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서 이탈리아 최초 여성 마스터 오브 와인이 된 크리스티나 메르쿠리

2026.06.13

  • 유승현

변호사에서 이탈리아 최초 여성 마스터 오브 와인이 된 크리스티나 메르쿠리

크리스티나 메르쿠리는 글로벌 로펌 출신 변호사이자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최초의 여성 ‘마스터 오브 와인’이다. 그녀는 와인 업계에서 일하는 모든 여성을 위해 매일 분투하고 있다.

와인 전문가를 선정하는 국가는 어디일까? 이탈리아를 떠올리겠지만, 1955년 설립된 세계적인 와인 최고 권위 기관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MW)’이 자리하는 영국이다. 크리스티나 메르쿠리(Cristina Mercuri)는 엄격한 회원 자격의 클럽에 이탈리아 여성 최초로 입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 재배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가 여성 회원을 배출하기까지 왜 70년이나 걸렸을까? 그 답은 크리스티나 메르쿠리와 나눈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길게 늘어뜨린 금발에 짙은 눈망울, 토스카나 사람 특유의 투지가 느껴지는 크리스티나 메르쿠리는 까다로운 블라인드 테이스팅, 에세이 작성, 독창적이고 심층적인 연구 논문 집필 과정을 통과하며 와인 업계 최고의 영예인 마스터 오브 와인 회원 자격을 취득했다. 마스터 오브 와인은 70여 년간, 세계 와인 시장을 선도하는 인물을 선정해왔다.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이자 550여 종의 토착 품종과 1,000년의 포도 재배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도 2021년이 되어서야 첫 회원으로 가브리엘레 고렐리(Gabriele Gorelli)를 배출할 수 있었다. 마스터 오브 와인으로 꼽힌 이탈리아인은 4명에 불과하다(전 세계 30개국에 걸쳐 활동 중인 현역 마스터 오브 와인 멤버는 총 422명이다). 이탈리아는 가브리엘레 고렐리에 이어 안드레아 로나르디(Andrea Lonardi)와 피에트로 루소(Pietro Russo)를 배출했고, 크리스티나 메르쿠리가 합류하며 첫 여성 멤버가 탄생했다.

당신에게 마스터 오브 와인은 어떤 의미인가요?
마스터 오브 와인은 국제 와인 업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까다로운 타이틀로 와인, 지역과 시장에 대한 학문적 깊이를 증명하죠. 마스터 오브 와인이 되려면 상당한 인내심뿐 아니라 마케팅, 비즈니스 노하우, 포도 재배와 양조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수죠. 게다가 비판적 사고를 위한 감각도 필요하고요. 마스터 오브 와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꾸준한 공부와 끈기가 있어야 해요. 강한 의지, 완전한 헌신과 함께 어려움이 닥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이뤄낼 수 있는 결실이죠.

와인에 대한 열정은 어디서 출발했나요?
대학 시절 한 소믈리에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 있어요. 그가 와인을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고상하게 묘사하는 게 많이 거슬렸죠. 그 순간 결심했어요. 일종의 도전이었지만, ‘언젠가 와인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내가 한번 보여주겠다’. 그렇게 와인을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죠. 시간이 흐르면서 와인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졌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동시에 법학 시험도 계속 봤고요. 졸업 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법률가로 일하며 취미로 삼았던 와인에 대한 열정이 식기는커녕 도리어 커져만 갔어요. 그렇게 열정에 이끌려 진로를 바꾸기로 했죠.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와인 전문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영국 기관)의 3단계 과정을 전부 이수하면서 와인 분야에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결심이 섰고, 자격 수료 후에는 온전히 와인에 전념했어요.

결국 이탈리아 여성 최초로 마스터 오브 와인이 되었어요.
이상적으로는 이렇게 권위 있는 협회에서 또 한 명의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축하하겠죠. 그러나 아직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 최초로 마스터 오브 와인이 탄생한 것을 축하하고 있어요. 와인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고위직에 있는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업계 남녀 비율이 50 대 50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제가 이룬 성과는 그간 쌓아온 제 노력이 인정받은 것으로, 저를 보며 영감을 받는 여성이 많겠죠. 특히 커리어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거나 명예로운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여성에게 자극제가 될 거예요. 제가 홀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 모든 여성을 대표해서 이룬 성공 같아요.

세상엔 많은 여전사가 있죠.
너무 많죠.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고요. 양조학자나 CEO같이 남성이 주류를 이룬 업계에서 뒤로 밀려난 여성에게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봐요.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여성은 남성 동료보다 월등히 앞서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와인 소비가 많이 줄었죠. 와인 커뮤니케이터로서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길 바라나요?
일반 대중에게 제 목소리를 전달할 때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되 직접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들리도록 노력해요. 와인은 청자의 언어로 말해야 하거든요. 마스터 오브 와인 자격을 갖추며 많은 감각이 생겼어요. 경청을 통해 소비자의 니즈를 이해할 수 있었고, 다소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전통적인 스타일에 가치를 더해 와인을 더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죠. 오늘날 소비자는 와인을 어떻게 만드는지, 시음 중인 와인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해요. 와인 생산자의 개인적인 이력도요. 소비자가 가장 관심을 갖는 정보는 바로 그런 것들이에요.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게 커뮤니케이터로서 제 역할이죠. 더욱이 시장 침체기에는 와인을 좀 더 심플하게 설명하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는 데 확실히 도움이 돼요.

무알코올 와인의 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생산 과정을 설명하고 품질을 강조하는 정직한 소통이 필요해요. 이 같은 방식만이 새로운 카테고리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게 해요. 제 생각엔 전통 와인이 무알코올 와인의 그늘에 가려 빛을 잃을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오히려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어요. 예를 들면 무알코올 와인을 시도했다가 전통 와인까지 탐구하게 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죠!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와인 산지 중 주목하는 지역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활화산 에트나를 주목했죠. 에트나는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클래식 와인 산지로 자리매김했어요. 저는 시칠리아에서 팔레르모(Palermo) 내륙지역의 구릉지대에 위치한 캄포레알레(Camporeale)를 좋아하는데요. 그곳 와인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어요. 그리고 마텔리카(Matelica)를 주목하고 있어요. 화이트 와인용 포도 품종 베르디키오(Verdicchio)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곳 와인은 산미가 좋고 드라이한 맛이 특징이에요. 물론, 유명한 클래식 와인 산지로 자리 잡을 정도로 규모가 크진 않지만, 뛰어난 전문성과 독특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지역인 것은 확실해요.

스타일 얘기가 나온 김에 묻고 싶어요.(웃음) 당신의 패션 스타일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클래식한 라인에 단색 위주의 스타일을 기본으로 해요. 보통은 기분과 상황에 따라 의상이 달라지는데요. 그렇더라도 낮 약속에 블랙 의상은 절대 입지 않아요. 저는 막스마라의 프리마 리네아(Prima Linea) 라인을 정말 사랑해요.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좋고요.

이 영예를 누구에게 바치고 싶나요?
마리아 할머니께요. 제가 할머니를 많이 닮았거든요. 할머니도 시칠리아 여성답게 강인한 분이었어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당시 어린아이였던 우리 어머니를 데리고 토스카나로 삶의 터전을 옮겼어요.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운전을 하지 못했는데도 먼 곳까지 일하러 다녔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늘 제 롤모델이었어요. 특히 청소년기에는 더 그랬고요. 열일곱 살 무렵, 진로가 뚜렷하진 않았지만 막연하게나마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할머니처럼요. 저도 생기가 넘치고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할머니의 자존심과 패기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었죠.

할머니가 현재의 당신을 보면 기뻐하실까요?
저는 할머니께 정말 큰 은혜를 입었어요. 제가 이룬 성과는 모두 할머니의 가르침 덕분이에요. 늘 목표를 높이 세우고 꿈을 이루라고 격려했죠. 덕분에 저는 법학과 졸업 후 바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러다가 전향할 용기를 내어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었어요. 10년 만에 이탈리아 마스터 오브 와인이 되었죠. 지난 시간 동안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늘 저를 바르게 이끌어준 할머니 덕분이에요. VL

    컨트리뷰팅 에디터
    유승현
    Salvatore Spatafora
    사진
    Cristina Merc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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