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최고난도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그 이름, 쇼피스. 쇼핑의 최고난도에서 뭘 사고 어떻게 입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나?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게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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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컬렉션 의상을 쇼핑하러 리뉴얼한 구찌 매장에 들른 쇼핑녀.
그녀가 입고 있는 겨자색 투피스와 뱀피 무늬 코트 역시 구찌 크루즈 컬렉션 의상. 자수 장식 백, 니트 베레, 귀고리와 반지는 모두 구찌(Gucci).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브랜드가 봄과 가을의 정기 패션 위크뿐 아니라 환절기 컬렉션을 위한 이벤트성 단독 쇼까지 기획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리고 매장에 드나들 때마다 우아한 벽에 고정된 황동 옷걸이를 낯선 ‘커머셜 피스’가 아닌 익숙한 ‘쇼피스’가 장악하고 있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최신 유행과 디자이너에 ‘빠삭’한 요즘 고객들은 쇼핑할 때 ‘쇼피스’라는 수식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본사에서 지급한 점잖은 블랙 수트 차림의 어느 고급 브랜드 판매 직원의 말처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왕이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담긴 쇼피스’를 사는 데 훨씬 흥미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쇼피스를 사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는 순간, 머릿속은 이 평범하지 않은 쇼핑의 정당성을 판가름할 수많은 조건으로 어수선해질 테니 말이다. 너무나도 분명히 시즌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은지? 높은 가격에 상응할 만큼 활용도가 높은지? 파티장이나 행사장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과 마주칠 확률은 어느 정도인지? 옷장의 다른 옷과 무리 없이 어울릴 것인지? 설마, 지금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사실 이 문제는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단순히 SNS를 도배한 유행 아이템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러운 해피 엔딩에 이를 수 없다. 새로운 방식의 쇼핑에 익숙지 않은 초보자들이여, 오직 샘플 세일에서만 쇼피스를 구입할 수 있던 시절부터 쇼피스 쇼핑을 해온 전문가들(물론 자격증 따위는 존재하지않는)의 노련한 노하우에 귀를 기울이시라!

<탱크> 매거진의 패션 디렉터 캐롤라인 이사(Caroline Issa)는 합리적으로 패션을 즐기는, 다시 말해 신중한 안티-충동구매파다. 그녀는 즉흥적으로 유행 아이템을 사면 값비싼 후회를 치르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자신의 성향과 맞는 걸 사야 해요. 운이 좋다면 숙고해서 산 아이템이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클래식이 되기도 하죠.” 이사는 스테파노 필라티 시절 YSL 컬렉션에서 구입한 닥터 백과 체크무늬 튤립 스커트를 최근에 다시 꺼냈다. “클래식한 화이트 블라우스와 잘 어울린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전한 선택을 위해 쇼피스를 사는 게 아니다. 어느 시즌 의상인지, 어느 디자이너의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면 쇼피스 쇼핑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10 꼬르소 꼬모의 여성복 바이어 전보라 팀장은 전위적이면서도 시즌에 좌우되지 않는 쇼피스를 원한다면 정체성이 강한 디자이너를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꼼데가르쏭, 릭 오웬스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고, 유행을 자신의 방식으로 한 번 걸러내기에 시즌별 차이가 적습니다.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으면 패션계 사람들도 어느 시즌 의상인지 헷갈릴 정도죠. 제 경우엔 홀리 풀턴의 2010년 가을 컬렉션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모티브 미니 드레스를 아직까지 입곤 해요.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건데, 유행보다 매 시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디자이너라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매리 카트란주도 추천할 만합니다.”

아, 그러나 세상에는 그 시즌의 유행을 숭고하리만치 아름답게 표현한 컬렉션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있다는 사실! 단언컨대 애써 모른 척하며 그들의 쇼피스를 포기했을 때는 노력과 시간이 배로 든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 프라다의 황금기를 무력하게 흘려보낸 데 깊은 유감을 느낀 나머지 종종 이베이를 뒤지지만, 그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막막하고 기약 없는 여정이다. 이런 쇼‘ 핑 유감’은 나만의 감정이 아니다. “동양적 패턴이 그 시즌의 주제였어요. 프라다특유의 볼륨감 있는 스커트가 마음에 쏙 들었는데, 결국 패턴이 마음에 걸려 사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까지 후회돼요.” 역시 프라다에 대해 아쉬움을 품고 있는 어느 패션 에디터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시즌이 지난 프린트를 입는 게 뭐 그리 큰 대수냐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지었다. 이것은 이번 시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구찌의 ‘프린스타운’ 캥거루털 홀스빗 슬리퍼 열풍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브라이언 보이, 린드라 메딘, 마크 제이콥스와 케이티 그랜드뿐 아니라 가능한 한 절제된 룩을 고수하는 에디터들까지 기꺼이 맨발을 집어넣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클래식에 대한 새롭고도 동시대적 해석이라는 것. 시간이 지나고 홀스빗 로퍼의 또 다른 버전이 나왔을 때, 이 뒤축 없는 로퍼는 또 하나의 클래식이 될 게 분명하니까.

더 이상 시즌에 연연하지 않는 쇼피스 쇼핑의 심화 과정에 들어섰다면, 이제 최고의 미덕은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의 패션 디렉터 루팔 파텔(Roopal Patel)은 전 세계 여자들이 숭배할 훌륭한 컬렉션과 마주할 때 어떤 ‘필’이 온다고 단언한다. “그때는 가능한한 빨리 이성과 감성의 합의를 본 뒤 사야 할 것 같으면 빨리 사는 게 관건입니다.” 하긴 곧 대박을 칠 아이템을 누구보다 먼저 가질 때, 속물 같긴 하지만 몹시 뿌듯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스타일리스트 김봉법은 쇼피스를 구입할 때 그 시즌을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피스가 될지를 고려 사항에 넣는다. 그가 말하는 ‘아이코닉한 피스’는 불티나게 팔려나갈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스웨트셔츠 따위가 아닌, 그 시즌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룩이다. “디자인이 아주 뛰어나거나 고급 소재, 섬세한 세공이 들어간 아이템 위주로 구입하는 편입니다. 그런 것은 가격대가 높아서 전 세계적으로도 수량이 많지 않아요. 같은 옷을 입은 사람과 마주치면 오히려 공감대가 형성되는 기분이죠.” 그는 이런 아이템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셀린의 2012년 가을 컬렉션에서 핑크와 블루로 선보인 오버사이즈 코트 기억나요? 그 시즌의 잇 아이템이었지만 지금 봐도 여전히 예쁘죠.”

쇼피스를 살 땐 무엇을 사느냐 만큼 어떻게 입느냐도 중요하다. 마이애미의 유명 멀티숍 ‘웹스터’의 로르 에리아르 뒤브레이(Laure Heriard Dubreuil)는 “늘 당신 옷장에 있었던 것처럼 입으라”고 조언한다. 그녀의 방법은 최근 것과 지난 시즌 아이템을 섞는 것으로, 루이 비통의 2015년 프리폴 컬렉션 데님 팬츠를 10년 전에 구입한 아페쎄의 브르통 스트라이프 톱과 70년대 빈티지 재킷에 매치하는 식이다. 쇼피스가 액세서리일 경우엔 아주 기본적인 클래식한 룩에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화이트 셔츠와 가죽 팬츠, 플랫 슈즈에 생로랑의 프린지 백을 들면 유행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보여 멋지다. 루팔 파텔의 조언을 받아들여 재빠르게 사냥감을 획득했다면, 남보다 먼저 입다가 인스타그램을 도배할 때쯤 잠시 옷장 속에 넣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꺼내는 거죠. 어딘가에서 같은 아이템을 가진 사람과 만날 수 없을 때쯤이요.”

수집벽이 있는 스타일리스트 겸 구두 디자이너 타비타 시몬스는 유행 아이템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요즘엔 2008년 봄 시즌 프라다의 요정 무늬 블라우스와 드레스를 다시 꺼내 입는 것에 대해 고려하는 중이다. “뭐든 다시 돌아오니까요.” 시즌이 지났다고 해서 입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뿐더러 그 옷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다(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쇼피스 사길 잠시 미루라고 충고한다). 우리 여자들은 유행의 유효기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고 쇼피스 쇼핑은 그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피스는 준비된 자들을 위한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