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를 이해하는 법
만약 인류 역사에서 슈퍼카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더는 매혹과 역사를 믿지 않는 때일지 모른다. 스포츠카의 근원, 이탈리아 동북부에서 목격한 럭셔리 라이프가 그랬다.
‘대체 슈퍼카가 뭘까?’ 이 의문은 온갖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을 보며 ‘럭셔리’라는 말에 지칠 때쯤 시작됐다. 현대자동차 같은 대중 브랜드도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세상에서 ‘슈퍼카’란 말은 더 이상 고성능 스포츠카만 의미하지는 않는 듯했다. 결국 그 답을 찾기 위해 올봄 찾아간 곳은 태양이 온 땅을 노려보듯 볕을 내리던 이탈리아 동북부, 페라리부터 마세라티까지 지금껏 건재한 럭셔리 카 브랜드가 나고 자란 모데나와 볼로냐 일대다.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긴 건 1947년 설립 초기 빨간 벽돌 출입구를 그대로 쓰고 있는 마라넬로의 페라리 공장이다. 가이드를 기다리며 휴게실에서 검은색 말 로고가 새겨진 일회용 에스프레소 잔을 받았다. 플라스틱 잔만 아니었다면, 페라리 레드가 흠씬 둘러싼 이곳에서 이미 럭셔리의 체험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한 여성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새 하얀 오리가미 블라우스에 검은 슬랙스를 입고 붉은 페라리의 배경에 한 장면이 되어 서 있었다.
“혹시 괜찮다면 독일에서 온 고객과 동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미하엘 슈마허 등 유명한 F1 레이서들의 이름이 달린 블록마다 경외의 눈길을 주고 있을 때쯤 그녀가 정중하게 물었다. 원래 내가 신청한 것은 고객이 1:1로 가이드와 동행하며 공장 전체와 인근 박물관까지 둘러보는 프라이빗 투어 서비스다. 건물과 건물 사이 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코스다. 오후 2시 30분까지는 와야 충분히 둘러볼 수 있고 공장은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바로 앞 레스토랑이나 카페, 고급스러운 이탤리언 울과 가죽으로 만든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을 둘러보다보면 반나절을 충분히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그 고객은 3시쯤 도착했다. 나처럼 오로지 이 공장을 보기 위해 국경을 넘어왔으니 이해할 수밖에. 가이드가 말했다.
“제가 영어와 독일어로 번갈아 설명하겠습니다. 조금 빠르게 이동하도록 할게요.” 실은 내가 ‘페라리 고객’의 실체를 직접 대면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페라리는 올해로 설립 70주년을 맞이했다. 차에 문외한이라도 익숙할 새빨간색 스포츠카-페라리의 이미지는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확고한 인상을 갖고 있다. 패션계에서 대중성과 정통성 모두를 한꺼번에 갖춘 브랜드로 에르메스를 꼽듯이 자동차라면 페라리를 떠올리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겐 이 차의 문을 열고 내릴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외려 혼란스러운 터였다. 가난한 어린 시절, 수레에 페라리라 써두고 열심히 내달렸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비롯해 많은 스타들이 페라리를 성공의 종착지처럼 소유하고 있다지만, 그런 차를 몇 대씩 모으는 평범한 주인들은 나이가 지긋하고 여유롭다고 들었고, 그런 이들을 카메라 밖에서 목도하기는 쉽지 않았으니까.
페라리는 원래 한 해 생산량 7,000대를 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피아트와 지프 등을 생산하는 FCA 그룹의 새로운 경영진을 만나면서 그 오랜 룰이 깨졌다. 당시 비슷한 결정을 한 명품 하우스처럼 소수가 주는 가치를 잃을 거라는 팬(Fan)들의 우려와 달리 적어도 아직까지 그 희소성은 충분하다.
페라리의 사람들은 기다림의 시간조차(모델에 따라 길게는 4년쯤) ‘명차를 향한 체험’이라고 말해온 만큼, 자신들의 명성에 걸맞은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공장과 박물관 투어다. 1인부터 단체까지 세분화된 사전 예약 외에 지켜야 할 원칙은 하나뿐이다. 촬영 금지 그리고 일하고 있는 직원에게 질문 금지. 190cm는 될 것 같은 큰 키의 노인과 그의 아내가 비서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양해해줘서 고맙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넨 ‘진짜 고객’은 적당히 그을린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베이비 핑크를 기본으로 맞춰 입은 섬세한 스타일링, 롤렉스 오이스터 다이아몬드 콤비 커플 시계와 아디다스 스탠스미스를 매치한 모습에 나이를 가늠할 순 없었지만 그의 부를 측정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공장 뒤편 F1 머신 보관 창고에서 한참을 머물며 퇴근 시간을 앞둔 직원을 초조하게 만들어서다. “트랙은 이곳을 이용하셔도 되고, 미국이나 일본이나 일주일 전에만 얘기하셔도 배송은 문제없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프로들의 세계에서 함께 뛰었던 레이싱 카(혹은 머신)는 최신 기술의 빠른 적용 탓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도 종종 한 시즌을 뛴 후 이곳 창고로 은퇴한다. 혹은 일반 도로에서 탈수 없는 수준의 주문형 고성능 차도 왕왕 있다. 적게는 수십억, 탄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100억 이상을 호가한다. 물론 관리 비용은 별도다.
이곳에 보관된 차는 고작 1년에 대여섯 번 정도 주인을 태운다. 찰나의 기쁨이지만 누군가는 원하면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빠져드는 걸까. 여기에 속도와 정통성의 환상을 더해 가장 잘 관리하는 곳이 따라야 비로소 슈퍼카라 부를 수 있었다. 페라리가 브랜드 출범 70주년을 기념해 여는 인근 박물관의 전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나는 설립자 엔초 페라리부터 시작된 진화 과정을 소개하는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과 또 하나는 기념비적인 모델을 도열한 ‘인피니트레드(Infinite Red)’다. 런던 디자인 박물관과 협업했는데, 아마도 미국의 뉴욕(MoMA) 팀과 손잡았다면 자동차 마니아에겐 무척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을 거다. 확실히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코드’가 있다. 오로지 전통과 취향으로 고르는 자의 영광 같은 것 말이다.
“다른 브랜드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이쪽 고객들은 여러 대를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딸이 와서 한 대씩 살 때도 있긴 하지만요.” 얼마 전에 만난 람보르기니 서울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이해도 됐다. 자동차는 보통 성능과 가격이 비례하지만, 최소 2억 후반대를 넘어가면 메이커 간 경쟁을 붙이기는 어렵다. 기능의 수준은 비슷해도 미묘하게 그 감성이 다르다. 종종 산업 뉴스에서는 쉽게 비슷한 가격대끼리 묶어 판매 대수로 우위를 비교하지만 실제 매장을 방문하는 이들에겐 체감하기 힘든 논리다. 샤넬이나 디올을 즐겨 산다고 해서 그들이 발렌티노의 락스터드를 싫어할까?
물론 어느 회사나 숫자를 책임지는 관리자들은 판매량 때문에라도 보다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모델을 내놓도록 권한다. 기억하겠지만, 몇몇 패션 브랜드처럼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저가 전략은 유효하지만 그로 인해 브랜드 가치의 손실이나 충성 고객을 잃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에서는 아직까지 럭셔리의 본질, ‘기능에 충실함’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람보르기니가 최근 퍼포먼스에 부쩍 신경 쓴 우라칸 퍼포만테를 내놓은 것도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캘리포니아와 두바이에서 누군가의 ‘주니어’들이 사고 싶은 디자인에 스포츠카 계열에선 흔치 않은 네 바퀴 굴림 차를 3억원대의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았다. 시속 290km를 달리는 직선 트랙에서 궁극적인 안정성과 효율을 새로운 소재 개발로 꾀한 것은 굉장히 노골적이고 영민한 전략이다. 어찌 보면 운전 실력이 그리 출중하지 않아도 이 차를 부릴 수 있다는 다른 표현일 테니까. 게다가 검은빛을 띠는 새로운 카본파이버, 포지드 컴포지트는 마치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흘린 듯, 모습 자체로 스타일리시하다. 2년 전 마지막으로 람보르기니를 사갔다는 지드래곤이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비교하길 좋아하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볼 때, 자동차에선 고객층의 클래식 카 수집 여부 정도를 따지면 슈퍼카 메이커를 정의하기가 쉽다. 50년 전 도면을 찾는 고객의 요구에 호응하는 팀이 있어야 한다. 볼로냐에 위치한 람보르기니 공장과 박물관도 페라리에 비해 규모는 훨씬 작지만, 지금 변화를 좇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많은 드라마에서 수억원대 스포츠카는 사치의 상징이나 고가의 패션으로 활용해왔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보수적이고, 자동차 자체의 매력에 심취한 이들이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진실이다. 최근 4~5년 사이 거래량이 급증한 클래식카 경매 시장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람보르기니의 역사적인 모델 미우라는 최근 값이 12배까지 뛰었다. CEO와 기술 책임자, 창립 원년부터 머물고 있는 기술장인들의 공동 사인을 받을 수 있는 복원 프로그램의 제공과 인증서 발행, 아카이브 서비스를 완벽히 갖추는 데 ‘슈퍼카’들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 중인 이 시장에서, 차는 기호품이나 사치품이 아니며 공유 경제의 표식이 될 거라는 전망이 대세다. 명품 패션도 ‘렌트’하고 ‘셰어’하는 것을 합리적인 소비로 권하는 시대에 이들이 매진하는 서비스를 보노라니 오히려 슈퍼카에 대한 정의가 단순해짐을 느꼈다. 젊고 부유한 고객의 사고와 차고가 비슷해지고 럭셔리의 수식이 남발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옛 인기 모델의 복원을 위한 아카이브와 기술 지원은 럭셔리 브랜드를 가르는 또 하나의 계급 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늘 가장 빨리 최신 소재에 천착해온 럭셔리 카들이 패션의 유행과 맞물려간 걸 믿는다면, 서로 영향을 주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할머니의 버킨 백과 나의 보이 백, 바라 슈즈를 판매 당시 부속을 이용해 딸과 손녀에게 물려주기 위한 복원 서비스 같은 것이 또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 변치 않는 슈퍼카의 힘이 오늘날 보여줬듯이, 10대 시절부터 명품에 눈을 반짝이던 내게도 앞으로는 실천의 근거가 좀더 필요하다. 우리는 늘 많은 구두와 가방을 사면서 남자들에게 “평생 쓰고,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 샀다”고 말해왔으니까.
- 글
- 김미한(라이프스타일 칼 럼니스트)
- 에디터
- 윤혜정
- 일러스트레이터
- 박창용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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