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맥퀸의 수장 사라 버튼
알렉산더 맥퀸의 수장 사라 버튼은 패션계에서 보기 드문 과묵하고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녀의 뛰어난 디자인은 곧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조용한 방식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말한다.
사라 버튼(Sarah Burton)과 함께 피팅 현장을 보러 런던 클러큰웰 로드(Clerkenwell Road)에 자리한 알렉산더 맥퀸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푸른 셔츠에 헐렁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은 여인의 잔잔한 발레 공연을 보는 기분이었다. 사라는 벨크로를 덧댄 바늘꽂이를 손목에 차고, 뒷주머니에는 자를 찔러 넣고, 손에는 초크를 든 채 몸을 숙이고 가죽 코르셋 벨트에 바로 선을 긋고 있었다. 눈처럼 하얀 옷감에 영국식 수를 놓은 하이넥 드레스를 입은 맥퀸 하우스 모델이 이미 착용 중인 벨트에, 사라는 가죽에서 도려내야 하는 부분을 정교하게 그리는 중이었다. 클립보드, 펜, 줄자를 든 직원 다섯 명이 목을 길게 빼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라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물티슈 있는 사람?” 사라가 직원들에게 말했다.
맥퀸 본사 내부에서 일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외부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밖에서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회색 건물 안은 환상적인 꾸뛰르 의상으로 가득하다. 런던 위를 떠다니는 옷장 너머 비밀스러운 세계 ‘나니아’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라는 위를 올려다보더니, 주변과 옆방에 있는 직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믿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옷감이 걸려 있었고, 수납함에도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오늘 꾸뛰르 피팅 현장을 보게 된 것이 우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라 버튼은 프리스프링 컬렉션을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매일 같이 피팅을 했다. “모든 걸 제가 직접 손봐야 해요. 상업용 제품이라도요.” 그녀는 미소 지었다. “직접 손보지 않으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가위 좀 줄래?” 사라 버튼은 갑자기 앞에 놓인 밀리터리 바지 정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바지에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중요한 바짓단 뒤쪽에 핀을 꽂았다. 영국 근위대가 입는 붉은 제복의 띠, 짤막한 기장에 밑단이 넓게 퍼지는 플레어 실루엣이 돋보였다.
그녀는 노련한 손놀림과 날카로운 눈썰미를 통해 상상력을 쏟아내며 정밀하게 디자인을 구현했다. 사라가 날렵한 어깨의 재킷 아랫부분에서 에드워디안풍 검은색 태피터(Taffeta) 주름의 버슬(Bustle)을 싹둑 잘라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맥퀸 테일러링의 날렵함에 정교함과 낭만을 가미하는 과정이었고, 내게는 이 행위가 하나의 돌파구처럼 보였다. 그 옷을 입으면 가장 잘 만든 과거의 야회복과 강렬한 턱시도 정장을 입은 기분으로 나설 수 있었다. ‘남성-여성’이라는 20세기 패션의 낡고 진부한 관념을 뛰어넘는 의상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은 늘 드레스로 유명세를 치르지만 전 기뻐요.” 그녀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테일러링의 수요가 정말 많거든요.”
1996년, 당시 이름이 사라 허드(Sarah Heard)였던 그녀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다니면서 스물한 살 나이에 수습생으로 맥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구와 개발에 쓰인 모든 자료를 보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하! 사라는 절대로 뭘 버리는 법이 없어요.” 맥퀸의 텍스타일 전문가 킴 아벨라(Kim Avella)는 말했다. 그녀는 매일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한다. “사라는 정말이지 모든 걸 다 기억해요.” 리 알렉산더 맥퀸이 혹스턴의 비좁은 작업실에 있던 시절,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사라는 그를 보조하며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모든 것을 현실화시켰다.“그는 늘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제게 아주 친절했죠. 꼭 친오빠 같았습니다. 저는 수줍음이 많고 배경이 아주 달랐지만, 리가 저를 믿어주었기 때문에 저도 제 자신을 믿게 됐어요. 저는 일을 실제로 구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어요.”
다른 공간으로 가보니,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실험 정신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최근 사라는 러플 장식 시폰 가운을 만들 섬세한 흰색을 찾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아, 다들 저기에서 찻물 염색을 하고 있네요!”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벨라는 염색한 천 조각을 사라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왔다. “푹 담그는 거랑 넣었다 빼는 것 중 뭐가 나을까요?” 사라는 나를 작업실 밖 계단통으로 데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테틀리(Tetley) 홍차를 갓 우려낸 거대한 통 위에 소녀들이 서 있었다. 찻물에 천을 담그는 사람이 있고, 말리는 사람이 있었다. 세 소녀가 헤어드라이어로 시폰을 말리고 있었다. “다른 천에는 얼그레이를 써야겠네.” 아벨라가 혼자 중얼거렸다. “우유를 섞으니까 좀 다르구나.”
2010년에 맥퀸이 세상을 떠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이후로 사라는 8년 동안 꾸준히, 점차적으로 자기만의 문화를 일궈냈다. 굳게 닫힌 문 뒤에서 여성의 직감을 바탕으로 복원적이고 발전적인 문화를 일구고 있다. 그녀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크게 알려진 계기는 2011년 4월 2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TV 화면에 잡힌 것이었다. 그녀가 케이트 미들턴(영국 왕세 손비)의 결혼식에서 드레스의 트레인을 바로잡아주는 모습이었다. 미들턴이 입은 웨딩드레스는 그때까지 패션계의 일급 기밀이었다. 사라 버튼은 이 일로 유명 인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모든 언론의 관심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솔직히 전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아요.” 그녀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던 길에 내게 말했다. “사생활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후의 사치라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 생활을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주의 깊게 결정을 내리죠.” 내 테이프 녹음기를 애절하게 바라보면서 그녀는 덧붙였다. “모두들 제가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 세 가지를 가장 궁금해해요. 웨딩드레스, 리 알렉산더 맥퀸 그리고 우리 가족이요. 전 항상 이렇게 말하죠. 매일 출근해서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평가받고 싶어요. 주말에 뭘 하는지가 아니라, 일 자체로요.”
참고로 사라 버튼은 사진작가 데이비드 버튼(David Burton)과 결혼해 세인트 존스 우드에 살고 있다. 슬하에는 다섯 살배기 쌍둥이 세실리아와 엘리자베스, 두 살배기 막내딸 로밀리가 있다. 그녀의 일생에서 중요한 또 다른 사실은 체셔주 시골에서 다섯 남매 중 둘째로 자랐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음악 선생님, 아버지는 회계사였다. 사라는 아버지를 두고,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항상 ‘반복되길 원치 않는 내용은 절대 말하거나 쓰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왕족과 영화배우의 옷을 짓는 삶을 위한 탁월한 미디어 교육이었다.
내가 사라 버튼의 비밀 영역에 들어가는 귀한 기회를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새해 알렉산더 맥퀸의 새 플래그십이 본드 스트리트에 문을 열기 때문이다. 이곳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는 첫 매장 공간으로, 머지않아 황홀한 광경이 펼쳐질 예정이다. 맥퀸 매장 앞 공사장 가림판 안쪽으로 들어선 나는 내부의 장관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직은 공사 현장이었지만, 디테일을 중시하는 사라는 건축가 스밀한 라딕(Smiljan Radic)과 함께 인테리어 실물 크기 모형을 시험 삼아 만들어보았다. “드레스나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항상 캔버스가 아니라 실제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요.” 그녀가 설명했다. “실물을 보지 않으면 어떨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녀는 라딕과 함께 창문이 생길 자리에 서서, 베일 견본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에메랄드색에다 금빛 날개가 달린 딱정벌레를 손으로 수놓은 베일이었다. 두 사람은 최적의 밀도, 투명도, 드레이프를 따져가며 딱정벌레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이 베일로 2층 높이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커튼을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런 게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마커를 가져와서 그림을 그려가며 물었다. 언제나처럼 힐을 신고 세련된 스윙 코트를 입은 아벨라가 결정한 내용을 받아 적기위해 다가왔다. 그에 따라 인도에 자수를 의뢰할 것이었다.
이들은 목재를 덮은 중앙 공간으로 걸어갔다. 여기에는 겨울 컬렉션의 드레스를 지붕에 걸어 띄워둘 계획이었다. 세 층을 뚫어서 불규칙적인 각도로 튜브 모양 조명을 만들고, 비현실적으로 자라난 나뭇가지처럼 환상적인 곡선을 이루며 이어지는 조각 작품으로 주변을 감쌀 것이다. 현재 라딕의 아내 마르셀라 코레아(Marcela Correa)가 칠레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남미에 있는 두 분의 집에 해놓은 게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사라가 외쳤다. “뭔가 유기적으로 자라나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이 매장 공간은 뒤뜰과 체셔 들판에서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의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탄생했지만, 초현실적이고 미래적이기도 하다. 거대한 화강암에는 액세서리를 올리고, 컬렉션에 관련된 웅장한 태피스트리를 걸어 따뜻하고 독특한 질감의 배경을 만들 작정이었다. 올라갈 계단부터 만들어야겠지만 위층에는 맥퀸 팬들을 위한 특별한 순례지를 디자인했다. “꼭대기 층은 전부 기록물을 보관하고 다양한 전시회를 여는 공간으로 쓸 겁니다. 모두가 들어와서 리와 우리가 만든 옷을 봤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소리없이 웃었다. “고정적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지나치게 겸손하고 젠틀한 영국의 전형적인 인물로 알려졌지만, 사라 버튼이 경이로운 재능을 지니고도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다. 파리에서 열린 겨울 쇼를 마치고, 그녀는 ‘진화’와 ‘여성을 위한 부드러운 갑옷’(곤충에 비유해), ‘Paradise Found(되찾은 낙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자들 앞에서는 컨셉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번 겨울 컬렉션은 새 매장에서 처음 선보이는 제품이며, 케이트 블란쳇이 입었던 2018년 올해의 드레스, 붉은색 뒤셰스 새틴 리본을 나비 모양으로 감싼 검은색 턱시도 코트도 이 컬렉션에서 나왔다. 케이트는 ‘타임즈 업(Time’s Up)’ 운동에 동참해 칸 영화제에서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을 이끌던 순간에 이 옷을 입었다.
가끔 숨이 멎게 만드는 코트와 직면할 때가 있다. 사라는 내게 아카이브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녀가 얼마나 사려 깊은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따져 묻기를 싫어하는 반면, 옷을 보기 시작하면 말을 쏟아냈다. “케이트는 굉장해요.” 그녀가 새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신에게 무척 관대하죠. 거칠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여성으로서 자기주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용한 방식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죠.”
그다음 그녀는 나를 스튜디오 안쪽의 깊숙한 공간으로 초대했다. 꾸뛰르 고객, 신부, 할리우드 배우들이 입을 의상을 만드는 3층 작업실이었다(맥퀸 성공의 큰 부분이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작업실 수장 주디 할릴(Judy Halil)은 케이트 미들턴이 입은 웨딩드레스 제작을 감독한 인물이다. 맥퀸의 비밀스러운 명장 주디는 2002년부터 함께 일해왔다. “이런 건 다른 어디에서도 못 구해요.” 그녀가 시제품에 풍성한 러플처럼 달 흑옥 자수 동그라미를 자르면서 말했다.
이들은 맥퀸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고 성장하면서,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리가 여기로 내려와서 재봉틀을 잡곤 했어요.” 사라는 회상했다. “그는 자기가 뭘 조각내는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모델에게 옷을 입혀놓은 채로 큰 가위를 들고 바로 커팅을 했죠. 꼭 아름다운 춤 같았어요. 그는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저를 한계까지 몰아붙였고요.” 주디는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사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잔물결 같아요. 우리는 그녀의 눈 속에 뭐가 있는지 보려고 하죠.”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2층에 컴퓨터가 한 대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무 명 이상이 조용히 천을 자르고, 재봉틀을 돌리거나, 마네킹에 핀을 꽂으며 일에 몰두하고 있다. 사라 버튼이 진두지휘하는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의 감춰진 모습이다. “항상 그녀를 원하는 사람이 줄지어 있죠.” 할릴은 사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맞아요, 전 여기가 좋아요.” 사라가 웃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에 여기서 일하는 걸 훨씬 좋아해요.”
요즘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에 있는 많은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자주 찾는다. 그곳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인터넷에서 찾아 복사한 이미지에 의존한다. 반면 사라는 믿기 힘들 만큼 다른 방식을 취한다. 어쩌면 그녀가 반평생 다른 어디에서도 일해보지 않았기에(그녀는 이제 마흔넷이다), 자신이 의상 제작 과정을 프랑스 꾸뛰르 하우스처럼 지켜본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 환경이다. 이곳은 영국이고, 수평적이며, 유기적으로 자라난다. 아벨라는 말했다. “저는 처음 입사했을 때 여기가 아름다운 벌집 같다고 생각했어요.” 사라는 절대 자신을 전형적인 여왕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맥퀸같이 국제적인 브랜드에서 그렇게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인물을 비유하기에는 적절한 표현이다. 그녀와 옛 상사였던 리는 모두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지만, 그녀가 맥퀸 하우스 구축에 직감을 발휘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리는 포식 동물과 사냥감의 구도를 중시했어요. 그가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이었죠.” 그녀는 회상했다. “저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지만 컴퓨터, 자동차 같은 것 때문에 너무 단절돼 있다고 생각해요. 토속신앙, 여성이 땅과 연결돼 있다는 관념을 무척 좋아합니다. 여성이 전능하던 시절 말이죠.” 그러더니 그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영감을 얻고 몰입하기 위한 여행이 곧 다가온다. 지난번에는 영국의 전통, 민속, 고대의 공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콘월과 셰틀랜드를 찾았다. 이번에는 선사시대 고인돌, 레이라인, 구비 설화를 연구하기 위해 웨스트컨트리로 떠난다. 하지 무렵 사라 버튼과 친한 여성들이 스톤헨지에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광경이 상상된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더할 나위 없이 영국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영감을 찾아 우주를 누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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