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way, Freestyle

로스앤젤레스 아트 신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알렉스 이스라엘이 이 도시를 닮은 것이 아니라 도시가 이 21세기적 예술가를 닮아가고 있다. 그것이 젊은 예술가의 가장 강력한 브랜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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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이스라엘(Alex Israel)은 <보그>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 돌연 촬영을 중단시켰다. 그러더니 양말을 벗고 다시 프라다 운동화를 신었다. 훨씬 나아 보였다. 하지만 선글라스는 벗지 않았다. 그는 거의 언제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지난 2010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접 만들어 운영 중인 브랜드 ‘Freeway Eyewear’의 제품이다. 이 선글라스는 ‘작업이 아니라 사업’이며, 더 정확하게는 ‘그의 작품은 맞지만 예술 작품은 아니다’. 동시에 그는 자외선 차단 플라스틱 렌즈로 예술가로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마침 LA 윌셔가에 있는 마르시아노 아트 재단의 미술관에서 약 2.5m 크기의 렌즈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래저래 그에게 렌즈는 매우 중요한 프레임이다. 세상을 보고, 예술을 인식하는 틀. LA의 문화와 욕구, 이론과 실재의 현재성을 다루는 도구. 결국 선글라스가 ‘본다’는 절대적 명제 아래 빛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것은 일찍이 선배 아티스트들, 이를테면 크레이그 카우프만, 존 매크라켄 등에 의해서도 다뤄진 이야기다. 알렉스 이스라엘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게 아니라 경계 자체를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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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의 이 젊은 예술가는 검은 선글라스를 통해 실로 많은 것을 본다. 햇빛, 기후, 서핑, 자동차 문화, 고속도로 표지판, 할리우드, 컨버터블 자동차, 셀러브리티, 각종 로고… 부족한 게 있다면 예술적 기운뿐이었던 LA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 도시의 모든 요소를 자신이 감지한 쿨한 시대정신으로 묶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대단한 재능은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뻔하고 흔한 것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아티스트들이 클리셰를 강박적으로 싫어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LA가 가진 (약간은 촌스럽고) 대중적인 클리셰를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신선함의 한 표를 얻었다. 그는 LA라는 도시에 진심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LA에 사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힘을 예술가로서 발휘한다. 조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필름을 제작하는데, 물론 그 이상도 할 사람이다. 단, 그의 ‘미국 사랑’에 감탄하기 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그가 미술사와 미술 이론을 줄줄 꿰고 있으며, 아티스트가 되기 전에 미술관과 갤러리 등에서 일한 인재라는 사실이다.

알렉스 이스라엘은 지난 9월 말에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새 영상 작품 을 꼭 보길 바란다고 전했는데, 이 영상은 그의 정체를 파악하기에 꽤 좋은 기회다. 은 미술관 단체 관람 외에 아트 세계에서 번번이 소외되는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청춘 영화다. 극 중에서 남녀 주인공은 파티 끝에 키스를 하며 콘돔을 꺼내고, 여자 주인공은 “나, 처녀야”라고 말한다. 그 와중에 남자 주인공(노아 센티네오)은 알렉스 이스라엘이 만들고 몇몇 전시로 선보인 바 있는 그러데이션 파스텔 톤 서핑복을 입고 멋지게 파도를 탄다. 파멜라 앤더슨이 말리부 해변을 뛰는 장면에서는 미드 <베이워치>가 하이틴 버전으로 만들어졌나 싶다가, LA의 유명 나이트클럽인 ‘바이퍼 룸’이 등장하면 미드 의 캘리포니아 버전인가 싶기도 하다. 별을 몇 개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영화가 실제 10대들의 머릿속에 꽉 박힌 예술의 무게를 덜어내고, 새로운 창의적 세상으로 이끌 거라는 사실이다. 미술관에서 피카소와 르누아르의 작품만 보고 자란 10대와 을 보고 자란 10대가 생각하는 예술이 같을 리가 만무하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나처럼 아트 산업의 실제 고객과 관객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면, 그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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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티스트가 할리우드의 여배우와 사귀었다는 스캔들이나 어떤 스타가 누구의 작품을 샀다는 사실 이외에 그동안 할리우드의 존재가 LA의 예술 세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알렉스 이스라엘은 할리우드라는 상징에 대한 경외를 스스럼없이 표하고, 엔터테인먼트계의 결정판을 적극적으로 예술 작업에 끌어들인다. 태어날 때부터 할리우드가 꿈과 환상의 낙원임을 배웠을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할리우드가 발산하는 황홀한 매력을 200% 즐기며 ‘할리우드드림’을 실현하는 그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예술 작품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그는 워너브라더스가 제작한 소품을 뒤샹의 ‘레디메이드’ 방식으로 선보이고, 끝난 후 다시 돌려주는 형식의 전시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버린 요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LA 영화 산업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편 토크쇼 형식의 인터넷 방송인 는 알렉스 이스라엘이 LA의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2012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이 토크쇼는 꽤 이상해 보이는데, 바로 그 지점이 흥미롭다. 세트는 지나치게 단출하고, 조명은 지나치게 아마추어 티가 나며, 이스라엘은 지나치게 같은 패션(검은 선글라스에 블랙 수트)을 고집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옆모습 실루엣을 패러디한 자기 얼굴로 로고를 만들어놓고 호스트가 되어 이 조악한 세트에 LA의 유명인(혹은 왕년에 유명했던 이들)을 초대한다. 문제는 그 인터뷰라는 게 게스트들을 종종 당혹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 미신을 믿습니까? 교장실에 불려간 적이 있나요? 한번은 마릴린 맨슨을 불러놓고 물었다. 외모 중에서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습니까? 그의 대답은 “큰 음경 말고는 없습니다”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질문지를 읽는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하고, 어떤 효과음도, 리액션도 없기 때문에 종종 어색한 침묵과 신경질적인 반응, 그럼에도 꿈쩍도 안 하는 호스트의 뻔뻔함이 삼중주를 이룬다. 그러니까 게스트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가장 이상한 면을 속절없이 드러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알렉스 이스라엘은 “대체 이런 건 왜 만드느냐?”는 식의 질문에 “이런 모습이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하며 용감한 게스트들에게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Installation view of Summer, 2015 at Almine Rech Gallery, Paris Lens(Purple), 2014 and Lens(Yellow), 2015. Photo by Zarko Vijatovic

Installation view of Summer, 2015 at Almine Rech Gallery,
Paris Lens(Purple), 2014 and Lens(Yellow), 2015. Photo by Zarko Vijatovic

얼마 전 새로 옮긴 알렉스 이스라엘의 스튜디오는 시즌 2를 찍기에도 매우 적당해 보였다. 복층 구조의 창고 스타일인 이 스튜디오 안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막 들어왔거나, 막 나갈 예정으로 보이는 작품 박스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알렉스 이스라엘과 비슷한 또래인LA의 젊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이 화이트 스튜디오는 아마 앞으로도 꽤 텅 비어 있을 것만 같다. 알렉스 이스라엘의 스튜디오는 말하자면 컨트롤 타워이고, 일은 이탈리아의 플라스틱 공장이나 라스베이거스의 수족관 회사 같은 곳에서 해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터넷 세대인 알렉스 이스라엘은 인터넷으로 배운 자유를 예술을 할 때도 활용하는 것 같다. 세상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고,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있으며, 무엇도 될 수 있다는 욕구와 환상, 그리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예술가의 자유는 누구나 나의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민주적인 철학으로 확장되었다. 그가 <아메리칸 사이코>를 쓴 브랫 팩 문학 작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와 함께 미술 전시를 연 것도 구분 짓기를 포기한 자유의 발상에서 출발한 셈이다.

어쩌면 알렉스 이스라엘이 예술의 영역에 가장 포함시키고 싶었던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몇몇 인터뷰에서 “브랜딩이라는 말이 내게 더 어울린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예술을 대하는 그의 방식이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의 자기 브랜딩을 연상시키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실 그 브랜드라는 건 명확하다. 근대 이후의 예술가들이 작품과 작가를 철저히 분리해 모든 것을 작품으로만 말하려 했다면, 그는 작품을 말하기 위해 자신이 전면에 나선다는 것이고 작품과 자신의 이미지를 모두 구체적으로 형성하며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자신의 작품 가까이에 둠으로써 누구나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최근 <인터뷰>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As It Lays with Melanie Griffi th, live performance presented by MOCA Los Angeles, 2012. Photo by Stefanie Keenen

As It Lays with Melanie Griffi th, live performance presented by
MOCA Los Angeles, 2012. Photo by Stefanie Keenen

“나는 수많은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다른 많은 미디어와 그에 따른 플랫폼에 걸쳐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포인트에서 저는 이런 다채로운 역할이 유기적으로 섞여 하나의 작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우산 아래에 있고, 최종적으로 저는 제 작업의 맥락이 되는 것입니다.”

이 스튜디오의 백미는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창이었다. 불투명한 창을 통해 보는 바깥세상은 라이트 블루, 블루, 핑크, 라벤더 같은 색의 스펙트럼을 만들며 은은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많이 보던 풍경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헌팅턴 도서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LA가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가장 LA다운 공간에서 그는 도서관이 소장한 모던아트와 자신의 작품을 함께 배치하는 임무에 도전한 것이다. 그때 그는 워너브라더스의 아날로그 세트를 만들던 베테랑의 손을 빌려 로스앤젤레스의 일출 혹은 황혼의 빛을 트렌디하게 재해석한 파스텔 톤 배경을 만들었고, 로댕의 작품 뒤에 두었다. 그러자 로댕의 조각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 달라 보였다. 그는 역사와의 대화에 능하고,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에 박제되어 있던 거장들의 작품은 알렉스 이스라엘의 경의와 도발로 깨어났다. 걸작들 사이에서 유연한 존재감을 발휘하던 그의 자화상처럼, 그 역시 LA 예술 역사에서 그런 존재가 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아트 신의 발전과 함께 성장한 알렉스 이스라엘이 이 도시를 닮은 것이 아니라, 도시가 이 독특한 21세기적 예술가를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Maltese Falcon, 2013, Bronze. Photo by Rebecca Fanuele

Maltese Falcon, 2013, Bronze.
Photo by Rebecca Fanuele

Freeway Eyewear 관련 비즈니스는 잘되고 있나요?
네, 그건 아주 소규모 사업이에요. 우린 양질의 뿔테 선글라스를 만들고, 적은 수의 숍과 온라인 사이트(freewayeyewear.com)에서만 판매해요. 제가 그 이름을 제안했어요. 항상 LA의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선글라스는 필수품이거든요.

세상을 명징하게 보기 위해 어떤 렌즈를 쓰나요?
내가 만든 Freeway 선글라스 중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진회색 선글라스요.

인터넷으로 많은 만남이 시작되겠지만, 직접 만나거나 다니기도 해야 할 겁니다. 최근 당신은 어떤 만남을 가졌나요?
전 아주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에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즐기죠. 당장 어제 저녁 갤러리 디너에서도 몇몇 낯선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했어요.

LA 키즈였던 당신은 누구보다 이 도시의 문화적 특성을 잘 이해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당신은 꽤 행운아가 아닐까요?
고맙습니다. 그건 제게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제가 성장한 세상에서 알아온 익숙한 소재를 갖고 작업하는 일 말이죠.

LA에서 포착한 최초의 예술적 경험은 무엇인가요?
유치원에서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던 게 생각나요. 빨강과 노랑 페인트를 섞어서 오렌지색을 만드는 것도요. 그리고 몇 년 후에, 제가 다섯 살일 때, MOCA에 가서 클래스 올덴버그의 움직이는 커다란 스위스 군용 칼 ‘The Knife Ship II’를 봤던 게 기억나는군요.

사실 그 시절만 해도 LA의 문화적 기운은 지금처럼 역동적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가 LA로 돌아온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대학 때문에 3년간 LA를 떠나 있었어요. 하지만 LA를 떠나 있던 그 시간은 궁극적으로 제가 10대 때보다 훨씬 더 강렬히 LA를 좋아하게 만들었어요. 전 이 도시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맹세했어요. 떠나지 않기로 했죠.

Self-Portrait (Palm Tree), 2014,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Photo by Joshua White

Self-Portrait (Palm Tree), 2014,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Photo by Joshua White

LA의 어떤 부분에 자부심을 느끼고, 직접 영향을 받았나요?
뭐니 뭐니 해도 LA의 풍경과 기후죠. LA는 아주 다이내믹한 환경을 포괄해요. 언제나 놀랍고 너무나 아름다운 세계죠. 이게 이토록 많은 창의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그들이 현대사회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창조했어요. 지금껏 이곳에서 만들어져 발전되어온 형태와 콘텐츠는 저뿐 아니라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줍니다. 이토록 젊은 LA는 풍부하고, 진취적이고, 고무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어요.

LA 아트 신 중 어떤 사람, 사건, 철학 등에 감동했나요?
18세 때 존 발데사리의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젊은 아티스트들에 대한 그의 관대함과 연민에 진정 놀랐어요. 그는 이 아티스트 커뮤니티 전체를 지탱하는 척추 같은 존재예요.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LA 예술가를 이야기할 때 페루스(Ferus) 갤러리를 빼놓을 수 없더군요. 혹시 그들의 존재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은 바가 있나요?
페루스 갤러리가 문을 닫을 무렵까지도, 저는 태어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 페루스 못지않게 대단한 스토리텔러인 어빙 블룸(Irving Blum)과 친해지는 영광을 누렸어요. 페루스 갤러리가 존재했던 시절에 대한 그의 기억은 그의 놀라운 에너지, 열정과 함께 발산돼요.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좁고 가까운 LA 아티스트들의 사회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는지 이야기 듣고, 생각해보면 지금도 놀랍기만 해요.

당신은 매우 신세대적인 예술가예요. 당신의 행보는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온 전형적인 예술가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요. 플라스틱 공장과 작업하고, 수족관 회사와 콘텐츠를 만들고, 직물 공장과도 일하죠. 이런 활동이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정의 혹은 태도와 어떤 연관이 있나요?
난 나의 작품을 통해 모방하고 탐구하는 문화와 최대한 가까워지고 싶을 뿐이에요.

Self-Portrait (Selfie and Studio Floor), 2014,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Photo by Thomas Muller

Self-Portrait (Selfie and Studio Floor), 2014, Acrylic and bondo on fiberglass. Photo by Thomas Muller

그렇게 산재한 작품의 중심에 있는 핵심 논리는 무엇인가요?
나 자신과 LA 그리고이 도시와 저의 관계예요.

당신은 스스로 작품을 ‘브랜딩’이라고 말합니다. 브랜드의 컨셉은 어떻게 창안한 건가요?
어느 순간 내가 나 자신의 브랜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브랜드가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홍보하듯이, 소셜 미디어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툴을 제공했다고 생각해요. 나의 자화상이 곧 나의 로고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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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준 결정적인 전시는 무엇이었나요?
나의 첫 번째 전시일 거예요. 대학원에 다닐 때였는데, 그 전시가 향후 나의 모든 작업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었어요. 당시 나는 레디메이드 조각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기 위해 영화 소품 서른 몇 개를 빌려서 사용했어요. 난 그 소품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주추(Plinth)와 받침대에 올렸어요. 그리고 쇼가 끝나자 마자 소품 대여점에 바로 반납했죠. 이와 동시에 Freeway Eyewear를 론칭하고, 제 웹 시리즈 ‘Rough Winds’도 처음 선보였어요. 모든 핵심적인 내용이 이때 폭발한 셈이에요.

‘하이브리드 아트-엔터테인먼트’라는, 당신의 표현이 작업을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당신만의 문장으로 이 속성을 설명한다면요?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오브제를 실제 세상 안에 데려와 건설합니다. 그리고 내가 같은 영화를 만들 때는 그림을 그리면서 상상했던 세상 전체를 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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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메리칸드림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 답할 건가요?
나는 아메리칸드림이 세상 어느 곳에서 온 사람이든 간에 누구에게나 성실함과 인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늘 믿고 있어요.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As It Lays> 는 아메리칸드림의 LA 버전이죠.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모든 건 초상화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나는 LA의 문화 조각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초상을 가장 자연스러운 매체인 영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33명의 초상화를 그렸죠. 늘 100명의 초상화를 완성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작업을 재개하여 두 번째 전시를 열 계획이 있어요.

SPF-18 Poster. Courtesy of Alex Israel

SPF-18 Poster. Courtesy of Alex Israel

<As It Lays>의 게스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젤린(Angelyne)이요.(<우먼 체이서>라는 영화로 데뷔하기 전 LA의 빌보드 광고물 전문 모델이었다. 로빈슨 드버 감독은 그녀를 다룬 <안젤린>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평범한 관람객, 컬렉터, 당신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아니면 젊은 사람들. 어떤 관객에게 가장 관심이 있나요?
모두요. 제가 최근에 작업한 필름 프로젝트 은 특히 10대 관람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죠. 이 영화가 9월 29일부터 아이튠즈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어요. 당신도 꼭 봐주길 바랍니다. 내년 봄에는 홍콩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전시가 있을 예정이고요.

Sky Backdrop Mural, 2015, Acrylic on muslin, Site-specific installation at The Huntington Library, Art Collections and Botanical Gardens, San Marino. Photo by Fredrik Nilsen

Sky Backdrop Mural, 2015, Acrylic on muslin, Site-specific installation
at The Huntington Library, Art Collections and Botanical Gardens, San Marino.
Photo by Fredrik Nilsen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상상력, 창의적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팝 라디오? 이 노래 다음에 어떤 노래가 재생될지 절대 알 수 없잖아요. 영감은 제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곳, 모든 것에서 와요. 제 인생의 대부분을 여기 LA에서 보냈어요. 그 말은 내가 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걸 의미해요. 차 안에서 팝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할 때가 가장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시간이죠.

어린아이가 “예술이 뭔가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답할까요?
“그건 너 스스로 결정해야 해”라고 말할 거예요.

LA가 어떤 도시가 되길 원하나요?
노숙자들을 더 살뜰히 잘 챙기는 도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