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MA 관장 부부의 전망이 예술이 되는 집
오래도록 염원하던 일이 현실로 이뤄진 순간. 감격의 문 앞에 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마이클 고반과 캐서린 로스를 마주했다.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관장과 캐서린 로스(Katherine Ross)는 늘 멋진 전망의 집을 염원했다. 끝없는 여정 끝에 두 사람은 건축적 아름다움이 빼어난 주택을 발견했다. 로스앤젤레스 볼드윈힐스(Baldwin Hills)에 자리한 집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미드 센추리 모던 시대 건축가 레이 카페(Ray Kappe)가 1958년에 설계한 것으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외관이 날아오르는 새를 연상시킨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길게 이어진 통창을 통해 게티 미술관부터 할리우드 사인, 곧 개관할 루카스 내러티브 아트 뮤지엄(Lucas Museum of Narrative Art)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집이 지닌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두 사람은 취향에 맞춰 인테리어를 새로 진행했고, 완성을 목전에 둔 채 인터뷰에 응했다. 아직 수도 시설과 주방 가전을 완벽하게 갖추진 못했지만, 그들은 전날 밤까지 예술품을 장식하며 집 꾸미기에 한창이었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사는 아티스트 토드 그레이(Todd Gray)에게 빌려온 작품도 걸려 있었다. “보통 다른 동네에서는 이제 막 이사하면 이웃에게 우유를 빌리겠죠. 하지만 예술가 이웃이 모여 사는 로스앤젤레스의 이 동네에서는 언제든 기꺼이 예술품을 빌려주곤 해요.” 마이클 고반이 말했다. 부부는 이날 오후에 배달된 가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소형 디지털 그랜드피아노도 있었다. 부부는 “앞으로 피아노를 배워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부부는 이날 처음으로 집의 압도적인 전망을 제대로 감상했다. 어디에 살든 전망은 그들에게 집을 고르는 필수 조건이었다. 아마간셋(Amagansett)에 살 때는 모래언덕, 말리부 포인트 듐(Malibu’s Point Dume)의 이동식 주택에서는 바다와 산, 이곳 볼드윈힐스에 위치한 집에서는 도시 전경이 전망 포인트다. “우리는 늘 전망 좋은 곳에 살았어요. 작은 집이라도 전망은 무조건 탁 트이게!” 마이클 고반이 입을 열자, 캐서린 로스가 덧붙여 말했다. “처음 이 집을 보던 날, 공항에서 바로 오는 길이었고 해 질 무렵이었어요. 우리 둘 다 전망을 보는 순간, ‘바로 여기’라고 단번에 느꼈죠.”
마이클 고반과 캐서린 로스는 20년 전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이후 지금까지 도시 문화를 이끄는 리더 역할을 도맡아왔다. LACMA의 비전을 끊임없이 제시해온 마이클 고반 관장은 신관 개관에도 열심이었다. LACMA 신관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설계했는데, 그가 미국에서 맡은 첫 건축물로 극적이고 대담한 디자인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남쪽 입구에는 약 8m에 달하는 토드 그레이의 대형 작품이 설치되었다.) 새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신관은 부부의 침실에서도 내려다보인다. 신관은 두 사람에게도 뜻깊다. 캐서린 로스는 소더비에서 16년간 일한 후,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예술 문화 홍보 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스킨케어 브랜드 뽀아레(Poiret)의 미국 시장 론칭에 참여했다. 또 오티스 미술대학(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이사회 일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녀는 LACMA 신관과 관련해 물심양면으로 마이클 고반을 도왔으며, 미술관이 주최하는 리더십 위원회 두 곳에서 이벤트 행사, 개발 프로젝트, VIP 회원 유치 등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결혼 22년 차인 부부의 일상은 늘 바쁘다. 남편은 주로 2인승 비행기나 소형 마쓰다 컨버터블로 이동하며, 아내는 아우디 S5 컨버터블을 운전한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때면 부부는 말리부 해변을 산책하곤 한다. 최근 마이클 고반이 파리와 런던 출장에서 돌아왔고, 캐서린 로스도 밀라노에서 전날 귀국했다. 이런 바쁜 일정 속에서도 두 사람은 자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그들에게는 오티스 미술대학 3학년인 스무 살 가브리엘(Gabrielle), 마이클 고반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서른 살 아리아나(Ariana), 두 딸이 있다.
캐서린 로스가 컨버터블을 타고 촬영 팀을 데리러 왔을 때, 그녀는 미우미우 스커트와 톱을 입고 있었다. 우리가 묵고 있던 샌비센테 방갈로(San Vicente Bungalows)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볼드윈힐스는 1950년대에 조성돼 셀럽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유명해졌다. 일명, 블랙 베벌리힐스로 불린 이곳에는 레이 찰스(Ray Charles), 티나 터너(Tina Turner),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 전 로스앤젤레스 시장 톰 브래들리(Tom Bradley) 등이 살았다.
이 집은 5년 전 멕시코 출장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 오른 마이클 고반이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Zillow)에서 처음 발견했다. ‘영원히’ 살 마지막 보금자리를 찾던 두 사람은 결국 몇 년이 흐른 지금에야 이곳으로 이사 올 수 있었다. 1층에 마련된 침실은 간결하면서도 세련미를 자랑한다. 부부의 미감, 라이프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매무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전망이 아니라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의 바닥이다. LACMA 관장이 되기 전 마이클 고반은 디아 예술 재단(Dia Art Foundation)에 호르헤 파르도를 초청해 디아 비콘(Dia Beacon) 미술관 전시장 바닥을 디자인한 적이 있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마이클 고반은 ‘파르도 플로어’가 있는 저택에서 늘 살고 싶어 했다. 역시 그의 판단은 옳았다. 여러 크기와 형태의 타일 23만7,000장으로 채워진 바닥은 연하늘색부터 진청, 녹색, 주황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로 구성되어 약 170㎡의 거대한 캔버스를 연상시킨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행복한 색채의 향연에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기죠.” 캐서린 로스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 순간 마이클 고반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베이(eBay)에서 구입한 반짝이는 은색 실크 프라다 재킷을 입었고, 베르너 헤르조그(Werner Herzog)의 <잊혀진 꿈의 동굴(Cave of Forgotten Dreams)>을 아이맥스로 관람하고 막 귀가하던 참이었다.

“집을 계약하고 나서 호르헤 파르도에게 이곳에 꼭 방문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플로어 디자인을 완성하고 싶었거든요.” 마이클 고반이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호르헤 파르도는 이 집의 바닥을 완성한 뒤 “도시처럼 에너지가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것 같다”고 묘사했다. 창밖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로스앤젤레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매력적인 바닥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밤이 찾아오면 도시의 모습이 바닥에 반사되어 서로를 비춘다.
부부가 본격적으로 집에 손대기 전, 집은 언덕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보수 공사가 무엇보다 시급했다. 1920년대 석유와 가스 채굴로 지반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보강 비용이 100만 달러 이상 들 수도 있는 큰 공사였다. 지인들이 지체 말고 도망가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그러나 LACMA 건물 공사를 맡았던 한 토목 기술자가 오염된 흙을 교체하면 보수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 덕분에, 두 사람은 모험을 해보기로 선택했다. 2년 남짓 걸린 공사 끝에 집은 안정적인 지반을 되찾을 수 있었다.
레이 카페와 친분이 있던 미드 센추리 모던 건축가 바버라 베스터(Barbara Bestor)가 실내 복원과 인테리어를 총괄했다. 그녀는 플랜티드 L.A.(Planted L.A.)의 아나 사베드라(Ana Saavedra)에게 조경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 집 내부는 애초에 레이 카페가 설계한 초기 하우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캔버스처럼 텅 빈 상태였어요.” 고반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 집은 정원과 차고가 있는 뉴욕의 넓은 로프트 같았다. 집 안팎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1층 정원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웅장한 도시경관을 향해 열려 있었다. 아나 사베드라는 이 정원을 “세심하게 구성된 식물 컬렉션의 표본실, 실루엣, 질감, 식물의 개성과 색채를 축하하는 무대”라고 표현했다.

“이곳이 우리 마지막 집이 될 겁니다.” 마이클 고반이 선언하듯 말했다. 이곳에서의 삶은 부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뒤이어 그는 말했다. “요즘 로스앤젤레스의 발전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이곳은 뉴욕보다 훨씬 젊은 대도시예요. 우리가 맡은 기관 역시 아직 오래되지 않아서 발전 가능성이 아주 커요. 대규모 종합 미술관은 19세기에 지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업데이트가 필요한 상황이죠. 로스앤젤레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좋은 곳이에요.”
집 구경을 끝마친 우리는 1시간 정도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신관을 둘러보았다. 유리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건물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탁 트인 전망이 인상적이었다. 며칠 전 고반은 대중을 위해 프리뷰 행사를 열었는데,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과 연주자 110명이 갤러리 곳곳에서 공연을 펼쳤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술품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건물을 개방하고 싶었어요.” 그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비평가들이 먼저 건축물에 대한 글을 충분히 쓴 뒤 미술관을 개관해 미술품에 집중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끝낸 나는 공항으로 향했고 마이클 고반과 캐서린 로스는 서둘러 새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부부와 잘 아는 예술가 타시타 딘(Tacita Dean)과 작가 에브게니아 시트코위츠(Evgenia Citkowitz)를 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메뉴는 구프 키친(Goop Kitchen)에서 주문한 음식이었다. 캐서린 로스는 헤어지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타시타와 에브게니아가 공사 시작 전에 이 집을 방문했을 때도 우리는 똑같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것도 있었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부디 수도관에서 물이 제대로 나오길 바랄 뿐이다. VL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유승현
- 글
- Dodie Kazanj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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