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플라스틱 사용법

2017.10.17

by VOGUE

    플라스틱 사용법

    우리는 플라스틱 인간일지도 모른다. 가장 영생의 소재지만, 가장 낭비되는 플라스틱에 대해 세계적인 작가들이 고민을 보내왔다.

    Questions

    1 당신에게 플라스틱은 어떤 의미인가?
    2 생애 최고의 플라스틱 제품이나 작품은?
    3 플라스틱 제품과 플라스틱 작품을 구분 짓는 기준은?
    4 플라스틱은 디자인의 평등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에 효율성에 제압당하면서 ‘플라스틱 디자인=싸구려’라는 이미지도 생성되고 말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5 19세기 말 최초의 플라스틱 등장은 소비의 대중화와 문화 민주주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물건의 범람과 낭비 문화, 환경오염도 불러왔다. 아티스트로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6 모든 조건이 허락한다면, 플라스틱으로 구현하고 싶은 것은?

    KakaoTalk_20171016_181133705

    RON ARAD

    이스라엘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론 아라드. 그는 1981년 가구 공방 원 오프 (One Off)를 열고 본격적으로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론 아라드 어소시에이츠(Ron Arad Associates)를 설립했고,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본인의 디자인 실험실인 론 아라드 스튜디오 (Ron Arad Studio)를 운영했다.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하거나 기존 디자인과 융합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 플라스틱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모든 소재는 훌륭하다. 다만 인간이 그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2 (한참 생각하다) ‘Vinyl’이라고 부르는 레코드. 아티스트의 얼굴이나 앨범명으로 디자인한 커버를 제외하고, 그 자체로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어서 재미있다. 재생하기 전까지 어떤 음악이 나올지 모르니 마법 같지 않은가. 특히 요즘처럼 모바일 기기로 손쉽게 음악을 듣고 영화를 감상하는 시기에는 더더욱 그 존재가 굉장한 발명품이다.
    3 플라스틱의 본질, 그 자체의 성질은 작품이 됐건, 일상 속 소품이 됐건 변하지 않는다. 종이도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이를 담은 내용에 따라 클래식한 고전이 되기도 하고, 매일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 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제작하는 사람의 자세, 소비하는 사람의 철학과 자세다. 플라스틱 역시 심각한 공해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선의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의료 기기를 만들었다. 즉 모든 소재에는 다양한 관점과 영향력이 있으므로 어떻게 하면 인류에게 더 도움이 될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아티스트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인류의 관계(Human Relationship)다.
    4 그동안 아트 작품을 돌이켜보면 메탈이나 나무를 변형해 작품에 활용해왔다. 나무나 메탈에 비해 플라스틱이 저평가된 것도 사실이다. 한편 플라스틱에 디자인을 입힌 이래 예술가들은 자유를 얻었으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으로 ‘혁명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 중심에는 카르텔의 역할이 컸으며, 선구자적 역할을 한 디자이너 안나 카스텔리(Anna Castelli)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가볍고, 비교적 휴대하기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어 대중이 좀더 쉽게 작품을 소유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또 모양과 색에 변화를 주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 플라스틱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큰 툴이다.
    5 런던의 디자인 그룹 폴 콕세지(Paul Cocksedge)의 프로젝트 ‘Change the Record’를 예를 들고 싶다. 12인치의 레코드를 재활용해 만든 휴대용 스피커로, 디지털 기기로 재생하는 저품질의 음원을 업그레이드해 재생하는 기술을 접목시켰다. 아날로그에 대한 갈망과 향수를 명민한 디자인으로 풀어낸 사례다. 공정에서도 타 스피커를 제작할 때보다 탄소가 적게 발생한다 하니, 이 정도면 친환경 소재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지 않나.
    6 3D 프린트에 관심이 있고, 이 자유롭고 명민한 소재를 이용해 책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어 아티스트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라면 그 작품을 직접 만져보게 디자인할 수 있으니, 그 과정만으로도 환상적이다. 이번 전시명도 ‘Plastic Fantastic: 상상 사용법’이 아닌가. 심지어 대량생산이 가능해 많은 이에게 보급할 수 있다. (론 아라드는 아인슈타인 재단(The Einstein Legacy)이 주최하는 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 기념식 ‘Celebrating a Century of Genius’ 참석차 몬트리올 출장 중이었다. 그는 아인슈타인뿐 아니라, 전 세계의 혁신가, 예술가, 과학자, 정치인 등 100명의 모습과 비전을 3D 프린트 책인 에 담았다.)

    KakaoTalk_20171016_181140496

    ANTONIO CITTERIO

    자신을 늘 건축가로 소개하는 안토니오 치테리오는 1975년 밀라노 폴리테크닉에서 건축과를 졸업했는데, 그보다 3년 앞선 1972년에 이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비앤비 이탈리아, 플로스, 에르메스 등 브랜드와의 협업뿐 아니라 컨퍼런스, 전시, 출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동 중. 황금콤파스상 이외에도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뉴욕 현대 미술관과 파리 퐁피두 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 작업을 시작한 70년대 초반부터 플라스틱을 써왔다. 내가 비앤비 이탈리아에서 한 첫 디자인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구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디자인의 한 소재일 뿐이다.
    2 카르텔의 모빌(Mobil).
    3 좋은 디자인이 작품과 제품을 구분한다.
    4 일회용 제품은 그렇기도 하지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5 현재 플라스틱에 대한 주요 이슈이다. 우리 모두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디자이너라면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영원한’ 제품을 디자인해야 한다. 플라스틱과 관련된 기술적 새로운 영역은 생물분해(Biodegradation)이다. 카르텔과 함께 최근 바이오 체어(Bio Chair)를 만들었다. 재생 가능한 천연 소재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 재질의 의자다.
    6 이미 플라스틱으로 모든 걸 만들고 있다.

    KakaoTalk_20171016_181141868

    PHILIPPE STARCK

    프랑스의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작은 시계부터 커다란 호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970년대 파리의 나이트클럽 라 맹 블뢰와 레 뱅 두슈를 디자인하며 주목받은 그는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의 재임 기간 동안 엘리제궁에 마련한 개인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담당하며 명성을 얻었다.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그의 디자인은 언제나 대중의 큰 인기를 얻고 있다.

    1 플라스틱은 인간의 창조성과 지성의 산물이다. 인간은 놀라운 창조자이기에 점점 나은 플라스틱을 개발해, 가끔은 놀랍게도 자연 소재보다 더 좋은 게 나오기도 한다. 카르텔은 이를 일찍부터 이해했다. 그 예로 의자 ‘라 마리(La Marie)’로 시작된 나와 카르텔의 협업은 의자 ‘루이 고스트(Louis Ghost)’, ‘제네릭 컬렉션(Generic Collection)’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2 나는 예술가가 아니므로 작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지 못하며, 전시에 가지도, 잡지를 읽지도 않기에 최근의 예술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무엇이 더 나은 플라스틱 제품인지는 모르지만, 소재가 무엇이든 간에 오랫동안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유일한 컨셉은 영원함이다. 물건을 마구 버려선 안 되므로,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소재, 문화, 감성적으로 오래가는 것. 이건 꽤 흥미로운 도전이다. 자칫하면 트렌드의 덫에 빠져, 패셔너블한 것을 만들면서 영원한 것을 만들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최고의 플라스틱 제품은 아주 아주 오래 쓸 수 있는 것이다.
    3 옛날에 나는 대량생산이 현대의 진짜 우아함이고 엘리트주의는 천박함과 동의어라 생각했다. 당시의 혁명이던 ‘민주적 디자인’을 만들었고 거기에 내 인생을 투자했다. 디자인한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유지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함이었다. 싸움은 20년이 걸렸지만 이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의자 가격에서 동그라미 두 개가 빠졌으니까. 이 혁명은 사출 플라스틱 가구가 없다면 불가능했다. 이 새로운 디자인의 주인공 역할을 한 것은 카르텔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비전, 철학, 도구는 완벽히 공생한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 훌륭한 프로젝트로 맞서왔다. 생태적, 사회적, 성적, 철학적, 기술적 문제를 이겨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4 나는 디자인을 패션의 도구로 보는 시각에서 거리를 두고 싶다. 순수한 창조, 비전, 첨단 기술의 긍정적 영원함에 집중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생태 프로젝트의 형태를 갖게 된다. 전기 교통수단, 자연 친화적 기술의 조립식 주택, 풍차와 태양전지판, 유기농 식품, 의료품 등. 세상은 현재의 소비 행태를 감당할 수 없다. 한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우리는 창조자이기에 긍정적인 저성장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특히 디자이너에게는 세상이 지금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의무와 책임이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이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건 트렌드가 아니다. 지금은 아주 중요하고 긴박한 상황이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새로운 소재를 이용한 플라스틱 개발이 중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식용이 불가능한 재료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KakaoTalk_20171016_181142768

    TOKUJIN YOSHIOKA

    도쿠진 요시오카는 스스로를 연구하는 엔지니어라고 여기는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이다. 2000년 도쿠진 요시오카사(Tokujin Yoshioka Inc.)를 설립한 뒤 제품 디자인, 건축, 설치 등 폭넓은 분야를 넘나들며 에르메스, 토요타 등 다수의 브랜드와 협업했다. 동시대적 재료와 수공예적 전통 기법을 혼합한 감성 디자인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1 플라스틱은 빛을 표현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소재 중 하나다. 플라스틱을 이용해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표현을 즐길 뿐 아니라 종종 소재 자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곤 한다.
    2 의자.
    3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사용자와 관람객이 알 것이다.
    4 플라스틱은 다양한 표현을 구현할 수 있는 소재다. 몰딩과 표현 방법이 자유로워, 유리나 크리스털로는 불가능한 것도 만들 수 있다. 또 예산이 한정적일 때 많은 관객과 사용자에게 퍼트리기 위해 자주 선택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5 디자이너로서 창조란 중요하지만 창조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 사회에서 디자이너는 창조에 따르는 책임과 여러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6 모든 지원이 허락되고 제약이 없다면, 나로선 플라스틱 사용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몰딩 방법처럼 무언가 제약이 있을 때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런 쪽의 창조에 더 끌린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CHUN HIM CHA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