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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 타르’ 이것은 음악영화가 아니다

2023.02.28

by 민용준

    ‘TAR 타르’ 이것은 음악영화가 아니다

    결국 거기서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인생에 관하여, ‘TAR 타르’.

    “교향곡은 세계와 같다.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와 대담을 나누던 구스타프 말러가 했다는 이 말은 영화 <TAR 타르(타르)>를 이해하는 한 줄 가이드처럼 읽힌다. <타르>는 동시대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에 관한 영화다. 150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타르가 등장하지 않는 시퀀스가 부재할 정도로 한 인물의 내면에 밀착한 영화다. 한편으로 <타르>는 말러 교향곡 5번을 일종의 표제처럼 제시하는 영화인데 사실 영화에서는 말러 교향곡 5번의 한 악장도 온전히 연주되는 장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나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과 함께 ‘아다지에토(Adagietto)’로 회자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될 것 같다.

    심각한 장 출혈 증세로 건강이 악화된 말러는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한 1901년에 교향곡 5번 작곡을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인지 교향곡 5번 1악장은 ‘신중한 속도로, 엄격하게, 장례 행렬처럼(Trauermarsch. In gemessenem Schritt)’이라는 연주 지시에 따라 장송곡 리듬을 기반으로 비장하고 장중하게 연주되는데 이는 말러가 겪은 투병 과정의 고통이 반영된 결과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동시에 교향곡 도입부의 보편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나 이례적인 선언처럼 들리는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되는 1악장부터 5악장까지, 단조에서 장조로, 폭풍 같은 절망에서 태양 같은 환희로 상승하는 듯한 곡조의 전개 역시 병세를 회복하는 경험이 반영된 것처럼 여겨진다. 이렇듯 말러의 교향곡 5번은 작곡가 개인의 삶과 연관해 해석할 때보다 입체적인 감상을 낳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듯하지만 그래서 후대 음악가들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다양성의 그릇이 됐다.

    말러 교향곡 5번을 특별하게 수식하는 듯한 4악장 ‘아다지에토’는 음악적 해석이 단순히 음계 고유의 특성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지만 강력하게 대변하는 상징적 기표나 다름없을 것이다. 현악기와 하프 연주의 선율과 떨림으로만 구성된 4악장 아다지에토가 선사하는 서정성의 극치는 건강을 회복한 말러가 사랑에 빠진 덕분에 다다른 세계였다. 사교 모임에서 만난 알마 쉰들러에게 마음을 뺏긴 말러는 자신이 작곡한 악보에 열렬한 구애의 의미가 담긴 시구를 적어 보냈고 이에 응답한 알마와 연인으로 발전했으며 끝내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다지에토는 말러가 알마에게 보내는 연서였다. 하지만 알마를 옥죄듯 가둔 말러의 태도는 알마를 지치게 만들었고, 첫딸의 이른 죽음은 금이 간 부부의 관계를 급격하게 조각내는 단초가 됐다. 그 후 알마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말러는 극심한 불안정 속에서 경력적인 위기까지 맞이했고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지휘자 활동을 하는 강행군을 펼치다 감염 증세를 이기지 못하고 알마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뒀다. 결혼한 지 9년 만인 1911년의 일이었다.

    ‘아다지에토’의 서정성이 실상 말러의 사랑이 절정으로 다다랐을 무렵에 창작된 것임에도 비극적인 여운이 짙은 해석이 주를 이루는 건 말러의 말년에 드리운 비극적인 인상의 지분이 크다. 환희로 벅찬 마음을 표현한 곡이지만 상실과 고독으로 수렴해버린 듯한 말러의 운명이 아다지에토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향성으로 제시된 셈이다. <타르>의 극 초반부에서 타르의 입을 빌려 언급되는 아다지에토의 해석에 대한 견해 역시 그런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타르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에서 12분에 걸쳐 아다지에토를 연주한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했을 당시 아다지에토를 미사곡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것이 말러의 쓸쓸한 말년을 인용해 재해석한 감정의 결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타르는 아다지에토를 “비극이 아니라 젊은 사랑으로 태어났다”고 말하며 자신의 아다지에토는 ‘사랑’을 선택할 것이라 공언한다. 자신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5번 실황 녹음에서의 아다지에토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신에게 남겨진 말러 교향곡 사이클의 남은 여백은 그렇게 채울 것이라 말한다. 자신감도, 야심도 대단하다.

    <타르>는 말러 교향곡 5번 실황 녹음을 준비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에 관한 영화다. 당연히 실존 인물은 아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 자리에 오른 여성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타르는 지휘자로서, 여성 지휘자로서는 더욱 정점에 오른 인물이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 경력을 시작한 뒤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까지, 이른바 미국 5대 관현악단이라 일컫는 ‘빅 파이브’ 지휘자로 경력을 쌓은 뒤 2013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로 지명되며 세계적인 지위를 인정받는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타르는 이제 역사상 최고의 여성 지휘자라는 수사를 넘어 유일무이한 업적을 이뤄낸 거장이 될 채비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베를린 필하모닉과 8개의 말러 교향곡 실황 녹음을 진행한 타르에게 남은 숙제는 교향곡 5번이다. 그것만 이뤄내면 단일한 교향악단과 말러 교향곡 9개를 모두 실황 녹음한 교향곡 사이클을 가진 유일무이한 마에스트로가 된다. 이는 말러의 권위자로 불리는, 타르가 스스로 멘토라 지칭하는 레너드 번스타인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그러니까 타르는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지위에 오를 마지막 채비를 하는 여성 지휘자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서 사회적인 권위와 명망을 지닌, 동시대 여성을 대변하는 리더로 꼽혀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다. 하지만 타르는 여성 지휘자를 지칭하는 ‘마에스트라’가 아니라 남성 지휘자처럼 ‘마에스트로’라고 불리길 원한다. 그리고 그건 여성성에 대한 차별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시대에 다양하다는 건 좋은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타르는 지금이 ‘전문가의 시대’라 역설한다. 그리고 “성 편견에 대해 딱히 불평하고 싶은 바가 없다”고도 말한다. 자칫하면 다양성의 가치에 무지하거나 차별에 무감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녀의 입장을 대변하자면 성별로 분류하던 과거와 달리 다행히도 시대가 바뀌었고 아직 완전하진 않다 해도 훌륭하게 진화하고 있기에 ‘마에스트라’라는 언어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럴듯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타르의 말에는 모종의 모순이 있다. 마에스트로가 남성성을 대변하는 언어로 인식된 건 역설적이지만 마에스트라라는 여성 지휘자의 존재가 나타난 덕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에스트라는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남성 지휘자가 여성 지휘자를 분류하기 위해 지칭된 언어라는 점에서 차별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구분이 여성 지휘자의 존재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여성 지휘자의 희소성을 인지하게 만드는 상징적 언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르는 자신의 권위가 남성과 동등하다고 믿고 비로소 쟁취했다고 생각하며 이로써 시대가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타르는 전통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남성 지휘자를 참고하고 인용해 그것이 애초에 제 것이었던 것처럼 위장하는 데 더 능해 보인다. 결국 시대가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타르는 정작 그런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자신의 구태의연한 욕망과 행위를 통해 차차 붕괴된다.

    말러 교향곡과 관련한 다양한 LP 앨범을 바닥에 깔고 내려다보다가 발로 하나씩 밀어내고 후보를 좁혀나가던 타르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5번 앨범과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9번 앨범을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한다. 그때 아바도의 앨범 위로 발이 올라온다. 타르의 애인이자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마스터이자 제1바이올린 주자 샤론(니나 호스)이다. 샤론은 타르를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성할 수 있게 도와준 최고의 후원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샤론과 함께 선택한 말러 교향곡 5번 앨범의 커버에서 아바도가 입고 있는 옷과 유사한 디자인의 의상을 맞춰 입고 그가 취한 행동까지 따라 해본다. 타르는 일찍이 성취를 인정받은 남성 마에스트로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걸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안전하게 보장해보고자 하는 것 같다.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오른 여성이라기보다는 기존에 권위를 인정받은 남성성을 최대한 두르고 자신을 그런 역할로 인정받게 만들고자 하는 야심의 발로가 더욱 도드라진다.

    타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이 시간을 해석하고 시계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타르가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 방식과도 동일해 보인다. 타르는 부유한 재벌이자 지휘자로도 활동하는 ‘말러리안’ 엘리엇 카플란(마크 스트롱)이 운영하는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 지휘자의 권위 향상이라는 취지에서 설립한 아코디언 컨덕트 펠로우십을 이끄는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타르는 카플란에게 갑자기 아코디언의 범위를 확대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카플란은 타르에게 인원을 늘리자는 의미인지 되묻자 타르는 후원 기회를 여성만이 아닌 남성에게도 확대하자고 말한다. 타르는 여성성이라는 희소한 특징이 지휘자로서 자신을 주목하게 만드는 독보적 지위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지키는 것을 나름의 경쟁력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비평을 읽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자신을 다룬 인터뷰 기사를 직접 스크랩해 보관할 정도로 인정 욕구가 강해 보인다.

    타르의 업무를 관장하는 비서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는 종종 타르에게 크리스타 테일러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타르는 크리스타에게 재능이 있지만 성격이 이상하고 집착이 심해서 관계를 차단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타르는 크리스타가 지휘자로서 업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업계 주요 관계자에게 그녀에 대한 악담을 써서 메일로 보낸 바 있다. 그런 타르의 방해 공작 여부를 아는지 몰라도 적어도 음악계에 발을 들일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절망한 크리스타는 프란체스카에게 절규에 가까운 메일을 보낸다. 프란체스카는 그런 크리스타가 염려되고, 타르 역시 그런 크리스타가 신경 쓰이는 것 같다. 다만 타르는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타르의 명성을 흔드는 강력한 여진으로 거듭 돌아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르는 사소한 욕망에 눈이 멀고, 스스로에게 불리한 선택을 연이어 자행한다. 

    타르는 자신의 권위를 토대로 나쁜 선택을 거듭한다. 최초의 선택은 지나치게 순진한 욕망의 발로에서 시작된다. 권위는 타인의 호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권능이기도 하다. 타르는 그런 권능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행사하고, 은근히 거리낌이 없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습성을 잘 아는 이들은 그런 기미를 역시 은근히 파악한다. 애인 샤론도, 비서 프란체스카도, 타르가 누군가를 매우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감지한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에서 감내하거나 모른 체한다. 견뎌온 세월도 있고, 필요한 관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르는 정작 자기 자신의 사소한 욕망이 무엇을 태우는 것인지 잘 모른다. 결국 타르가 어리석은 욕망을 부릴 때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행했을 법한 지난 과오를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함께 제공된다는 인상을 느낄 것이다. 과거를 재현하는 플래시백이 등장하지 않지만 타르를 바라보는 갖은 시선은 그녀가 지나온 과거를 짐작해 내다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창처럼 관객 앞에서 재차 열린다. 정작 당사자만 모를 뿐이다. 타르가 느끼는 시선은 정작 따로 있다.

    타르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미세한 소음에 곧잘 잠에서 깬다. 그런데 간혹 그 모든 소음은 유난히 그녀에게만 선명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소음은 때때로 타르에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타르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난데없이 똑딱거리는 벽장의 메트로놈을 움직인 사람은 누구인지 알 길이 없고, 냉장고 소음은 유독 타르에게만 예민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떤 시선을 느끼는지 주변을 돌아보지만 당연히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마음속에 들어앉은 강박이 타르의 감각을 예민하게 자극하는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다. 어쩌면 그건 죄의식의 발로 같기도 하고, 뒤늦게 후회스러운 상황이 자아내는 긴장감의 반응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결국 그 모든 상황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 돌아와 유령처럼 타르를 괴롭힌다. 시간을 관장하는 지휘자로서 단상에 섰을 때와 달리 일상의 시간까지 마음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시간은 점점 타르의 편이 아닌 것만 같다.

    기다리던 화룡점정의 시간에서 미끄러져 사필귀정으로 추락하는 이야기. 타르는 결국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는다.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재능이 발현될 기회의 싹을 잘라버린 업보가 무섭게 들이쳐 드높은 위상을 삽시간에 끌어내린다. 이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된 행위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비겁한 선택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실망과 불신을 초래한 자충수의 결과이기도 하다. 부지휘자 교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단초가 된 건 카플란의 권유였고, 이를 따르던 타르는 자신의 측근을 임명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을 피하고자 그 자리가 필요했던 프란체스카를 외면한다.

    그 와중에 새롭게 발탁한 첼리스트 올가(소피 카우어)를 길들여보고자 자신의 뉴욕 출장길에 동행하지만 뜻하는 바는 이뤄지지 않고 되레 샤론의 애정과 지지마저 잃게 된다. 자신이 쌓아온 명성으로부터 빠르게 내려앉아버린 타르는 끝내 예정된 공연일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무대에 등장하고 그 덕분에 모두는 경악한다.

    그러니까 이건 권력을 악용해 약자를 그루밍하고 착취하는 데 능했던 이에게 찾아온 인과응보의 서사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유쾌하거나 통쾌하다는 기분을 작동시키진 않는 것 같다. 그것이 그저 추악한 권력자의 몰락이라 기꺼이 즐길 수 있는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실상 완전해 보이던 권력의 가면이 벗겨진 뒤 약자의 민낯을 드러내고 쓰러져 기구하게 회향하는 듯한 인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타르가 만들어낸 추문에는 동정의 여지가 없지만 영화는 타르의 악행을 심판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오히려 그 후의 삶에 애정을 품고 지켜보는 것 같다. <타르>는 결말부에 다다라 다 끝났다고 여길 만한 지점부터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에서 추문의 주인공으로 뒤바뀐 타르는 자신의 원점이나 다름없는 고향 집으로 돌아와 아주 오래전 자신을 음악의 길로 이끌었을 것으로 보이는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작은 TV 화면 너머에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화면을 보고 말한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샤프나 플랫, 코드, 업계에 관해 알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멋진 건 음악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지만 끝내 음악으로 돌아갈 길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깨달음은 타르를 필리핀까지 인도한다. 가끔씩 청산하지 못한 빚처럼 5라는 숫자에 대한 강박에 속이 뒤집어지지만 아주 오래전 <지옥의 묵시록> 촬영을 위해 말론 브란도와 함께 필리핀에 왔던 악어가 긴 세월이 지나서도 살아남아 그 강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타르의 삶을 예견하는 일종의 복선처럼 들린다. 본래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악어처럼 낯선 땅으로 흘러 들어간 타르 역시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는 예언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비로소 타르의 지휘와 함께 연주가 시작되는 결말에서는 그가 받아들인 삶의 처지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풍경 앞에서 되레 숭고한 것을 목도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지난 영예를 모조리 붕괴시킨 시간이 되레 덧없는 무게를 덜어내고 순도 높은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순리의 시간으로 여물었다는 사실은 담담하게 자신의 지휘에 집중하는 타르의 얼굴을 통해 온전히 체현되는 것만 같다. “승리를 느끼시나요? 이제 우리는 음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라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처럼. 결국 남아 있는 것을 통해 다시 일어나는 법이다. 음악도, 영화도, 인생도, 쉽게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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