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보브, 조각계의 새로운 거장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조각계의 새로운 거장 캐롤 보브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보브는 늘 일렉트릭 블루 아이라인을 그리고 1800년대에 지은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중장비를 사용해 강철로 된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소재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뒤엎고 비현실적인 철제 작품을 만드는 캐롤 보브(Carol Bove)를 브루클린 작업실 2층 사무 공간에서 만났다. 그녀가 처음 한 일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의 축소 모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열린다.) “이게 상층 전시관이에요.” 그 안에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새 조소 작품 7점의 3D 프린트 축소 버전이 들어 있었다. 1:12 비율로 축소했는데도 섬세함과 무게감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이런 모순적인 분위기는 보브 작품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가 몸을 돌려 창밖 아래층 작업장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저것들이···”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 작품이 될 친구들이죠.” 작업실 조수들이 4.3m 높이의 페인트칠한 강철과 원상태 그대로의 강철에서 비닐 덮개를 벗기고 있었다.

브루클린 레드훅(Red Hook) 지역에 있는 이곳에서 작업한 지는 10년이 됐지만, 이 지역에 살기 시작한 건 고향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욕으로 옮긴 지 8년째 되던 해인 2000년부터였다. 이곳 강가 마을은 맥길 대학교(McGill University)에 다니는 열아홉 살 딸과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키운 곳이기도 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우리는 지게차와 기중기 옆을 지나 갓 공개된 작품 앞에 멈춰 섰다. 뉴저지 고철 처리장에서 구해온 녹슨 철판과 연분홍색 페인트가 칠해진 구겨진 직사각형 강철 튜브로 만든 작품이었다. “이런 요소의 콜라주가 소재가 가진 깊이를 정말 잘 표현해요.” 작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보브(실제 발음은 ‘보베이’에 가깝다)가 말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 대비는 의도적으로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강철 외에도 유목이나 공작 깃털, 돌 같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는 보브는 오랫동안 ‘인지(Perception)’라는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우리는 무엇을 인지하며 무엇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그의 작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눈을 뗄 수 없지만 뭐라고 콕 집어 설명할 수도 없는 그런 매력 말이죠.” 2023년부터 보브의 에이전트 역할을 해온 가고시안 갤러리 관장 메리 미치(Mary Mitsch)가 말했다. (미치는 이전 직장인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에서도 보브와 함께 일했다.) 최근 가고시안 갤러리는 베벌리힐스, 뉴욕, 스위스 그슈타트에서 보브의 개인전을 열었고, 2024년 프리즈 런던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은 행사의 하이라이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보브의 작품이 뉴욕 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기관에 전시되긴 했지만, 100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인 이번 구겐하임 전시는 초기작부터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강철 작품까지 총망라하는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또한 이 전시는 조각 예술사에서 중추적인 그의 위치를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강철 조소 작업은 다분히 남성적인 영역으로 여겨졌어요.” 10년 가까이 보브와 회고전을 준비해온 큐레이터 캐서린 브린슨(Katherine Brinson)이 말했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같은 기념비적인 야외 설치 조각가를 떠올려보세요. 캐롤은 그런 전통에 대단히 여성주의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보브는 리처드 세라,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같은 거장의 유산을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본능을 통해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위치에 도달했다. 2020년부터 스컬프처센터(SculptureCenter) 최초의 여성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보브에게 조각계는 결코 호락호락한 세계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는 조소를 하지 않았어요.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아주 남성 중심적인 세계였죠.” 그가 말했다. 물리적인 제약도 있었다. 초기에는 혼자 다룰 수 있는 작은 오브제를 사용했고, 가공이 필요한 큰 작업은 외주 업체에 의뢰했다. 그러다 해당 업체가 문을 닫자 그곳 직원들을 직접 고용해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그렇게 자리를 잡아나간 것 같아요.” 현재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동시대 미국 조각가로 꼽힌다. 2024년 스톰 킹(Storm King) 아트 센터 전시를 통해 허드슨밸리에 풍부한 색감과 볼륨감을 더한 조각가 알린 셰쳇(Arlene Shechet)은 그 계보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저와 캐롤 모두 그 세계의 중심에 있죠.” 셰쳇이 덧붙였다.
보브는 따뜻하고 웃음이 많으며 많은 일을 깊이 생각한다. 아침형 인간이며 리스트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1992년부터 쭉 같은 검정 파일로팩스(Filofax)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제 모든 게 담겨 있어요.” 그가 낡은 다이어리를 가보처럼 내보이며 말했다.
인터뷰 당일 보브는 데님 워크 셔츠에 연한 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래 눈꺼풀에는 매일 빼놓지 않는다는 일렉트릭 블루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었다. “엄청나게 아픈 날이나 안 그릴걸요.” 그의 아주 짧은 금발과 연갈색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영화 속 미셸 윌리엄스나 캐리 멀리건이 떠올랐다. 그들이 보브를 연기하면 잘 어울릴 듯싶었다. 그는 반려묘 토라와 아니타를 위해 작업장과 창고를 잇는 전용 통로까지 직접 만들었다. 큐레이터 브린슨이 그를 두고 “마음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고 평한 이유를 짐작게 한다.
보브는 취미가 별로 없다. 적어도 예술에 쏟을 관심을 빼앗아갈 취미는 갖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푹 빠져드는 것들은 결국 작업의 일부가 되더군요.” 하지만 최근 오디오 북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까지 제가 얼마나 심한 난독증을 겪어왔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그는 캐츠킬산맥에 있는 또 다른 작업실로 가기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할 때 톨스토이의 오디오 북을 듣고, 업무를 처리할 때는 앨리스 콜트레인(Alice Coltrane)의 음악을 듣는다.
보브는 1971년 제네바에서 미국인 부모 슬하에 태어났다. 그가 막 걸음마를 내디딜 무렵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어머니 친정이 있는 버클리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땐 1970년대였고, 거기선 모두 새로운 걸 시도했죠.” 당시 버클리에는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과 의식 있는 사람,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당연하게도 그는 의식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다. 일찍이 샌프란시스코만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에머리빌(Emeryville)의 갯벌에서 ‘아웃사이더 예술’을 접한 것이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예술은 이상할 수도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철학을 익혔다. 그는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퍼진 ‘인간 잠재력 회복 운동(Human Potential Movement)’의 영향을 받아 대안 학교에 진학했다. “록 미술 수업의 지나친 자유로움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저한텐 잘 맞았어요. 그냥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만 하셨어요. 우린 어려서 잘 모르니까 더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고요.”
고등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그는 ADHD가 있었고,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고 3 때 학교를 자퇴했다. 그래도 입시를 통해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죠.” 그렇게 대학을 그만두고 베이 에어리어 지역에서 잡다한 일을 하다가 1992년 뉴욕으로 갔다. 몇 년 후 그는 뉴욕 대학교(NYU)에 들어가 학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엔 회화 전공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더군요. 내가 작업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본다는 게 불편했어요.” 그가 말했다. 그는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그 역시 잘 맞지 않았다. 다만 필름 현상을 통해 색채를 배웠다. “‘이 인화된 사진은 뭐가 문제일까? 너무 녹색인가? 아니면 청록빛이 너무 많이 나나?’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전 ‘녹색과 청록색이 뭐가 다른 거지?’라고 의문을 품었죠.” 1998년 학업을 마친 그는 맨해튼 다리 근처 불법으로 개조한 다락방에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기 검열처럼 느꼈다. “제가 마음을 다해 만든 걸 보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이 애초에 흥미롭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죠.” 그러다 어느 순간 그냥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플레이보이(Playboy)’ 드로잉 시리즈다.
큐레이터 브린슨은 샤론 테이트(Sharon Tate) 같은 모델을 부드럽게 파스텔 톤으로 그려 빅토리아 시대 카메오 장식품처럼 보이는 ‘플레이보이’ 드로잉을 보브의 성숙한 첫 작업으로 꼽는다. 이 역시 구겐하임 전시에서 초기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보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잡지를 뒤졌는데, 실제로 부모님 옷장에서 오래된 잡지 더미를 찾아냈다(더불어 출판을 위해 시를 보냈던 어머니가 받은 여러 출판사의 거절 편지도 발견했다). 보브가 옛 <플레이보이> 잡지를 재해석한 건 에로틱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섹스와 예술, 글과 사진의 혼합에 대한 탐구였다. 그 드로잉은 그에게 내재된 모순의 세계를 조금씩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다. 당시 <플레이보이>는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앨런 와츠(Alan Watts)의 글과 피임에 대한 접근, 베트남전쟁 반대 같은 진보적 이슈를 지면에 실었다. 하지만 거기 실린 누드 사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플레이보이>를 위해 포즈를 취하는 건 여성해방일까, 여성에 대한 모욕일까? 그는 폭발적으로 그림을 쏟아냈고 더 많은 작업이 이어졌다. “그때부터 쭉 그렇게 해오고 있어요. 모든 작업이 다 그 맥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보브는 개념적인 책장 설치 작품으로 예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놀(Knoll) 테이블과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 가구를 재활용한 것 위에 몽환적인 ‘플레이보이’ 드로잉,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낡은 문고판 서적, 유목과 조개껍데기 같은 쓰레기를 배치했다. 그 정교하게 구성된 광경은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시는 무심하고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요소에 의미가 있고 모든 배치는 정교하게 의도된 것이다.” 2003년 <뉴욕 타임스> 비평가 홀랜드 코터(Holland Cotter)의 글이다.
2012년 보브는 야외 조각 분야로 급격히 전환했다. 그때까지 그는 개념 미술 전통에서 비롯된 규칙을 따랐는데, 바로 모든 작품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특성을 가진 뭔가를 만들고 싶더라고요. 매끄러우면서도 로맨틱하지 않은 거요.” ‘글리프(Glyph)’는 독일 카셀의 도큐멘타 13(Documenta 13)의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첫선을 보였고(글리프는 그가 흰색 파우더로 코팅 처리된, 루프처럼 꼬여 있는 대형 강철 조소 작품에 붙인 이름이다), 다음 해인 2013년에는 맨해튼 하이 라인 공원의 완공되지 않은 공간에 두 개 더 설치됐다. 버려진 I 자형 강철 기둥과 콘크리트, 황동으로 만든 다른 조소 작업과 함께였다. “캐롤의 프로젝트는 제가 가장 좋아한 작업이었어요. 지금까지 14년 넘게 하이 라인에서 일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정말 특별하고 독특했어요.” 하이 라인 아트의 관장이자 수석 큐레이터인 체칠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의 말이다. 풀이 무성한 버려진 땅에 광택 나는 하얀 조각품이 공존하는 모습은 절대 풀 수 없는 퍼즐 같았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무슨 기이한 문명의 유물 같다고 느꼈을 거예요.” 알레마니가 말했다.
다시 레드훅의 작업장 이야기로 돌아와, 보브는 그곳에서 여러 단계에 있는 진행 작품을 보여주며 하나하나 설명했다. 폐품 처리장에서 막 가져온 듯한 재료도 있었고, 사포질이나 밀폐 페인트실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 오브제도 있었다. 보브의 대형 철 조소 작품을 ‘머릿속 막연한 생각’에서 결승선까지 이끄는 데는 대규모 팀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현재 20명가량의 역대 최다 인원과 함께 하고 있으며, 제작에는 최소 5개월이 걸린다). 그곳엔 새로 만든 벤치가 많았는데,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를 찾은 사람들에게 쉴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제작한 것이었다.
그는 예술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는데, 이는 어쩌면 아웃사이더였던 그의 자의식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미술관 내부의 나선형 경사로 벽을 아래는 먹색으로, 위로 갈수록 하얀색으로 그러데이션한 아이디어 또한 이 같은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큐레이터 브린슨은 구겐하임의 원형 전시관 로툰다에서 열린 전시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꽤 있다고 언급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건축 걸작을 작가의 창의적 언어로 새롭게 재해석한 전시죠.” 그러면서 2003년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전시 <크리마스터 사이클(The Cremaster Cycle)>과 2013년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빛으로 가득한 환상곡 같은 전시, 2018년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의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예로 들었다. 그 세계를 보브가 이어가고 있다.
보브는 오랫동안 다양한 정신적 수양, 그중에서도 선종에 관심을 가져왔다. 우리가 나눈 대화 중에도 영원불변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무아’ 개념이 여러 번 등장했다. 주로 작가로서 자신과 한 인간으로서 자신 사이에 분리가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였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2015년에 만든 ‘달의 법적 지위(Legal Status of the Moon)’라는 작품으로 나를 데려갔다. 공작 깃털과 조개껍데기, 주워온 물건이 플랫폼 위에 섬세하게 매달린 작품이었다. “여기 전시된 것들은 따로 보면 쓰레기에 불과하죠. 하지만 이렇게 모이면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작업실을 떠나기 전, 그에게 테이블 위 일본 백합이 꽂힌 아름다운 작은 화병에 관해 물었다. 그 화병은 보브가 하이 갤러리(High Gallery)에 전시할 조소 작품에서 나온 자투리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것이었다. “이상한 화병을 만들고 찾아내는 것, 그게 가장 큰 취미인 것 같아요.”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Grace Edquist
- 사진
- Nicholas Calcott, Maris Hutchinson / EPW Studio
- COURTESY OF
- CAROL BOVE STUDIO LLC ©CAROL BOVE STUDIO L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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