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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을 끊고 복싱에 빠졌다

2025.06.06

매운맛을 끊고 복싱에 빠졌다

매운맛을 끊고 복싱에 빠졌다고 하면 누군가는 “어쨌든 두들겨 맞는 건 똑같네”라고 할 테지만, 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Getty Images

10년 넘게 나의 마감 루틴은 지독히 변태적이었다. 퇴근쯤 배달 앱을 켜고 무교동 낙지볶음이나 엽기 떡볶이를 상위 단계로 주문하고, ‘스포티파이’에선 슬립낫, 콘, 데프톤즈 같은 데스 메탈을 재생했다. 온몸을 심벌즈 삼은 <위플래쉬>의 천재 드러머라도 된 것처럼 혀를 때리거나 귀를 때리는 식으로 자신을 위안했다. 아니, 위안인 줄 알았다. 고통이 데려다주는 무언가를 멋진 쾌락, 도피라 믿었다.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캡사이신이 작용하는 미각 뉴런이 뇌의 미각중추에 닿아 매운맛을 인식하면 혈관이 확장되면서 뇌 기능이 활발해지는 데 도움을 주고, 전전두엽에 신호가 활성화되면 스트레스 해소와 긴장 완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매운맛에 의지하는 마감 루틴의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점점 더 강한 자극, 매운맛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나를 위로하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은 위스키 디스틸러, 마스터 블렌더를 취재하면서부터다. “테이스팅을 앞두고는 매운 음식은 일절 삼가요.” 히비키, 야마자키, 보모어, 라프로익 등 산토리의 모든 위스키를 총괄하는 치프 마스터 디스틸러 신지 후쿠요는 인터뷰에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섬세한 미각을 총동원해야 하는 셰프, 소믈리에, 푸디 대부분이 매운 음식을 되도록 멀리한다는 사실이 계속된 취재로 더욱 견고해졌다. 미묘하고 복잡한 맛의 세계에 더 깊이 가닿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중독을 끊어내야 했다.

변화는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시점은 복싱을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복싱장에서 줄넘기만 하다 어영부영 끝난 스토리 하나쯤 가슴에 품은 흔한 사람 중 하나였던 나에게 뜻밖에 불을 지핀 인물은 셰프 안성재다. <지큐> 2024년 9월호, 오래 곁에 두었거나 두고 싶은 물건을 취재하는 칼럼을 위해 안성재 셰프와 처음으로 요리가 아니라 ‘복싱’이라는 주제만 가지고 꽤 긴 대화를 나눴다. 그는 당시 갈비뼈 부상을 딛고 전국생활복싱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지켜봐온 셰프 안성재와 복서 안성재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복싱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의 말은 훨씬 박진감 있었고, 톤도 높았다. 흥분된 톤으로 “복싱은 가장 순수하고 솔직한 스포츠”라고 말하는 그의 표현이 퍽 섹시하게 들렸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인터뷰한 인물 중 나를 강하게 매료한 이들-트와이스 정연, 방탄소년단 지민, 제이크 질렌할, 변요한, 이용주 등-이 하나같이 복싱 혹은 MMA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복싱과 MMA 이종격투기는 엄연히 다른 스포츠지만 이 칼럼에서만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기로 한다.)

트와이스 정연은 “복싱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사람 눈을 오래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고 내 눈을 부드럽고 강렬하게 응시하며 말했고, 영화 <로드 하우스> 촬영으로 실제 UFC 경기에까지 오른 제이크 질렌할은 격투기가 얼마나 예술적인 스포츠인지 들려주었다. 코미디언 이용주는 정찬성의 레전드 경기를 보면서 “우리가 왜 싸워야 하고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지 배운다”고 했고, 변요한은 <배우의 방>이라는 인터뷰집에 이렇게 적었다. “대부분의 운동은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잖아요. ‘내가 이길 거야’ ‘근육을 만들 거야’ 하면서 비장해지는 면이 있죠. 그런데 복싱은 반대예요. 비우지 않으면 안 돼요. ‘난 맞지 않을 거야’가 아니라, ‘난 맞아도 돼’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만난 인물들이 평행 세계에서 합창하듯 나를 이 세계로 부르고 있었다.

삶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영접한 것 같은 순간이 몇 가지 있다. 어릴 때 아빠 손을 잡고 간 장충체육관에서 권투 경기를 본 순간이 그중 하나다. 다시 복싱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하고 ‘이번에는 얼마나 버틸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차가운 비닐 가죽과 땀 냄새가 뒤섞인 체육관으로 들어가던 날, 수십 년 전의 어느 기묘한 하루가 급작스럽게 기억으로 밀려들었다. 공포와 흥분, 그때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동전의 양면 같은 기이한 감정. 꺼진 줄 알았던 재가 불덩이로 타오르는 것처럼 무언가가 가슴을 왈칵 쥐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가식 없는 그 공간에 속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늘 필요에 의해 어떤 표정을 짓고 살아가지만, 복싱장에서는 그럴 시간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설계도를 그리기 전에 순간, 즉각, 즉흥으로 몸이 먼저 반응해야 했다. “딴생각했죠?” 생각하는 찰나 미트를 쥔 관장님에게 어김없이 들켜버렸다. 복싱을 하며 머리를 텅 비우게 되는 건 대단한 결심 때문이 아니라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뭔가 되는가 싶을 때 반드시 틀리고 마는, 나의 오만함에 회초리를 대는 저 안의 하찮음을 발견하는 것도 기이한 짜릿함이었다. 매섭게 집중력을 쏟아내야 하는 원초적인 순간이 그 어떤 명상 수업보다 더 명상처럼 느껴졌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다가도 글러브를 끼고 상대를 마주하면 드러나는 날 선 눈빛, 체육관 ‘전우들’의 눈에서 나오는 섬광도 나를 흥분시켰다. 눈 감고도 감을 만큼 익숙한 관장님이 매번 내 손을 정성스럽게 살피며 밴디지를 감아주는 순간은 나의 하루 중 가장 성스러운 시간이다.

미야케 쇼의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는 선천적 청각장애를 지닌 프로 복서가 나오는데, 소속된 복싱 체육관 관장이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오가와 선수가 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재능과 소질이 있어서인가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재능은 없어요. 하지만 뭐랄까요, 인간적인 기량이 있어요. 정직하고 솔직하고, 아주 좋은 녀석이에요.” 재능이 있어도 정직하고 솔직한, 좋은 녀석이 되지 않고는 별 소용이 없다는 듯이.

전국생활복싱대회에서 승리를 거둔 후의 안성재와 다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고, 그는 대회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원초적인 긴장감을 느꼈어요.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두려워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을 어릴 때 이후 처음 느꼈거든요. 그 느낌이 너무 싫었지만, 너무 좋았어요.”(<지큐> 2024년 12월호 인터뷰 중)

복싱을 시작하고 오히려 살이 더 불었으니 결심했던 다이어트는 실패했고, 체력도 여전히 바닥이지만 나는 오늘도 다디단 아침잠을 포기하고 잘 말려둔 땀복을 챙겨 집을 나선다. (복싱 플레이리스트에는 데스 메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니, 귀로 듣는 매운맛은 아직 끊어내지 못했다.)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안미옥의 시 ‘생일 편지’ 마지막 구절처럼 내가 흠모했던, 복싱에 빠진 이들은 애초부터 강한 사람이 아니라 두 어깨를 짓누르는 공포의 무게를 느끼고 무릎을 벌벌 떨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두려움을 어떻게든 힘으로 전환하는 사람들. 내가 그런 이들에게 매료된 건, 그러다 복싱에까지 빠진 건 나도 그렇게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 다짐을 닳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매운맛을 끊고 복싱에 빠졌다고 하면 누군가는 “어쨌든 두들겨 맞는 건 똑같네”라고 말하겠지만, 두들겨 패어 감각을 둔하게 만드는 것과 흔들어 깨워 명료해지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복싱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 스파링도 해보지 못했으니, 나의 복싱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가도 가도 아직 멀었다는 그 사실이, 아무래도 나를 평생 흥분시킬 것 같다. 전희란 <지큐> 피처 에디터

    피처 디렉터
    김나랑
    피처 에디터
    류가영
    전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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