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리빙 ③ – T-Table
우리 집 현관 앞엔 늘 그녀(?)가 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포메라니안도 아니고 도도한 눈빛으로 나에게 아이컨택하는 노르웨이의 숲 고양이도 아니지만 도도한 금발머리에 시크한 블랙 앤 화이트로 코스프레한 아가씨가 있다. 무심한 듯 상냥한 듯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얌전히 앉은 그녀이지만 그녀와 마주했을 때 난 언제나 그녀가 반갑다.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나온 가구 중 ‘홀 체어’(Hall chair)라는 것이 있다. 홀 체어는 손님이 집 주인을 접견하기 위해 기다릴 때 사용하는 의자인데 홀의 현관이나 복도에 놓아둔다. 홀 체어는 신발끈을 묶거나 발을 올려 놓기도 해서 시트 부분을 패브릭이나 가죽을 씌우지 않고 원목이나 판재로 마감한다. 우리 집에도 홀 체어를 하나 두었다. 현관을 드나들 때 마다 마주치게 되는 이 아리따운 아가씨의 이름은 바로 T-table 이다.
스머프 마을의 오두막처럼 생긴 T-table 의 형태는 실제로 버섯과 숲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우리집의 T-Table처럼 홀 체어의 삶을 살기도 하지만 소파나 암체어, 테이블 옆에 두고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과 활용도 또한 알차다. 흙으로 구워 만든 세라믹 소재가 주는 오가닉, 친환경의 이미지는 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아가씨의 매력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나 본 듯한 독특함과 신비로움이다. 이러한 디자인으로 팔색조의 매력을 발산시킬 아티스트는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재미있다… T-Table도 재미있고 디자이너는 더 재미있다. 이젠 디자이너도 나라별로 돌아가며 인기몰이를 하는 듯 하다. 10여년 전 즘에는 장 누벨, 장 마리 마쏘, 필립 스탁 같은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들이 Hot한 대세더니만 요즘은 스페인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는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Patricia Urquiola)와 하이메 아욘 (Jaime Hayon)이 아닐까 싶다. T-Table은 하이메 아욘이 이탈리아 세라믹 마스터 브랜드인 ‘보사’ (BOSA)를 위한 제품이다.
하이메 야욘은 1974 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마드리드와 파리에서 산업 디자인을 공부 한 후 그는 1997 년 이탈리아 베네통의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아카데미 파브리카(Fabrica)에 입사하여 2003 년까지 디자인 부서를 이끌었다. 아욘은 2000년 자신의 스튜디오에서의 실습을 시작으로 2003년부터 개인 프로젝트에 전념했으며 런던의 David Gill Gallery에있는 ‘Mediterranean Digital Baroque’에서 처음으로 단편 전시회를 공개했다. 이 후 Vivid Gallery, Mak Vienna, Groninger Museum, Aram Gallery, 런던의 디자인 박물관, Mudac 박물관, 뮌헨의 토마스 갤러리, 워커 아트 센터, 퐁피두 센터, 바젤 아트 페어 등 전 세계의 주요 갤러리 및 박물관에 설치와 전시가 뒤 따랐다.
하이메 아욘을 어떻게 불러야 할 지가 고민이었다. 디자이너, 아티스트, 예술가 같은 관념적인 단어를 그에게 붙이는 것은 미안하기도 하고 도무지 어울리지도 않는다. 내가 고른 그를 위한 감투(?)는 ‘크리에이터’ 또는 ‘조각가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형태에 매우 집중한 흔적이 있다.)’ 정도? 정형적인 틀을 벗어 던진 아욘의 작품들을 보면 스페인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섞어 놓은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그냥 스페인 스럽다. 한계를 알 수 없는 기교와 독창성, 해학적인 모습들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도발적인 파블로 피카소를 닮았고 새와 동식물의 곡선과 형태에 대한 관찰은 아르누보의 대표자인 가우디를 연상케 한다. 스스로를 천재라 부르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초현실주의자 살바도르 달리의 상상력이 엿보이기도 하고 모든 작업들을 마치 놀이처럼 즐기며 디자인과 예술의 영역을 넘나드는 창의력은 하비에르 마리스칼을 꼭 빼 닮기도 했다.
T-Table은 이탈리아의 세라믹 마스터 회사인 ‘보사’(BOSA)에서 제작된 제품이다. 1976년에 창립한 보사는 모던한 디자인을 뛰어넘어 포스트모던을 아우르는 다양한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제작방식만은 고대 전통기법을 고수하는 특징을 가진 회사이다. 세라믹 소품 뿐만 아니라 가구와 조명, 공예품까지 넘나드는 활동성을 보인다. 황금과 백금, 구리, 에나멜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여 장식하고 마무리를 하는데 제품의 퀄리티는 실물을 보는 순간 없었던 지름신이 느닷없이 오실 만큼 놀랍고 뛰어나다.
전세계 50개국 이상으로 수출하고 있지만 보사는 절대 상업적인 생산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전통과 그를 위한 기준, 그에 대한 결과물을 일관성 있게 유지했고 그 결과로 얻게 된 제품의 심미성과 독창성으로 고객장부를 만들어 온 회사이다. 20년 이상 전 세계의 디자이너 및 타 분야의 업체들과 협력해오고 있는 모습은 개방적이며 수용적인 그들의 자세를 보여준다. 마르코 자누소 주니어,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마르코 모로지니, 루카 니케토, 미노티, 비앤비 이탈리아, 리네로제, 페라리, 에스까다 등 지금도 수많은 곳과 쉬지 않고 협력하고 있다.
아욘은 보사에서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아트워크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바우하우스’나 ‘데 스틸’과는 전혀 상반된다. 좋아하고 행복한 것이라면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동시에 핸드 드로잉과 수공예적인 요소를 매우 중요시 여긴 흔적들이 보인다. 마치 19세기 산업혁명 시절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의 ‘미술공예운동’이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 를 보는 듯 기계만능주의 대신 수공예의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외치는 모습 같다.
T-Table을 처음 본 순간 그랬다. 찍어내듯 복제된 것 들 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동화 같은 감성과 아욘의 위트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걸 우린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나 보다. 지루함과 나태함을 찾을 수 없는 그의 자유분방한 작품들을 혹자들은 센세이션 하다라고 얘기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정형화되어 굳어버린 생각과 관점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닌지 싶다.
모두에게 방어운전을 하라고 캠페인을 벌이고 모든 사람들이 방어운전 할 때 한 명 즘은 공격형(?)운전을 해야 세상이 재미나지 않을까? 디자이너의 사명감, 사용자의 편의성, 모두를 만족시킬 대중성… 뭐 이런 말들은 오늘 잠시 접어두자. 그리고 하이메 아욘과 그의 T-Table을 바라보자. 기분 좋은 미소 한번 짓게 된다면 그게 정말 좋은 게 아니겠는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은 좋은 디자인을 만나 내 삶과 맘이 좋아지는 것이란 의미가 아닐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갈구와 호기심은 분석하고 파헤치는 덕질과 함께 계속 된다. 우리 모두의 삶이 풍요로워 질 그 날 까지 Tornerò subito!
- 포토그래퍼
- BOSATRADE.COM, HAYONSTUDIO.COM,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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