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 눈뜰 때 – 권철화

김상우와 권철화, 이 두 명의 톱 모델에겐 ‘패션계가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재능 넘치는 비주얼 아티스트로서의 지명도와 유명세가 따른다는 사실. 지극히 패셔너블한 두 남자가 아트에 눈뜰 때.

작품 ‘Semi Charmed Life’를 등진 채 강아지 탁구와 함께 자신이 일하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정원에 앉은 철화. 이 작품을 그릴 때의 우울한 감정, 당시 자주 듣던 서드 아이 블라인드의 노래 제목이 자연스럽게 그림의 제목이 됐다.

작품 ‘Semi Charmed Life’를 등진채 강아지 탁구와 함께 자신이 일하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정원에 앉은 철화. 이 작품을 그릴 때의 우울한 감정, 당시 자주 듣던서드 아이 블라인드의 노래 제목이자연스럽게 그림의 제목이 됐다.

권철화, 관능의 캔버스 

“99% 끝냈습니다.” 야구 모자에 검정 티셔츠, 헐렁한 진회색 바지 차림으로 말보로를 손에서 떼지 않는 남자가 디자이너 김재현의 JDC 프로젝트를 마친 뒤 홀가분한 투로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JDC 기획과 아트 디렉션 이후엔 아디다스 스페셜 캠페인, 멀티숍 톰그레이하운드 출판물 <톰 페이퍼> 시즌 3, 지난여름 서울은 물론 부산 등 지방에서도 대히트 친 ‘원투텐’ 티셔츠의 가을 버전 론칭 등 그야말로 육상 400m 계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원투텐’ 스웨트 셔츠는 가을부터 해외에서도 판매된다).

평소 여러 남자 잡지를 자주 봐온 사람이라면 짙고 선명한 일자 눈썹과 적당히 기른 구레나룻, 쌍꺼풀 없이 크고 매끈한 눈매와 새까만 눈동자, 대리석처럼 매끈한 피부에 동그랗게 V라인으로 빠진 얼굴이 상당히 낯익을 것이다. 권철화는 한때 TV에서 눈에 띄는 광고 모델이었고, 홍승완, 김선호 등을 비롯한 여러 서울 남성복 패션쇼에 서던 캣워크 모델이었으며, <GQ>에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긴 몇 안 되는 화보 모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트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진짜 직업은 화가다. 물론 모델로서 출중한 용모만 보자면 팬들은 그가 직접 털어놓는 과거사가 전혀 믿기지 않을 것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엔 몸무게가 거의 100kg에 달했어요.” 그가 멋쩍은 듯 웃자 마네킹처럼 희고 핸섬한 무표정의 얼굴에 인간미와 활기가 돌았다. “다행히 쇄골 뼈 아래로만 비만이었죠. 하하! 그러나 운동에 운동을 거듭한 끝에 얼굴과 몸매에서 각이 도드라지더군요.” 다이어트 성공 후 키 183cm에 일본인과 프랑스인 사이의 혼혈 분위기가 나는 이 청년에게 연기와 모델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스물아홉까지 모델 겸 연기자로 꽤 이름과 얼굴을 날렸다. 그리고 지금은 애런 영 뺨치게 잘생긴 서울의 아티스트다.

모델이나 배우로서의 외모가 아닌, 철화의 그림이 세상에 맨 처음 공개된 건 2009년 서초동의 어느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였다(‘텐션’을 주제로 오일 파스텔과 아크릴을 써서 완성한 열두 개 작품). 또 2011년에는 평창동 어느 화랑에서 드로잉 위주로 단독전을 가졌다. “모나미 유성 매직을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휘갈겨 뭔가 거친 양감을 표현했습니다.” 간략한 몇 개의 선만으로 묘사한 양감 넘치는 드로잉은 현재 셀 수 없이 많은 파일에 담겨 아틀리에 책장에 꽂혀 있다. 그 파일을 넘기다 보면 선이 살아서 꿈틀대 비닐 밖으로 뚫고 나올듯 생동감이 넘친다. 어느 사진가의 평에 따르면 팔딱팔딱 뛰는 혈관처럼 동적이지만, 자가 품평에 의하면 부드러운 듯 진동이 느껴지는 드로잉이다.

그는 남자 인생에서 가장 팔팔한 20대 중반, 모델 자격으로 카메라 앞에 서며 사진가의 앵글 안에서 공간의 여백과 자신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그건 다분히 타고난 동물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이력 덕분에 <에스콰이어> 객원 기자로 1년여 일했고, 디자이너 남노아가 운영하는 브랜드 ‘노앙’의 성공적 론칭을 함께하며 잠재된 패션 끼를 발휘했다(그는 패션 학도 시절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과목보다 패션 일러스트에 더 몰입했다). “패션 판타지예요!” 철화의 감흥을 들으니 패션 경계 안에서 체험한 이력을 그때나 지금이나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듯 하다. “그건 짜릿하고 두근거리는 경험입니다.” 그래서인지 여자나 남자를 그리거나 추상화든 색깔이든 캔버스와 모니터 앞에서 작업 할 때 패션과의 연결 고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린다 에반젤리스타, 다리아 워보위 같은 슈퍼모델들의 얼굴로 기발한 디지털 아트 작업을 완성한 것도 그런 배경 덕분이다.

 

그림에 소질이 있고 그것을 끝내 인정받는 사람들의 과거가 비슷하듯, 그 역시 유년 시절부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유치원 다닐 때 선생님이 엄마께 전화하셔서 아드님은 꼭 미술을 시키라고 하셨대요.” 그때 유치원 선생님이 눈여겨본 그림은? “바닷속을 그리는 게 주제였는데, 저는 도화지 왼쪽에 잠수함 꼬리 부분만 그렸어요. 또래 아이들의 발상과는 전혀 달랐죠. 그리고 외할머니 댁에 가면 커다란 달력 뒤에 늘 그림을 그리고 놀았어요.” 누가 봐도 그림 신동인 이 꼬마는 결국 고교 때 입시 미술 학원에 등록해 아그리파, 줄리앙, 비너스 같은 석고상을 줄기차게 그렸다. 4B나 2B 연필을 쓱싹쓱싹 긋고 문질러 표현한 데생 과목에 유난히 애착을 보인 것. 그리고 애니메이션학과를 준비하던 중 상명대 주최 고등학생 공모전에선 금상 트로피를 수상했다. 잠수함 꼬리를 부여잡던 꼬마는 아니나 다를까, 공모전 수상 후 미대 입시 실기 시험에서 또다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줬다. 우체부, 강아지, 자전거를 표현하라는 주제에 발칙한 반전으로 심사위원들을 ‘충격’에 빠뜨린 것. “선량한 외모의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한 마리를 자전거에 싣가죠. 그런데 그가 향하는 곳은? 보신탕집…” 대학 주최 공모전 입상에도 불구, 대학 입시는 낙방했다.

사실 그는 화가 집안에서 자란 절친 고교 친구로부터 절대 화가만은 되지 말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들었다. 화가로사는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충고였던 것. 그 역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여기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취미 삼아 도화지에 긋던 선은 곧 전투적으로 돌변했다. “그때만 해도 피카소를 보며 늘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사람을 왜곡하는 걸까’라고 말이죠. 유난히 싫어하던 장르가 추상화였습니다. 그러나 연필을 들고 도화지에다 전쟁 치르듯 선을 긋고 또 긋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표현하는 인간의 모습이 추상적으로 바뀌더군요. 일부러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분명한 선과 육중한 터치 위주로 완성된 그의 추상화에는 뭐라고 정의 내리거나 해석하기 힘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에드워드 호퍼, 프랜시스 베이건 등 음울하고 어두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우울함이야말로 저를 성장시키는 기질입니다. 물론 예전엔 특정 감정에 기댄 채 그림을 그리는 게 싫었어요. 제 그림이 구체화된 감정이나 사연, 내용으로 보이거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못마땅했죠. 그래서 이미지 위주로 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연도 없고 해석도 필요 없는, 철저히 이미지나 비주얼 위주의 작업이었죠.” 덕분에 ‘레이지 헤븐’에서 열린 소규모 전시에서는 그토록 원하는 품평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 내용도 느껴지지 않다고 관람객들이 그러더군요. 무감각 그 자체라고 말이죠. 제 작업에서 원하는 게 바로 그거였어요.”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처럼 젊은 예술가로서 피해갈 수 없는 ‘시행착오’ 상황과 만난 셈이다. “요즘은 제 감정의 일부가 그림에 드러나는 것도 좋더군요. 그래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또 한 번 말보로에 불을 붙여 입에 문 젊은 아티스트는 심정적으로도 꽤 많은 변화를 겪는 중이다. “예술가도 사랑받고 싶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저 자신만을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하지만 친구 유아인의 조언에서 뭔가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어요. 결국 화가도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는 거 아니냐고. 상대가 있고 공감을 나눠야 예술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이죠.” 이후 그는 스스로 쥐고 있던 예술에 대한 자기중심적 가치관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제 그림을 보게 될 불특정 다수를 의식하며 작업하다 보면 망칠 때가 허다해요. 그 과정이 극복될 때도 있지만, 아직 그건 랜덤이에요.”

이런 시행착오의 나날을 보내며 11월 개인전을 준비 중인 그다. “패셔너블한 여자와 남자의 몸은 제 작업의 기본이 됩니다. 물론 화법과 주제, 언어는 다양하죠. 보는 사람에 따라 두서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큐레이터의 태도로 보면 일관된 맥은 잡힐 거예요. 다양성 안에서의 공통점이라고 할까요? 그게 감정적으로 표현됐든 철저히 이미지 위주든.” 그는 요즘엔 요가나 정신 수양하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덧붙인다. “지금까지는 다작 스타일이었어요. 이젠 패스트 아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와 마음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답게 그는 갤러리의 흰 벽에만 그림을 걸지 않는다. 모델 본능 때문인지 SNS에도 잘생긴 셀피를 올리는가 하면, 물 좋은 친구들과의 인증샷 사이사이에 자신의 작품을 겁도 없이 올린다(‘@Chulwha’라는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면 7,000명이 넘는 추종자들이 그의 일상과 작품을 구경한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는 행위에 대해 ‘계산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주고 싶었어요.” 그가 자신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탁구’를 훌쩍 껴안으며 얘기했다. “온라인을 통해 슬쩍 본 그림을 오프라인 갤러리에서 보면 익숙한 듯 뭔가 다른 감흥을 얻을 테니까요.” 스스로에게 함몰된 채 나만을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던 청년은 보시다시피 작품을 통해 대중과 교류하는 중이다. 그가 스케치북 위에 손끝으로 문지르는 오일 파스텔처럼 더없이 관능적이고 역동적이며 도발적인 태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