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sex, mr.style

지난 13년간 스타일 아이콘으로서의 삶은 빠르고, 섹시하고, 몽롱한 환락-질투가 불타오를 만큼 매혹적인 친구와 술 마실 때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의 시기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정재와 정우성이 자신들을 꼭 빼닮은 ‘수트’라는 천상의 피조물을 들고 나왔다.

중절모는 카오리(Kaori), 블랙 서스펜더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블랙과 화이트의 슬림한 슈즈는 구찌(Gucci), 블랙과 화이트 도팅이 그러데이션을 이루는 셔츠와 블랙 팬츠는 모두 다반(Durban).

네이비 행커치프는 구찌(Gucci), 기하학적인 패턴의 블루 셔츠와 화이트 재킷과 팬츠는 모두 다반(Durban).

깃털 장식 브라운 중절모는 카오리(Kaori), 작은 해골 프린트 스카프는 드레스투킬(Dressed to Kill), 에머랄드 블루톤의 재킷은 다반(Durban).

햇볕이 따스한 1월의 일요일 아침, 정우성과 이정재가 삼성동에 위치한 톰보이의 젊은 문화공간 T-스페이스에서 모닝 커피를 마시며 나란히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이곳에선 며칠 후 <보그 코리아>가 주최하는 제2회 의상학과 졸업생 콘테스트에 당선된 아트풀한 의상이 전시될 예정이어서, 기하학적인 원형을 간직한 예비 디자이너들의 꾸뛰르 의상이, 막 찍어낸 따끈따끈한 전시회 포스터와 함께 건물 한켠에서 꿈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매력적인 두 남자는 무엇 때문에 이 패션과 예술의 공동구역에서 화장을 받고 있을까? 아직은 커머셜 핵폭탄을 맞지 않은 한국의 예비 디자이너들의 꿈을 격려하기 위해? 아니면 오랜만의 공동 CF촬영? 정우성과 이정재의 눈이 동시에 다른 한쪽의 행어를 가리킨다. 꾸뛰르풍의 의상과는 정반대되는 아주 쿨한 수트, 캐주얼 진, 컬러풀한 셔츠들이 당신을 향해 젠틀하게 인사한다. “웰컴! 이정재와 정우성의 새로운 옷장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자, 이정재와 정우성을 소개한다. 이제 막 패션 비즈니스를 시작한 젊고 매력적인 공동 CEO! 자신이 런칭한 수트 브랜드 ‘다반’의 젊은 사장이자, 세상에 둘도 없을 안성맞춤의 두 패션 배우가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화려한 우정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 핏줄을 찾아가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패션의 뿌리를 따라갔다.
이정재는 행어에서 손가락으로 집어 든 셔츠 자락을 단순히 염색한 실크 옷감덩어리가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이를테면 고미술품이나 수표 더미쯤 되는 것처럼 다룬다. 촬영장은 신중하고 지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패션 촬영장에서 옷이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되는 건 드문 일이다. 그렇다. 그 셔츠의 버튼이나 타이 컬러엔 두 사나이의 혁명이 담겨 있다. 정우성이 다리를 벌리고 천천히 걷는 모습에서는 편안함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분장실 거울 앞에서 카메라 사이를 바로 그런 걸음걸이로 10여 년 동안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수트를 입은 두 매력적인 사내의 주방의 인식 능력은 꽤 뛰어났다. 포즈에 있어서 만큼은 도마 위의 천재라고나 할까? 나는 정우성 특유의 장식적인 포즈를 알고 있다. 턱은 당긴 채 목을 살짝 뒤로 빼면서 왼쪽 어깨와 다리가 낭만적인 예각을 이루는, 전체적으로 교태의 단칼로 마지막 손을 본 듯한 델리키트한 포즈.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가 한 일은 와인을 따서 한 잔 마시는 일. 정우성에게선 전분 냄새 대신 부드러운 나무 냄새와 흙 냄새가 골고루 풍겼다. 검은 머리와 야비하게 그려진 얇은 턱수염을 보면 캐러비안의 해적이고, 말하는 걸 들으면 순한 지식인 노동자 같은데, 옷차림은 세련된 패셔니스타. 찰칵!
밀가루 반죽을 찰싹 때리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정재는 튀기고, 자르고, 으깨고, 씹고, 삼키는 듯한 ‘난타’스러운 시늉을 즉흥적으로 가미한다. 효율을 중시하는 태도와 몸놀림, 허튼 수작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표정의 얼굴, 모든 것에서 진지함이 드러났다. 간간히 담배를 힘껏 빨아들일 때 나는 효과음도 리듬을 타서 이정재의 입술에선 거품이 이는 듯한 작고 촉촉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저 요리사가 만든 파스타는 얼마나 맛있을까? 찰칵!
사실 옷장 앞에서 서성이다가 수트를 입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정우성이나 이정재만큼 멋지지 않다. 여자들이 직장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대부분 ‘총무과 스타일’이다. 지난밤의 알코올 냄새가 깃든 후줄근한 양복을 입은 채의. 일반적인 30대 남자들은 그들처럼 모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옷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여러분이 집에서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 많은 버튼을 열고, 더 과감한 색깔을 사용하며, 더 섹시하게 겹쳐 입고, 더 민첩한 자세로 움직인다.누 구나 그들을 보면 카메라를 꺼내고 싶어 한다. 찰칵! 찰칵! 찰칵!
“수입 브랜드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정재씨, 우종완 이사하고 어릴 적부터 패션 비즈니스에 대한 구상을 많이 했었거든요. 의류 광고를 많이 찍었고 패션계에 대해서도 좀 알았으니까. 우리가 한번 브랜드를 내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종종 나눴죠. 그러다 얼마 전에 중국에서 <중천>을 촬영하다가 광고 촬영 때문에 잠깐 귀국했을 때, 정재 씨한테 “우리가 만들어서 하면 좋을텐데” 그랬어요. 정재 씨가 대뜸 “그래, 그러자!”, 워낙 비즈니스 감각이 있고 뭔가를 알아보길 좋아하는 친구라 본격적으로 진행됐죠.” 정우성은 상냥하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다. 그렇게 의류 브랜드 다반의 사업은 공식화됐다.
정우성이 항상 패셔너블한 것은 아니다. “광고에서나 그렇죠.” 평상시 그의 모습은 꾸밈이 없고 대외적인 정우성을 탈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대부분이다. “저는 단순하게 입어요.” 흔히 단순하다는 말은 쉽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스타일이 좋은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땐 ‘터득하는데 한평생이 걸린다’라는 뜻이다. 정우성은 패션에 관심이 있지만, 어릴 때 이정재와 비즈니스 이야기를 할 때만큼 관심이 있지는 않다. 정우성이 디자인해 본 유일한 옷은 <태양은 없다>에서 헝그리 복서인 도철이 입던 트레이닝복 한 벌이 전부다(그리고 그는 <똥개>에서도 아주 컬러풀한 방구석 패션을 선보였다).
여러분도 눈치 챘다시피 그들이 관심 있는 건 패션이 아니라 패션 비즈니스다. 하지만 그건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옷입기에 관심이 있었다면 여느 스타들처럼 옷가게를 차리고 하루에도 서너 번 자신의 보물창고에서 옷 갈아입기놀이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옷을 마케팅적으로 접근한다. “밖에서는 저를 쇼핑광처럼 생각하죠. 하지만 실제의 전 그렇지 않아요. 제 취향은 한번 사면 20년을 입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그러면 장사가 안 되겠죠? 하하.” 이정재는 시장의 흐름을 읽는데 탁월한 눈이 있다. “자기 캐릭터가 60%이상 좌우합니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캐릭터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다반의 가장 큰 유혹도 그들 자신이고, 다반의 가장 큰 적도 그들 자신이다. 그리고 정우성과 이정재는 그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 “두려움이 커요. 이정재와 정우성이 아킬레스건이 될 거예요. 이미지로 먹고 사는 우리가 배우로서 값어치가 떨어질 때, 저희가 하는 브랜드의 상품력도 떨어지겠죠. 가령 누가 다반을 입었는데, 멋지지 않거나 그 옷이 불량이라면 사람들은 정우성과 이정재가 거짓말을 하거나 불량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책임감, 명예가 자유를 갉아먹겠지만, 일에서 오는 성취가 보상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정재는 1995년 1월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을 보호하는 보디가드로 유명세를 얻었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희고 앳된 얼굴, 약간 크게 재단된 검은 양복에 순정한 육체를 감춘 그가 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맹수처럼 목숨을 걸고 덤빌 때, 사람들은 사격장에 내동댕이 처진 미소년을 보듯 발을 구르며 애달아 했다. “꿈이었나 싶어요. 그 시절이, 한 편의 꿈 같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전 순진함을 잃었지만, 순수함은 그대로입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순수함을 지키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비트>는 나에겐 꿈이 없다, 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라고 정우성이 말한다. 그 내레이션의 제안자가 정우성이었고, 그것이 반어법이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기성 사회에서 거절당하고 소외당한 청소년들의 상실감과 후유증을 표현했던 그 문장, ‘나에겐 꿈이 없다’. 나는 정우성에게 어릴 적 자신이 그리던 이상향의 남자에 가까이 도달해 있는가를 물었다. “아니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죠. 모르겠습니다. 꿈을 종종 잃어버리니까요.” “이젠 30대를 위한 <비트>가 필요한 시점이죠. 30대 중반에 들어서면 불현듯 ‘나는 꿈을 잃어버렸다’를 자각하게 되니까요. 어떻게 생각하죠?”라고 내가물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왜 꿈을 잃어버렸을까요? 그건 이 시대 사람들이 고민에 대한 낭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정우성은 자신의 생각을 복잡하고 오묘한 문장으로 표현하는데, 그 문장 구조를 통해 그가 사유에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우성은 한참 동안 공들여 ‘고민의 미학’을 설파했다. 사람들이 꿈을 잃어버린 건, 고독과 고민에 대한 면역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고민을 단순히 괴로움, 미해결의 공황 상태로격하시켜왔기 때문에, 우리가 제도화한 사회가 거꾸로 우리를 길들이는 전복적인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등등.
“만약 제가 TV쇼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들 불편해할 겁니다. 제 임무는 5분마다 한 번씩 웃겨줘야 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감추고, 고민을 말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그러는 사이 스스로 고민을 해결할 방법조차 파괴되는 거죠. 안 그런가요?” 그렇게 정우성은 현대적인 나르시소스이면서도 여전히 불가사의한 존재임을 증명해 간다. 나는너무 멋진 스타일 아이콘이 너무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패션은 패션일 뿐이다’라고 단언하는 게 약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패션을 이야기할때 그는 마치 마케팅 능력이 탁월한 작가처럼 군다.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면 몸은 그저 옷걸이일 뿐이라거나, 모든 패션 광고가 멋을 추구하듯이 한국에 멋진 사람, 멋진 건물, 멋진 공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거나, 20대는 패션을 너무 외적인 패권다툼으로 몰아세운다거나.
“저는 화려한 20대뿐만 아니라 고민의 능력이 있는 30~40대가 멋진 옷을입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정우성과 마찬가지로 이정재도 커피숍에서 픽업되었고, 청춘의 아이콘이었고, 많은 보수를 받고 CF를 촬영했고, 레스토랑이나 인테리어 사업가로 활동했고, 열심히 피부를 태웠고, 너무나 멋진 모습을 유지했으며, TV 브라운관으로 쉽게 유턴하지 않았다. 10년이 넘게! 정우성에게 김성수 감독의 <비트>라는 고향이 있던 것처럼, 이정재에겐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라는 자궁이있다. “20대 초반에 저는 연기적으로 좀 모호하게 행동했습니다. 이런 놈일까? 저런 놈일까? <젊은 남자>를 할 때만 해도 그게 더 매력 있는 시대였지요. <태양은 없다>에서 처음으로 비열한 놈을 연기했어요. 그 뒤론 끝까지 가보려고 해요. 순진과 비열의 극단을 보여줬을 때, 보석처럼 짚히는 무엇. 살아남기위해 닳고 닳았지만, 순수함은 남아 있는 그런 말초적인 모습이 다가왔지요.우성 씨가 영화사를 하니까 앞으로 제게 그런 배역의 기회가 올 수도 있겠죠.”
미소년에서 섹시 스타, 패셔니스타, 건강미 넘치는 청년을 거듭하며 90년대에서 2000년대를 걸쳐온 관록의 스타답게 이정재는 대중 취향의 변천사를분석적으로 바라본다. “이제 대중들은 배드 가이든 나이스 가이든 본 모습을솔직히 보여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작위적인 나이스 가이보다 꾸밈 없는 배드가이를 더 좋아하죠.” 그런 이분법으로 이정재를 분류하자면 그는 배드 가이를 표방한 내추럴 가이다. 정우성은? 정우성은 나이스 가이를 표방한 로맨틱가이라고 할 수 있다. 패션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한 그들에게 아주 일반적인 질문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는가?”라고 물어보자. 이정재는 약간 뾰로퉁하게 대답한다. “몰라요.”그리고 침묵. 정우성은? 일단 웃는다. 그리고 서비스 마인드가 크림처럼 녹아 든 상냥한 답변을 꺼내든다. “톰 포드요. 그 친구, 이번에 브랜드도 하나 런칭한다고 하던데요. 이렇게 말하니까 톰이 꼭 내 친구같네요. 하하.” 이정재를 다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면, 그는 드디어 하고싶은 말을 시작한다. “전 디자이너보다 시장을 생각해요. 변화되고 있는 소비자, 그러니까 자기 돈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나이대의 문화를 파악하는 게더 중요해요. 소비층은 소방차 세대에서 서태지 세대로, 그리고 HOT세대에서 동방신기 세대로 진화했죠.” 소방차 세대에서 시작해 서태지 세대에서 막을 내린 나는 이정재에게 그 시절 한창 유행이었던 승마 바지와 패드가 들어간 재킷을 입었는가를 물었다. “아닙니다. 전혀요. 10대와 20대와 30대 시절을 통틀어 전 달라진 점이 거의 없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첫째 컬러, 둘째 패턴, 셋째가 디자인, 그리고 트렌드입니다.” 내추럴한 멋쟁이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정재의 패션 철학에 귀 기울여 보라. “자신의 스킨 톤, 헤어톤, 아이톤을 파악하세요. 같은 블루 계열이라도 옐로 베이스 블루와 화이트베이스, 블랙 베이스 블루는 정말 다릅니다. 그 다음 자기 체형을 보완하는 패턴을 찾으세요. 그 다음 디자인과 트렌드를 따라도 늦지 않습니다. 전 컬러와 디자인이 과장된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1994년 X세대를 대표하는 캐릭터였던 <젊은 남자>에서도, 2000년 불륜의 사랑을 스타일화했던 <정사>에서도 저는 모노톤이었어요.”
두 세기에 걸쳐 모노톤이었던 남자 이정재. 몇 년 전 나는 이정재를 촬영하면서, 온갖 비비드한 컬러가 들어간 과장된 모자를 쓰고 파티걸들과 질펀하게 웃고 떠드는 존 갈리아노를 시안으로 제시한 적이 있다. 그는 곤란한 표정을지었다. ‘망가지지 않은 기본적인 옷을 줘요. 진짜 옷, 기본적인 컬러, 내가 입었을 때 더 단순해지는 옷!’이라고 그의 눈빛은 이글거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극도로 볼드한 메두사 반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우리는 상체를 벗은채 밀리터리 팬츠를 입고 레오파드 프린트 소파에 앉아 있는신(Scene) 정도로 타협을 봤다. 스타일 에디터가 직접 제작한 플라워 고깔 모자, 골동품 가게에서 무려 50만원이나 주고 빌린 중세풍의 기사 갑옷은 애초의 그 의기양양한 외양과는 달리 재앙을 선사한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그때 나는 이정재를 미워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정재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다.
“전 가장 자연스러운 것, 기본적인 것을 사랑합니다”라고 이정재는 정우성과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기상천외한 천재도 아니고, 완벽한 피조물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나아갈 뿐이죠. 패션사업도 그렇습니다. 매년 패션 브랜드를 하나씩 런칭할 거고, 네… 그 중엔 여성복도 있어요. 하지만 전 궁극적으로 티셔츠와 진을 가장 좋아합니다.”
극적인 변형을 혐오하는 이정재와는 달리 정우성은 그것에 기꺼이 자신을 던진다. 내가 몇 년 전 택시 기사 제복 같은 촌스러운 옐로 셔츠에 형광 레드 팬츠를 입히고 머리 위에서 거센 물줄기를 뿌려대거나, 톰 포드가 디자인한 극도로 화려한 기모노 실크 가운을 입히고 마룻바닥에 누워보라고 요구했을 때도 그는 한마디도 불평하지 않았다. 카메라 안팎에서 그는 완벽할 만큼신사적인 매너를 갖췄지만, 지금에야 고백하자면 그런 실험적인 변형은 사진적으로 형편없었다. 정우성이라는 남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수트를 입었을때다. 스키니한 수트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고 철제 의자 위에 올라 앉아 <새>의 한 장면처럼 담배를 피워 물기도 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처럼 헤어를 올백으로 넘긴 채 더블 재킷에 행커치프를 꽂고 시가를 피우기도 했다. 고독하면 고독한 대로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수트 입은 정우성은비현실적일 만큼 눈이 부셨다. “수트는 이중적인 옷입니다. 자기과시적인 면,전략적인 격식 때문에 즐겨 입진 않지만, 때로는 그런 자기 과시를 즐기고 싶어 입기도 합니다.” 20대 초반까지 정우성은 캐주얼 정장에 노타이, 팔을 걷어올린 스타일을 즐겼다. “영화제 시상식에선 정장에 스카프를 매기도 했죠. 전 좀 더 남성적으로 보이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이 먹으면서 이젠 청춘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하하.”
누구나 남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남성상이 필요하다. 그가 아버지 혹은 선생님이나 직장의 상사나 선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구나 수트 입는 법을 가르쳐줄 남성상이 필요하다면, 나는 무조건 정우성과 이정재를 추천하겠다. 수트를 입은 이정재의 눈빛이 찌르는 듯 형형하다면, 정우성의 눈빛은 출렁이듯 부드럽다. 결단력 있고 고지식하며 공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쿨하지만,세속의 지혜를 지닌 직선적인 사람이라면 이정재처럼 입어라. 컬러를 절제하고 핏에 예민하게 신경 쓰고 약간 배드 가이처럼. 유머러스하고 서비스정신이강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상냥하고, 버라이어티하고 낭만적인 사람이라면 정우성처럼 입어라. 더 많은 컬러를 쓰고 더 많은 버튼을 풀고 약간 로맨틱 가이처럼.
이정재가 과장을 혐오하는 만큼 정우성은 반바지에 경기를 일으킨다. “입다가 만 것 같잖아요. 영,유아기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반바지를 입어본 적이없어요. 초등학교 때도 안 입었어요. 옷을 가장 잘 소화하는 방법은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 그래도 반바지는 안 됩니다. 여자라면 다릅니다. 여성의 핫팬츠는 근사해요. 물론 완벽한 패션은 여성의 육체 그 자체겠지만요.”나는 종종이런 멋진 남자들을 볼 때마다, 이들의 여자친구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궁금했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요. 그리고 상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사랑을 할 뿐이에요. 어쨌든지금 전 여자 옷을 더 잘 디자인할 것 같아요. 입혀 보고 싶은 옷, 섹시한 옷, 이런 옷을 입고 내 앞에 서 있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성적 판타지가 가미된 그런옷 말입니다. 하하.”
어수룩한 복서 도철과 귀여운 사기꾼 홍기를 연기했던 <태양은 없다>에서 정우성과 이정재는 <델마와 루이스>보다 아름다운 엔딩 신을 만들어냈다.일출이나 일몰, 빛의 격한 풍경에 섞여들면서 그들이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를 때 가슴속에서 붉은 기운이 번져 올랐다. <태양은 없다>에서 그들은 20대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작품이 끝나자 그들은 서로에게 끌리는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의, 신뢰, 배려, 형평성 같은 것들. 그리고 ‘차갑지도 않고 미지근하지도 않고 도저히 온도를 가늠할 수 없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우성이 이정재를 표현했을 때‘, 우성 씨와의 차이점은 거의 없다’라고 이정재가 그들의 관계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그들이정말 친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아직까지 서로를 ‘~씨’라는 존칭으로 부른다. “존댓말이 좋은 거 아닌가요? 친밀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있으니까요.”친밀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라는 건 과연 어떤 걸까? “가령 10대 때는 서로를 다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 함께하기도 합니다. 정재 씨와 나는20대에 만나서 30대를 향해 왔습니다. 맹목적이기보다 사회적 이해관계를 배려하는 우정이었어요. 이해득실에서 손해가 되지 않게끔 우정을 관리하는 것도 소중합니다. 그런 부분이 많아지면 우리는 성공할 거예요.”
정우성은 잠옷을 입고 죽고 싶다고 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사람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요란하지 않은 장례식, 그리고 유리관 속엔 실크 잠옷을 입고 잠자듯 누워 있는 세기의 미남. 이정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찬송가를 부르면서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배가 90도로 기울어 검은 바닷속으로 잠길 때까지 서로 살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던 아수라 갑판 위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실내악단의 단원들. 깨끗이 연미복을 갖춰 입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마지막 연주곡 가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길 원합니다~.” “얼마만큼 편하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가가 중요하죠. 옷이라면 필요없습니다. 전 누드로 죽고 싶어요. 음, 그건….” 1년차 패션 사업가가 말했다. “전 사람들이 한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아귀다툼을 하면서 살진 않았던가 생애를 돌아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 몸짱이던 이정재가 배도 나오고 다리도 가늘어지고 몸에 셔링도 잡히고 얼굴엔 검버섯도 있는 그런 노인으로 변해갔다는 것도 인정해주길 바랍니다. 죽음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브랜드 크리에이터인 우종완이 이정재와 정우성의 캐릭터가 녹아들어간 다반의 카피를 써줄 것을 제안했을 때,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작별 인사를 할 때쯤 나는 그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나는 글을 다루는 사람이고, 대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언어 위주의 삶을 산다. 도회적이고 연역적이고 생각과 독서와 추상에 좌우되며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뭘 입을지 결정하기 위해 신문의 일기예보를 뒤적이는 사람들. 그러나 ‘옷빨’이 무엇인지를 아는 미끈하고 남다른 개성의두 남자의 ‘옷갈아입기’놀이를 지켜보자 다른 방식이 작동했다. 애써 글을 쓸 필요도 없고 , 생각도 하지 않았다. 관찰하고 훔쳐보았다. 이건 아무래도 지성의 뇌보다는 감성의 뇌가 작용하는 방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 계산된 즉흥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떠오른 카피는 다음과 같다.

자기중심적이다. 상처도 잘 받는다. 사랑에 목숨 건다. 눈물도 많다.
나쁜 피 뜨거운 피난 둘 모두를 가졌다. 나는 이정재다.

꿈을 꾼다. 눈을 뜬다. 그리고 도전한다.
두려움 없다.
사막의 꿈, 빌딩의 야망, 난 둘 모두를 가졌다.
난 정우성이다.

함께 여행한다. 밥 먹는다. 일도 한다. 힘을 합친다. 너와 나는 친구다.
함께 경쟁한다. 질투도 한다. (하지만) 자랑스럽다. 배신하지 않는다.
너와 나는 친구다.
상식을 존중하는, 상식을 뛰어넘는, 우리는 한 개의 거울이다.

와인 컬러의 행커치프는 구찌(Gucci), 블랙 앤 화이트의 넥타이는 엘록(Eloq), 작은 블랙 도트 셔츠와 포멀한 블랙 수트는 모두 다반(Durban).

깃털 장식의 퍼플 중절모는 카오리(Kaori), 스카이블루 넥타이는 에르메스(Hermes), 볼드한 은반지는 모두 엑스힙합(www.xhiphop.co.kr), 레드 컬러가 포인트로 들어간 셔츠와 핑크 재킷은 모두 다반(Durban).

볼드한 디자인의 반지는 모두 엑스힙합, 블랙 베레모는 에르메스(Hermes), 얇은 가죽 서스펜더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블랙 슬리브리스 티셔츠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팬츠는 다반(Durban).

악어가죽 소재의 중절모는 카오리(Kaori), 말 머리 장식의 가죽 벨트와 투톤 슈즈는 모두 구찌(Gucci), 서스펜더는 장광효 카루소(Caruso), 주름 장식의 블랙 셔츠와 진은 모두 다반(Durban).

그레이 모직 중절모는 에르메스(Hermes), 블랙 앤 화이트 타이는 엘록(Eloq), 도트 문양의 행커치프는 드레스투킬(Dressed to Kill), 스트라이프 셔츠와 블랙 재킷은 모두 다반(Durban).

이정재의 화이트 니트 넥타이는 에르메스(Hermes), 행커치프는 드레스투킬(Dressed to KIll), 정우성의 도팅 넥타이는 엘록(Elog), 블랙 행커치프와 블랙 슈즈는 구찌(Gucci), 두 사람의 블랙 수트는 모두 다반(Dur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