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구호는 대기업 소속 디자이너 브랜드의 첫 사이렌이 됐다. 이를 자축하기 위해 장미희, 최지우, 차예련이 뮤즈로 나섰고, 디자이너는 세 여배우를 위해 세 벌의 미니멀한 꾸뛰르 드레스를 만들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정구호는 20년 전처럼 젊고 날씬하다. 바꿔 말하자면, 한때 풍채가 넉넉한 시절도 있었다는 얘기다. 워낙 음식을 좋아해(그의 미각은 ‘조선 팔도’가 알아줄 만큼 국가대표급으로 ‘남자 장금이’쯤 된다) 미식과 대식 사이를 오간 게 이유 아닌 이유다. 그러나 정구호는 최근 몇 년간 가열찬 자기 관리에 돌입했다. 뉴욕과 파리에 ‘헥사 바이 구호’를 발표하며 ‘디자이너 자신’의 마케팅에도 집중한 것. 사실 요즘 패션계는 옷이나 가방은 물론, 디자이너 인물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다. 그는 마르탱 마르지엘라처럼 얼굴 없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젊고 기발하며 에너지 넘치는 것을 갈구하는 국제적 패션 기준에 맞춰, 외모에 신경 쓰고 몸에 긴장감을 더했을 뿐이다. 덕분에 90년대 중반 패션계 데뷔 후, 어느 때보다 스마트해 보인다.

이번에 정구호가 공들여 디자인한 드레스 세 벌에는 그의 외모 변화가 알게 모르게 작용한 듯하다. 장미희, 최지우, 차예련은 정구호가 자기 이름을 따 만든 브랜드 ‘구호’와 대한민국 일류 패션 기업 ‘제일모직’과의 동맹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직접 지명한 구호 뮤즈들이다. 그들을 위한 드레스 스케치를 미리 보니, 분명 구호는 구호인데 구호가 아니었다. “구호가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인어공주 실루엣에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치 원단을 적극 사용했어요.” 헐렁하고 펑크적인 검정 티셔츠에 검정 슬라우치 반바지를 입은 정구호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철저히 여배우의 개성에 맞추고 싶었죠.” 강조된 허리선, 적절한 노출, 길고 가느다랗게 떨어지는 선은 누가 봐도 지금까지의 구호 컨셉에 위배된다. “구호답지만, 구호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드레스, 그리고 당연히 여배우가 아름다워 보여야 하는 게 이번 드레스의 목적입니다.”

20여 년 전, 젊고 날씬한 청년 정구호를 또렷이 기억하는 장미희에게 이 옷은 또 한번의 만족스러운 패션 도전이었다. “드레스를 처음 본 순간 딱 맘에 들었어요!” JTBC 주말 드라마 <맏이> 촬영으로 지방에 머무는 장미희가 <보그>와의 전화 통화에서 드레스에 대한 감흥을 털어놓았다. “라펠이 아주 잘생겼잖아요? 마르탱 마르지엘라 초기작의 감흥이 되살아나더군요. 아주 잘생긴 드레스예요. 저는 패션에 대해 선입견이 없습니다.” 그녀는 드라마 촬영 중 잠깐 시간을 내 논현동 스튜디오에 들른 순간을 떠올렸다. 허리가 쏙 들어간 리틀 블랙 재킷에 검정 바지, 여기에 검정 플랫폼 뮬을 신은 여배우가 스튜디오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서 있던 디자이너와 깊은 포옹을 나눴다. 두 사람은 주위에 오랜 우정을 과시했다. 거기에 “우린 서로 최고의 디자이너와 최고의 여배우를 잘 안다고요”라는 투의 의도적이고 과시적인 허세 따윈 없었다. 어제 저녁 식사도 함께 했다는 식의 다정한 분위기가 감돌았을 뿐.

그들은 90년대 초, 장미희가 <황진이>의 뉴욕 영화제 출품을 기념해 뉴욕에 갔을 때 처음 만났다. 물론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정구호였다. “아시안 뷰티 자격으로 뉴욕 영화제에 나갔는데, 날씬하고 잘생긴 한국 청년을 식당에서 만났어요. 바로 정구호였죠.” 몇 년 후, 두 사람은 서울에서 재회했고, 장미희의 몇몇 TV 드라마 작업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오늘, 정구호는 장미희를 위해 풍뎅이 날개처럼 타원형 케이프가 달리고 허벅지까지 앞이 트인 짙은 남색 드레스를 헌정했다. 그녀의 긴 단발머리를 케이프와 어울리도록 부풀리자 <깊고 푸른 밤>의 제인이 30년 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마리아 칼라스였고 피나 바우슈였다. 불꽃이 타오르는 긴 촛대처럼 그녀의 얼굴과 손가락에서는 다른 여배우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힘이 발산됐다. “지금껏 수많은 여배우를 촬영했지만, 렌즈로 들여다보니 장미희에겐 누구에게도 없는 힘이 느껴졌어요.” 촬영 후 사진가 김영준이 약간 넋이 나간 투로 감탄했다. “장미희는 한국 여배우의 ‘레전드’입니다”라고 정구호가 거들었다. “그녀만큼 패션을 잘 이해하고 패션을 아는 여배우도 드물 겁니다. 저와의 오랜 인연으로 구호 패션쇼에는 한번도 결석하지 않고 프런트 로에 참석하는, 그야말로 구호 로열티가 강한 배우입니다.”

반면에 최지우는 갸름한 얼굴에 가느다랗고 긴 팔다리를 이용해 김영준의 카메라 앞에서 두루미나 사군자의 난처럼 우아하게 춤추듯 움직였다. “잠깐 메이크업 좀 고치고 가실게요~”란 요즘 유행어를 패러디한 듯한 휴식 중에는 헬로 키티 거울을 들여다보며 메이크업을 점검할 만큼 소탈했다. 서울 아가씨 특유의 새침한 분위기, 현실과 동떨어진 톱스타만의 우쭐한 태도는 없었다. “15년 전쯤,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구호를 처음 만났어요.” 최지우가 메이크업 룸에 앉아 머리 모양을 손질하며 추억했다. “5년 전, 뉴욕에서 열린 헥사 바이 구호 패션쇼에 귀빈으로 초대해 그의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죠. 튜브톱 드레스였어요!” 얼마 전, 두 사람은 어느 케이블 채널에서 음식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한 적 있다.

여배우들 선호 0순위 사진가 김영준이 다시 카메라를 들자 그녀는 활처럼 몸을 휘며 특유의 길고 가는 실루엣으로 구호 드레스에 조형미를 더했다. 사진가의 렌즈와 <보그> 팀의 시선이 그렇듯, 정구호는 최지우의 다양한 매력을 언급했다. “멜로 드라마에서는 부드럽고 여린 이미지이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한국 여배우 중 최고의 신체 조건과 디자이너가 사랑할 만한 이미지를 지닌 여배우라며 디자이너는 찬사를 날렸다. 최지우 역시 자신의 신체 조건과 태도가 패션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지 충분히 터득한 것 같다. “제 몸매를 살릴 수 있는 옷, 제 장점인 큰 키와 긴 팔다리를 패션에 잘 활용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스키니 팬츠가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로 그녀를 꼽아도 코웃음 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제 드레스룸엔 구호의 미니멀한 블랙 코트가 있어요. 블랙 팬츠, 블랙 셔츠와 함께 올 블랙으로 입고 싶을 때 꼭 손이 가는 옷이죠.” 하지만 SBS 월화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서 아쉽게도 최지우 백, 최지우 코트 등은 기대할 수 없다(그건 장미희도 마찬가지다). “계속 앞치마를 두르고 나오거든요. 하하!” 하지만 구호의 다음 컬렉션에 앞치마가 근사하게 변형돼 나올지 누가 알겠나.

거의 검정에 가까운 짙은 남색, 90도 직각으로 꺾이는 흰색 목선, 언뜻 홀터 효과를 주는 민소매 드레스, 인어공주 실루엣…. 윗머리를 잔뜩 부풀려 미니멀한 드레스에 드라마를 곁들인 배우 차예련이 동그란 단상 위에 오를 차례다. 어젯밤 늦게까지 정재영, 한지민 등과 함께 영화 <플랜맨>을 촬영한 탓에 그녀의 얼굴은 창백한 우윳빛을 띠었지만, 짙은 남색 덕분에 더 차갑고 이지적으로 보였다. 발아래 나뒹구는 흰색 마네킹들은 젊고 싱그러운 이 패션 여신을 경배하다 목숨을 다한 듯했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단순한 디자인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녀의 몸에 맞게 정교하게 ‘조각’된 드레스였다. 특히 등은 면도칼로 휙 그은 듯 날렵하게 트여 있었고, 옷감 조각으로 퍼즐을 맞추듯 이어 붙여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게다가 도톰한 스트레치 소재 덕분에 키가 172cm쯤 되는 그녀를 슈퍼모델급 몸매로 완성시켰다.

어느 때보다 활기 넘치는 정구호가 베키아누보에서 특별 주문한 ‘Kuho’ 로고와 ‘10th’ 장식의 초콜릿 케이크를 차예련에게 건네자 그녀의 얼굴에서 ‘피로 물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차예련과 정구호의 인연은 9년 전부터다. “모델로 갓 데뷔한 저는 신라호텔에서 열린 구호 패션쇼에 서고 싶었죠.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프런트 로에서 쇼를 관람했어요. 물론 구호의 회색 원피스를 입은 채 말이죠.” 정구호 역시 차예련의 하트형 얼굴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캣워크 모델보다, 레드 카펫에 서는 구호 뮤즈로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이 시작한 인연은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출연을 위해 차예련이 정구호가 디자인한 옷을 입는 것으로 첫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여배우에게 드레스는 ‘배우’임을 드러낼 또 하나의 수단입니다.” 정구호는 제일모직 입성(혹은 동맹) 10년을 기념, 세 여배우에게 자신의 디자인 이력 가운데 처음 손대는 꾸뛰르 드레스를 선물했다. “그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에서 벗어나 도회적이고 세련되며, 한국 정서에 맞는 아방가르드를 제안한 디자이너예요”라고 장미희가 패션 전문가 못지않은 품평을 들려준다. “그는 제게 늘 조력자였고 협력자였어요.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그와 얘기를 나누고 조언을 얻었죠. 게다가 새로운 경향에 대해서도 대화할 수 있는 파트너죠.”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이미 꿰뚫은 채 늘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그녀는 다시 덧붙인다. “통속적인 작업이든 레드 카펫을 위해서든 그가 제안하는 수준이 늘 만족스러웠어요.” 최지우는 정구호의 디자인 중 ‘절제’를 가장 큰 미덕으로 꼽았다. 차예련 역시 그 점에 동의하는 눈치다. “정구호의 옷이나 드레스는 배우가 돋보이도록 배려해줍니다. 옷 자체에 디자인이 많거나 화려한 장식이 적어 여배우의 얼굴을 존중하는 기분이 들죠.”



장미희, 최지우와의 촬영을 마친 뒤(“내가 언제 이 두 여배우와 함께 촬영할 수 있겠어”라며 그는 촬영하는 내내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정구호는 제일모직에서의 지난 10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헥사 바이 구호의 뉴욕과 파리 컬렉션 데뷔, 구호 팝업 스토어, 고객과 보다 밀접하게 만난 쇼들, ‘단’과 ‘포이즈’ 등의 무용 공연, 다양한 협업 등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군요.” 특히 헥사 바이 구호를 언급하며 그 대목에서 힘을 더할 땐 아트 디렉터가 아닌 뼛속 깊이 패션 디자이너였다. “세 차례의 구호플러스 팝업, 뉴욕 FIT 아카이브와 함께한 서울 로뎅 갤러리(현 플라토) 전시는 물론, 시각 장애 어린이의 개안수술을 위해 올해로 10회째 맞는 하트포아이 캠페인까지.” 하트포아이 캠페인의 경우 유명 인사들과 함께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물론 대기업 소속 디자이너로 창의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좀더 민감해진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 디자이너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디자이너라면 창의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누구나 갈등을 겪습니다. 소수의 고객과 만나느냐, 폭넓은 고객과 대화하느냐, 선택해야 하죠.”

90년대 말, 서울 영동고등학교 후문에 낸 소규모 구호 부티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모델들이 마네킹 사이를 돌며 직접 스타일링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이태원 로툰다에서의 첫 패션쇼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절 첫 달 매출은 1,200만원쯤. 하지만 10년 전, 경제신문 기사에 따르면 25억원에 제일모직이 인수한 브랜드 구호의 매출액은 작년 기준 1,000억원쯤 된다. 그런 비약적인 성장은 대기업 후광 없인 불가능하다고 정구호도 인정했다. 작년 초, 대기업과 독립 디자이너 간의 인수합병을 다룬 <보그> 기사에서 정구호는 제일모직과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다. “2003년, 쌈지에서 일할 때 제일모직에서 연락이 왔다. 몇 차례 미팅 후 긍정적으로 맘먹을 무렵, 하루 이틀 차이로 구호를 운영하던 F&F에서 또 연락이 왔다. 브랜드를 팔고 싶다고.” 그는 제일모직에서 10번의 정기 패션쇼를 열었다. 헥사 바이 구호는 다가올 파리 컬렉션을 포함해 8번째다. 현재 한국에 54개 구호 매장을 운영 중이고(자신의 오랜 예술적 감식안을 바탕으로 2011년 리뉴얼이 아닌 업그레이드 차원으로 매장 인테리어를 혁신했다), 디자이너 27명이 구호 성전에서 그를 보좌한다. 아울러 그가 관리하는 르베이지, 에피타프, 메종 르베이지까지 포함한다면 패션 엘리트 70여 명이 구호 생태계 안에서 조용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모던&아방가르드 컨셉의 그녀들은 언제 어디서든 한눈에 구호 디자이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1997년 겨울, 한국의 패션지와 일간지는 젊은 디자이너 정구호를 소개하느라 바빴다. 출판사 아트 디렉터, 한식 요리사, 카페 운영 등의 독특한 ‘과거사’ 때문이다. 그의 이력은 독립 디자이너와 2003년부터 시작된 제일모직과의 10년으로 나뉘게 됐다(대기업 소속 첫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보급 디자이너인 셈). “앞으로 좀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겁니다.” 그가 훌훌 털어내듯 개운한 말투로 현대무용에 관해 쉬지 않고 설명을 이었다. “현대무용 ‘단’은 해외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2015년까지 또 다른 현대무용 프로젝트들이 제 머릿속에 꽉 차 있습니다. 그걸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어요!” 그는 새 일을 앞두고 늘 그렇듯 슬그머니 엄살을 떨었지만, 배짱과 자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다. 그건 그의 말쑥한 외모에 아주 잘 어울렸다. “작업을 규정짓거나 제한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색다른 협업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고 싶습니다.” 지금 여배우 3인이 정구호의 제2 라운드 10년을 정의했다면, 어느 매혹의 무용수들이 제3 라운드를 정의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