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1,633회 요가를 하고 달라진 것
K-팝 스타의 공연을 보기 위해 국경을 넘던 시절은 어느새 아득해지고, 3년 동안 1,633회 요가를 수행하며 진짜 인류애를 경험하다.

코로나19 방역 해제를 몇 달 앞둔 2023년 1월 첫 토요일, 이혼 업계의 최고봉인 후배 변호사가 나를 지방에서 열리는 이샤 하타(Isha Hatha) 요가 특강에 초대했다. 한창 재밌게 킥복싱도 하고 있었고, 대학생 때 엄마의 강요로 억지로 몇 달 다닌 요가는 ‘내게 맞지 않는 운동’이라 여겼기에 아무리 거센 요가 열풍도 내겐 그저 남 일이었다. 하지만 20년 지기 후배에 대한 굳건한 믿음 하나로 요가를 하기 위해 황금 같은 주말, 45km를 운전해 갔다(수업료를 내준 것도 살짝 영향은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물구나무는 설 줄 모르고, 달팽이 자세에서 등 뒤로 깍지도 못 끼지만, 매일 빠짐없이 요가를 하고 있다. 3년 동안 매일 요가를 했다면 1,095일간의 수행인데, 못한 날은 너그럽게 쳐도 5일이다. 심지어 그중 95% 이상은 하루에 두 번 했으니, 총 1,633회, 시간으로는 3,266시간 정도 요가를 해온 것이다. 요가를 접하기 전에도 나는 뭐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보는 인간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무브먼트라는 힙합 크루를 이룬 드렁큰 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리쌍, 부가킹즈의 음악에 빠져 지내며 평소에는 갈 일이 없는 홍대를 비롯해 공연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몇 년이나 지속된 그 취미는 법학 석사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멈췄는데, 2009년 한국에 돌아오니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던 그들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계기로 완전히 주류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아이돌 문화에 젖어들었다. 처음 들었을 땐 제목과 가사가 왠지 이상하다 싶었던 샤이니의 ‘Lucifer’를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자꾸 듣게 되면서 이어 ‘산소 같은 너’와 ‘JoJo’ ‘줄리엣’도 찾아 들었고, 정신 차려보니 모든 앨범을 구입한 샤월(샤이니의 팬덤 ‘샤이니월드’의 약칭)이 되어 있었다. 매일 출퇴근길에 샤이니 노래를 무한 재생하고, 한국에서 하는 콘서트는 물론 일본에서 하는 공연도 1년에 몇 번씩 다닐 정도로 나만의 아이돌을 열렬히 사랑한 시절이었다. 밤샘 업무가 일상일 정도로 업무량이 많은 로펌의 특성상 그리 지속 가능한 취미는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40대의 내가 다시 느끼기 힘들 만큼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준 그들에게 지금도 감사하다. 요가 수행에 골몰하기 전까지 나는 그런 팬심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극치의 감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요가를 하며 느끼는 기쁨은 모든 쾌감이나 감정을 넘어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이전의 몰두 행위와 달리 나는 그것을 좇기 위해 초조해하거나 마음 졸이지 않는다. 그냥 오늘도 요가를 할 뿐이다. 후배를 통해 처음 경험한 이샤 하타 요가는 4시간 공복과 수행 사이에 4시간 간격을 둘 것을 강조한다. 하루 두 번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점심을 먹기 전 서두르지 않으면 그날 요가를 두 번 할 수 없다. 그런 날은 오전 6시 이전에 첫 번째 요가를 끝내고, 잠깐 출근했다가 10시가 되면 두 번째 요가를 하러 간다. 끝나면 오전 11시 정도 되는데, 그래야 점심 약속 장소까지 늦지 않게 이동할 수 있다. 출근 전 준비 시간까지 고려하면 이런 날은 최소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하기에 요가를 위해서라면 하루에 두 번 미팅이나 약속을 잡는 일은 최대한 피한다.
초반에는 요가 매트를 늘 지참하고 다니기도 했지만 이젠 공간만 확보되면 시멘트 바닥이든, 흙이든, 잔디든 가리지 않는다. 공항에서 기도실을 찾든, 공원에서 친구에게 잠깐 지켜봐달라고 하든(눈을 감고 하기 때문에 소지품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어디서든 한다. 돌바닥에서 아르다 싯다아사나(반완전좌) 자세로 명상하다가 복사뼈 부근이 짓눌려 찰과상이 생긴 적이 있는데, 그대로 방치하며 살다가 결국 작은 상처가 봉와직염으로 번져 2주 동안 병원에서 살기도 했다. 그 후로는 수행에 큰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소독약과 반창고를 꼭 챙겨 다닌다.
최근 3개월 사이에는 인도를 세 번이나 다녀왔다. 한 번에 1~2주씩 인도 남부 타밀나두(Tamil Nadu)주의 코임바토르시에 있는 이샤 요가 센터(IYC)에 머물다 왔다(처음 인도에 다녀온 내게 딸은 혹시 인도로 이민 갈 생각인지 조심스럽게 묻기도 했다). 입국 횟수 제한이 없는 5년짜리 인도 비자도 받았다. 인천공항에서 코임바토르 공항까지 가려면 일단 싱가포르까지 6시간 30분을 비행한 뒤 따로 발권한 인도 저가 항공을 타기 위해 난민처럼 공항에 머물다가 다시 출발해서 4시간 30분 정도를 더 비행해야 한다. 어디서든 요가만 하면 그만인데 굳이 왜 11시간 넘게 그 고생을 해가며 인도까지 가야 했을까? 바로 IYC 때문이다. 혼자서 하는 수행이 배를 타고 손으로 노를 저어 망망대해를 헤쳐가는 느낌이라면, IYC는 그 배에 돛을 달고 순풍까지 도와주는 느낌이다. 단점은 딱 하나, IYC에 가면 집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다(그래도 이민 갈 생각은 없으니 이 글을 읽는 가족은 모두 안심하길 바란다).
다들 인도 하면 물갈이나 음식으로 인한 배탈, 안전을 걱정하지만 IYC는 (다소 소박한) 리조트에 가깝다. 요가가 아니라 트리트먼트나 치유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힐링 센터 근처의 날란다 스테이(Nalanda Stay)는 호텔급이다. IYC는 프로그램에 등록한 사람이나 숙소를 예약한 사람이 아니면 내부에 출입할 수 없도록 보안이 철저하고, 머무는 기간 동안 저녁 8시 이후 외부 출입도 제한된다(아시람 안에서도 밤 9시 30분 이후에는 돌아다닐 수 없다). IYC에서 친해진 뭄바이 친구 찬다니랑 마지막 날 헤어지기 아쉬워 서로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며 왔다 갔다 하다가 딱 한 번 밤에 돌아다닌 적이 있다. 곳곳에 배치된 경비 중 한 분이 우리를 따라다니며 각자 숙소 입구까지 친히 에스코트해주었는데 양치기에게 몰이를 당하는 한 마리 양이 된 기분이었다. 지하수를 정화하는 자체 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어 마시는 물도 깨끗하고 안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밥이 정말 맛있다. IYC 숙소 1박 요금은 평균 2만원 정도인데, 공용 식사 공간인 빅샤 홀에서 브런치와 저녁, 두 끼가 제공된다. 매일 봉사자들이 수십 가지 제철 채소, 향신료로 손수 만든 인도 남부 채식 요리와 과일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바닥에 앉아 손을 사용해 먹는 게 처음에는 부끄럽고 힘들지만, 이틀 정도 지나면 꽤 능숙해지고 나중에는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국에서도 가끔 무의식적으로 손을 쓰게 된다. 지난 4월에 다녀온 바바 스판다나(Bhava Spandana) 같은 합숙형 프로그램의 경우, 정해진 기간 동안 공동 숙소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므로 봉사자들이 직접 참가자들의 식사를 만들어준다.
IYC의 창설자 사드구루(Sadhguru)가 디자인한 합숙형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 각지와 세계 각국에서 온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리며 보낸 4일은 평생 겪은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다(샤이니 공연을 보며 열광할 때보다 훨씬 더!). 내가 지낸 스판다 홀은 처음부터 바바 스판다나를 염두에 두고 지은 장소로, 강당에 요가의 시초에 관한 아름다운 벽화가 있다. 정원에는 거대한 당근 뿌리를 닮은 바오바브나무, 망고나무, 지나갈 때마다 민트 비슷한 상쾌한 향기를 뿜어내는 이름 모를 나무와 꽃나무 등이 서식하는데, 진기한 식물만 구경해도 반나절은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때로는 공작 떼들이 안으로 날아 들어와서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처럼 고고하게 돌아다닌다. 공작이 날 수 있다는 것도 IYC에서 처음 알았다.
IYC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명상 공간 디야나링가(Dhyanalinga)는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맨발로 달려가는 곳이다. 명상하러 들어간 김에 가급적 오래 앉아 있고 싶지만,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싶을 만큼 다리가 저릴 때는 한 번씩 일어나 휴식을 취하는 등 봉와직염 이후로는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다. 디야나링가 옆 건물에 자리한 여성을 위한 연못 찬드라쿤드(Chandrakund)에 입수한 후 머리에서 물이 뚝뚝 흐르는 상태로 디야나링가에 가면 더 수월하게 깊은 명상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목욕을 좋아하는 나는 인도의 겨울인 1월에도 냉탕에 가까운 찬드라쿤드에 하루에 세 번씩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IYC가 단순히 디야나링가와 찬드라쿤드(남성용은 수리야쿤드) 같은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구조물을 모아놓은 곳이기만 했다면 먼 인도까지 갈 필요 없이 한국의 조용한 명승지에 머물면서 요가를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IYC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 덕분이다. 흔히 ‘나마스테’로 알고 있는 인사는, 인도 남부에서는 ‘나마스카람’으로 통용된다. ‘당신 안의 신성함에 경배합니다’라는 뜻이다. IYC에 수행하러 오는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 그 사람들의 체험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 봉사자들, 현지 합숙 훈련을 거쳐 공인 자격증을 받아 한국에서 살아가는 내게 요가를 가르쳐준 선생님들, 첫 아시람 방문에서 만난 내 짝꿍 찬다니와 바바 스판다나 프로그램 동창들, 인도에서 요가에 열중하느라 연락이 닿지 않는 동안 차질 없이 일해준 로펌 동료들과 거뜬하게 생활해준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이 모든 마음의 불씨를 지핀 IYC를 지은 사드구루까지. 진심으로 요가와 IYC를 통해 나는 사람에게 깃든 신성함을 발견했고, 지극히 경건한 마음으로 그 신성함에 경배하게 되었다. 3년 동안 1,633회 요가를 수행하며 깨달은 것은 아이돌에 열광하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진짜 인류애였다. 신선경 ‘리우’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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