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팬티의 수난사

2016.03.17

by VOGUE

    팬티의 수난사

    패리스 힐튼과 린지 로한으로 단련된 줄 알았던 우리의 눈에 앤 헤서웨이의 ‘노 팬티’가 포착되고 말았다. 팬티를 벗느냐 마느냐, 혹은 어떻게 입느냐. 이토록 뜨거운 팬티의 수난사.

    지난 12월 중순, 뉴욕에서 열린 영화 <레 미제라블> 프리미어에 등장한 앤 헤서웨이와 톰 포드 드레스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레드 카펫 행차를 위해 리무진에서 내리던 그녀의 몸짓 사이로 은밀한 부위가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수많은 대중과 사진가가 지켜보던 공식석상에서 팬티를 입지 않은 스타의 순간이 노출되자 난리가 났다.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된 채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고(하지만 검색 몇 번만 하면 원본 사진도 쉽게 볼 수 있고), 해외 매체들이 앞다퉈 그 소식을 전했으며(기사 제목은 ‘그녀의 팬티는 어디로 갔나?’ ‘앤 헤서웨이, 팬티 없는 미국을 위해 싸우다’ 등등) 속도 빠르기로 유명한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도 ‘앤 헤서웨이 노출’이 상당 시간 동안검색어 순위 1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 분야에 관해서라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패리스 힐튼과 린지 로한이 일찍이 우리를 신세계로 이끌어준 바 있다. 이들이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팬티를 입지 않은 채 다리를 벌리고 차에서 내리는 파파라치 사진은 수없이 노출됐는데,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처럼 차체가 낮은 슈퍼카는 어쩔 수 없이 ‘그순간’을 더욱 부각시키곤 했다. 그때마다 세 여자는 자신의 음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상관없다는 의도가 명백해 보였다. 앤 헤서웨이의 경우는 좀 달랐던 모양이다. 문제의 사건이 터진 바로 다음날, 그녀는 영화 프로모션을 위해 출연한 NBC <투데이 쇼>에서 밝혔다.

    “누군가 상처 받기 쉬운 순간이 담긴 사진을 지우기보다 사고 파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아주 슬퍼요. 그리고 마지못해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 성이 상품화되고 있는 이 문화가 유감이고요.” 그녀가 <베니티 페어> 컨트리뷰팅 에디터에게 털어놓은 말은, 드레스가 너무 타이트해서 속옷을 안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 게다가 리무진에서 내리던 순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스커트까지 걷어 올린 셈이니, 우리 말로 치면 ‘멘붕’ 상태라고 했단다.

    모델 에이전시 DCM의 원장이자 여전히 현역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노선미는 마침 앤 헤서웨이의 ‘노 팬티 패션’을 두고 지인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가 뭐가 아쉬워서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 팬티를 벗었겠어요? 의상을 위해 팬티를 입지 않았다가 운 나쁘게 걸리고 만 걸 거예요.” 온갖 소재와 디자인의 옷을 다 입어본 화려한 경력의 모델은 옷 맵시를 사수하기 위한 노력도 쏟아봤고, 수난도 겪어봤다. “앤 헤서웨이의 몸이 그렇게 탄력 있는 편은 아니죠. 그런 몸은 얇거나 붙는 소재를 입었을 때 T-팬티를 입어도 팬티 라인이 드러날 수 있어요. 탄탄한 몸을 가졌다 해도 실크 소재를 입으면 확실히 티가 나기 쉽고요. 엉덩이의 탄력뿐만 아니라 옆구리 살의 문제도 커요.” 실크 소재 드레스를 입을 일 없는 여자에게도 팬티의 막강한 존재감이 드러날 때가 있다. 겨울철엔 구경할 일이 적지만, 여름철이면 자주 목격하는 장면 중 하나가 얇은 하의 너머로 선명하게 드러난 여자의 팬티 라인이다. 라인이 라인으로 끝나지 않고 그 경계에 튀어나온 살까지 부각시킨다면 상황은 더욱 난감하다.

    “만약 제가 앤 헤서웨이였다면, 저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팬티 라인 때문에 신경 쓰느니 맵시를 위해 과감해질 수 있잖아요?”

    무대의상이나 드레스를 입는 여가수와 여배우의 팬티 라인은 특별 관리 영역이다. 핫팬츠, 캣우먼 의상에 버금가는 라텍스 팬츠, 스키니 진을 자주 입을 수밖에 없는 어느 여자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는 멤버 수에 맞춰 심리스(Seamless) 팬티를 다량으로 사들인다고 했다. 레드 카펫을 밟는 여배우는 좀더 조심스럽다. 허리까지 파인 드레스를 입을 때면 엉덩이에 ‘뽕’이 들어간 코르셋으로 몸매를 위장할 수도 없고, 결정적으로 포토월 부근의 밝은 조명에선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던 허점들이 눈에 띄곤 한다. 어느 톱 여배우의 스타일리스트 역시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시상식에 참가하는 여배우에게 시스루 드레스를 입혔는데, 좋은 디자이너의 의상이라 드레스 내부에 팬티 라인을 감싸는 코르셋이 부착돼 있었어요. 그 정도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인터넷에 뜬 사진들을 보니 드레스 너머로 팬티 색상이 은은하게 비쳐 나오는데….” 정작 쿨한 여배우야 무신경했다지만, 욕을 먹는 대상은 스타일리스트다(하기야 미국의 어느 매체는 앤 헤서웨이의 스타일리스트를 두고 “여배우를 말리지 못했으면 리무진에서 조신하게 내리는 법이라도 가르쳤어야 한다”고 조롱했다).

    입는 옷마다 돋보이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20대 여배우 A는 공식석상에 나설 때의 옷차림에 굉장히 민감해 하는 경우다. 스타일리스트는 여배우를 위해 드레스 안에 꼭 얇은 천을 덧대 바느질하고, 그리 짧지 않은 원피스를 입힐 때도 원피스와 비슷한 색의 속바지를 함께 준비한다. A의 스타일리스트가 말했다. “배두나 씨는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토론토 영화제에 초청됐을 때나 <코리아> 시사회 때 브라를 노출한 클리비지 룩을 선보였는데, 대중들은 그 정도를 두고도 왈가왈부 하더군요. 우리 정서가 아직 그래요. 간혹 T-팬티를 입는 사람들은 있지만, 공식석상에 설 때 해외 셀러브리티처럼 과감히 팬티를 생략하고 옷을 입는 국내 연예인은 없을 걸요? 그 차림이 설사 자신만 아는 사실이라고 해도요.” 여배우 A는 지난해 한 시상식에서 타이트하고 소재가 얇은 롱 드레스를 입었다. 스타일리스트는 드레스 속을 얇은 살색 천으로 도배했다.

    팬티를 ‘벗느냐 마느냐’ 혹은 ‘어떻게 입느냐’. 특별한 옷을 입어야 하는 셀러브리가 팬티를 벗는 일도 흔치 않은데, 평범한 여자가 맵시를 위해 속옷을 포기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옷 맵시에 죽고 사는 패션 피플 중에는 더러 ‘팬티를 벗어봤다더라’라고 회자되는 인물이있다. “실크 바지를 샀는데, 어떤 속옷을 입어도 바지 겉으로 라인이 드러나더라구. 그래서 어느 날은 팬티를 벗고 한번 나가봤지.” 아름다운 힙 라인을 가진 어느 여성이 팬티 실종 사건의 전말을 고백했다. 결과는? “느낌 한번 지저분했어.” 외관상의 맵시를 사수한 그녀는 대신 종일 내면의 찝찝한 기분에 시달려, 실크 팬츠와 그녀 사이에 적어도 T-팬티나 로라이즈 팬티를 두기로 했다.

    “하지만 요즘 레드 카펫에 등장한 한국 여배우들, 특히 신인들 보면 아예 다 벗고 나오지 그랬나 싶은 패션도 많잖아? 가슴은 그렇게 못 드러내 안달이면서 아래쪽은 철통같이 사수하는 것도 넌센스 아닌가? 특히나 가슴 쪽이 그저 노출을 위한 노출을 하게 되는 부위라면, 팬티를 벗을 땐 패션을 위한 필요에 의한 거라는 뜻이잖아.”

    앤 헤서웨이의 노 팬티를 지지하는 그녀는 유행처럼 불어닥친 ‘하의 실종’ 패션 앞에서도 남들과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음전함의 대명사여야 할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 역시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로 보이는 속옷이 노출된 적 있다. 국내 여자 연예인들을두고선 짓궂거나 저질스러운 남자들이 한 가지 유희로 미니스커트 안의 속옷이 보이는 순간을 캡처하곤 했다. 이제 가끔은, 여성 자신이 ‘이 정도 노출은 상관없다’는 듯 편히 찍은 사진을 스스로 SNS에 올리는 경우도 본다. 앤 헤서웨이 ‘사건’이 터진 바로 며칠 후,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 엘리자베스 리저도 센세이션에 휘말렸다. 이번에도 팬티가 문제였다. <브레이킹 던-PART 2> 관련 기자회견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리에 앉아 있는 묘한 각도의 사진이 기사로 돌기 시작하자 그녀는 바로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가끔 바지를 입을 때 속옷을 안 입기도 하지만, 나 그날은 분명히 속옷 입었거든? 멍청한 변태들아.” 아, 이토록 뜨거운 팬티의 수난사라니. 만약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가 그 유명한 브룩 쉴즈의 청바지 광고를 패러디해 ‘로라이즈 심리스 팬티’ 광고를 만든다면, 이런 문구도 나올 수 있겠다. “캘빈 진과 나 사이에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입은 듯 만 듯, 당신의 엉덩이를 적당히 감싸주면서 존재감은 두드러지지 않는 최적의 팬티! 그런 팬티를, <할리우드 리포터>의 한 저널리스트도 칼럼으로 권한다.

    “여자 스타들이여, 빅토리아 시크릿과 캘빈 클라인 매장에 가서 속옷 사는 데 투자할 때다. 최소한 신체의 어떤 부분은 좀 가려지는 게 낫다. 리무진에서 꼴 사나운 모습으로 내리던 앤 헤서웨이보다 <레 미제라블>의 탁월한 앤 헤서웨이를 더 얘기하고 싶으니까.”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권은경
      포토그래퍼
      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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