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중심부에 펜디 고객만를 위한 특별 공간이 마련됐다. 극소수 VIP만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공간 ‘펜디 프리베’. 비밀스러운 이곳에 〈보그〉가 먼저 초대됐다.
이태리 리구리아 해안과 티레니아 해안이 만나는 피옴비노(Piombino) 지방. 중세부터 이곳을 다스리던 루도비시 본콤파니(Ludovisi Boncompagni) 가문은 18세기경 로마 한가운데 가족이 머물 저택을 지었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으로 꼽히는 그 가문은 스페인 광장과 테베레 강 중간, 즉 로마 중심에 팔라디오 양식의 저택을 지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삶을 누렸다. 300여 년이 흐른 지금, 바로 그 건물에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비밀 공간이 탄생했다. 2004년부터 이 건물을 매장과 본사로 사용해온 펜디가 ‘팔라초 펜디’를 새롭게 변모시키며 VIP만을 위해 특별한 아파트 ‘펜디 프리베’를 마련한 것이다.
시작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무솔리니 시대에 로마 외곽에 지은 ‘팔라초 델라 시빌타 이탈리아나’로 본사를 옮긴 펜디가 그동안 본사로 쓰던 ‘팔라초 펜디’의 변신을 도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고객들에게 펜디만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위해 고심하던 펜디 본사는 이런 계획을 세웠다. 1~2층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펜디 매장을 마련하고, 위층은 VIP만 출입 가능한 ‘펜디 아파트먼트’, 일곱 개의 방을 마련한 부티크 호텔 ‘프라이빗 스위트’,그리고 최상층과 옥상에는 런던에서 인기인 레스토랑 ‘주마(Zuma)’와 루프톱 바를 준비하는 식.
“이곳은 단순히 호텔과 레스토랑, 아파트와 매장이 있는 건물은 아닙니다.” 펜디 회장 겸 CEO 피에트로 베카리(Pietro Beccari) 의 설명이다. 그는 100년 전 로마에서 시작한 펜디의 뿌리와 미래를 전할 공간을 꿈꿨다고 덧붙였다. “이곳은 우리의 미학적 감각이 살아난 곳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게임-체인저’가 될 공간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들도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을 겁니다.”
11개월이 걸린 이 프로젝트를 위해 다양한 인물이 의기투합했다. 전체적인 건물과 호텔 디자인은 건축가 마르코 코스탄치(Marco Costanzi)의 몫, 매장 디자인은 일본에서 일하는 인테리어 전문가 그웨나엘 니콜라스(Gwenael Nicolas)가 맡았다. 그리고 온전히 한 층을 VIP를 위해 완성한 ‘펜디 프리베’는 이태리에서 활동하는 디자인 듀오, 디모레 스튜디오(Dimore Studio)의 에밀리아노 살치(Emiliano Salci)와 브릿 모란(Britt Moran)이 작업했다. 이미 2014년 ‘마이애미 디자인’에서 펜디를 위해 작품을 선보인 이 듀오가 선택된 이유는? “우리는 디모레 스튜디오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아주 비슷한 창조적 접근 방법을 공유합니다.” 펜디를 이끄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설명이다.
소수의 허락된 고객만 1층 매장에서 점원의 안내에 따라 투명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오를 수 있다. 현관에 진입하면 두 개의 기둥과 함께 우리를 맞이하는 건 선홍색 카펫 위에 자리한 지오 폰티의 데이베드. 또 한쪽 벽에 걸린 루치오 폰타나의 네이비 작품, 디모레 스튜디오가 마이애미 디자인 전시를 위해 만들었던 막대를 교차해 완성한 조명이 우리 시선을 빼앗는다.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매장과 달리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각적 럭셔리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향하면, 옥색 벽과 셰브론 패턴의 원목 바닥이 맨 먼저 눈길을 끈다. 이탤리언 터치가 가미된 럭셔리와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디자인한 디모레 스튜디오는 건물 역사를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는 <보그>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전 구조는 유지하되 새롭게 복구하고 유지하면서 로마 스타일 팔라초 본연의 멋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습니다.”
응접실과 다이닝 공간을 나누는 디모레 스튜디오의 컬러풀한 유리 책장을 비롯해 이 아파트는 갤러리에서나 볼 법한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하다. 스웨덴 가구 디자이너인 브루노 맛손(Bruno Mathsson)의 라운지 체어, 무라노 글라스를 사용한 베니니(Venini)의 샹들리에, 이태리 건축가 마르코 차누소(Marco Zanuso)의 곡선이 돋보이는 암체어, 역시 이태리 건축가 겸 디자이너였던 이냐치오 가르델라(Ignazio Gardella)의 조형적 램프 등등. “모든 게 간결하지만 디자인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건 분명합니다. 작품은 이 공간을 방문하는 안목 있는 이들의 시선을 끌 겁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활동했던 제노바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주세페 가에타노 데스칼치(Giuseppe Gaetano Descalzi)의 다이닝 체어만큼 꼭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탈의실에 자리한 밍크로 완성한 소파입니다. 이보다 더 럭셔리한 건 없죠. 형태와소재는 매우 여성스럽고, 동시에 매우 펜디적입니다.”
보석함 같은 공간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이곳을 위해 준비한 예술 작품이다. 조 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아고스티노 보날루미(Agostino Bonalumi) 등의 작품은 곳곳에서 근사한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완성한다. 또 현관에서 만날 수 있었던 폰타나는 응접실 한쪽 벽에도 걸려 있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 벤투리니가 2009년 <보그 리빙>에 공개한 자신의 로마 별장에도 폰타나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당시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다. “금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우회적으로 보는 사람들, 깨뜨려버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소수의 고객을 위해 로마 중심에 공간을 비워두는 그녀의 철학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3월 10일 파리 컬렉션 직후, 패션계 스타들을 로마로 초대했다. 칼 라거펠트와 실비아 벤투리니가 새로운 팔라초 펜디를 처음으로 공개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펜디 프리베를 확인한 사람들의 반응은 실로 대단했다. 소피아 코폴라는 펜디 프리베의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피며 영감을 얻었고, 마르코 차누소의 암체어에 기대앉은 린지 윅슨은 곳곳을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올리느라 바빴다. 또 켄달 제너는 행사 직전에 방문한 트레비 분수에 대한 감상을 쏟아놓았다(펜디는 트레비 분수 복원을 위해 약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근사한 인물들이 아름다운 공간을 채운 풍경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실비아 벤투리니는 이렇게 전했다. “이곳은 펜디가 탄생한 로마의 영혼을 담고 있습니다. 로마의 영혼이야말로 제 가족과 펜디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죠. 그 영혼이란 과거와 미래,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역사와 혁신 사이에 자리한 독특한 긴장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