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멘키스가 품평한 2016 F/W 뉴욕 패션위크 – 캐롤리나 헤레라, 토리 버치, 톰 브라운, 데릭 렘

캐롤리나 헤레라: 절제된 럭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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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무성한 정원, 오래된 석조 건물, 귀족적인 우아함과 고요함…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에서 열린 이러한 캐롤리나 헤레라 쇼가 진정 요란스럽고 소란한 뉴욕패션위크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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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미국 패션계는 ‘업타운 걸’들을 뒤로 한 채 업타운 스타일의 쇼를 거의 선보이지 않고 있다. 우아한 파크레인보다 웨스트 사이드 하이웨이에 잔뜩 몰린 차들은 패션을 주도하는 장소가 어디임을 보여준다. 패션쇼가 열리는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 아메리칸 스타일에 대한 분명한 경계조차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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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s)’라는 의미의 WASP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속물근성에 꽉 막히고 부유하며 특권을 누리는 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길고 가는 팔다리에 날렵한 스포츠웨어와 고급스러운 의상을 걸친 여성들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만들어냈고 이는 20세기 후반 스타일의 정수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다.

이제 ‘스포츠웨어’란 최첨단 테크노 패브릭으로 된 래퍼 패션, 남/녀의 위배, 그리고 성급한 섹스 등을 의미하게 됐으니까. 한때 저소득층들이 모여있는 공업지대였던 곳을 관통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맨하튼이 개방되면서 사회적 경계는 유동적이 되었다. 17번가 7 애비뉴에 자리한 바니스 뉴욕이 이번 주에 다시 문을 열면서 이는 매디슨 애비뉴를 넘어선 다운타운의 업적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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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5년 간 캐롤리나 헤레라의 업타운적인 우아함을 지켜온 충직한 패션 일꾼인 디자이너 에르베 피에르(Hervé Pierre)가 이번 시즌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헤레라를 소유한 스페인 향수 및 패션하우스 푸이그(Puig)는 좀더 과감한 이를 찾고 있으며 벌써 어느 한 패션 듀오를 점 찍어 놓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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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캐롤리나 헤레라의 옷이 지닌 우아함을 흠모한다. 헤레라의 옷은 절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크림빛 색감과 가벼운 패브릭, 옅은 빛의 풍성한 퍼에는 쉬폰이 더해졌고 스커트는 짧거나 종아리 중간까지 내려온다. 디지털 프린팅 된 커다랗고 과감한 꽃무늬와 오간자 드레스의 날아갈듯한 가벼움은 모두 캐롤리나의 우아함을 강조한다. 나는 헤레라의 의상들에 대해 오뜨 꾸뛰르의 경지이면서도 디자이너가 현실에 가벼이 발을 걸치고 있다고 묘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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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클릭해 Sibling 2016 F/W 컬렉션 룩을 모두 감상하세요.

▲ 사진을 클릭해 Carolina Herrera 2016 F/W 컬렉션 룩을 모두 감상하세요.

토리 버치: 호스 센스(Horse Sense)
토리 버치는 패션계의 마지막 모히칸이리라. 즉, 진짜 100% 업타운 걸이다.

“저는 늘 승마를 사랑해왔어요.” 토리는 모로칸 타일이 깔린 런웨이 위로 몸을 흔들며 걷는 모델의 모습에서 깊은 곳부터 조용히 흐르는 관능미가 느껴지는 스포티한 의상들로 구성된 쇼가 끝난 후 말했다.

토리 버치는 에릭 로머(Eric Rohmer)의 1972년도 영화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 (L’Amour l’après-midi)에서 무심한 거리 장면을 가져왔다.

옷들은 모두 매우 멋지고 웨어러블 하면서도 좋은 의미에서, 그리고 남성적/여성적이라는 의미에서 뻔했다. 남성스러운 다이아몬드 패턴 스웨터는 일렁이는 파이에트 팬츠와 매치되어 더욱 빛났다. 자잘한 꽃무늬의 톱과 바지에는 연갈색 스웨이드 재킷을 걸쳤다. 종아리 중간까지 내려오는 드레스들은 페이즐리 무늬였다.

승마복은 없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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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느낌의 오렌지 빛 드레스에 새겨진 뒷발로 땅을 박차던 종마의 프린트를 떠올려 보길. 패션계의 암말인 토리 버치 자신은 무대 인사를 위해 그 드레스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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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클릭해 Tory Burch 2016 F/W 컬렉션 룩을 모두 감상하세요.

톰 브라운: 공원 산책
나는 반항적인 톰 브라운을 우아함의 선봉으로 보게 되리라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그러나 앙상한 겨울 나무로 꾸며진 무대에서 벌어진 그의 쇼는 우아함과 위트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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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산책하는 것만큼 심플한 스타일이 있었다면 그리고 나서는 어둠을 좇는 프루스트 풍으로 재단된 의상을 격식에 맞게 차려 입은 남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엄숙함은 곧 개들로 인해 사라져버렸다. 가방의 모습을 한 채 장식이나 실루엣을 위해 사용된 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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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의상에 재킷 반쪽이나 소매 한쪽을 덧붙이는 뛰어난 커팅과 테일러링은 고급스러운 기술을 증명했다. 온전한 의상에 반쪽짜리 레이어의 레이어를 덧붙이는 작업은 꼼 데 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가 폭넓게 장악하던 영역 임에도 불구하고 톰 브라운은 또 다른 차원에서 이를 다뤘다.

▲ 사진을 클릭해 Sibling 2016 F/W 컬렉션 룩을 모두 감상하세요.

▲ 사진을 클릭해 Thom Browne 2016 F/W 컬렉션 룩을 모두 감상하세요.

데릭 램: 세기 중반의 모더니즘
데릭 램은 내가 이제부터 ‘DU 디자이너’라 부르려고 하는, 현존하는 ‘업타운을 선망하는 다운타운(Downtown-think-Uptown)’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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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은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 그리고 세기 중반의 모더니즘을 시적으로 표현한 ‘형태, 균형과 즐거움’을 참고했다. 이는 20세기 아메리칸 스타일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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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실한 기능 없이 모양만을 강조하는 예술적인 의상들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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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스칼렛 색 스웨터와 팬츠 같은 심플한 것에서부터 주름을 통해 몸매를 드러내는 아이보리색 롱드레스처럼 극도로 세련된 것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인 의상들을 볼 수 있었다. 데릭 렘은 그래픽 라인들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식했다. 밍크코트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격자무늬가 들어가고 날렵한 드레스는 촘촘하게 비즈로 장식됐다. 버클 앵클부츠는 디자이너의 다운타운/업타운 행진에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했다.

잭 포즌: 아웃 오브 아프리카
클라이언트와 사교계 명사들, 그리고 열정적인 팬들로 가득한 쇼 장에서 잭 포즌은 다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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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다운타운에서 평생을 보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소위 국경을 넘어 진정한 국제적인 의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잭 포즌은 역사적이고 독창적인 부분에서 영감을 얻는다. 우간다에서 1936년에 태어난 프린세스 엘리자베스 오브 토로(Princess Elizabeth of Toro)는 외교관이자 변호사로 활동했고 여전히 그 지성과 아름다움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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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 마가렛 공주는 1960년대 자선 갈라를 위해 그녀에게 모델이 되어달라 청하기도 했다.
잭 포즌은 ‘1930년대 꾸뛰르의 기하학’이라 표현하며 우아한 아프리카 모델이 걸친 아프리카의 형태와 패턴에 대해 섬세히 연구했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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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꽃무늬 패턴의 면 드레스는 실크처럼 드레이프 졌고 비대칭으로 재단된 검은 드레스는 실제와는 달리 단순해 보였다. 각 의상은 우아하고 편안하게 보이기 위해 세심히 만들어졌고 부드러운 캐시미어는 실크나 스트레치 크레이프로 테일러링됐다.

케이티 홈즈나 다른 하이엔드 편집샵의 바이어들이 보내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며 나는 잭에게 자신의 의상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었다. “업타운과 다운타운은 이제 유행이 지났죠. 뉴욕은 이제 완전히 젠트리피케이션 되었어요. 나는 소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모든 게 다 혼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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