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클로저 데이’, 스필버그의 외계 탐구는 언제나 우리를 향했다

2026.06.10

‘디스클로저 데이’, 스필버그의 외계 탐구는 언제나 우리를 향했다

외계인에게 호기심을 품어본 적이 있다면, 그 출발점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을 확률이 높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직접 챙겨보지 않은 세대라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스필버그의 작품을 보고 자란 이들이 만든 영화를 거쳐왔을 테니 말이다. ‘외계인과의 만남’을 두고 그만큼 아름다운 생각을 한 감독이 또 있었을까. 이전 영화들이 외계 생명체를 적대적인 침략자로 못 박을 때, 스필버그는 다른 길을 텄다. 〈미지와의 조우〉(1977)와 〈E.T.〉(1982) 속 그들은 우리를 향한 궁금증으로 가득했고, 교감을 갈구했다. 언어 대신 음악으로 말을 건네거나 인간의 말을 스스로 추론했다.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에 이르면 지구 문명을 들여다보는 고고학자의 태도까지 갖춘다(외계인으로 명시되진 않았으나, 바깥에서 온 존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스틸 컷.

동시에 스필버그는 끔찍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우주전쟁〉(2005)의 침략자들은 수 세기 전 지구 밑에 묻어둔 살상 기계를 깨워 인간의 피와 살을 수확했다. 9·11 테러의 트라우마를 반영한 작품으로서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상상은 한 점으로 모인다. 외계인은 존재한다. 그들은 지구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그들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스틸 컷.

〈디스클로저 데이〉는 스필버그가 다시 한번 그 만남을 붙든 영화다. 〈E.T.〉처럼 곱고 다정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주전쟁〉처럼 적대 관계를 그린 것도 아니다. ‘폭로의 날’이라는 뜻의 제목이 일러주듯, 핵심은 외계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세력과 드러내려는 이들의 갈등이다. 양쪽 모두 명분을 쥐고 있다. 폭로하려는 쪽은 진실을 특정 집단이 독점해선 안 되며 80억 인류 전체의 몫이어야 한다고 외친다. 감추려고 하는 세력은 수천 년간 쌓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인류가 대혼란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외계 종족을 향한 인간의 막연한 불안과 동경, 경이를 오래 그려온 감독은 여기서 한층 본질적인 물음으로 내려간다. 정말 외계인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우리는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1947년 로스웰의 발표와 번복 이래 반세기 넘게 음모론을 키워온 미국에서, 이 질문은 상당한 폭발력을 지닐 듯 보인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스틸 컷.

하지만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고 자란 팬에게 〈디스클로저 데이〉는 오히려 가장 스필버그답지 않은 외계인 영화일 것이다. 〈미지와의 조우〉와 〈E.T.〉에는 시적 낭만이 흘렀다. 〈미지와의 조우〉 클라이맥스에서 인류와 외계인은 다섯 음계로 교신했다. 〈E.T.〉에서 술에 취한 외계인은 가장 친한 친구와 동기화되어, 그가 짝사랑하던 아이와의 설레는 입맞춤을 성사시켰다. 주장과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추격전이 벌어지는 〈디스클로저 데이〉에는 그런 낭만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진실로 내달리는 인물들에게서 〈미지와의 조우〉가 어른거리긴 하나, 정작 더 짙게 포개지는 건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 스필버그의 영화들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추격전의 형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를 연상시키고,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분투하는 구도에서는 〈더 포스트〉(2017)가 떠오른다(하지만 그 영화들만큼 매력적인 건 아니다). 스필버그의 영화라서 아쉬운 점도 있다. 질문의 무게에 눌려, 그의 다른 영화가 안기던 희열과 감동이 희석되었다고 할까. 오래전부터 외계인을 이야기해온 감독의 영화인 만큼, 동어 반복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스틸 컷.

그럼에도 스필버그가 이 시점에 굳이 외계인의 진실에 관한 질문을 꺼내 든 이유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작품 속 세계는 북한 내 반군의 도발로 3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일촉즉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때 외계의 진실이 터져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지구 밖에도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은, 국경을 둘러싼 반목도 이념을 앞세운 적의도 한순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든다. 우리가 그토록 사활을 걸어온 다툼이, 실은 광막한 우주의 한 점에서 벌어지는 소동에 지나지 않았음을 일깨우는 순간이다. 스필버그가 외계라는 거울을 다시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갈등으로 들끓는 오늘의 지구에서 스필버그는 더 멀리, 넓게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외계인을 가장 오래 상상해온 감독이 평생에 걸쳐 돌아본 곳은, 언제나 결국 지구였을 테니 말이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스틸 컷.
강병진

강병진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영화 저널리스트입니다. <씨네21>에서 영화 전문 기자,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뉴스 에디터, OTT 플랫폼 왓챠에서는 콘텐츠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이상한 장면’이란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입니다. 어쩌다 보니 20년 가까이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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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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