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틱 바틱, 30년 유랑이 빚어낸 우아함의 궤적

2026.05.26

  • 유승현

안틱 바틱, 30년 유랑이 빚어낸 우아함의 궤적

‘안틱 바틱’은 여행을 통해 세계관을 형성했다. 여전히 진심을 다해 수를 놓고 염색을 하는 이국의 장인들을 찾아 나선다. 창립자 가브리엘라 코르테세 리우폴은 그렇게 30년 동안 진정한 우아함을 배웠다.

인도 자이푸르에 위치한 궁전 하와 마할 앞에 선 안틱 바틱의 창립자 가브리엘라 코르테세 리우폴.

‘안틱 바틱(Antik Batik)’의 창립자 가브리엘라 코르테세 리우폴(Gabriella Cortese-Rioufol)은 지난 30년간 세계를 여행하며 장인들과 협업해왔다.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와 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했다. 출발점은 발리로 처음 떠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한 장인과 나눈 우연한 대화가 그의 새로운 세계관을 틔우는 계기가 됐다. 안틱 바틱은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 기법 ‘바틱’을 비롯해, 구리나 나무 블록으로 직물에 무늬를 새기는 ‘블록 프린트’, 자수 등 다양한 수공예 기법을 아우르며 컬렉션을 전개한다. 머나먼 도시의 전통 시장에서 마주한 천 조각, 예상치 못한 대화, 가족만큼 가까워진 장인들과의 관계는 그의 미학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인도에서 다음 시즌 컬렉션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만났다. 가브리엘라는 기다림의 중요성, 시간의 가치, 장인들과의 관계, 그리고 민족적 뿌리와 숙련된 손길이 맞물려 탄생하는 가치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안틱 바틱은 나뭇조각을 사용해 천에 무늬를 찍어내는 블록 페인팅 기법을 비롯해 바느질, 자수 등 아시아의 수공예가 깃든 옷을 선보인다.

안틱 바틱이 디자인 언어로 발휘될 수 있다는 걸 여행 중에 깨달았다고요?

첫 여행에서 바로 깨달았어요. 1990년 대 초 발리로 떠난 여행이었죠. 1990년에 발리에서 허리에 두르는 1~4m가량의 인도네시아 전통 의복 사롱(Sarong)을 처음 제작하기 시작했고, 2년 후인 1992년 안틱 바틱이 탄생했죠. 당시 그곳 장인들과 협업하며 스쿠터를 타고 야자수와 논길을 가르며 바틱 작업을 하던 작은 공방을 둘러보곤 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발리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저 경이로운 수공예품만 가득했죠.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어요. 장인들과 협업하며 저도 모르는 사이 그들에게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배우고 있었어요. 그것은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었죠. 제 디자인 몇 점을 가지고 처음 발리를 찾았을 때, 그들은 작은 블록을 하나하나 조각칼로 손수 깎고 다듬으며 패턴을 새겼어요. 그리고 그것을 왁스에 담갔다가 직물에 찍어냈죠. 그렇게 작업한 몇 개의 사롱을 들고 파리로 돌아왔고, 주위의 반응은 무척 뜨거웠어요. 다시 발리로 향했을 때 장인들을 독촉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웃으며 “멀미가 날 것 같아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비로소 ‘속도를 한 템포 늦춘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깨달았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디테일을 논의하고 우리만 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만들며 인내심을 배웠어요. 저의 서구적 관점을 전하기도 하고, 그들에게서 체화된 노하우 ‘사부아 페르(Savoir-faire)’를 배우기도 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더군요. 30년 동안 장인 정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하루하루 쌓아 올린 거죠. 어쩌면 이미 마음속에 수공예를 향한 애정의 씨앗을 뿌렸을지도 몰라요. 저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헝가리 출신 할머니 손에 컸어요. 할머니는 제게 컬러, 자수, 수공예에 대한 사랑을 물려주셨죠. 어린 시절에는 바느질, 자수, 코바늘뜨기, 대바늘뜨기를 배웠어요. 동양으로 향하는 다리 격인 중앙 유럽의 문화야말로 공예의 아름다움과 진정한 만남을 가진 첫 관문이었을 거예요.

미학과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여행을 꼽아본다면요?

오늘 아침에 ‘뭐가 그리 급해서 서둘러 여행을 떠났을까?’ 곰곰이 헤아려봤어요. 저는 여행이 신화 같던 시대에 자랐어요. 제 또래는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고 브루스 채트윈의 글을 읽으며 다른 세계를 동경하던 세대예요. 제게 동양은 1900년대 이탈리아 작가 에밀리오 살가리(Emilio Salgari)가 쓴 이국적인 모험 소설 <산도칸 몸프라쳄의 호랑이들>의 주인공 산도칸의 모습으로 다가왔죠. 그 상상의 세계에 푹 빠졌어요. 이후 소설을 원작으로 한 TV 시리즈와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인도 배우 카비르 베디(Kabir Bedi)를 만났을 때, 이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진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동양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죠. 결국 그 이야기는 제가 갈 길을 미리 닦아놓았던 거예요. 발리에서 실크와 레이온 등 아름다운 천연 소재를 발견한 후, 겨울에 어울리는 직물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인도로 떠날 용기가 차마 없었는데, 어느 날 큰맘 먹고 떠나게 됐죠. 그리고 그곳에서 ‘알리바바의 동굴’ 속 금은보화처럼 뛰어난 자수 장인들과 실크에 수를 놓거나 프린트를 하는 작업실을 마주할 수 있었죠. 지금은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실크는 점점 희귀해지고, 단가는 치솟고 있으며, 많은 소재가 사라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영원할 거라고 여기지만, 이내 그 세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게 되죠. 저의 여행지는 언제나 일과 호기심에 따라 결정됐어요. 양모를 구하러 인도 북부의 마날리(Manali)와 쿨루(Kullu)로, 손으로 짠 양모 숄을 제작하려고 네팔로 떠났죠. 그 후 티베트와 중국으로 향했어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저를 변화시킨 놀라운 여행이었어요. 여행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한, 제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에요.

안틱 바틱은 인도네시아, 인도, 티베트, 몽골 등 아시아 여러 국가의 장인들과 협업하며 다채로운 컬렉션을 선보여왔다.

파리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도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뿌리가 작업에 영향을 끼쳤나요?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점이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의 일부인 자연스러운 균형 감각, 즉 우아함을 타고났거든요. 참 신기한 게, 흔히 우아함의 전형으로 프랑스를 꼽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프랑스인은 더 즉흥적이고 더 자유분방해요. 반면 이탈리아에는 훨씬 더 엄격한 규범이 있죠. 어린 시절을 보낸 토리노만 해도 특정 컬러의 옷을 입으면 안 되는 규칙이 존재하는 도시였어요. 모든 것이 프랑스보다 더 엄격했죠. 그런데 안틱 바틱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프랑스예요. 타히티를 비롯한 폴리네시아 지역에서 입는 랩 스커트 파레오(Pareo)가 새 생명을 얻은 곳이 프랑스거든요. 겨울이 되면 프랑스 여성들은 스카프나 히잡 등에 쓰이는 실크 풀라드(Foulard)처럼 파레오를 두르곤 했거든요.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디자인의 화려함이나 두께가 계절감과 맞지 않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사막에서 쓰는 프랑스의 긴 스카프 셰슈(Chèche)나 풀라드를 즐겨 쓰는 문화가 제 첫 제품을 변화시켰고, 어떤 의미에서는 창작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어요.

삶과 일에서 영감을 받은 여성이 있을까요?

특정 인물보다는 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의 우아함 같은 태도에 매료돼왔어요. 어릴 때는 어머니의 실루엣과 디테일을 유심히 보곤 했죠. 토리노 지역 재단사들이 생 로랑에게서 영향을 받던 시대였거든요. 마리아 볼피(Maria Volpi)는 모자로, 알도 사케티(Aldo Sacchetti)는 구두로, 로쿠초(Roccuzzo)는 멋들어진 디자인으로 주목받던 때였죠. 당시는 영화, 여배우, 예술가에게서 발견한 히피풍의 자유로움과 세련된 1970년대의 우아함이 처음으로 각인됐어요. 그 우아함이란 세련되면서도 보헤미안의 감성이 살짝 깃든 것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온 안틱 바틱의 핵심 가치예요. 제 컬렉션은 과한 노출을 하지 않아요. 실루엣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방식을 선호해요. 그러면서도 컬러와 패턴은 과감하죠. 우리 고객은 핑크를 비롯해 비비드한 톤을 좋아해요. 여름에는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겨울에는 구스타프 클림트나 오스카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같은 화가의 컬러처럼 중부 유럽의 색채에 더 가까워지죠. 깊고 은은한 다소 회화적인 톤이 마음에 울림을 주거든요.

부드러운 실루엣에 과감한 컬러와 패턴이 가미된 안틱 바틱의 옷에는 창업자 가브리엘라 코르테세 리우폴이 여행을 통해 깨달은 지혜와 수공예의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Thierry Le Gouès

여행 중에 발견한 물건이나 패브릭 중 창작 활동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참’ 같은 것이 있을까요?

수십 년간 여행하며 어마어마하게 많은 빈티지 소품, 예술품을 수집했어요. 특별한 아카이브를 만들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고 이사도 자주 하다 보니 많이 잃어버렸죠. 그 생각만 하면 마음 한쪽이 아려요. 티베트 여행 중 선물 받은 부적이 기억나는군요. 당시 티베트는 중국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있던 지역이었거든요. 외국인은 전부 중국인 감시 요원과 동행해야 했기에 티베트인과 교류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은밀히 다가온 그들은 옷섶을 열어 가슴 깊숙이 숨겨둔 달라이 라마(Dalai Lama)의 사진을 꺼내곤 했어요. 때때로 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작은 장신구를 팔곤 했죠. 불운을 막아주는 티베트의 부적 애뮬릿(Amulet), 산호를 엮은 작은 액세서리 등을요. 그중 하나가 제 부적이었는데 잃어버렸어요. 몽골에서 선물 받았던 작은 옥석 몇 개도요. 몽골의 땅은 엄청난 힘을 지녀서,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고대 자연의 파편처럼 귀중해 보이는 자그마한 조각돌을 볼 수 있거든요.

그것 말고도 헝가리의 조끼 질레(Gilet)가 하나 있었어요. 우리 가족이 살던 지역의 목동들이 입던 건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죠. 제 곁을 떠난 물건들이지만, 여전히 저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믿어요. 컬렉션을 디자인할 때면 이 물건들이 다시 떠오르거든요. 영원히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건 불가능해도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죠. 어쩌면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제 것이 아닐까요?

아시아 여러 국가의 장인들과 긴 시간을 함께하며 그들의 ‘사부아 페르’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브랜드 안틱 바틱을 위해 낯선 나라를 돌아다니며 많은 장인을 만나죠. 어떤 기준으로 장인 공동체나 작업장을 선정했나요?

‘작업을 대하는 데 진정성이 있는가’를 중요시해요. 여행하면서 저와 협업하려는 수없이 많은 아틀리에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죠. 모든 것은 존중, 경청을 통해 공동의 프로젝트를 함께 구축해나가는 것부터 시작되니까요. 지난 수년간 협업하는 작업자들이 착취라는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동안 쌓아온 신뢰 관계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였고요. 모두를 성장시키는 유대감이죠. 몇몇 장인들과는 함께 작업한 지 꽤 오래됐어요. 그만큼 돈독하죠. 그래서일까요? 단가를 정할 때가 되면 그분들은 “그건 나중에 얘기하죠, 일단 해봅시다”라고 하세요. 그 말 속에는 공통의 가치관과 대의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제게 이보다 더 신뢰할 만한 상호 존중의 표현은 없죠. 직업윤리, 투명성, 존중이야말로 작업을 단단하게 하는 토대가 됩니다.

비비드한 컬러 역시 안틱 바틱의 고유한 특징이죠. 브랜드만의 팔레트는 어디서 유래했나요?

혼자 모든 것을 조율하는 저는 마에스트로와 같아요. 이를 위해서는 좌뇌와 우뇌가 조화를 이뤄야 해요. 컬렉션 작업을 시작할 때 제 눈은 컬러를 인식하는 방식마저 달라져요. 길을 걸을 때 마주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강렬함으로 다가와요. 전시, 영화, 사진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끊임없이 망막에 어떤 상이든 맺히게 해서 강렬한 인상이 전부 제 안으로 스며들도록 해요. 여름이 되면 빛, 인도와 멕시코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만들어내는 광채에 시선을 빼앗겨요. 특히 인도는 저를 계속 부르죠. 여름 컬렉션을 준비할 때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져요. 작업실에는 컬러가 아무리 많아도 성에 안 차지만, 인도에서는 모든 것이 생동감 넘치고 살아 숨 쉬거든요. 반면에 겨울은 여름과는 전혀 다른 계절이죠. 색감은 따뜻해지고 더 깊어지며, 중앙 유럽의 정취가 짙게 풍겨요. 제가 자란 이탈리아 북부에서, 고국인 헝가리에서, 그곳에서 몽골까지 이어지는 긴 인생의 여정에서 영감을 얻어요.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여정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매 시즌 재탄생하는 색과 지리,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이에요.

‘지속 가능성’은 안틱 바틱의 출발점일까요, 아니면 도착점일까요?

지속 가능성에서는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에요. 그 방향성에는 찬성하지만, 이를 반짝 유행처럼 여기는 시류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 이면에는 모순이 많아요. 새로운 제도가 분명 필요하지만, 가끔 편법과 모호함의 여지도 있으니까요. 저에게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진심 어린 업무 방식이죠.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함께 작업하는 이들의 근무 환경을 진심으로 존중하면서,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하는 것이에요. 소재도 마찬가지죠. 천연 패브릭을 선호하고 폴리에스테르는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조차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중이에요. 시즌마다 개선하고 발전해가면서 한 단계씩 전진하려고 노력해요. 지속 가능성은 선언이 아니라 매일매일 이어가는 여정이니까요.

안틱 바틱은 소재, 관계, 비즈니스 전반에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다.

새로운 수공예 기법이나 사부아 페르를 창작에 도입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싶나요?

복잡하면서도 매혹적인 기법이 많아요. 수년에 걸쳐 매우 다양한 실험을 해왔고, 한때 미뤄둔 몇 가지 실험을 최근 재개했어요. 예를 들면 버려지는 가리비 껍데기를 재활용해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로 개발한 일본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파이에트(Paillette)를 산화, 부식시키는 작업이 있어요. 인도에서 이런 기법 몇 가지를 재현했어요. 또 직물을 접고 비틀며 꿰거나 묶는 방식으로 염색, 패턴을 만드는 고대 일본의 홀치기염색 기법인 시보리(Shibori)를 올해 다시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아주 작고 섬세한 패턴이 특징이죠. 또 남아시아 여성들이 착용하는 전통 의상 사리(Saree)에 수를 놓는 데 “10년이 걸렸다” “겨우 5년밖에 안 걸렸다”는 얘기를 인도 여성에게 들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어요.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런 전통 수작업 방식은 사라지고 있어요. 이토록 오랜 시간 인내심을 갖고 공들여 작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는 없기 때문이죠. 속도가 중요한 시대니까요. 노련한 장인들은 훌륭한 기술이 있지만 연로하고, 새로운 작업자들은 젊지만 인내심이 부족할 때가 많아요. 기술을 전수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명맥이 끊어지기 전에 반드시 지켜낼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공방에 있을 때면 이곳은 ‘유네스코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특별한 장소이자 유일무이한 유산이니까요. 뛰어난 장인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산을 이어갈 젊은이가 없다는 것은 결국 소중한 전통의 일부를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하죠.

강조한 것처럼 속도가 중요해진 시대예요. 패션은 변화무쌍하고요. 그렇다면 현재 독립 브랜드가 직면한 과제는 뭘까요?

목표는 이 작은 보석을 훨씬 더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것이랍니다. 안틱 바틱은 언제나 남들과는 조금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어요. 그렇게 독자 노선을 취한 지도 어언 30년이 되었군요. 열정 넘치는 순간도, 어려움을 크게 겪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더 밝은 미래로 선회하는 중이에요. 더 성장하며 놀라움을 선사하고 싶은 열망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기에 급성장을 기원하고 있어요.

꼭 이뤄내고 싶은 프로젝트나 향후 협업 계획이 있나요?

그럼요. 차고 넘칠 정도로 아이디어가 샘솟고 있어요. 다양한 협업을 하며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도 탐구 중이에요. 놀라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일부는 극비 사항이죠.(웃음) 아직 구상 중인 것도 몇 가지 있고요.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탐험의 시기가 지금이거든요. VL

    컨트리뷰팅 에디터
    유승현
    Silvia Pisanu
    사진
    Vikas Maur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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