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슈프림’, 그는 절대 티모시 샬라메가 될 수 없다

*이 글에는 영화 <마티 슈프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티 슈프림>의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지난 3월, 영화 홍보 중 ‘영화 산업의 미래’에 관한 대화로 구설에 올랐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로 관심을 보이는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며, “발레나 오페라처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야에서 ‘이걸 계속 살려야 한다’고 애쓰며 일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는 이 발언으로 거친 조롱과 비판을 받았다. <마티 슈프림>을 본 관객이라면 그 순간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티 마우저를 더 강하게 떠올렸을 것이다. 자기 확신으로 똘똘 뭉친 남자.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 그러면서도 세계 최고의 스타를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운동선수. 물론 티모시 샬라메는 세계 최고의 스타다. 할리우드는 앞으로도 한동안 티모시 샬라메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티모시 샬라메의 존재감은 <마티 슈프림> 관객에게 의미심장하다. 영화 밖의 그는 곧 영화 속 마티 마우저가 꿈꾸는 이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티 슈프림>은 독일 출신의 신스팝 밴드 알파빌(Alphaville)의 노래 ‘Forever Young'(1984)으로 시작한다. “멋지게 춤을 추자, 잠시 동안 춤을 추자. 천국은 우리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걸 기다려줄 뿐이지.”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노래와 함께 영화가 보여주는 건, 주인공 마티(티모시 샬라메)와 연인 레이첼(오데사 아지온)이 비밀스러운 정사를 벌이는 동안 그들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는 과정이다. 탁구선수인 마티는 곧 영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해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길 꿈꾼다. 우승만 한다면, 비행기 티켓 값을 벌기 위해 구두 가게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고 이 여자와 만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영화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장면을 통해 그의 꿈이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예고한다.


<마티 슈프림>은 시종일관 초침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일으키는 영화다. 마티는 몸과 머리가 모두 바쁜 남자다. 경기를 뛰어야 하고 틈틈이 매력을 어필해 자존감도 충족해야 한다. 영화의 중반부 이후 그는 도쿄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열심히 뛰어다닌다. 하지만 욕심을 자제할 줄 모르는 그의 성정은 더 큰 화를 불러온다. 영화를 연출한 조쉬 사프디 감독이 동생 베니 사프디와 함께 만든 <언컷 젬스>와 <굿타임>의 주인공도 상황은 비슷했다. <굿타임>의 코니(로버트 패틴슨)는 경찰에 잡혀간 발달장애 동생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고, <언컷 젬스>의 하워드는 도박중독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지자 사건을 수습하려고 새로운 베팅을 연달아 하다가 무너졌다. 그들과 비교할 때 <마티 슈프림>의 마티 마우저에게는 그래도 낭만적인 기운이 넘친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달리기 때문이다. 화려한 말발과 매력, 뛰어난 탁구 실력에 기반한 자신감도 있다. 그런데 자신감이 넘쳐도 너무 넘치는 게 문제다.

제목인 <마티 슈프림(Marty Supreme)>은 영화 속에서 마티가 계획하는 탁구공 사업의 브랜드다. 그는 어차피 자기가 대회에서 우승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브랜드를 만든다. 하지만 근거 없는 확신은 과대망상일 뿐이다. 영화는 이 확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우승에 실패한 마티는 다음 대회 참가를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걸 팔아치운다. 그토록 경멸하던 서커스 탁구단에서 재능을 팔고, 아마추어를 가장해 내기 탁구를 치고, 끝내 가짜 대회에 자기 자신을 팔아넘긴다. 그처럼 <마티 슈프림>은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마케팅하던 인간이 상품성을 잃은 뒤, 남은 것들을 헐값도 못 받고 처분하는 이야기다. 재능을 팔던 마티는 더 이상 팔 게 없자 결국 자존심까지 내려놓는다. 그의 서사에는 사기와 거짓말이 끊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꿈을 향한 열망이 끓어오를 대로 오르는 이 영화의 에너지는 매혹적이다. 또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애잔한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프닝에서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던 그는 이제 어떻게 해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 영화가 들려주는 노래는 영국의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가 부른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1985)다. “너의 삶에 온 것을 축하해. 되돌아갈 길은 없어. 네가 잠에 들어도 우리는 널 찾아낼 거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봐.” 주인공의 새로운 인생을 알리는 동시에 그를 비웃는 것처럼 들리는 노래다. 얄궂어서 재미있는 연출이다. 티모시 샬라메는 마티 마우저가 될 수 있지만, 마티 마우저는 절대 티모시 샬라메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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