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기 전 알아두면 좋을 것들

여행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두면 좋을 것들을 〈보그〉가 채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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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가 도시를 망치고 있다

지난 2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터키 이스탄불과 이스라엘 텔아비브 역시 힙스터의 도시로 변모했음을 알려왔다. 이스탄불 베이욜루 지역에는 힙한 루프톱 바가 그득하며 텔아비브 플로렌틴에는 젊은 패션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들이 모인 복합 문화 지구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것. 예전 같으면 힙스터 대표 주자로서 남들보다 빨리 그 도시에 가려고 안달이 났겠지만 지금은 여행지 리스트에서 그 도시들을 슬그머니 빼버린다. 바퀴벌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식하고 있는 힙스터들은 모든 도시를 쿨하게 만들고 있지만 문제는 ‘똑같이’ 쿨하게 만든다는 거다. 뉴욕, 파리, 런던, 베를린에 이어 오스틴, 멜버른, 몬트리올, 예테보리 등은 빈티지 레코드점, 인디 서점, 로컬 식자재를 사용하는 레스토랑, 유기농 주스 바, 개성 있는 패션 편집숍, 젊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이뤄진 똑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갤러리에서 구입한 천 가방을 멘 채 빈티지 가게를 뒤지고 크래프트비어를 마시며 커피 맛에 집착하는 힙스터 유령들이 도시를 점령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난 빨래 카페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또 만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요즘 힙스터들의 유행인가? 디제이가 있는 햄버거집은 로스앤젤레스에도 있었고 베를린에도 있었다. 오스틴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예테보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에 무슨 차이가 있나? 인디 서점과 레코드 가게를 방문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게 그 도시의 진짜 경험일까? 게으름뱅이 부시가 인도에 가서 타지마할을 보지 않은 것과 뭐가 크게 다른가?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는 멜버른의 카페가 보여준 지나친 힙스터리즘에 대한 한 여행자의 볼멘소리가 화제가 됐다. 그 카페는 플랫 화이트를 주문한 그 여행자에게 세 개의 비이커에 에스프레소 원액과 우유와 물을 따로 담아주는 일명 ‘해체적 커피(Deconstructed Coffee)’를 서빙했다. 그 여행자는 외쳤다. “난 그냥 커피를 마시고 싶을 뿐이라고. 과학 실험이 아니라.” 하지만 곧 이어 그와 같은 비이커 커피숍이 세계의 힙스터 도시에 곧 들어설 거라는 데 내기를 걸어도 좋다. 그들은 오래된 기숙 학교, 유리 공장 등을 개조해 도시의 오래된 유산과 전통을 없애고 모든 도시에서 세련된 힙스터리즘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남과 다른 개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힙스터들이 결국 모든 도시를 똑같이 만들고 우리의 여행을 획일화하는 건 굉장한 아이러니 아닌가? 문제는 이거다. 그렇다면 힙스터로서 다음 여행지로 어디를 택해야 하느냐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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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자와 인도 여행자

여행에 관해 언제나 할 말이 많은 <모노클> 편집장 타일러 브륄레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행자가 있다고 했다. 바로 도쿄 여행자와 인도 여행자. 그는 깔끔하고 정리된 도쿄를 좋아하는 여행자라고 고백하면서 혼잡함 그 자체인 인도나 베이징 같은 도시는 ‘부끄럽지만’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헤밍웨이처럼 거친 들판을 가로지르며 사자와 마주하길 기다리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아프리카와 파타고니아 등을 다녀온 여행 작가 폴 서루는 바캉스라면 진절머리를 냈다. 그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고 컵케이크 따위나 먹는 건, 정말 미쳐버릴 노릇이다”하고 말한 바 있다. 여행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는 작은 테스트 같은 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행은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벨기에 브뤼셀에 갔을 때 나는 왜 우리가 오줌싸개 소년 동상 같은 걸 봐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같이 간 친구는 내가 왜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덥고 피곤해서 그런 걸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여행을 통해 난 알게 됐다. 난 오줌싸개 소년 동상 같은 건 싫어하는 냉소적이고 비낭만적인 사람이란 걸. 불행하게도 스스로 인도 여행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 역시 네팔을 다녀온 후였다. 네팔에 간 건 같이 간 선배가 인터뷰 도중 네팔이 좋다던 유해진의 말을 들었기 때문인데, 왜 생판 모르는 배우가 좋다고 한 여행지를 아무 생각 없이 갔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어쨌든 나는 소, 염소 같은 가축과 그들의 분비물이 길에 널려 있고 버펄로 한 마리가 나를 쫓아와서 죽기 살기로 뛰어야 했던 그런 동네에서 재미는커녕 공포감을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카트만두의 사원들은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더럽기 짝이 없었고 길거리는 너저분하고 악취가 진동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인생무상, 공수래공수거 철학을 받아들인다는데 이곳을 탈출해 시원한 커피숍에서 냉커피 한잔 마실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므로 여행지 앞에 붙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이라는 수식어는 ‘죽기 전에 당신이 진짜 가볼 만한 곳인지 백번도 더 넘게 생각해보고 괜찮으면 한번 가볼 만한’으로 바꿔 생각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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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특권, 투덜거림

여행지에서 겪은 불운을 다 얘기하라면 다 옮겨 적을 수 없을 정도다. 하필이면 내가 방문한 그날 미술관은 문을 닫거나 공사하기 일쑤고 호텔 직원들은 불친절하고 비구름은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식당의 음식은 죄다 끔찍하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베를린 숙소 아래층에서 꼭두새벽부터 공사를 해 귀청이 떨어져 나갈 뻔한 것, 슬로바키아에서 세르비아로 가는 8시간 동안 버스 운전수가 화장실에 내려줄 생각을 하지 않아 방광이 터질뻔한 것 등등. 날씨 운은 또 얼마나 안 좋은지. 암스테르담, 리스본, 란사로테, 핀란드 같은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날씨를 관장하는 신인 제우스와 사투를 벌인 기억밖에 없다. 운 나쁜 여행자가 도처에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일까. 여행 잡지 <트래블 올머낵> 폴 코미넥 편집장은 다섯 살 때 유고슬라비아로 간 첫 번째 여행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고 벌에 쏘였으며 주유소에서 도둑을 맞았으며 캠핑용 전자레인지가 터졌다고 했다. 사진가 유르겐 텔러는 20대에 여자 친구와 떠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여행에서 하루 종일 숙소를 못 찾아 결국 시간제로 빌리는 모텔에 묵었으며(침대 시트가 너무 더러워서 역겨울 정도였단다), 다음 날 현지인의 안내로 따라 들어간 정글에서 무서워서 죽을 뻔했으며, 다음 날 온몸이 가렵고 얼굴이 괴물처럼 부풀어 올라 생고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불운이 아니라 인과응보일지도 모른다. 호텔과 달리 에어비앤비는 예측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원래 유럽 날씨는 뒤죽박죽이다. 폴 코미넥은 어린이로서 부주의했을 것이며 유르겐 텔러는 아무런 준비 없이 여행을 갔다. 어쩌면 살아서 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일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 미바튼에서 내가 태워준 히치하이커는 다행히 연쇄살인마가 아니었으며 길바닥에서 자는 대신 택한 드레스덴의 으스스한 숙소에선 다행히 생매장되지 않았다. 어차피 여행을 회고하는 즐거움은 그 망할 놈의 불운을 만난 것에 대한 불평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말야, 세상에나 말이지…”라고 시작하는 과장 섞인 모험담 말이다. 작가 데이비드 실즈의 말처럼 인간의 본성은 뭔가를 망치려고 드는 데 있다(그게 아니라면 왜 일기예보도 안 보고 미술관 오픈 날짜도 확인하지 않으며 열차 시간을 얼마 안 남겨두고 늑장을 부리겠는가). 어차피 당신의 여행기를 듣는 친구들은 당신이 만난 행운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 그러니까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택시 아저씨가 요금을 안 받겠다고 한 일이며 핀에어 직원이 무게를 7kg이나 초과한 수하물에 대해 추가 요금을 안 받은 일이며 카이로의 파피루스 판매 직원이 나보고 네페르티티 여신과 닮았다고 한 일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 없으려나?

여행 가방 싸기의 불완전함

여행이라면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닌데 언제나 출발 전날은 가방 안에 무엇을 넣을지 말지 고민하느라 결국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다음 날 헐레벌떡 공항으로 달려가게 된다. 마사 스튜어트처럼 집에 가서 잼을 만들어 먹을 요량으로 살구를 한 바구니 살 수도 있고 타일러 브륄레처럼 덴마크 가구를 사올 수도 있으니 가방을 절대 꽉 채울 수 없는 건 기본이다. 밤새 우리가 고민하는 건 사실 한두 벌의 옷 문제만은 아니다. 패션 컨설턴트 팀 건처럼 브룩스 브라더스 우산과 여분의 구두끈을 챙길 정도까진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는 건 여행자로서의 내 모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피곤하고 다리가 아플 테니까 편한 캐주얼 차림에 운동화를 신어야 할까, 추레하고 한심한 여행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으니 뽐내기용 불편한 옷과 구두를 챙겨갈까? 힙스터의 성지 베를린으로 여행 갔을 때 구두 차림의 나를 두고두고 놀린 친구를 생각하면 전자가 나을 것 같다. 아니, 구두와 원피스를 챙겨가지 않았다가 발레를 보러 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서 깊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후자가 나을 것 같다. 아니,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여행을 편히 즐길 수 있는 복장이 낫지 않을까? 힐을 신고 낑낑거리는 관광객이야말로 놀림감이 되기 쉬우니까. 이 모든 고민은 존재 자체가 민폐인 스테레오타입 관광객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여행지에만 가면 스스로 필요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수도 없이 사진을 찍어대며 무지하게 시끄럽고 통행을 방해한다. 유명한 관광지 대신 지역 문화를 체험하며 ‘진짜 여행’을 하겠다는 ‘포스트 투어리즘(Post-Tourism)’ 트렌드는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수백 장 찍어대는 관광객에 대한 조롱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에 묵고 관광 명소 대신 힙스터들이 만든 작은 갤러리나 서점을 방문하고 커다란 지도와 카메라 대신 아이폰을 들면서 관광객 티가 덜 났다고 으쓱해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됐고 임대료가 올라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는 얘기뿐이다. 심지어 사회학자 존 어리는 “진짜 여행 같은 건 없다”고 했으며 <관광과 정치학>이라는 책을 낸 데비 라일(Debbie Lisle)은 “관광객과 여행자 사이엔 사실 별 차이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럼 도대체 관광객은 어쩌라는 건가? 찰스 부코스키처럼 여행은 가지도 말고 집에만 있을까? 지도를 들지 않아도, 스포츠 샌들에 양말을 신지 않아도 당신이 관광객인 건 티가 다 난다는 거다. 여행 가방은 당신을 전혀 도와주지 못한다. 아니, 여행 가방을 들고 집을 떠나는 순간 당신은 그 도시의 아웃사이더로 예약됐다. 그러니 아무거나 집어넣고 빨리 잠이나 청하라. 환경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싶지 않으면 에코백도 넣고. 가능하면 제인 구달처럼 첫 번째 숙소의 비누를 챙겨뒀다 가급적 여행 내내 쓰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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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휴가라는 환상

여름만 되면 ‘셰익스피어 버케이션’이란 단어가 고개를 들이밀고 등장한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공직자들에게 3년에 한 달 정도 줬다는 장기 독서 휴가 말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 지적이고 멋지고 여유롭게 들린다. 기차간에서 롤랑 바르트나 수전 손택의 글을 읽으며 인생과 예술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도스토옙스키가 여름을 보냈다는 독일 휴양도시 바덴바덴에서 한 달간 머무르면서 온천욕을 하며 러시아 문학을 탐독할까? 좀더 지적 허영을 발휘해서 F. 스콧 피츠제럴드처럼 파리에 가서 롱 블랙을 마시며 1920년대의 예술가 세계를 탐험하는 게 나으려나? 바덴바덴에 갈 거면 여름 클래식 음악 축제 ‘바덴바덴 페스티벌’이 열릴 때 갈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는 기차로 27분 걸리는데 거기도 갈까? 내친김에 파리까지 가는 게 좋겠다. 파리에 가면 미술관도 가야 하고 쇼핑도 해야 하고 벼룩시장도 가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기차에서는 다음 도착지 주소도 검색해야 하고 지역 맛집도 찾아야 하고 버스 요금도 알아봐야 한다. 비행기에서는 미처 못 챙겨본 마블 영화도 봐야 한다. 잠깐만, 21세기에 셰익스피어 버케이션이 진정으로 가능한 건가? 생각해보라. 빅토리아 여왕은 1819년부터 1901년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그 셰익스피어 버케이션은 아이폰도 없고 영화도 없고 힙스터들도 없을 때 얘기라는 거다. 공항에 발이 묶여 있는데 손에 휴대폰이나 노트북이 없거나, 인터넷이 전혀 안 되는 해발 1,310m의 이탈리아 브리올 호텔에 고립돼 있다면 가능하다. 어쩌면 순수한 셰익스피어 버케이션은 판타지, 이 모든 복잡한 문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열망과 지금 이 순간조차 책을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생겨난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또 있다. 가지고 간 책이 재미없을 수도 있다. 70일간 유럽 여행을 하며 가져간 일곱 권의 책 중 재미있었던 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존 르 카레 연보뿐이었다(본문 말고). 구미에 맞는 책을 선택하는 일은 저렴하면서도 깨끗하고 위치가 좋은 숙소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현대미술가 카스텐 홀러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여행자에게 가장 절박한 건 마음의 양식보다 다음 끼니를 실제로 어떻게 때우는가다. “여행에서는 거의 아무 생각도 안 든다. 다음 끼니를 뭘 먹을지 정도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