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위한 간주곡’,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호흡을 고르는 전시

2026.06.26

‘몸을 위한 간주곡’,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호흡을 고르는 전시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 전시는 다른 문화와 결정적으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관람객인 나의 역할과 움직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데요. 이를테면 공연을 볼 때는 물리적으로 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지만,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내 몸을 직접 움직여야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나 문학(특히 소설)은 강력한 내러티브가 나의 손을 잡아 이끌지만, 전시에서는 내가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또 사유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전시를 볼 때 우리 몸은 부지불식간에 집중하고, 긴장한 상태에 있지요. 하지만 대다수 미술 공간에서 관람객의 신체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벤치라도 있으면 감지덕지, 하지만 이마저도 없는 경우가 많지요. 전시를 본다는 행위가 유독 나에게만 피곤한 일인가 싶어 괜히 주눅이 들었던 게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겁니다.

‘몸을 위한 간주곡 – 소목장세미’ 전시 모습.
‘몸을 위한 간주곡 – 소목장세미’ 전시 모습.

얼마 전에 들른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유휴공간 프로젝트 전시인 <몸을 위한 간주곡 – 소목장세미>가 무척 반갑게 느껴진 건 이런 이유입니다. 이 전시는 간주곡처럼 관람의 여정 사이에 관람객이 기꺼이 즐겁게 쉬어 갈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합니다. 아니, 단순한 휴식을 넘어 관람객의 몸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은데요. 소목장세미는 전통 소목장 기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작가죠. 일상, 신체, 그리고 공동체적 감각을 탐구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에서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시각을 잠시 잠재우는 한편 번번이 소외되었던 다른 감각들을 깨웁니다.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호흡을 고르다 보면, 이 공간의 진가를 자연스레 느끼게 됩니다.

(좌, 우 각 1점) ‘등 굴리기 스피커’, 2026, 레드오크 무늬목 합판, 템바보드, 스피커 유닛, 스테인리스 구조대. (가운데) ‘등 굴리기 향 분사기’, 2026, 멀바우 원목, 향 휘발기, 레몬그라스 프러그런스 오일, 스테인리스 구조대.

특히 흥미로웠던 건 <몸을 위한 간주곡>이 미술관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하는 촉각 및 후각 등을 되살린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등 굴리기 스피커’와 ‘등 굴리기 향 분사기’는 소리와 향기를 통해 감각을 일깨우는 동시에 몸을 밀착한 채 등을 굴리며 지압할 수 있도록 제작된 작업입니다. 소목장세미만의 미감이 인상적인 ‘지압마루 – 땅’의 무늬도 촉각으로 느껴보시기를 권하고 싶은데요. 특히 이 마루는 인간 존재의 바탕이자 모든 관계가 시작되는 땅을 상징하고, 표면의 문양도 다양한 생명의 요소들을 형상화합니다. 서로 다른 색의 나무와 무늬가 퍽 아름다운 ‘지압 벽 장식 – 보이지 않는 힘’ 역시 만지거나 등을 대며 감각할 수 있습니다. 어쩐지 몸의 피로뿐만 아니라 마음의 고단함도 풀리는 느낌이 들더군요.

‘지압 마루 – 땅’, 2026, 레드오크/월넛/사펠리 무늬목 합판, 너도밤나무 원목, 알루미늄 코너재.
‘지압 벽 장식 – 보이지 않는 힘’, 2026, 레드오크/월넛/사펠리 무늬목 합판, 템바보드, 알루미늄 코너재.

암모나이트 화석 형태에 영감받은 ‘암모나이트 시계’는 현 시간의 무게를 덜어내고, 시간의 의미를 과거와 미래로 확장합니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지압 카혼 벤치’는 어른을 위한 놀이터 같은 작품인데요. 벤치 표면에 양각과 음각으로 새긴 문양을 보고 있으면, 손이 먼저 나갑니다. 카혼은 스페인어로 ‘상자’를 뜻하는 타악기로, 과거 남아메리카로 이주한 아프리카인들이 나무 상자를 두드리며 소리를 만들어낸 데서 유래하는데요. 손가락으로 나무를 두드릴 때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소리가 미술관의 정적을 깨며 기분 좋은 울림으로 돌아옵니다. 아이처럼 괜히 신나기도 하더군요. 나름 연주에 열중하다가, 저와 비슷한 포즈로 노는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공유한 듯, 모르는 사이인 우리는 서로 살짝 웃어 보였습니다. 일반의 미술관에서는 좀체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지압 카혼 벤치 – 땅 위의 배’, 2026, 체리/레드오크 무늬목 합판, 라왕 원목, 알루미늄 코너재, 스네어 철물, 북채, 천, 스펀지.
‘지압 카혼 벤치 – 바다 위의 배’, 2026, 체리/레드오크 무늬목 합판, 라왕 원목, 알루미늄 코너재, 스네어 철물, 북채, 천, 스펀지.
하솔휘

하솔휘

웹 에디터

2025년 4월 <보그>에서 시작했습니다. 패션 감각이 필요한 모든 분야의 글을 씁니다. 많이 듣고, 다니고, 읽고, 고민하면서 제대로 된 글을 재밌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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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원(미술 애호가, 작가)
사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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