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

치열한 뷰티 마켓에서 오랫동안 왕좌를 지켜온 브랜드 대표 아이콘들이 대대적인 리뉴얼로 새롭게 돌아왔다. 단점을 보완하려는 의도가 아닌, 스스로를 뛰어넘으려는 스타들의 흥미진진한 재등장.

(위부터)미키모토 코스메틱 ‘라페리나’,맥 ‘스튜디오 픽스 플루이드SPF15 파운데이션’,슈에무라 ‘녹차모링가 클렌징 오일’, 랑콤‘어드밴스드 제니피끄’, 크리니크 '드라마티컬리디퍼런트 모이스춰라이닝 로션+’, 에스티 로더‘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리커버리 콤플렉스 II’, 아벤느 ‘클리낭스 젤’,디올 ‘캡춰토탈 오뜨 누트리션 너쳐링 오일-세럼’.

‘구관이 명관’이란 말은 진리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더더욱. 시시각각 쏟아져 나왔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냉혹하고 치열한 뷰티 마켓에서 ‘신상’이란 매혹적인 딱지를 뗀 후에도 도도하게 왕좌를 지켜온 베스트셀러들이 대대적인 리뉴얼로 새롭게 돌아왔으니 말이다. 브랜드 DNA를 대표하는 스타 아이템들의 리뉴얼은 꽤 군침 도는 정보인 건 확실하다. 언제나 ‘신상’이 매혹적이긴 하지만, 특히 스킨케어의 경우 눈으로만 봐서는 제품의 가치를 알 수 없는 법. 출시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최고의 사랑을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안전성과 효과 면에서 소비자들의 깐깐한 검증을 통과한 아이템이라 믿을 수 있고, 여기에 그간 발전한 최신 기술과 성분들을 플러스해 지금 당장 여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텍스처와 포뮬러까지 갖췄으니 그야말로 일타삼피! 거부할 수 없는 ‘완소’ 아이템인 셈이다.

“크리니크 ‘노란 로션(드라마티컬리 디퍼런트 모이스춰라이징 로션+)’의 리뉴얼은 미국언론들이 대서특필할 정도로 이슈가 됐죠. 명실공히 보습 로션 1위로 너무 잘 팔리고 있는 이 제품을 굳이 리뉴얼한 데는 그만큼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소리죠.” 45년 동안 이 제품을 리노베이션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피부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란 로션의 보습 성분을 대체할 성분이 아직까진 없다’는 것이 노만 오렌트리히 박사(크리니크 창립자 중 한 명)의 논리였죠.” 크리니크 이성주 부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간 피부가 견뎌야 하는 환경이 열악해졌고, 보습 성분을 업그레이드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더 강화된 노란 로션이 탄생하게 된 거죠.” 결과는 놀라웠다. 실크처럼 부드럽고 가벼운 텍스처가 미끄러지듯 발리며 하루 종일 촉촉했다. 20여 년 열심히 사용했던 노란 로션을 지금도 찬양하는 이들이 줄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32년 만에 변신하는 에스티 로더 ‘갈색병(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 II)’의 리뉴얼도 화제다. 에스티 로더는 케이스 윌슨 대학과 함께 ‘수면과 피부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했다. 30~49세 여성 60명 중 반은 5시간 이하, 반은 6시간 이상 수면을 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피부 수분 장벽 기능의 손상도가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잠을 덜 잔 쪽은 내적노화 징후(피부톤, 잔주름, 탄력 또한 100% 차이가 났다)가 증가하고, 스트레스 대응력이 떨어지며, 스스로 자신의 외모를 낮게 평가했다. 그만큼 밤 사이 피부 재생이 중요하다는 말씀. 이유는 우리 몸의 유전자 중 10%가 낮과 밤의 활동을 달리할 만큼 시간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고작 10% 아니냐고? 천만에! 인간의 피부색이 달라 보이는 이유가 0.1%의 유전자 차이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임을 알 수 있다. 즉, 밤 시간은 필요 없는 노폐물을 내보내고 손상된 피부를 복구시키는 최적의 시간대이며, 이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카타볼라시스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새로운 갈색병의 기술력. 다음날 아침, 피부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브랜드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다.

미키모토 코스메틱의 역사를 함께 써온 ‘라페리나’도 28년 만에 흑진주 콘키올린과 AS 콤플렉스로 더 강력해졌다. AS 콤플렉스를 도포한 방울 토마토와 아무 처치도 하지 않은 방울 토마토를 1주일간 방치했는데, 전자는 방금 딴 토마토처럼 탱글탱글한 반면, 후자는 쪼글쪼글한 드라이 토마토가 됐다. 보습은 물론 항산화, 항탄력, 항처짐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제품이다. ‘7일간의 기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랑콤의 ‘어드밴스드 제니피끄’도 14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10개의 특허기술을 내세우며 리뉴얼됐다. 랑콤 홍보팀 남경희 차장은 “똑같은 성분으로 만들었다는 카피캣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은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허 때문이죠. 카피캣들은 대신 유사 성분들을 넣거나, 설령 같은 성분이라도 이들을 어떻게 섞어서 안정화시키는지까지는 베낄 수 없습니다.” 피부에 닿는 순간 촉촉하게 흡수되고, 피부에 실크처럼 부드러운 촉감을 남기며, 바를수록 탄력이 더해지는 젊음 활성 성분은 랑콤에서만 만들 수 있다는 것.

또 아모레퍼시픽의 ‘ABC 세럼’은 피부 활성 능력을 강화하는 그린 미라클T 성분을 더하면서 결과가 다른 안티에이징’이란 극찬을 듣고 있으며, 디올의 ‘캡춰토탈 오뜨 누트리션 너쳐링 오일-세럼’은 세 가지 식물성 오일을 강화해 건성피부를 위한 최고의 페이스 오일로 재탄생했다. 또 슈에무라의 ‘녹차모링가 클렌징 오일’은 환경오염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성분을 강화했으며, 아벤느의 ‘클리낭스 젤’은 피지조절과 트러블균 확장을 억제하는 글리세릴 라우레이트 포뮬러, 맥의 ‘스튜디오 픽스 플루이드 파운데이션’은 피부를 한층 화사해보이게 하는 구형의 실리카와 해조류 성분을 추가해 리뉴얼됐다.

물론 지금의 리뉴얼 붐은 R&D 포화 상태, 불경기 등을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마케팅 전략일 수 있다. 누구나 리뉴얼 소식을 처음 접하면 ‘옛날 제품을 다시 팔아보려는 속셈’ 정도로 시큰둥하게 반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실제 사용해보니 이름뿐인 업그레이드가 아니었다. “많은 제품들이 리뉴얼을 하지만 브랜드를 대표하는 스타 아이템들이기에 더 철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1위를 추격하기 위해 단점을 보완하는 리뉴얼이 아니라, 이미 1위인 스스로를 뛰어넘는 업그레이드여야 하기 때문이죠.” 즉, 브랜드 최상의 기술력과 자원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 자칫 잘못하면 제품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만 집착하는 요즘, 베스트셀러들의 리뉴얼은 오히려 신선하다.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란 말도 있지 않나. 오래된 것은 더 이상 진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