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젊은이들의 캔들 이야기

향초 은혜일까, 향초 공해일까?
패션, 뷰티, 리빙이 혼합돼 하나를 추출한다면 그 결정체는 캔들이다.
감각적 취향과 기발한 발상으로 중무장한 젊은이들이 서울 곳곳에서 펼치는 패션 촛불 시위!

2011년 서울에 론칭한 ‘메종 데 부지’는 작년 가을 한남동 골목에 캔들 부티크를 냈다. 오픈 날, ‘향과 식물과 스타일의 나날’로 묘사해도 될 만큼 날고 기는 멋쟁이들이 샴페인 잔을 손가락 사이에 낀 채 스타일화처럼 날렵하게 향과 식물 사이를 오갔다. 그 ‘씬’은 바야흐로 서울에 패션 캔들 시대가 도래했다는 직접적 신호였다. 지금까지 멋쟁이들이 머문 곳엔 늘 최신 음악과 샴페인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들이 세례 받듯 전신에 뿌린 향수 냄새가 후끈한 땀, 담배, 알코올 냄새와 혼합돼 시간이 갈수록 골치 아픈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향초는 심지에 불꽃이 닿자마자 패션 풍경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불태우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그들은 해외 출장이나 여행에서 딥티크, 조말론 등을 몇 개씩 사와 방이나 사무실에 놓는 행위를 감각적 제스처로 여겼어요.” 서울 패션계에서 오래 일하며 수많은 향초를 선물하고 선물받아온 스타일리스트 김봉법은 이렇게 전한다. “그 공간에 초대된 사람들은 불꽃이 타들어 가는 관능적 모습은 물론, 독특한 향과 외모에 홀딱 반했죠.” 태우고 향을 음미하는 그 부류를 ‘딥티크 세대’로 불러도 좋겠다. 그런 체험 이후, 딥티크 세대는 향초를 좀더 능동적으로 대했다. “취미 삼아 방산시장에서 건진 향초 도구들로 향을 적절히 배합해 왁스에 넣어 녹인 뒤 컵에 따라 붓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 뒤 나만의 스티커를 붙여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일종의 DIY 향초 만들기에 맛들였다(한쪽 뇌로는 딥티크나 조말론에 붙은 가격을 떠올렸다). 소꿉놀이하듯 만든 향초에 주위 반응이 호의적이자 딥티크 세대는 비로소 작정하고 일을 저질렀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대기업이 향초에 손댔다. 이니스프리와 협업한 향초 브랜드 ‘수향(Soohyang)’이다. 인디음악 전문 음반사에서 10년을 보낸 김수향은 2013년 3월에 첫 매장을 냈다. 빼어날 ‘秀’에 향기 ‘香’이라는 운명적 작명 덕분인지, 2명이었던 직원은 현재 10명, 아르바이트 인원까지 합치면 20여 명이 일하는 거대 브랜드로 점프했다. 규모 있는 향초 브랜드의 안주인답게 그녀의 목적 역시 판이 커졌다. 개별 향이 아닌 공간 향을 제안하기로 한 것. “누구든 자기 공간이 있습니다. 집이든 회사든, 언제 어디서든, 산다는 것 자체가 머문다는 의미죠. 그곳에 적절한 향초를 피워 특정 향으로 채우고 싶어요.” 33가지 향을 계절과 이슈로 나눠 강남과 강북 매장에 전개 중인 그녀는 해외 독립 매장까지 물색 중이다. 





‘수향’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번미아웃(Burn Me Out)’에는 서울의 지역적 특색까지 응고돼 있다. 36년 전 홍대 쪽에서 태어나 향초 브랜드까지 론칭한 이보라의 대표작은? ‘스컬 캔들’로 히트 친 해골 모양 향초. 언더그라운드적 성향 덕분인지 고객 60% 이상이 젊은 남자다. “남자 방 특유의 냄새나 담배 냄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해골 향초는 물론 ‘아폴리스’를 닮은 향초는 남자 방에 딱이다. 현실적 활용 외에 그녀는 한번쯤 ‘캔들 씬’을 떠올려보길 권한다. “성냥에 불을 붙여 심지에 불꽃을 점화시키는 과정! LP 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바늘을 얹는 것처럼, 고단한 일상 가운데 내 취향이 존중받는 기분이 들 겁니다.” 아울러 초는 향이 아닌 불꽃이 주인공이라고 덧붙인다. “조도, 조명의 관점에서 향초를 켜면 불꽃에 몰입될 때가 있어요. 초현실적 순간처럼 여겨지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북받치는 순간이 와요. 그래서 촛불 시위, 촛불 기도를 하나 봐요. 하하!” 그녀는 자신의 향초가 팔리는 ‘29cm’ 같은 유명 온라인 편집매장 향초 카테고리에 매주 새 브랜드가 하나 이상 업데이트된다고 전한다(그만큼 종적을 감추는 것도 허다하다). “시작이 쉬운 게 향초입니다”라고 해골의 여주인은 솔직히 털어놓는다. “재료 시장에 가면 혼자 뚝딱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다 있어요. 시그니처는 신인 패션 디자이너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에요. 곧 포화에 이를 서울 패션 캔들 시장에서도 절실할 겁니다. 물론 천천히!”





우후죽순 피고 지는 패션 캔들 론칭 현상을 보며 메이크업 아티스트 오미영 역시 ‘천천히’를 강조한다. “딥티크, 씨흐 트루동, 쿨티 등을 쓰면서 서울산 향초도 더 좋은 원료로 다채롭게 만들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품질 차이를 알게 된 그녀는 직접 향초를 만들었다. 내친김에 ‘너의’ ‘당신의’라는 프랑스어 ‘보트르(Votre)’ 라벨을 단 것이 브랜드의 시작. 4년째 향초 브랜드를 운영하며 느낀 건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빠르다는 사실이다. “향의 사이클은 빠르게 순환되지 않아요.” 옷과 달리 시즌 상품의 특성이 강하다는 얘기. “쉽게 론칭해 빨리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은 위험해요. 생업으로 여긴다면 10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향초 사업가들은 성급해요. 캔들 시장이 내 속도를 따라오지 않는데도.” 





그러나 한 가지 방식만 적용되지 않을 만큼 패션 캔들 신드롬은 실로 ‘버라이어티’하다. 서울 곳곳에서 온갖 불꽃이 타고 있으니까. 경리단 골목의 ‘베러댄알콜(Better Than Alcohol)’은 곧 1주년을 맞는다. “약간의 위트와 콧방귀, 외국인이나 한국인이 건방지다는 느낌을 받을 만한 이름을 찾던 중 떠올랐어요.” 4년 넘게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로 일한 이원희가시큰둥한 듯 무례하지 않은 요즘 세대 특유의 태도로 설명한다. 거기서 일하며 동시대 감각에 빠삭해진 30대 초반의 아가씨답게 캔들 바에 진열된 향초 스토리텔링은 최신 로코 영화의 한 토막을 연상시킨다. “특정 주제로 한 달에 한 번 새 향초를 제안하면 고객들이 한 달 뒤 다시 찾아와 다음 이야기를 향초로 표현해달라고 하죠.” 멋쟁이 향초 이야기꾼은 느닷없이 늘어난 향초 경쟁자들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수요가 있을 때 들어가길 잘한 것 같아요.” 이런 기질은 자신을 정의할 때도 드러난다. “저는 ‘향부심’ 있는 여자예요. 향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여자!”





이렇듯 요즘 젊은 향초들은 번뜩이는 발상에 디자인 요소는 물론, 사회적 책임까지 생각한다. 꽁티 드 툴레아(Conte de Tulear)’는 론칭 한 달 만에 ‘숫자 캔들’이란 귀여운 별명을 얻었다. “일목요연한 것을 좋아해요”라고 날렵한 눈매를 지닌 26세의 김영완이 전한다. “16가지 향을 기본으로 도표를 그리던 중, 그 자체를 콘텐츠로 쓰면 좋을 것 같았어요. 세가지 향을 섞고 세 가지 숫자를 크게 표기해 그래픽을 강조했죠.” 라프레리, SK-II 등에서 일했던 그는 기억의 향에 이끌려 향초 브랜드를 냈다. “고교 시절 첫사랑은 특정 향보다 그 분위기로 추억돼요. 봄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각적인 젊은이들의 일상에 함께하는 게 향초라고 치면 (2014년 트렌드로 향초 켜는 남자가 포함됐었다), 귀여운 강아지 역시 동행한다. “‘꼬동 드 툴레아’라는 힐링견을 분양받으면서 ‘꽁티드 툴레아’란 이름을 얻었어요. ‘툴레아의 이야기’라는 의미죠.” 반려견 이름에서 비롯된 브랜드답게 수익금 일부는 유기견을 돕는 데 쓰고 있다.





김영완처럼 젊은 남자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향에 입문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조각미남으로 통하며 아이돌 그룹 뺨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50K 육박 직전!) 거느린 박시형은 ‘벤자민22(Benjamin22)’을 론칭했다. “중1 때 엄마의 운‘ 자르뎅 수르닐’이라는 에르메스 향을 맡은 적 있어요. 평생 못 잊을 결정적 순간이었죠!” 그날 이후 니치 향수 수집이 취미가 된 그는 궁극의 소망인 조향사를 위한 워밍업 개념으로 향초 사업에 돌입했다. “영문 이름 ‘벤자민’에 생일 2월 2일을 나란히 배치했어요. 그러곤 22세였던 작년 5월 22일 론칭 파티를 열었죠.” 사소한 향의 기억은 일생일대의 꿈을 소년에게 주입시켰고 향초로 구현됐다. “시그니처 향초 ‘벤자민’과 ‘22’는 어린 시절 다녀온 유럽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옷을 후줄근하게 입어도 향수 하나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그는 아침 향초를 즐긴다. “향초를 켜면 후각을 통해 향이 몸 안으로 유입돼 세포 하나하나가 조용히 깨어나는 듯해요. 음악과 빛을 통해 잠에서 깰 수 있지만, 향초를 통한 후각 자극은 좀더 온화한 편이죠.”





깍듯하고 반듯한 33세 정성호 역시 10대 시절 미국에서 경험한 충격적(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건을 통해 향이라는 신세계를 체험했다. “중학교 때 현지인 친구들이 마늘 냄새가 난다며 놀리더군요. 하루 두세 시간씩 열심히 씻었는데도. 그래서 일주일 넘게 여러 백화점을 뒤져 향수를 골랐어요. 고교 졸업 때까지 그걸 뿌려 결국 친구들은 ‘GIO’ 향수와 제 캐릭터를 동일시하게 됐지만요.” 그 소년은 중국에서 한의학을 전공한 뒤 서울에 돌아와 청담동 거리에서 향초를 구입한 다음 새 인생을 열었다. “한국에서 캔들 신드롬을 일으킨 양키 캔들을 비롯, 멀티숍과 플리마켓 등을 몽땅 뒤져 시장조사를 했습니다. 또 파리에서 한 달 이상 체류하며 해외 캔들도 면밀히 관찰했죠. 그렇게 해서 작년에 선보인 브랜드가 히브리어로 ‘빛’이라는 의미의 ‘오르(Ore)’입니다.”

 

그는 향은 곧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그건 언젠가 획일화되기 마련이죠. 아무리 각별한 향이라도 일반적으로 바뀌니까요.” 그래서 전문 조향사를 따라가지 못할 바엔 인테리어적으로 눈에 띄는 향초를 만들겠다고 작심했다. 그 결과 웨지우드나 조선 청화 못지않은 ‘쿨’한 화이트와 네이비 조합의 도자기로 완성돼 패션&리빙 전문가들의 눈에 쏙 들었다. 그렇다고 향 자체를 방치하는 건 아니다. 도리어 특별한 차이점과 경쟁력을 갖췄다. 한의학도답게 약초나 약재 향에 도가 텄으니까. “쑥 향, 특히 인진 쑥 향의 톱노트와 잔향은 일품입니다. 거기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하거나 히노키 오일 등을 곁들여 시즌 2를 곧 선보일 예정입니다.” 아울러 향과 로고, 패키지까지 죄다 교체할 거라고 신중하게 덧붙인다. “캔들을 통해 풍기는 향은 공간을 장악하는 건 물론 몸 안으로 흡수됩니다. 그래서 공기 정화와 해충 박멸은 물론, 진정한 캔들 테라피를 추구합니다.”





패션, 뷰티, 리빙 등 <보그>에서 다루는 세 가지 영역을 믹서에 넣고 즙을 짠다면 신선도 높은 결과물이 향초다. 예쁘장한 컵 하나에 이런저런 향을 섞은 왁스를 부어 불을 켠 이 물건은 어디에 진열해도 아이콘 역할을 하게 되니까. 그런 관점에서 오미영처럼 패션&뷰티 스페셜리스트들이 자신의 이력과 감식안에서 자신감을 얻어 수월하게 론칭할 수 있는 게 패션 캔들이다. 권혜윤은 곧 남편이 될 장승진과 ‘오센트(Oh, Scent!)’를 운영 중이다. “패션&뷰티 기자로 일할 때부터 향 제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누구나 귀에 쏙 들어오도록 이름을 ‘향 좋네!’라 지었죠.” 명랑순정만화에 나올 만한 이 커플의 사랑스럽고 낙천적 기질은 일명 ‘도트 캔들’에 표현돼 소녀 감성 팬들에게 인기 절정이다. “은밀하게 경험하던 향초를 가볍게 즐기도록 기획 중이에요. 차량용 방향제처럼. 우리 컨셉이 발랄하고 통통 튀고 리드미컬하거든요!”





‘오센트’가 패션과 뷰티와 리빙이 적절히 혼합돼 있다면, 모더니크(Modernique)’는 철저히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한다. 그러나 모더니크 집단의 리더 김종민은 뉴욕에서 패션 사진가였다(몇몇 패션 매거진을 창간했고, 패션 화보 프로덕션도 운영했으며, 서울에서는 샤넬 하이 주얼리나 매그넘 전시까지 기획했다). 이 패션 베테랑은 조만간 한국에 라이프스타일 시대가 오리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공예와 기성품 사이에서의 접점! 레드오션에서 블루오션을 찾고 싶었죠”라고 금속공예를 전공한 뒤 모더니크 집단에 합류한 한현수가 덧붙였다. 28세인 그는 카페 컨설팅은 물론, 요트 디자인까지 아우르다 세인트 마틴 졸업 쇼와 협업으로 아트피스도 제작한 멀티 플레이어. 그들은 향초 비즈니스에 신개념을 제안한다. “우리의 강점은 소재가 남다른 패키지예요. 대신 향 전문가는 아니죠.” 그래서 서울 패션&뷰티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메종 드 파팡’ 조향 전문팀과 의기투합해 향을 제공받기로 했다. “세 가지 향을 왁스에 녹여 백동, 구리, 황동 패키지에 담았죠.” 코팅하지 않은 순 재료, 진짜 구리로 만든 모더니크 캔들 패키지는 외국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2014 메종 오브제에서 톰 딕슨이 잔뜩 사가며 호기심 가득한 투로 조목조목 묻더군요.”





반면 ‘알레지아 멘션(Alesia Mansion)’은 패션 그 자체에 충실한 채 패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파리에서 여성복과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시오&로이스 자매는 오브제, 오즈세컨, 빈치스벤치, 세컨플로어 등에서 15년 넘게 일했다. 그러나 패션 캔들에서는 햇병아리다. 그들은 파리 유학 시절 머물던 14구 동네 이름에 스토리텔링을 첨가해 꾸뛰르 향초를 마련했다. “뉴욕에 사는 어느 여인이 파리에서 3개월 머문 뒤 뉴욕 맨션으로 돌아와요. 하지만 뭔가 허전함을 느낍니다. 유럽식 빈티지에 이미 매료된 거죠.” 바로 그 여성상을 향초로 표현한 것. 노련한 패션 경력자답게 이 자매는 캔들이야말로 패션 아이템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향과 향의 블렌딩이 아닌, 향과 향의 스타일링이라고 표현하는 게 익숙할 정도다. “향초와 디퓨저의 향이 달라도 그게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코디네이션하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

 

덕분에 여성복과 액세서리 전문가다운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이를테면 길게 늘어뜨린 심지에 매단 펜던트를 잘라 따로 목걸이에 걸 수 있는 줄까지 마련해 구색을 맞추는 식. 특히 프랑스식 규방문화를 표현한 패키지는 일품이다. “어릴 때 고모가 곤로 위에 양은냄비를 올려놓고 파라핀과 크레파스를 녹여 알록달록한 향초를 만들어줬어요.” 그 곁에서 크레파스를 자르던 소녀들은 서울에 폼 나는 패션 캔들 컬처를 제안하길 원한다. “와인은 마케팅의 대표적 산물이에요.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코르크를 연 다음 향을 맡고 잔에 따라 조금씩 음미하는 과정이 하나의 ‘씬’처럼 대중에게 판타지를 줬잖아요? 패션 캔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향초에 불을 켜 향을 입는 기분이 들도록 캔들 문화를 제안할 거예요.”

 

서울산 패션 캔들을 여러 각도에서 맡고 보고 촬영하던 <보그> 사진가는 최근 1년간 친구들과 가장 많이 주고받은 선물 1순위가 향초라고 띔한다. “부담 없는데다 폼 나요. 향수는 자신의 취향이나 체취와 밀접하기에 선물로는 까다롭지만 향초는 다르죠. 향이 맘에 안 들면 불꽃을 끈 채 그냥 어딘가에 놓으면 인테리어 소품으로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향이 너무 강하면? 화장실에 두면 되죠.” 그런가 하면 다 쓴 향초 패키지는 연필꽂이나 칫솔꽂이 등으로 활용하면 좋다고 인테리어 애호가 김영완은 리사이클링 노하우까지 들려준다. “다 태우고 밑바닥에 고인 왁스 잔여물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면 깔끔해집니다.” 보시다시피 향초는 서울 패션 풍경의 마스코트다. 서울 패션 수준을 유럽급으로 맞추는 멀티숍 ‘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상재는 ‘쿤 위드 어 뷰’를 열며 향초를 선물로 준비했다. “출근하자마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요. 커피를 내리고 향초를 켜고!” 그는 향초가 공들여 준비한 소품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일상성을 지닌 필수품. 그런 자연스러움을 전하고 싶었어요.” 페인트를 담는 철제 통에 팝아트 디자인으로 감싼 그 향초는 고객 선물로 그만이었다.

 

“현재 ‘쿤’ 전용 향과 그걸 표현할 향초, 디퓨저, 탈취제까지 기획하고 있어요. 꼴레트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반사적으로 그 향이 떠오르는 것처럼. 매장에 음악을 항상 틀어놓듯 향초도 늘 ‘틀어놓으라’고 스태프들에게 전합니다.” 얼마 전, 패션 피라미드 꼭짓점에 기거하는 에르메스가 홈 프래그런스 컬렉션을 선보이겠다고 세상에 알리며 맨 먼저 캔들부터 공개했다. ‘벤자민22’ 박시형을 사로잡았고, 한국 향수 판권을 놓고 대기업끼리 쟁탈전을 일으킨 바로 그 에르메스 향을 담은 향초라니! 이제 캔들은 서울광장뿐 아니라 한반도 곳곳에서 폼 나고 향기로운 시위를 펼치고 있다. ‘메종 데 부지’ 강기태는 2010년대부터 시작된 서울 패션 캔들 1세대다운 소감을 전한다. “론칭 때부터 유럽식 ‘센트 서라운딩’을 도입했습니다. 향으로 공간 분위기를 바꾸는 열풍이었죠.” 그러나 자고 일어나면 못 보던 향초가 하나 둘 불을 켜는 요즘 현상을 두 마음으로 바라보는 중. “규모가 커져 반갑지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간혹 치밀한 준비 없이 출시된 패션 캔들로 인해 한창 아름답게 타오르는 불꽃이 꺼지진 않을까 걱정되니까요.” 패션 캔들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 서울의 캔들 비즈니스 자체를 고려하는 인물이 있다니, 이 얼마나 선구적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