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위로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의 박준 시인
2012년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후 6년 만의 신작입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대부분은 2년 전쯤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수가 채워졌다고 해서 바로 시집을 낼 수는 없었어요. 남은 2년은 그동안 쓴 시를 읽고 또 읽고, 읽다가 한 글자를 고치고, 다음 날 다시 고쳤던 한 글자를 원래대로 돌려두고, 그다음 날 다시 또 고치고. 이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을 두고 퇴고라 해야겠지만 사실 퇴고라는 말보다는 주저나 머뭇거림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어떤 시집입니까?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란 제목은 조금 의아할 것 같아요. 첫눈도, 벚꽃도 아니고 장마를 함께 보자니. 장마는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도 많잖아요. 저는 이 아무것도 아닌 ‘장마’가 아무것도 아니어서 좋아요.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장마’가 아니라 나와 무엇을 함께 보는 상대의 모습일 테니까요. 이번 시집은 어떤 완곡한 마음의 기록일 듯합니다.
시인의 말에서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첫 페이지에 어떤 예고편 같은 글을 두고 싶었어요. 가장먼저 이 빚을 단순하게 금전적인 채무라 생각해보지요. 적당한 빚-채무는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기도 하잖아요. 저의 경우만 보아도 그래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싶었던 숱한 순간을 갚아야 할 대출 이자를 떠올리며 참아낼 때가 많았지요.(웃음) 또 나아가서 이 빚은 누구인가에게 받은 도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신세를 지다, 마음에 빚을지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누구인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단순히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마운 마음으로 어떤 보답을 하잖아요. 빚이 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지요. 아울러 크게 보면 이 시집에 들어 있는 수많은 경험과 기억과 정서는 처음에는 빚 같은 것이었지만 어느순간에 혹은 시로 표현되면서 빛으로 변한 것이기도 해요.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맴도는 시어가 있었습니까?
‘잠’이나 ‘병’이나 ‘꿈’ 같은 시어들이었어요. 이것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현실인 동시에 비현실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시가 스며들기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유난히 제가 쓰는 말들에 자주 등장해요. 물론 제가 잠이 많고 조금 자주 아픈탓도 있겠지만요.
스타 시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시인, 미디어와 소통하는 시인 등 대중에게 친숙한 시인이라는 평은 어떤가요?
여러 평가에는 대부분 동의해요. 제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렇게 불러주시는 일은 당연하지요. 가장 중요한 시인의 일은 자신이 쓸 수 있는 좋은 시를 쓰는 것이에요. 여기에 더해 시를 많은 분들과 함께 읽고 소개하는 것도 시인의 한 역할이지 않을까 합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의 김현 시인
앱 ‘시요일’에 연재된 ‘김현의 시 처방전’을 책으로 묶어 냈습니다. 앱을 통해 독자의 사연을 받고, 그에게 시를 추천해주는 형식인데요. ‘앱과 시인’은 낯설게 느껴지는데 어땠나요?
사연을 받아 읽고, 그에 맞는 시를 고르고, 처방전을 쓰는 게 쉽진 않았어요. 그만큼 애틋함도 많이 느꼈어요. 저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것으로 생각했고요. 앱이라기보다는 종이와 손 글씨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것 같은,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가지고 읽고 썼다고 할까요. 편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짝사랑, 이별, 가족 문제 등 독자의 아픔과 고민을 접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나요?
나는 그때 어땠나,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 하고 그이들의 마음을 제 마음에 먼저 포개어 보았던 것 같아요.
‘이런 사연에는 이런 시’ , 같은 결정을 어떻게 내리나요?
고민의 실마리를 찾거나, 생각의 물꼬를 터보자는 심정으로, 정답보다는 정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물음을 주는 시를 고르려고 애썼어요.
책에 “이로써 당신 마음의 온도가 1도라도 올라갔다면, 그걸로 되었습니다”란 소감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온도를 높이는 시집이나 시인이 있나요?
강성은, 진은영 시인의 시를 종종 찾아 읽는 편이고, 다니카와 슌타로의 <네로-사랑받았던 작은 개에게>는 매년 몇 번씩 찾아 읽는 시중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퀴어 시선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를 읽으면서 따뜻한 기운을 얻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시 처방을 내리고 싶을 때, 좋은 시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품이 들더라도 책방에 가서 시집을 찾아 읽는 게 가장 좋아요. ‘시요일’ 같은 앱에서 매일 한 편씩 시를 추천받아 꾸준히 읽는 것도 괜찮고요. 무엇보다 작가들의 낭독회에 참여해서 시인이 직접 읽는 시를 듣는 경험도 시와 친해지는, 좋은 시와 만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정다운 시인은 “아무도 잘못한 게 없으나 누구나 외로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시를 찾는 이유기도 하다. 2005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나는 그때 다 기다렸다>를 쓴 정다운 시인이 <파헤치기 쉬운 삶>을 냈다. 이근화 시인은 이렇게 추천한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한 개인안에 이야기들이 어떻게 꾸려지며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슬픔의 힘을 만들어가는지 목격하게된다. 그것을 사랑의 한 방식이자, 시의 존재 이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이 시집은 “무엇이 튀어나올지 개뿔도 모르면서 손잡고 숲 속으로 걸어가는”(시인의 말 中) 우리를 향한 조금은 격한 응원가다.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이신구
- 일러스트레이터
- 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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