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고, 긁고, 파고든 회화의 피부

2026.06.30

쌓고, 긁고, 파고든 회화의 피부

수많은 거장이 자신의 예술적 열망을 남긴 캔버스에는 여전히 새로 쓰일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안료를 쌓고, 깎아내는 등 서로 다른 시각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들의 회화 전시를 소개합니다.

찰나를 응고하기 위한 스터디
<Studies>

98세의 미국 구상 회화 거장 알렉스 카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알렉스 카츠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된, 가로 75m, 높이 6m의 ‘나인 우먼(Nine Women)'(1977) 같은 대형 회화를 많이 남겼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연구작에 주목해 ‘나무를 위한 연구’(2025) 같은 소형 회화를 선보입니다. 그에게 소형 회화는 대상의 찰나를 붙들기 위한 연구 과정입니다. 본능적으로 단숨에 그려낸 장면에는 메인주의 햇살,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순간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영원처럼 응고돼 있죠. 여기서 물감이 마르기 전 다른 물감을 덧바르는 카츠의 회화 기법 ‘웨트 온 웨트(Wet-on-Wet)’가 남긴 선명한 붓질은 긴장감을 자아내며 그가 애정하는 친구, 꽃, 숲에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이외에도 이번 전시는 세 점의 대형 작품 ‘백합’ 시리즈를 선보여 자신의 언어로 형상을 다듬어나가는 작가의 연구 과정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현재만이 실존한다’고 말하는 카츠는 추상회화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 철학적 깊이가 없다는 비평 속에서도 자신의 구상화를 묵묵히 발전시켜왔습니다. 찰나를 붙든 그의 작품을 통해 현재에 머무는 시선을 경험해보세요. 8월 1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예약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ThaddaeusRopac

알렉스 카츠, ‘나무를 위한 연구’, 2025, 보드에 유채 22.9×30.5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 Alex Katz / ARS, New York 2026, 사진: 전병철
알렉스 카츠, ‘아홉명의 여인들’, 2009, 보드에 유채, 40.6×30.5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 Alex Katz / ARS, New York 2026, 사진: 전병철
알렉스 카츠, ‘백합’, 2025, 리넨에 유채, 152.4×91.4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 Alex Katz / ARS, New York 2026, 사진: 전병철
알렉스 카츠 ‘Studies’ 전시 모습. 타데우스 로팍 서울, 2026년 5월 22일~8월 1일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사진: 전병철

덧바르고 깎아내며 나눈 회화적 대화
<마음의 눈>

동 기간 타데우스 로팍의 또 다른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회화적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 <마음의 눈>에서는 뉴욕의 조안 스나이더, 런던의 메간 루니, 파리 한 빙 등 3인의 작품 16여 점을 소개합니다. ‘서사적 추상’으로 미국 여성주의 미술의 이정표를 세운 조안 스나이더는 ‘스튜디오 노트’(2025)의 손자국과 손 글씨 같은 개인적 흔적 아래 반짝이는 연못을 배치해 화면 내부에 깊이를 더하며 자전적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을 화면 위를 배회하다 이착륙을 반복하는 비행기라고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메간 루니는 캔버스에 물감과 파스텔, 오일 스틱을 쌓고, 전동 샌딩기로 깎아내기를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하죠. 그녀가 자유롭게 활강한 ‘골짜기와 언덕 너머’(2026) 같은 최신작에서는 작가와 회화 사이 내밀한 대화의 시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 중인 한 빙 역시 쌓기와 덜어내기를 반복해 작품을 완성하는데, 그녀에게는 파리 지하철역의 포스터나 광고지가 회화 재료죠. 한 빙은 종이를 겹겹이 붙이거나 찢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형상에 주목해, 도시의 중첩된 풍경처럼 경계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전시는 세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시각언어의 고유성을 더 선명히 드러냅니다.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예약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ThaddaeusRopac

조안 스나이더, ‘왜냐하면’, 2012, 리넨에 유채, 아크릴릭, 파피에 마셰 장미 봉오리, 밧줄, 면포, 글리터 그리고 색연필, 121.9×152.4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 Joan Snyde
조안 스나이더, ‘스튜디오 노트’, 2025,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릭, 나무 후프, 황마, 천, 종이, 잉크 그리고 짚, 127×213.4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 Joan Snyder, 사진: 아담 라이히
메간 루니, ‘흐르며’,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파스텔 그리고 오일 스틱, 199.5×150.2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 Megan Rooney
한 빙, ‘내가 몰랐던 것’, 2025, 종이에 아크릴릭 그리고 오일 파스텔, 23.7×20.5cm,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런던·파리·잘츠부르크·밀라노·서울 제공. © Han Bing, 사진: 니콜라 브라쇠르

닿을 수 없는 핑크
<자연의 시선에 놓이다>

‘오직 색과 형태만으로 그린다’는 신념으로 40여 년간 회화에 천착한 일본 작가 요코 마츠모토의 국내 첫 개인전 <자연의 시선에 놓이다>는 8월 14일까지 개최됩니다. 1963년 도쿄에서 태어나 서구 추상화와 일본 수묵화에 영향을 받은 요코 마츠모토는 얇은 아크릴 안료층을 빠르게 중첩시키는 자신의 회화 기법 ‘헤이지 페인팅(Hazy Painting)’을 정립하며 색채 표현에 깊이를 더했죠. 그렇게 표현된 빛깔은 평면이 아닌 아득한 공간처럼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또 작가는 색을 통해 사유와 감각을 확장하는데, 핑크색을 ‘흑백과 달리 어떠한 관념도 담고 있지 않은 색’이자 ‘우리 무의식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그녀의 색채 관념을 담은 대표 연작 ‘핑크’와 ‘화이트’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장소 화이트 큐브 서울 예매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whitecube

Yoko Matsumoto, ‘Untitled’, 1990, Acrylic on canvas, 199.8×200.5cm | 78 3/4×79in. © The artist, Photo © White Cube(Jeon Byung Cheol)
Yoko Matsumoto, ‘Untitled’, 1990, Acrylic on canvas, 199.8×200.5cm | 78 3/4×79in. © The artist, Photo © White Cube(Jeon Byung Cheol)
Yoko Matsumoto, ‘Just Before Dawn’, 2025, Oil, charcoal and pastel on canvas, 130.5×194.1cm | 51 1/2×76 1/2in. © The artist, Photo © White Cube(Jeon Byung Cheol)
Yoko Matsumoto, ‘Light Shining in Wilderness’, 2020, Oil, charcoal and pastel on canvas 130.5×162cm | 51 3/8×63 3/4in. © The artist, Photo © White Cube(Jeon Byung Cheol)
김성화

김성화

프리랜스 에디터

<보그>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전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오디너리>와 기내지 <아시아나>에서 여행과 문화, 미식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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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스 로팍 서울, 화이트 큐브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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