(머르)과 유향(프랑킨센스)이 먼저 떠오르고, 동양 미녀라면 양귀비가 암내를 잡기 위해 목욕물에 즐겨 썼다는 백단향(샌들우드)과 침향(아가우드), 사향(머스크) 등을 고려할 수 있겠다. 이 중 사향은 조선 궁중 사극에서 왕을 유혹하려는 후궁들의 필살기로도 종종 등장한다.
향이 지역, 기후, 공간을 후각화한다는 건조한 명제를 관능과 퇴폐의 아이콘 샤를 보들레르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포근한 가을 저녁, 두 눈을 감고 / 너의 따스한 가슴 향 들이마시면 / 내 눈앞에 평화로운 해변이 펼쳐지네, / 언제나 태양이 눈부시게 비추는 그곳이. (중략) 공기 속에 맴돌며 내 코를 부풀리는 / 초록빛 타마린드 향기는 / 뱃사공 노래와 내 맘속에 뒤섞이네.”(<악의 꽃> 중 ‘이국의 향기’, 김인환 번역, 문예출판사) 보들레르의 뮤즈 잔느 뒤발이 아이티계 흑백 혼혈이었음을 고려하면 그가 타마린드 향에 이끌려 도달한 상상의 낙원이 더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이건 결코 예술가의 과장이 아니다.
인간은 체취를 통해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판별해내고 끌리게 된다거나, 후각이 시각, 청각보다 뇌의 감정 처리 영역을 강하게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는 향수 한 방울이 사람을 홀릴 수 있다는 신화적 믿음을 뒷받침한다. 평민들은 위생 처리도 힘들었던 과거에 좋은 향의 가치는 지금과는 비할 수 없이 높았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향을 즐길 수 있게 된 지는 2세기가 안 됐다. 1793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평민으로 위장하고 프랑스를 탈출하려다가 발각된 게 특유의 향수 냄새 때문이었다는 야사가 있다. 근거는 없지만 당시 향수가 군중 선동의 재료가 될 만큼 상류층의 사치를 상징했다는 게 짐작되는 이야기다. 이후 산업혁명, 도시화, 중산층의 성장, 합성향료 개발 등으로 향수는 점차 대중화되었다.
1917년 프랑수아 코티가 시프레를 출시하면서 향수 산업은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향수병 자체를 하나의 상품이자 예술품으로 각인시키고, 잡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대량생산을 시도하고, 백화점에 향수 코너를 만들게 했다. 현대 향수 산업의 마케팅, 유통 구조를 정착시킨 것이다.
1952년에는 향기의 신전에 또 한 명의 위대한 인물이 추가되었다. 향수와 관능의 관계를 단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마케팅 천재, 향수 업계의 비공식 수호성인, 마릴린 먼로다. 그는 <라이프>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잘 때 뭘 입느냐(wear)”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넘버 5’”라고 답했다. ‘wear’의 중의성을 재치 있게 활용한 이 답변은 누드로 침대에 누운 섹스 심벌 마릴린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대중매체의 금기를 우회해 향기의 방중술을 널리 퍼뜨리는 주문이자 향수 산업을 폭발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향에 관한 한 먼로의 발언에 필적할 만큼 섹시한 홍보 문구는 단 하나뿐이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라는 1997년 한불화장품에서 선보인 남자 화장품 ‘오버클래스 I.D.’ 카피다. 왕가위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주인공이 홀로 거리를 걷다가 스쳐 지나가는 여자를 심란한 표정으로 돌아보고, 저 문장이 흘러나온다. 아픈 사랑, 이별, 섹스 후의 샤워까지 단숨에 상상하게 만들고, 저렇게 긴 여운을 남기는 향은 뭘까 궁금증을 일으키는 광고였다. 당연히 제품도 히트했다. 하지만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끼는 건 매우 드문 경우다.
같은 제품이라도 개인의 체취와 뒤섞이면 결괏값이 달라지는 게 향수의 재미이자 어려움이다. 예컨대 나는 파우더리한 향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 계열에서 유명한 어떤 향수를 어떤 방식으로 써봐도 내가 원하는 향을 내는 데 실패했다. 체취는 유전자뿐 아니라 생활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 사는 공간, 음주와 흡연 습관, 소득 수준이 다 담겨 있다. 냄새만으로 한 여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영화 <여인의 향기>(1992) 주인공 프랭크(알 파치노)의 말은 그러니 과언일지언정 거짓이 아니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체취가 존재한다. 그래서 향의 세계는 들여다볼수록 미궁이다. 그길로 곧장, 깊숙이, 끝의 끝까지 걸어 들어가면 소설 <향수>의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향수>는 향에 미친 나머지 ‘절대 향수’를 만들기 위해 여자들을 죽여서 체취를 수집한 조향사의 이야기다. 현대 향수 산업은 다행히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그린 18세기 프랑스처럼 야만적이지 않다. 인류 최고의 후각과 미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자본을 등에 업고 대규모 과학 연구를 수행한다. 지난달 메종 프란시스 커정이 출시한 ‘바카라 루쥬 540 에디션 밀레짐’은 200ml 한 병이 2만8,000달러에 달한다. 희소 향수 수집가들이 놀랄 만한 가격은 아니다. 인상적인 건 제조 과정이다. 프란시스 커정은 지난 2년 동안 용연향(Ambergris), 즉 수컷 향유고래의 위석을 탐구했다. 용연향은 1kg이 4,000만원을 호가해서 ‘바다의 로또’라고 불린다. 법적 제약이 많아 현대 향수에서는 합성 물질로 대체되는 게 보통이다. 기존 바카라 루쥬 540도 클라리세이지에서 추출한 물질로 용연향을 재현했다.
하지만 커정은 진짜 용연향를 다뤄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 수 주 동안 환경 단체의 보트에 올라 향유고래의 습성을 연구했다. 결국 고래와의 직거래에는 실패했는지, 에디션 밀레짐에 사용한 건 브로커를 통해 구한 용연향 한 덩어리였다. 극소량이겠으나 진짜 용연향이 가미되어 기존 향수보다 ‘형용할 수 없고 손에 잡히지 않는 섹시함’이 표현되었다는 게 브랜드의 설명이다.
또 다른 광기 어린 조향사는 판매보다는 본인의 호기심을 채우고 관심을 받는 게 목적인 듯한 괴상한 향을 계속 만들어낸다. 시멘트 냄새, 맥북 냄새, 운동선수의 땀 냄새, 어린아이 정수리 냄새··· 심지어 피, 땀, 정액, 침이 섞인 것 같은 냄새로 오르가즘의 순간을 표현했다며 ‘후각적 성교’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운 향수도 있다. 수요 없는 공급일까, 진정한 니치 향수일까?
요즘처럼 ‘향 공해’가 오히려 문제 되는 시대에는 절제도 필요하다. “우아함은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라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명언은 패션뿐 아니라 향기에도 적용된다. 순간의 정열에 그치지 않고 긴 여운으로 이어지는 우아한 관능, 그것이야말로 향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VK
- 글
- 이숙명
- 삽화
- Ben G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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