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rtraits

개와 고양이, 사람이 함께하는 가족들의 이야기.

크러쉬 (뮤지션) + 두유 (스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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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 재킷은 겐조 제품.

내 이름은 두유. 태어난 지 9개월 된 남자 스피츠다. 우리 아빠가 날 집으로 데려오던 날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혼자 길을 걷고 있었는지 내가 있던 신사동 애견 숍에 들어온 아빠가 다른 친구들을 한 번씩 안아본 뒤 아주 작았던 날 들어올렸다. 처음엔 조금 무서웠는데, 막상 안긴 그 어깨가 너무 듬직해서 떨어지기 싫어 꼬옥 달라붙어 있었다. 밤새도록 그 품에 안겨 있는 꿈을 꿨다. 다음 날, 익숙한 얼굴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아빠가 다시 날 안는 거다! 어깨에 찰싹 매달려 있던 내 모습과 감촉이 밤새 눈에 밟혀서 일어나자마자 달려왔다고 한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정말인가 싶다. 자랑 좀 하자면, 우리 아빠는 툭하면 내게 “사랑해”라고 말해준다. 외출할 때면 내가 외로울까봐 강아지 TV를 틀어주고, 밖에 나가서도 계속 날 보고 싶어하다가 최대한 빨리 집에 돌아온다. 요즘은 아빠가 새 노래도 발표하고 공연도 하느라 너무 바빠서 한동안 할아버지 집에 머물고 있다. 이곳엔 ‘또치’라는 슈나우저도 있는데, 털 색깔이 어두워서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아빠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마이클 잭슨의 노래 제목 ‘Black or White’가 생각나기도 한다. 여기서도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건 물론이다. 난 정말 운이 좋다. 얼마 뒤 돌아오는 6월 6일 현충일은 내 생일이다. 태어나 처음 맞는 생일인데, 그땐 아빠가 조금 한가해져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 거기에 맛있는 간식까지 선물받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솔직히 내가 식탐이 있다. 원래 착한데, 먹을 거 앞에서만큼은 예민해지거든.

 

노을 (레인보우 멤버) + 행복 (푸들)

그래픽 패턴 원피스는 오프닝 세레모니 바이 톰 그레이하운드, 로퍼는 김서룡 우먼 제품. 행복이 목줄은 해지 도기 제품.

그래픽 패턴 원피스는 오프닝 세레모니 바이 톰 그레이하운드, 로퍼는 김서룡 우먼 제품. 행복이 목줄은 해지 도기 제품.

2013년 10월 4일생인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세 살이 됐다. 노을 언니 집으로 오게 된 건 시골에서 태어나 생후 한 달쯤 됐을 때. 노을 언니는 내게 말하거나 가르칠 때 눈을 마주보려고 노력한다. 언니의 말을 전부 이해하진 못하지만 나도 최대한 눈을 마주친다. 가족들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 귀를 쫑긋 세운 채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한다. 난 우리 가족만 있으면 충분한데, 언니는 자꾸 레인보우 다른 멤버인 재경, 윤혜 언니의 강아지들과 날 만나게 하려고 한다. 사실 난 다른 개들이 무섭단 말이다. 하지만 언니와 산책 나가는 건 무조건 좋다! 처음엔 언니의 엄마가 강아지를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엄마는 가족들 중에서 내게 가장 장난을 많이 치는 사람이 돼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가족들이 방금 벗은 바지, 싫어하는 건 양말이다. 바지를 벗는다는 건 밖에서 돌아와 한동안 집에 머물 거란 뜻이고, 양말을 신는다는 건 이제 밖에 나가야 한다는 의미니까. 노을 언니가 팔을 쭉 뻗고 잘 때 그 팔을 베고 자는 것도 좋아한다. 크게 아픈 덴 없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눈 밑을 긁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엔 살이 하도 빨개져서 약을 바르고 가리개를 하기도 했다. 사실 어젠 방에 응가를 했다. 이건 솔직히 조금 의도적이었다. 가족들이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동안 내게 신경을 안 써 약간 삐진 거다. 조금만 더 나랑 놀아주고 신경 써주면 좋을 텐데! 이런 말썽도 잠시, 우리 가족은 행복하다. 가족들이 지어준 내 이름, 내 삶도 행복하고 노을 언니 가족에게도 행복을 가져오라는 이름처럼.

 

스테파니 (모델, 배우) + 뽀뽀 (토이 푸들)

프린트 재킷은 겐조 제품.

프린트 재킷은 겐조 제품.

나는 일곱 살이다. 스테파니 언니랑은 네 살 때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다른 토이 푸들보다 조금 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모델치고도 키가 큰 편인 언니를 닮았다고 말한다. 하긴 내가 포즈를 좀 한다. 셔터 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건 촬영장에 따라다니며 진즉에 터득했다. 얼마 전부터 언니가 연기를 시작했다. 대사가 너무 안 외워질 땐 날 앞에 앉혀놓고 연습하기도 한다. 우리 언니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경력에 비해 연기를 잘하는 것 같다. 지난번에 화 내는 장면을 연습할 땐 무서워서 제대로 대사를 받아주지 못할 정도였다니까! 언니는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오늘 무슨 무슨 일이 있었다고 내게 이야기해준다. 다 좋은데, ‘동물농장’이나 ‘펫토리얼리스트’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라고 하는 건 귀찮다. ‘크림’이 보고 자꾸 내 친구라고 하질 않나. 난 TV도 싫고, 다른 강아지도 관심 없다. 특히 아기 강아지들이 달라붙는 건 딱 질색이다. 그래도 언니가 드라마 촬영 때문에 6일 밤을 샌 뒤 미역처럼 축 처져서 집에 돌아오거나 하면 너무 안쓰럽다. 그럴 땐 한 번씩 옆에서 애교를 부리며 기분을 풀어주기도 한다. 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고독을 즐기는 강아지다. 좋아하는 건 육포, 싫어하는 건 누가 내 물건을 가져가는 것. 언니의 사촌 동생들이 가끔 집에 놀러 와서 내 물건을 가져가면 내놓으라고 하기도 입 아파서 그냥 슥 빼앗아버린다. 하지만 우리 언니는 예외다. 오늘 아침도 잔 스포츠 백팩을 들고 나오던데, 하루 빌려주기로 했다. 물론 아침에 잠시 백팩 속에 들어가 조용히 내 물건임을 어필하긴 했지만.

 

자이언티 (뮤지션) + 호두 (포메라니안)

그래픽 패턴 원피스는 오프닝 세레모니 바이 톰 그레이하운드, 로퍼는 김서룡 우먼 제품. 행복이 목줄은 해지 도기 제품.

그래픽 패턴 원피스는 오프닝 세레모니 바이 톰 그레이하운드, 로퍼는 김서룡 우먼 제품. 행복이 목줄은 해지 도기 제품.

처음 주인과 만났을 때 아기였던 난 팔다리도 덜 자라고, 온몸이 털에 파묻힌 채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생김새와 털 색이 마치 호두과자 같다며 우리 주인은 날 호두라고 불렀다. 나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원래 짖지도 않고 혼자서도 잘 논다. 사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노느라 정신이 팔린 내 모습이 귀엽다며 주인이 데려왔을 정도니까. 주인은 표현력이 풍부하지 않다. 하지만 작업실과 집만 왔다 갔다 하는 주인의 메마른 세상에서 내가 보기보다 큰 위로가 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주인이 엉엉 울었을 땐 곁에서 바라보는 것 말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웠지만. 바빠진 주인이 부모님 댁으로 이사 오면서 나도 아저씨, 아줌마 집에서 살게 됐다. 날 가장 많이 예뻐해주고 놀아준 사람은 아저씨. 아줌마는 처음엔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츤데레’ 타입이셨다. 실수를 무섭게 혼내시는 한편, 날 꼭 붙들고 “이렇게 해야 건강하다”면서 이를 박박 닦아주시는 걸 보면 말이다. 미안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사실 난 얼마 전 몸이 아파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보그걸> 촬영 날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오래오래 주인, 아저씨, 아줌마와 행복하게 살면서 아기들도 낳고 싶었는데, 바람과 달리 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듬뿍 받은 사랑에 감사한다. 다행히 얼마 전 주인은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아저씨, 아줌마도 공연을 보러 가셨다. 다들 행복하게 살면서 내가 하늘에서 세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황소희 (모델, 방송인) + 랑이 (코리안숏헤어)

핑크색 재킷은 럭키 슈에뜨, 니트 팬츠는 로우 클래식 제품.

핑크색 재킷은 럭키 슈에뜨, 니트 팬츠는 로우 클래식 제품.

지금의 우리 엄마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동네 ‘캣맘’이었다. 내 고양이 엄마도 그 길고양이들 중 하나였는데, 어느 날 갓 태어난 나만 남겨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하루가 넘도록 밖에서 혼자 떨고 있는 날 소희 엄마가 집으로 데려온 지 5년이 됐다. 10kg쯤 나가는 내 모습을 보면 믿을 수 없겠지만, 그땐 몸집도 작고 약했다. 정말이다. 꼬리도 휘어져 있었다. 신기한 건 내가 집에 온 뒤 한 살 위인 스코티시폴드 올라에게서 갑자기 젖이 콸콸 나왔다는 사실.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고 일찌감치 중성화 수술을 한 올라가 말이다. 올라는 곧 죽을 것 같던 내게 젖을 먹이고 대소변도 핥아주며 날 키우다시피 했다. 이젠 내가 올라보다 두 배쯤 크다. 가끔 겁이 나면 어릴 때처럼 올라 품에 안기고 싶은데, 머리만 가려지는 듯하는 건 기분 탓일까? 1년 전쯤부터 올라가 아파 걱정이다. 피부병도 나고 콧물도 흘리고 귀엔 곰팡이성 염증도 생겼다. 스트레스로 인한 자가 면역 질환인가 하는 거란다. 난 올라를 정말 좋아하고, 엄마도 올라를 엄청 챙기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내 자리는 거실 책장 맨 아래의 오른쪽 칸.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종일 따라다니며 수다를 떤다. “엄마, 물이 없어”, “화장실이 더럽단 말이야.” 투덜대는 말도 엄마는 딱 알아듣는다. 엄마랑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같은 베개를 베고 잔다. 알람이 울리면 엄마를 깨우고, 엄마가 던진 탱탱볼을 물어오면서 놀기도 한다. 살이 너무 쪄서 여러 번 하진 못한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놀러 오실 때가 됐는데. 현관문을 열며 “할머니 왔다!” 외치는 목소리가 듣고 싶다.

 

오주환 (밴드 ‘이스턴 사이드 킥’ 보컬) + 요다 (샴)

그러데이션 디테일의 그래픽 톱은 크리스토퍼 케인 바이 톰 그레이하운드 제품.

그러데이션 디테일의 그래픽 톱은 크리스토퍼 케인 바이 톰 그레이하운드 제품.

우리 오빠는 음악 하는 남자다. 난 2013년 11월 2일, 오빠의 친형 집에서 태어났다. 오빠는 우리 형제들을 ‘요가’, ‘요나’, ‘요다’… 이렇게 이름 지었다. 다섯 형제 중 오빠와 사는 건 그가 유독 예뻐한 나뿐이다. 오빠는 날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고양이’라 부른다. 오빠 집엔 ‘단추’라는 여자 강아지도 있다. 열 살이 넘은 좀 지루한 믹스 견인데, 내가 오기 전까지 단둘이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다. 단추는 내가 툭툭 건드리면 슬쩍 비키면서 봐주는 척한다. 덤벼봤자 어떻게 하지도 못할 거면서. 난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음, 절대 예전에 한번 나갔다가 엄청 얻어맞고 돌아왔다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다.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여자인 난 집 안에서 리듬을 타는 것만도 지루할 틈이 없다고 해두자. 즐겨 듣는 아티스트는 제임스 블레이크. 오빠의 음악 작업을 가장 먼저 듣는 첫 번째 리스너도 나다. 이건 비밀인데, 요즘엔 덥 장르를 작업 중이다. 가끔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엔 오빠가 내게 속 얘기를 털어놓는다. 스마트폰 전화번호부를 만지작대다가 내게 말을 걸기도 한다. 우린 행복하다. 오빠는 잠든 날 깨물면서 깨우고, 날 목도리처럼 어깨에 두른 채 작업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번 화나면 잠을 따로 자는 혹독한 벌을 내린다. 분이 안 풀리면 카펫에 커피를 쏟고, 소파를 긁거나 오빠가 애지중지하는 기타를 쓰러뜨리기도 한다. 혼나면 어떡하냐고? 은근슬쩍 눈에 띄는 곳에서 혓바닥을 살짝 내놓고 자는 척하면 된다. 오빠는 내가 그렇게 하고 있으면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거든.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 “요다는, 사랑이야.”
(본 기사는 <보그 걸> 2015년 4월호 ‘The Portraits’기사를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