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관한 초단편소설_이유리 ‘아빠와 나와 아로와나’
집에 돌아가면 나는 딸이 된다. 할머니는 천국에 갔지만 여전히 나의 할머니다. 오늘 우연히 만난 당신과도 가족이 될지 모른다. 여러 세대의 소설가들이 가족에 관해 쓴 초단편소설 8편.
아빠와 나와 아로와나

이제 와 생각하면, 엄마가 아빠와 졸혼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저 물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퍼덕이는 미꾸라지가 든 컵을 들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빠의 저 얼굴은 확실히 사람을 열받게 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으니까. 아빠가 어항으로 다가가자 밥을 주려는 걸 아는지 물고기가 우아하게 몸을 뒤치며 다가온다. 까치발을 디딘 아빠가 어항 뚜껑에 난 구멍으로 미꾸라지를 붓는다. 팔뚝만 한 물고기 입으로 미꾸라지가 쏙쏙 빨려 들어가는 걸 보며 아빠는 손뼉을 친다. 아이고아이고, 잘 먹는다, 내 새끼. 아빠, 진짜 아빠 새끼는 오늘 점심도 아직 못 먹었어. 나는 속으로 퉁을 준다. 하지만 아빠는 원래 남의 점심 식사 여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엄마는 졸혼을 택했지, 그리고 사실은 나도 그런 걸 하고 싶은 참이다. 왜 부부간엔 이혼도 있고 별거도 있는데 부녀 관계엔 그런 게 없나. 절연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건 왠지 너무 몹쓸 짓처럼 들린다. 먼저 제안한 쪽이 못된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단어. 아마 엄마도 그래서 이혼 대신 졸혼을 택한 거겠지. 비겁하다. 혼자 도망치다니. 나는 엄마 대신 어항 속 물고기를 노려본다. 물고기의 눈은 동그랗고 무심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아니 다 안다는 것 같기도 한 눈동자다. 나는 이쑤시개 같은 걸로 콕 찔러보고 싶다.
나는 정말로 언젠가 그런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 은빛 물고기의 이름은 아로와나. 아빠가 처음 사왔던 오래전에는 손가락만 했지만 지금은 웬만한 어른 팔뚝보다 커졌고 앞으로 더 클 거라고 한다. 어느 나라에선 용이라고 불리며 사랑받는 물고기라던데, 꼭 메기처럼 수염 돋은 합죽이 입에 지느러미 없이 미끈하기만 한 몸은 내 눈엔 용보단 뱀에 가까워 보인다. 게다가 어찌나 거추장스러운지. 저 덩치에 맞추느라 거실 한쪽 벽에 꽉 차는 어항이 필요했고, 덕분에 우리 집 거실 풍경은 가정집인지 횟집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어항에 달린 여과기인지 뭔지가 내는 소리는 또 어떻고. 밤에 자려고 누워 있으면 웅웅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벽을 겹겹이 뚫고 고막을 지나 가슴속까지 울리는 것 같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금 엄마가 누워 있을 그곳, 엄마의 새집을 생각한다. 거긴 조용하겠지. 아무 소음도 없겠지. 잠이 아주 그냥 솔솔 오겠지.
엄마가 졸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꺼낸 건 1년 전쯤이다. 엄마는 그즈음 동네 마트에 생애 첫 일자리를 구한 참이었고, 거기서 생전 처음 접하는 이른바 ‘사회생활’에 눈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받아보는 월급, 처음 사귀어보는 직장 동료, 처음 욕해보는 진상 손님. 아빠는 애초에 엄마의 취직을 결사 반대했으므로 그런 얘긴 주로 나에게만 했지. 얘, 청과 쪽 언니가 그러는데 요즘엔 그렇게들 졸혼을 한댄다. 졸혼이 뭔데? 심드렁하게 묻자 엄마는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결혼을 졸업하는 거래.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면 졸업해서 학교를 떠나듯이 가정을 떠나는 거지.
그래서 엄마는 정말로 우리 집을 졸업하고 떠났다. 귀찮은 서류 정리며 이혼 절차는 생략. 그냥 옆 동네에 작은 빌라를 세냈고 거기로 조촐한 짐을 옮겨 나간 엄마는 그 뒤론 한 번도 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전까지 꼬박꼬박 챙겼던 아빠의 아침 녹즙만 냉장고 야채 칸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아빠와 나와 아로와나를 남겨두고 홀가분하게 훨훨.
아빠는 엄마를 비웃었다.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늘그막에 어떻게 혼자 지내냐며, 지금은 신나서 저러지만 며칠 못 가 수그러들어 슬그머니 돌아올 거라고 장담하면서. 그리고 놀랍게도, 해가 바뀌어가는 지금까지도 아직 그렇게 믿고 있다. 엄마가 이 비린내 나는 집구석으로 다시 ‘기어 들어올’ 거라고. 내가 보기에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건 아빠 혼자뿐이다. 누가 돌아오고 싶단 말인가. 이딴 징그러운 물고기가 있는 집으로.
아빠가 아침 운동을 하러 나간 오전, 나는 식탁 의자를 끌어와 어항 앞에 앉아 녀석을 쏘아본다. 아빠가 이 물고기를 처음 사왔던 날 두 사람이 크게 싸운 일을 생각하면서. 무슨 물고기냐고 질겁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내가 내 집에서 물고기도 한 마리 못 키워?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았는데 이 정도 취미도 못 가진단 말이야? 대체 왜 그렇게 사람을 숨 막히게 해? 숨 막히게 한다는 말은 엄마의 입을 효과적으로 틀어막았고 거대한 수족관은 그렇게 우리 집 거실에 안착했다. 당시 아빠는 정년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간 막혔던 ‘숨’이라는 걸 쉬어보고자 안간힘 쓰며 조금이라도 그 숨통을 막으려드는 모든 것을 고약스레 거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숨통을 틔워주고자 나와 엄마는 그 꼴사나운 모습을 오래도 견뎌야 했다. 하나뿐인 아내 생일은 잊으면서 어항 물 갈아주는 날은 꼬박꼬박 기억하는 아빠, 독감으로 앓아누운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고기에게 특식을 챙겨주는 아빠, 두 여자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대도 굳이 우리 눈앞에서 밀웜을 집어내 먹이던 아빠. 그러니 엄마가 떠날 만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로와나는 우아하게 헤엄친다. 수족관 끝에서 다시 반대편 끝으로 매끈하게, 풍비박산 난 너희 집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이. 통통하게 살찐 몸이며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꼬리가 얄밉기 짝이 없다. 눈꺼풀 없는 눈이 나를 쳐다본다. 합죽이 입이 말한다. 너도 나가면 되잖아? 나까지 떠나면 아빠가 쓸쓸할까 봐, 더 크게 상처받을까 봐 있는 거라고 말하진 마. 돈이 없어서 비비고 있는 거면서. 지금 직장에서 받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자취하는 것보다 이 집에서 아빠 돈으로 먹고사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거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저녁에 돌아온 아빠는 또 물고기에게 밥을 먹이며 아이고아이고를 연발하고 나는 소파에 눕듯이 앉아 그 모습을 심드렁히 바라본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아빠도 언젠가 나나 엄마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적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왜 지금은 그러지 않을까. 나는 깡마르고 작은 아빠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며 생각한다. 언젠간 저 물고기에게도 네가 내 숨통을 막는다며, 숨 좀 쉬게 해달라며 윽박지를 날이 올까. 그럼 정말 쌤통일 텐데. 수족관 앞에서 펄펄 뛰는 아빠를 상상하다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만다. 그래도 아로와나는 멀뚱멀뚱한 눈으로 다만 매끄럽게 헤엄칠 것이다. 떠들든가 말든가 하면서.
이유리 이유리는 최근작 <구름 사람들>에서 정체불명의 오염 물질로 이뤄진 분홍빛 구름에서 사는 사람들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했다.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모든 것들의 세계> <비눗방울 퐁>,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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