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는 한 수 접고 자극과 반전으로 승부한다, ‘세이렌’
드라마 <세이렌>(tvN)은 보험 사기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일본 드라마 <얼음의 세계>(1999, 후지TV) 리메이크작인데, 원작 자체가 추리보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중점을 둬서 누가 범인이든 이상하지 않다는 평을 들은 만큼 결말이 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주요 배경을 학교에서 고가 미술품 경매업체로 바꾸면서 K-드라마 특유의 화려함을 가미한 것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경매사의 세계를 묘사하는 대목은 <대행사>(JTBC), <킬힐>(tvN)류의 살벌한 커리어 우먼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세이렌>의 주인공 한설아(박민영)는 미술 옥션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는 유능한 경매사다. 그를 미워하던 동료, 김윤지(이엘리야)가 보험 사기 조사관 차우석(위하준)에게 제보할 게 있다고 해놓고는 사망하는 바람에 한설아와 차우석이 만나게 된다. 차우석은 김윤지가 제보하려던 사건이 한설아와 관련 있음을 눈치챈다.
<세이렌>은 총 12부작이다. 그중 4화 만에 한설아와 관련 있는 사망자가 잔뜩 드러났다. 전 약혼자인 레스토랑 사업가, 전전 약혼자인 의사, 전전전 애인인 국제 구호 활동가, 그리고 사망한 제보자다. 목소리에 홀리면 죽는다는 세이렌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제목도 <세이렌>이다.
문제는 한설아의 애인들이 모두 그녀를 수령인으로 지정한 보험을 해지한 직후 사망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약혼자들이 부유층이었던 터라 한설아가 돈을 노렸다면 보험금보다 이혼 위자료를 목표로 삼는 게 이치에 맞다. 그 때문에 추리가 복잡해진다.

<세이렌>은 초반부터 한설아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흘린다. 한설아는 어린 시절 겪은 화재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듯하다. 의사 애인도 질이 나쁜 인물이었다. 마지막 약혼자가 사망한 후 한설아에게 접근하고 있는 벤처기업 대표 백준범(김정현)은 성격이 포악한 데다 한설아의 과거에 대해 뭔가를 아는 눈치다. 주인공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 과거의 중요한 사건에서 파생된 복수극이거나, 한설아를 지키려는 충성스러운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한설아에게 미친 남자가 많은 만큼 질투하는 여자도 많다. 설아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듯한 옥션 회사 회장 김선애(김금순)와 속내를 알 수 없는 설아의 친구들까지 고려하면 추리의 범위는 더 넓어진다. 미스터리 스릴러로서는 좋은 출발이다. 하지만 ‘치명적 로맨스릴러’라는 홍보 문구 중 ‘로맨스’ 부분은 아직 지켜봐야 할 단계다.
<세이렌>은 원작처럼 섬세한 심리극보다는 매끄럽고 화려한 장르물을 지향한 듯 보인다. 1화에서 김윤지가 경매에 출품하려고 가져온 위작을 한설아가 찢어버리는 장면은 한설아의 도발적 성격과 유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폭력이다. 이런 유의 센세이셔널리즘은 <월수금화목토>(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tvN), <컨피던스맨 KR>(TV조선) 등 박민영의 전작들과 맥이 닿는다. <세이렌>의 한설아는 그의 취향을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 한설아는 비련미보다는 냉정함, 화려함, 초인적 수완으로 이목을 끌고, 가끔은 현란한 언변으로 상대를 파르르 떨게 만든다. 미스터리할지언정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는 아니다. 한편 차우석이 보험 사기꾼을 통쾌하게 응징하거나 정보원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액션 코미디의 일부처럼 보이곤 한다. 위하준이 연기하는 차우석은 아픈 과거에도 깊은 결핍이나 공허감을 뿜어내는 캐릭터는 아니다.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가 무겁지 않아 시청에 부담이 없다는 건 장점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로맨스에 이르려면 이들 사이에 더 큰 화학작용이 필요한 듯 보인다.

원작의 아우라나 ‘로맨스릴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떼어놓고 보면 <세이렌>은 여전히 즐길 거리가 많은 드라마다. 한설아 주변의 줄초상뿐 아니라 과거 연인과 여행을 떠났다가 사망한 차우석의 여동생 사건도 궁금증을 야기한다. 곁가지로 등장하는 다양한 보험 사기 사건, 미술품 경매 이야기, 고급스러운 미장센도 눈길을 끈다. 개연성이나 현실감보다 반전과 자극에 높은 점수를 주는 시청자라면 감상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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