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꿰는 자수 연대기
토요일 저녁, 술 대신 자수를 선택한 이들이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대치되는 와중에 손으로 감각하는 취미, 니들포인트가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토요일 저녁, 뉴욕 웨스트 빌리지를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나는 근사한 저녁 식사나 술 한잔 대신 조금 생경한 목적지로 향했다. 바로 ‘웨스트 빌리지 니트 앤 니들(West Village Knit & Needle)’에서 열리는 니들포인트 이벤트다. 벌써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지만, 오너 키아나 말렉자데(Kiana Malekzadeh)는 감사하게도 내가 이 ‘스티치 앤 십(Stitch and Sip, 수를 놓으며 술을 마시는 모임)’에 합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2시간 동안 초심자에겐 생소한 이름인 ‘LNS(Local Needlepoint Shop, 동네 자수 전문점)’는 무료로 제공되는 프로세코 와인과 투 부츠 피자(Two Boots Pizza)를 즐기며 자수를 놓으려는 여성으로 가득 찼다. 카놀리, 리본, 캐비아 박스 등 감각적인 도안을 알록달록 선명한 색실이 채워나갔다. 손끝에서 완성된 이 귀여운 피스는 머지않아 패치나 오너먼트 혹은 근사한 인테리어 쿠션으로 변모할 것이다.
니들포인트 입문자인 나로서는 이토록 건전한 주말 풍경이 낯설다. 심지어 모인 이들 대부분이 20대라니!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이라면 이 공예의 인기를 이미 예감했을 것이다. 디지털 피로감에서 벗어나 숨을 고르게 하는 이 우아한 취미는 이제 수백 년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수백 달러에 달하는 클래스 참가비, 캔버스와 실 구입 비용을 아끼지 않고 몇 시간씩 한 땀 한 땀 공을 들이는 젊은이들. 나만의 ‘가보’를 직접 빚어가는 이들은 니들포인트의 새로운 연대기를 쓰고 있다.
요즘 날이 갈수록 니들포인트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말렉자데에 따르면 8년 치 예상 매출을 5년 만에 달성했을 정도다. 업타운의 ‘애니 앤 코(Annie & Co.)’ 매니저 올리비아 립닉(Olivia Lipnick)과 ‘리타스 니들포인트(Rita’s Needlepoint)’ 오너 알리사 허직(Alyssa Herzig)은 이 눈부신 르네상스를 묘사하기 위해 ‘급상승’과 ‘폭발’이라는 단어를 주저 없이 선택한다. 토요일 아침, 허직은 열띤 목소리로 덧붙였다. “초보자용 키트는 채워 넣기가 무섭게 동이 나요. 지금 매장에 30~40개 넘게 있지만 아마 월요일이면 전부 사라질걸요.”
니들포인트라고 하면 여전히 ‘할머니 취미’ 같은 고전적인 이미지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허직은 오히려 그 고전적인 미학이야말로 지금 대중적인 인기를 만든 힘이라고 말한다. “뒤늦게 바늘을 잡았다”고 고백한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찰나에 불과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더 이상 종이에 글을 쓰거나 편지를 주고받지 않죠. 모든 것이 디지털로 대체되면서 손에 잡히는 감각적인 기억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니들포인트는 실체가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언제든 꺼내볼 수 있죠.”
많은 공예 취미 중에서도 니들포인트는 단연 원조 격이다. Z세대가 틱톡에서 자수 기법을 공유하고 캔버스를 논하기 수 세기 전,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존재했으니까. 16세기 유럽 왕실의 인기 취미였던 이 공예는 20세기를 거치며 특유의 차분한 매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자수를 즐겨온 68세의 르네 클라인(Renée Klein)은 ‘성인 버전의 컬러링 북’이라 부르며 이 느긋한 즐거움을 설명한다. 허직은 이렇게 말한다. “작은 구멍으로 바늘이 오가는 과정은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해요. 들숨과 날숨처럼 반복되는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속도를 늦추게 되죠.”
지난 수십 년간 니들포인트의 인기는 수차례 부침을 겪어왔지만, 이번 재유행의 기폭제가 팬데믹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시간을 듬뿍 쏟아부을 수 있는 작업이 절실해진 시기에 정감 어린 취미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캔버스 하나를 채우는 데는 며칠에서 몇 달이 소요되지만, 로스쿨에 다니는 27세의 켈시 바시넷(Kelsey Bassinet)에게는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부러 천천히 진행되는 공예를 즐긴다는 건 아주 근사한 일이죠.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대신, 여유가 될 때마다 마음을 쏟을 수 있으니까요.” (참고로 니들포인트를 하면서 스마트폰 스크롤을 내리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스크린 타임을 줄이고 싶은 이들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취미가 또 있을까?)
그 무렵 니들포인트에 ‘입덕’한 이들이 온라인으로 모여들며 커뮤니티의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2020년 론칭과 동시에 잭팟을 터뜨린 ‘페니 린 디자인(Penny Linn Designs)’의 크리스타 르레이(Krista LeRay)는 니들포인트 대중화의 일등 공신이 바로 틱톡이라고 말한다. 허직 역시 이에 동의한다. “예전엔 세포라 쇼핑 하울(Haul)을 구경했다면, 요즘은 니들포인트 캔버스 하울이 대세예요.” 23세의 릴리 도넬리(Lily Donnelly) 또한 이 영상을 보고 2년 전 입문을 결심했다. 아직은 초보자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녀는 작업이 주는 힐링과 만족감을 즐긴다. “완성하고 나면 정말 알찬 기분이 들어요.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결과물을 직접 감상하면서 다양한 활용법을 떠올리죠.”
니들포인트 디자인은 꽃무늬나 복잡한 풍경 위주였으나 이젠 과감하고 동시대적 스타일로 변화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사나 테킬라병을 수놓는 재미에 입문자들은 속절없이 빠져든다. 말렉자데 역시 세련된 컬러 블록 캔버스로 젊은 고객의 취향을 저격한다. 그중에서도 ‘다이브 바(Dive Bar)’ 전용 도안은 오픈 런을 부를 만큼 인기다. 과거 방식보다 훨씬 배우기 쉬울뿐더러 완성 후 집 안 어딘가에 두면 근사한 포인트 아이템이 된다.
함께 나누는 즐거움 또한 니들포인트가 사랑받는 이유다. 최근 니들포인트는 그룹으로 즐기는 문화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정기적인 저녁 수업, 오직 자수만을 위한 주말 휴양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르레이는 이런 모임이 정서적 안식처를 찾는 이들에게 소중한 ‘제3의 공간’이 되어준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따뜻한 연결과 가족 같은 유대감을 그리워하거든요.” 26세의 애슐리 배딘(Ashley Badin)과 33세인 알렉산드라 봉불루아(Alexandra Bonvouloir)도 실을 꿰며 인연을 맺어 니들포인트 숍 ‘르 필(Le Fil)’ 공동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자수를 놓고 다정하게 어울릴 수 있는 오프라인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다. 봉불루아는 말한다. “굳이 상대와 정면으로 마주 앉아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어 분위기가 훨씬 편안해요. 그러면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죠. 매우 따스한 취미예요.”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포토
- Courtesy of Studio Sze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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