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를 두른 여인

어깨나 목에 두르던 꽃무늬 실크 스카프는 이제 그만! 패션 좀 안다고 자부한다면,
올 가을 가장 동시대적 액세서리가 된 스카프 스타일링 방법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스카프는 네 정신 상태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과 같아. 눈은 훨씬 커 보이고, 헤어스타일도 더 세련돼 보일 테지. 어떤 차림에도 잘 어울릴걸? 이 스카프를 두르고 면접을 보면 면접관은 네가 자신감 있고 침착하다고 느낄 거야.” 영화 <쇼퍼홀릭의 고백>에서 레베카는 헨리 벤델 백화점에서 발견한 에메랄드 그린색 실크 플리츠 스카프에 홀딱 반하고 만다. 과연 작은 천 조각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게 가능할까 싶다.

하지만 주요 디자이너들이 스카프가 얼마나 패셔너블한 아이템인지를 증명하고 있는 이번 시즌 만큼은 스카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보이스카우트를 연상시키는 지방시의 네커치프,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아로아처럼 전원풍으로 어깨에 두른 샤넬의 스카프, 피나 바우시를 닮은 모델들의 목에서 이사도라 던컨의 비극적 스카프처럼 휘날리던 프라다의 스키니 스카프까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스카프에 대한 인상은 그리 패셔너블하지 않다. 스카프라고 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엄마 세대들이 곱게 화장한 얼굴 아래 두르는 요란한 꽃무늬 패브릭 조각에 불과하니까. 물론 해골무늬 맥퀸 스카프나 지드래곤 스타일(정확히 말하자면, 2007년 가을 시즌 발렌시아가 스타일)로 프린지 달린 스카프를 턱받이처럼 두르는 게 젊은이들 사이에 한때 유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 무늬’의 스카프를 ‘그 방식’으로 두르는 것이 잠시 유행했을 뿐. 스카프가 온전히 스카프 자체로 힘을 발휘할 때는 없었다. 그리고 스카프를 패션 아이템으로 완벽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화이트 셔츠나 바이커 재킷, 스틸레토힐처럼 옷장에 꼭 갖춰야 할 클래식 아이템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테일러드 재킷과 함께 스카프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케이트 모스처럼요. 저녁 외출할 때 캐주얼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듯 보이고 싶다면 길고 고급스러운 스카프를 목에 두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수잔 스텐든은 키스 리처드나 페이 더너웨이 같은 60~70년대 뮤지션과 배우들이 격식 있게 차려입을 때 스카프를 애용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남편인 ‘스타일닷컴’ 편집장 더크 스텐든에게 직접 스카프를 만들어 주면서 ‘Standen Scarves’란 브랜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성 컬렉션만 선보였지만, 그 남성용 스카프를 착용한 여자들을본 후 2013년부터 여성용 컬렉션도 진행하고 있다. 바니스와 꼴레뜨에서 판매 중인 남성용과 여성용 스카프 모두 단색이거나 무늬가 클래식하고 점잖은 편이다. “여성 컬렉션의 첫 룩북 모델도 옛날 배우 같은 이미지의 카미유 로위를 선택했어요. 완벽한 여성보다 그냥 쿨한 여자처럼 보이는 게 중요했거든요.”

스카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레이스 켈리와 오드리 헵번이 빠지지 않지만, 그들이 즐겼던 헤드스카프(머리에 스카프를 두르는 것)는 스트리트 사진에 찍히고 싶어 안달 났을 때 시도해볼 만한 방법.

오늘날 ‘진짜 쿨한 여자’가 스카프를 매는 방법은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에 살짝 등장한다(<블레이드 러너> <파이트 클럽> <플래시댄스>의 영화 의상 디자이너 마이클 케플란의 솜씨). 임무 수행을 위해 검정 트렌치코트를 걸친 안젤리나 졸리가 옷장 안에서 인디언 핑크색 실크 스카프를 꺼내 목에 대충 묶은 뒤 매듭 부분을 살짝 옆으로 돌리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스튜어디스의 스카프처럼)? 거울에 비춰보지도 않고 걸어나가며 묶는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다.





그렇다면 요즘 멋쟁이들은 어떤 식으로 스카프를 두를까? ‘맨 레펠러’로 유명한 블로거 린드라 메딘은 초커처럼 목에 쁘띠 스카프를 바짝 두르는 방식을 즐긴다. 티셔츠를 입을 때든 수트를 입을 때든 항상 스카프를 두르는 친구를 보고 따라 하게 됐다는데, 그 친구에게 스카프는 목걸이 대신이었던 것. 스카프를 ‘소프트 주얼리’라고 부르는 메딘은 지난 봄 시즌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처럼 머리카락을 스카프 안쪽으로 넣어 목과 함께 감는 방법을 즐긴다. 그리고 길이가 다른 목걸이도 함께 레이어링한다.

한편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의 수석 디자이너 아이 비어는 ‘보그닷컴’에 ‘파리지엔느’처럼 스카프 연출법을 공개했다. “하프 JAL이라 불러요. 재팬 에어라인의 승무원들이 스카프 묶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거든요.” 대각선으로 반을 접어 삼각형 꼭지가 아래로 내려오도록 복면처럼 얼굴에 두르는 식. 양 끝은 머리 뒤쪽에서 엇갈려 앞으로 돌린 뒤 매듭을 묶으면 끝. 턱끝부터 가려져 추운 날씨에도 유용하다.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러운 걸 원한다면 남자들이 어떻게 스카프를 두르는지 참고하면 된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방식이지만 어떤 옷에 연출을 하느냐가 관건. 터틀넥처럼 목에 둘둘 감는 ‘랩어라운드’는 아우터가 필요 없는 초가을쯤 스웨터나 버튼다운 셔츠에 어울린다. 느슨하게 한 번 매듭을 짓거나 목에 한 바퀴 돌려 늘어뜨리는 ‘루즈 타이’는 재킷이나 블레이저를 입을 때 연출하면 좋다. 이때는 커다란 정사각형 스카프보다 폭이 좁고 긴 걸 선택하는 게 적절하다.

첫 번째는 스카프가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것. 스카프는 단순할수록 어떤 옷에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두 번째는 스카프로 뭔가를 연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릴 것. 눈에 띄도록 커다란 리본을 만들거나, 머리에 두르는 등 전체적인 룩에서 스카프가 눈에 확 띄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이번 시즌의 스카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룩을 돋보이게 만들 뿐. 그게 쿨한 스카프 스타일링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