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의 하룻밤

수백 년 켜켜이 쌓인 세월의 맛, 호텔이 주는 편리함, 그 어떤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현재와 같이 살기를 결심한 한옥의 잠자리는 꿀맛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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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옥은 일부러 방문하는 곳이다. 뚜렷한 계획 아래 작정하고 한옥을 경험하러 간다. 따라서 한옥에는 늘 ‘체험’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한옥마을 게스트하우스 숙박 체험을 하고, 고택이나 서원을 탐방한다. 한옥은 가보면 좋다. 멋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한옥이 일상이 되지 못하고 계속 체험해야 할 대상으로 남은 이유는 현재 라이프스타일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문을 연 한옥 숙소들은 한옥을 2015년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풀어낸다. 호텔부터 레지던스, 리조트까지 이름도, 형태도 다양하다.

지난달 문을 연 경원재 앰배서더는 글로벌 호텔 체인이 운영하는 최초의 한옥 호텔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인천 송도에 전통의 미를 품고 자리를 잡았다. 특급 호텔이 주는 웅장함 대신 고즈넉한 평화로움을 택했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주요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진 건물에는 옻칠, 기와 잇기, 문과 틀은 물론 가구까지 명장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닿았다. 경원재는 로열 스위트룸, 디럭스 스위트룸, 디럭스룸까지 총 30 개 객실을 갖췄다. 로열 스위트룸은 독채다. 문패가 달려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겨주는 건 마당이요, 화단은 마치 개인 정원 같다. 객실에 들어서면 창살과 서까래를 재해석한 나무 디테일이 편안한 느낌을 주고, 벽화와 패브릭은 정제된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 가장 매력적인 건 욕조. 왕실에서 반신욕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스위트룸은 사우나 시설도 갖췄다. 보이는 건 여기까지다. 경원재는 하룻밤 묵어보면 더욱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전통 건축 기법을 따랐지만 단열, 차음, 방수 등은 모두 현대 건축 방식을 적용해 일반 호텔에 머무는 것과 똑같이 편안하다. 일전에 한 호텔 담당자에게 왜 호텔 체인에서 한옥 호텔을 짓지 않는지 물어보자 “한옥이 단층 구조라서 수지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숙소 자체의 불편함 때문”이라 답했다. 그러나 경원재는 한옥 호텔의 보편화 가능성을 어느 정도 증명해 보인 듯하다. 객실마다 버틀러를 지정하여 체크아웃하는 순간까지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일반 호텔 서비스 이상이다.

호텔 현대 경포대는 씨마크 호텔로 이름을 바꾸고 한창 재개관을 준비 중이다. 강원도 최초의 6성급 호텔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를 맡았다. 씨마크 호텔은 한옥을 최고급 스위트 객실로 품었다. 한옥동의 이름은 ‘호안재’. 나비가 편안하게 쉬는 곳이라는 의미다. 호텔 본관과 독립된 공간에 안채, 사랑채, 별채 등으로 구성, 한옥 전체의 감성을 담아낼 예정이다. 기존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마당을 중심에 두고 여럿이 어울리는 정겨운 분위기를 만들어갔다면, 씨마크 호텔은 한옥을 방이 아닌 전체로 접근해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완벽한 휴식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새로운 여행 방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하우스 렌트’처럼, 마당도, 방도 모두 머무는 자의 것이다. 7월 오픈 예정인 씨마크 호텔 한옥동 ‘호안재’는 도시 한옥 건축가 황두진이 설계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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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한옥을 신축해 2015년에 딱 맞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전통 리조트 구름에는 운영 방식의 변화를 통해 한옥을 오늘로 불러낸다. 구름에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처지에 놓였던 고택 일곱 채를 옮겨와 만든 전통 리조트다. 취약 계층 고용, 수익은 다시 안동시로 환원한다는 착한 스토리도 가지고 있다. 최소 200년에서 400년까지 역사를 가진 고택은 각각 이야기를 품고 한곳에 모였다. 고택이 원래 기능하던 용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객실이 구분되는 점이 재미있다. 2~3대가 함께 모여 살던 고택은 단체 손님이 머물기 좋고, 제사를 지내던 곳은 대가족이, 학문을 닦는 공간이던 고택은 소규모 가족이 이용하기 좋다. 객실에 들어서면 툇마루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세월을 느끼게 해주지만, 새하얀 타일의 건식 욕실 또한 동시에 존재한다. 구름에 리조트는 한옥이 가진 불편함을 현대식 기술 속에 하나씩 숨겼다. 화장실을 객실 내로 들였고, 조명은 간접조명으로 설치했고, 전자제품은 전통 가구 속에 넣었으며, 유리문으로 방한과 방풍에 대비했다. 도서관과 카페, 레스토랑 등의 편의 시설은 여느 호텔 못지않게 편리하고 도어맨 서비스, 스마트키, 개인별 조식 서비스는 세심하다. 안동시장에서 수십 년 동안 이불만 만들어온 아주머니에게 맞춤 제작했다는 무명 이불은 ‘구름에’ 누운 듯한 밤을 선사한다.

서울 가회동 ‘고이’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한옥일지도 모른다. 23㎡(7평) 남짓한 작은 한옥 고이는 집 전체를 내주는 한옥 레지던스다. 고이의 정진아 대표는 ‘예부터 지금까지 물리적 시간 단절 없이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이어졌다면 오늘날 서울 사람의 생활양식은 어떠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서울 사람의 서울 집’을 완성했다. 정진아 대표는 어릴 적 한옥에 산 적이 있다. 비가 오면 모래가 신발을 더럽혀 짜증 나던 일,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웃풍 때문에 잠을 설치던 일을 모두 기억한다. 모래 대신 조약돌로 마당을 꾸미고, 침대가 아닌 천연 목화솜 이불을 깔아 한옥이 가진 약점을 덮었다. 살아봤기에 누구보다 한옥은 그 자체로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고이는 한옥에 억지로 현대, 전통을 집어넣기보다 비우면서 여백을 남겼다.

[경원재 앰배서더 인천]디럭스 스위트룸 디럭스 더블 경원재 전경

대신 여주 도성도요 백자 반상기 세트, 담양 대나무 젓가락, 국제아피스공업사 볼펜, 도예가 권나리 화병 등 2015년 라이프스타일에 필요한 일상의 물건을 채웠다. 향기를 따로 디자인하기도 했다. 천연 비누, 룸 스프레이 등에 고이만의 향을 담았다. 투숙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제철 과일 한 바구니다. 제철 특산물 소개 프로젝트를 시작, 계절에 따라 전통주, 녹차 등도 선보이고 있다. 고이에는 투숙객 외에 따로 관리인이 머무르지 않는다. 하지만 부족함도 불편함도 없다. 방문을 열고 누우면 바로 하늘이 보인다. 더 바랄 게 없어진다. 고이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쉼표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평창에도, 고성에도 한옥 호텔이 오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최초의 한옥 호텔이자 한옥 각 채마다 노천 온천탕을 갖춘 경주의 라궁, 편백나무로 지은 여수의 오동재와 영암의 영산재, 야외 수영장과 캠핑 시설을 갖춘 연천의 조선왕가도 꾸준히 관심을 모은다. 한옥의 오랜 숙제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였다. 사람들이 잠자리에 기대하는 마음을 읽은 한옥은 비로소 그 숙제의 답을 찾은 듯하다. 대청마루에 누워 맛보는 수박은 얼마나 달콤할지. 이 여름, 한옥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