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Out Of The Shadows

2017.01.21

by VOGUE

    Out Of The Shadows

    정우는 영화 <재심>을 촬영하면서선입견에 대해 고민했다. 사회가 만들어낸 그림자를 걷어내고 타인을 보기 위해. 정작 대중이 배우 정우를 보는 선입견, 이미지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의 제작 발표회 다음 날 정우를 만났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배우와 잡지 스태프가 만나면 초반에는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이다. 정우는 먼저 ‘응사’의 쓰레기를 소환하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예를 들면 “여기 음악 10원어치만 줄여주세요.” 당연하지만 연기론은 무척 진지하다. 은 자기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테이크를 많이 간 영화라고 했다. 스스로를 괴롭혔다고. 수십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지만 8일 만에 촬영장에 복귀했다. 상처가 곪아 터질 수 있는 여름인데. 아직도 왼쪽 이마에는 기다란 흉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배우에게 얼굴을 다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기 때문에 영화 촬영이 멈출까 봐 조마조마했단다. 흉터는? “레이저 치료를 해도 흉터가 완전히 지워질진 모른다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실크 로브는 김서룡(Kim Seo Ryong).

    A4 7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영화 <재심>의 ‘최종고’라고 했다. 영화 관련 인터뷰를 하기 전에 해당 영화를 보기란 어렵다. 가끔 특별 상영을 하나, 대부분 잡지 마감과 시사회 일정이 어긋난다. 배려라고 할까, 가끔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보내오는데, 읽으면서 ‘이 배우가 이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까’ 궁금해지는 경우는 솔직히 많이 없다. 대부분 이런 표정이나 말투겠거니, 그려진달까.

    영화 은 억울하게 10년 동안 옥살이를 한 현우(강하늘), 그런 현우를 선입견으로 대하다가 돕게 되는 변호사 준영(정우)이 등장한다. 현우의 어머니로는 국민 엄마 김해숙이, 준영의 동료는 신 스틸러 이동휘가 맡았다. 선전한 캐스팅이다. 에 이어 또 한 번 함께하는 강하늘과 정우의 호흡이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궁금했다. 여기서 정우가 강하늘을 어떻게 바라볼까. 눈을 부라릴까, 글썽거릴까. 강하늘은 어떻게 맞받아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무거운 영화에서 정우는 특유의 ‘날것’ 같은 표정으로 숨통을 트이게 하겠지.

    테이핑 디테일 가운은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실크 셔츠는 김서룡(Kim Seo Ryong), 와이드 팬츠는 더스튜디오케이(The Studio K).

    영화 <재심>은 억울하게 10년 동안 옥살이를 한 현우(강하늘), 그런 현우를 선입견으로 대하다가 돕게 되는 변호사 준영(정우)이 등장한다. 현우의 어머니로는 국민 엄마 김해숙이, 준영의 동료는 신 스틸러 이동휘가 맡았다. 선전한 캐스팅이다. <쎄시봉>에 이어 또 한 번 함께하는 강하늘과 정우의 호흡이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궁금했다. 여기서 정우가 강하늘을 어떻게 바라볼까. 눈을 부라릴까, 글썽거릴까. 강하늘은 어떻게 맞받아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무거운 영화에서 정우는 특유의 ‘날것’ 같은 표정으로 숨통을 트이게 하겠지.

    아이보리 컬러 코튼 셔츠는 코스(Cos), 블랙 팬츠는 화이트 시빌리아(White Siviglia at John White).

    아이보리 컬러 코튼 셔츠는 코스(Cos), 블랙 팬츠는 화이트 시빌리아(White Siviglia at John White).

    <재심>의 제작 발표회 다음 날 정우를 만났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배우와 잡지 스태프가 만나면 초반에는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이다. 정우는 먼저 ‘응사’의 쓰레기를 소환하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예를 들면 “여기 음악 10원어치만 줄여주세요.” 당연하지만 연기론은 무척 진지하다. <재심>은 자기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테이크를 많이 간 영화라고 했다. 스스로를 괴롭혔다고. 수십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지만 8일 만에 촬영장에 복귀했다. 상처가 곪아 터질 수 있는 여름인데. 아직도 왼쪽 이마에는 기다란 흉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배우에게 얼굴을 다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기 때문에 영화 촬영을 멈출까 봐 조마조마했단다. 흉터는? “레이저 치료를 해도 흉터가 완전히 지워질진 모른다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금연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담배 피우는 포즈를 시켜서 미안하네요.
    좋죠. 간접적으로나마.(웃음)

    금연하면 군것질을 많이 해서 살이 찌던데요.
    석 달째 금연 중이라 그 시기는 지났어요. 5kg 찌긴 했는데, 다시 뺐어요.

    운동을 워낙 좋아하니까 체중 감량도 수월했겠네요. 근데 촬영 중에 부상을 입어서 운동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마는 한 50바늘, 손은 몇 바늘이지? 의사도 너무 많이 꿰매서 모르겠대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네요.
    유리창을 밀고 나가는 장면이었는데, 유리가 제 몸을 뚫고 나갔어요. 이마를 쓱 닦았는데 피가 철철 나고, 손을 보니 뼈가 보였어요.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이범수 선배님이 피 나는데도 “괜찮아, 괜찮아” 하는 신 있잖아요. 그거랑 비슷했어요. “괜찮아, 괜찮아”만 연발했죠.

    처음엔 당황하니까요. 그래도 나중엔 놀랐을 텐데요.
    그냥 창문 깨지는 순간 ‘이거 바로 테이크 못 가겠구나, 유리창 갈아 끼우려면 시간 걸리겠네. 오늘 촬영 접었다’ 정도였어요. 나중에 더 속상했죠. 작품 준비를 끝내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3, 4일 차에 다쳐버리니까 흐름이 끊기잖아요. 100여 명의 스태프들도 저 때문에 스톱하게 되고. 너무 죄송했어요.

    얼마 만에 촬영에 복귀했나요?
    8, 9일 정도요. 실밥을 좀 빨리 풀었죠. 자칫 터질 수도 있다는데, 뭐.(웃음) 터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손가락 때문에 연기가 좀 불편했어요. 감정 표현을 할 때 사물을 짚거나 옷을 잡거나 해야 하는데 제약이 있으니까요.

    영화 <재심>은 전작보다 스스로를 유독 괴롭혔다고요.
    맞아요. 영화 <스페어> <바람> <붉은 가족> 이후에 상업 영화 포맷이었던 <쎄시봉> <히말라야>와는 좀 달랐어요. 음… 주·조연을 나누긴 그렇지만, <스페어>라고 제가 처음 주연을 맡은 영화가 있는데, 그때 임하는 느낌과 비슷했어요.

    왜 그럴까요?
    저도 생각해봤어요. 왜 그럴까. 그전에는 어려서 상업 영화에 대한 무게감, 책임감을 크게 못 느꼈어요. <쎄시봉>은 선배님들도 많이 계셔서 저를 감싸주셨고, 진구나 효주처럼 나이는 어려도 이미 주연 포지션으로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히말라야>에선 막내였고요. 이번에는 김해숙 선배님이 계시지만, 기댈 곳보단 책임감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후배 강하늘에게 조언을 많이 한 건가요?
    평소 다른 배우들과 사적으로 만나는 편이 아니에요. 선배님 한 분, 동료 한두 명이 다예요. 하늘이랑은 친한 사이지만 작품 들어가기 전에 에너지를 교류하고 싶었죠. 그런데 하늘이가 드라마 ‘보보’인가 때문에 바쁘더라고요.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예요.
    맞아요. 그거 촬영 때문에 바빴어요. 촬영 끝났다는데도 바쁘고.(웃음) 녹음도 했나 봐요. 그래서 <재심>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봤어요. 물론 하늘이도 절 보고 싶어 했죠. 만나서는 <쎄시봉>과는 다른 캐릭터니까 걱정하는 마음에 하늘이에게 조언했던 거 같아요. 막상 현장에서는 너무 잘하더라고요. 괜히 조언했어요. 나나 잘할걸.

    한 번 호흡을 맞춰본 배우와는 연기할 때 더 수월한 면도 있나요?
    상대 배우와 연기를 맞춘다기보단 편해지려고 만나는 거예요. 친한 사람과 연기를 하면 작품에서 시너지가 생기더라고요. 간혹 잡지에서 대박 난 러브 스토리 영화인데 실제 배우들의 사이는 나빴다는 기사가 있잖아요. 극히 드문 경우인 거 같아요. 상대방이 악역이거나 내가 괴롭히는 배역일지언정 서로 친해야 연기가 잘돼요. 그래서 하늘이도 자주 보려고 했고요.

    <쎄시봉> <히말라야>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네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러게요. 저는 촬영 중간에야 그 사건의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괜히 의식하게 될까 봐 보는 걸 미뤘거든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어땠나요?
    가장 안타깝고 울컥했던 부분은 현우 어머니였어요. 제가 그분의 마음을 어찌 속속들이 알겠습니까마는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란 저렇겠구나 했죠.

    시나리오를 읽다 몇 번 울컥했어요. 준영을 못 믿던 현우가 마음을 열고 사건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약촌 오거리를 달리는 장면이에요. 본인은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닿았나요?
    <재심>을 잘못된 공권력, 사법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로 볼 수 있잖아요. 사람의 인생을 한 번의 재판이 망가트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니까요. 저는 좀 다르게 봤어요. 사회의 선입견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을 이해하고 믿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다가왔죠. 준영의 그런 모습이 따뜻했어요.

    제작 발표회에서도 사건보다는 준영이란 캐릭터에 집중해서 말하더군요.
    맞아요. 제가 연기한 이준영이라는 변호사를 사람이 아니라 사회로 봤어요. 준영도 사회의 일원이니까 처음엔 선입견으로 상대를 바라보잖아요. 그러다 달라지죠. 그게 이 영화의 진짜 의미 아닐까요?

    <재심>의 김태윤 감독조차 실제 주인공을 만날 때 선입견을 가졌더군요.
    그게 상대에게 한 번 더 상처를 주는 거예요. 저는 안 그럴까요?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요? 자신 없어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죠.

    정우 씨도 실제 주인공들을 만났다고 들었어요. 노력한 만큼 되던가요?
    그분의 아내와 아기를 먼저 봤어요. 아무래도 덜 어색했죠. 그다음에 남편분을 만났는데 그냥 “저분이 우리 영화에 나오는 ‘현우’ 씨구나” 했어요. 몇 마디 나누자 선입견이 깨졌고 굉장히 푸근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실제 인물과의 만남은 작품을 준비할 때 어떤 도움이 되나요?
    크게 작용하진 않아요. 만남보다는 캐릭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한 거 같아요. 네다섯 번 만나도 상대를 이해하기 힘들잖아요. 그보단 ‘나라면 어땠을까’ 하면서 비슷한 나의 경험을 떠올리는 게 감정을 증폭시켜요. 그래서 학교에서 많은 선배님들이 “배우는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던 거 같아요. 어느 선배님인지 모를 정도로 다들 하시는 말씀이에요.

    김태윤 감독은 배우에게 해석할 여지를 남겨놓고 시나리오를 쓴다고 해요. 시나리오에서 본인이 덧대거나 증폭시킨 부분은 어디인가요?
    뭐가 있으려나… 감독님이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다고 하셔서.(웃음) 저를 믿고 맡겨주셨거든요. 다만 영화 소재가 진지하니 초반 3분의 1까지는 캐릭터를 무겁지 않게 가져가려 했어요. 처음부터 진지하면 되레 나중에 힘이 떨어지거든요. 관객들도 서서히 감정 이입을 해야, 변호사의 마음, 현우의 안타까움을 더 느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본 후, 정우 씨처럼 선입견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라나요?
    솔직히 처음 작품을 읽을 때는 그저 재미있고, 준영이란 캐릭터가 인간적이네 정도였어요. 사명감 따위는 없었죠. 이젠 다르지만요. 흔히 변호사, 판사, 검사 같은 법조인을 표현하려면 그들의 특정 행동을 표현하잖아요. 저는 준영을 변호사란 직업을 가진 직장인으로 연기했어요. 그게 우리 아빠, 아들, 내 얘기 같아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이런 공감부터 선입견에 대한 생각까지 관객이 보는 시선에 따라 느끼는 부분도 다양할 거예요.

    영화의 메시지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나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지만 사람을 바꿀 수는 있다고 믿어요. 저도 영화를 보며 꿈이 생겼고, 그 꿈이 인생의 색깔도 바꿨어요. 우리 아버지도 그랬고요. 영화든 TV 프로그램이든 거기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요?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영화가 지닌 힘을 믿는군요.
    분명 영화의 힘은 있어요. 어쨌든 이것도 문화니까.

    <재심>이 배우 아닌 사람 정우에게도 영향을 끼쳤겠네요. 과거에 잘못한 일도 반성하게 되고요.(웃음)
    우선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타인을 보는 방식이 변했나요?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요. 촬영 끝난 지 이제 서너 달인데 큰 변화는 없죠. 하지만 가치관이나 생각이 조금씩, 천천히,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선입견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5년 전쯤, 자신에겐 특정 이미지가 없다고 했어요. 아직도 그런 거 같나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내가 어떤 이미지인지 의식하지 않아요.

    배우로서 쉽지 않을 텐데요.
    밥 먹을 때 옆에서 쳐다보면 의식하긴 하는데.(웃음) 그냥 가끔 주변에 물어봐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 같아?” 대부분 “친근하고 편하게 본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지나가면 다들 웃나?(웃음) 어머님도 아버님도 동네 꼬마도 절 보면 미소를 짓더라고요. 좋죠. 무서워하진 않으시니까.

    갖고 싶은 이미지는 없나요?
    그런 생각하고 행동하면 힘들어서 못 살죠. 어떤 이미지로 비쳤으면 좋겠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음… 그냥 괜찮은 배우였으면 좋겠죠. ‘괜찮음’ 속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재심>을 떠나보내면 뭘 할 건가요?
    인생이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계획은…(웃음) 농담이고요, 올해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 이틀 내내 시나리오 보며 고민하는데 결정을 못하겠네요.

    고민의 기준은 뭔가요? 예전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선정 기준 세 가지를 꼽았는데, 돈이랑…
    돈? 제가요? 전혀, 절대, 아니에요. 농담이었겠죠. 어디 기사예요? 저는 사람 냄새 나고 사실적인 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요즘 대세인 판타지도 고려해보죠.
    좋죠. 그런데 이질감 없는 판타지가 많이 없더라고요. 시나리오가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가 쉽지 않아요. 좋은 판타지라면 배우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죠.

      에디터
      김미진 (스타일링), 김나랑 (글), 유준희 (영상)
      포토그래퍼
      JANG DUK HWA
      스타일리스트
      권은정, 박상정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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