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유산균을 모함했나
‘전지전능한’ 유산균은 틀렸다. 이제 ‘국민 유산균’은 없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변기에 채변 종이를 붙이며 생각했다. 지난해 받은 DNA 검사 키트와 비슷하게 생긴 말끔한 외관에 내가 속았다. 입안 세포를 감지하던 그 가느다란 막대에, 이번에는 ‘그것’을 채취해 분석 센터로 보내야 했다. 자의 반 타의 반 주기적으로 받아온 건강검진에도 이런 치욕은 없었다. 학교에서 구충제를 나눠주던 시절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서울에서 제주도를 두 번 왕복 비행하고도 남을 가격을 지불하고 변기와 씨름하는 내 모습이 웃기고도 슬펐다.
시작은 노란 종이 상자에 든 유산균이었다. 과일이나 고기, 홍삼과 같은 건강기능식품이 주를 이루는 명절 선물에 그 샛노란 유산균이 고개를 내밀었다. ‘유산균이 대중화되긴 했구나’라는 짧은 논평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난데없이 해당 제품의 TV 광고 속 CM송이 재생됐다. 이런! 꽤 오랜 기간 등장한 그 광고 덕분에 유산균은 ‘어린아이부터 우리 가족 모두’에게 유익한 제품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추정한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4조9,850억원. 그중 프로바이오틱스 관련 제품이 두 번째(1위는 홍삼, 비타민은 3위)로 많이 소비된다. 이참에 나도 ‘섭취’해보기로 했다. 물과 함께 약처럼 삼키는 종합 비타민 대신 달짝지근한 유산균 파우더는 혀에 착착 감기며 괜히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결과는? 평생 장 트러블은 모르고 살던 내가 화장실과 멀어졌다. 배 속이 편안하고 배변 활동이 원활해진다는 제품 소개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결국 일주일 만에 그 노란 유산균의 자리는 아일랜드 식탁 안으로 밀렸다.
지난해 12월 세계를 휩쓴 ‘방탄 커피’의 창시자이자 <최강의 식사> 저자인 데이브 아스프리의 두 번째 건강 도서 <슈퍼 휴먼>의 국내 발간 소식이 들렸다. 맥주 캔을 들고 침대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런데 목차에서 낯익은 단어를 발견했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장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짧디짧은 흑역사로 남은 엑스 보이프렌드를 마주한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장내 유익균의 총칭으로 여기에는 유산균도 포함된다. 15장 분량의 프로바이오틱스와 장 건강 파트를 2시간 동안 정독했다. 잠깐, 맥주도 효모로 발효한 거 아닌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체내 면역 세포 70%가 집중된 장에는 수조 마리의 세균과 진균, 바이러스 그리고 그 외 미생물 군집이 서식하는데 이를 통틀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한다. 하늘 아래 같은 마이크로바이옴을 찾을 수 없다 말할 정도로 미생물 종류와 구조, 양 등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특정 질병과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결 지어 분석하는 경향도 보인다(예를 들어 천식 환자의 장 속에는 비피더스균, 아커만시아, 페칼리박테리움이 적고 칸디다 같은 진균이나 염증성 대사 물질을 배출하는 유해균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심지어 생명공학 회사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은 장내 세균 구성만 보아도 오차 범위 네 살 이내로 나이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바이오해커가 이를 놓칠 리 없다. 데이브는 자신의 마이크로바이옴의 약점을 분석하여 꼭 필요한 프로바이오틱스를 가까이하고 180세까지 장수하는, 책 제목처럼 ‘슈퍼 휴먼’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프로바이오틱스만으로 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자신의 장내 환경을 확인해야 하고,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조건은 의외로 쉽게 풀리는 듯했다.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진행한 장내 미생물 검사다. ‘천랩’, ‘쎌바이옴’, ‘마이바이옴스토리’ 등 한국에도 마이크로바이옴 검사 기관이 여럿 존재한다. 집으로 검사 키트가 도착(병원에서 전문의 상담 후 키트를 수령하는 경우도 있다)하면 직접 대변을 채취하여 택배로 발송한다. 3~5주 사이 검사 결과가 이메일이나 책자 형태로 도착하는데 마이크로바이옴 형태부터 유해균으로 인한 염증 수치는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주의해야 하는 질병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적혀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적합한 프로바이오틱스 영양제 추천도 잊지 않는다. 결과지를 받아 드니 180세는 아니더라도, 만성피로나 감기 없이 거뜬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만 같아 ‘그깟 채변 정도야’ 하는 마음도 살짝 올라왔다.
유산균 유목민에서 벗어났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첫 유산균 도전에는 실패했을까? “프로바이오틱스는 비교적 안전한 축에 속하지만, 살아 있는 균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드물게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중앙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최창환 교수는 덧붙여 설명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소화기 증상으로 설사나 복통, 복부 팽만감, 구역 및 구토 증상 등이고, 복용 초기인 일주일 이내 발생하죠.” 나 또한 유산균에 의해 일시적으로 불편한 신체적 변화가 감지된 거다. “의학계에서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작용 기전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한계로 지적하죠. 기전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안전성 측면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프로바이오틱스도 균이니 기저 질환이 있다면 감염증 혹은 패혈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프로바이오틱스 사균체를 투여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안일 뿐이죠.” 중앙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신승용 교수도 최 교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는 곧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는 물론이고 어린아이와 노년층은 유산균을 무조건 맹신하면 안 된다는 것. 그날 이후 장 면역의 핵심, 자궁 건강 지킴이, 떠오르는 다이어트 영양제 등 각종 타이틀 아래 유산균을 찬양하는 콘텐츠 사이 가뭄에 콩 나듯 유산균 부작용을 고발하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패혈증(균혈증), 장 허혈, 간농양, 심내막염 등 이름조차 무시무시한 질병이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먹은 뒤 발병하여 급성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이유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8년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시 주의 사항을 명시한 규정안도 마련했다.
<슈퍼 휴먼>의 저자 데이브 아스프리는 책을 통해 패혈성 인두염과 축농증으로 매달 항생제를 섭취한 이력을 고백했다. 그에게 면역 강화를 위한 마이크로바이옴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전기 자극을 일으켜 장내 근육을 자극하는 특수 알약을 삼키는 극한의 치료(왼 다리에 통제할 수 없는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강력했다)를 감행하며 수만 종의 프로바이오틱스를 선별하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말이다. 스트렙토코커스 써모필러스, 락토바실러스 람노서스, 락토바실러스 루테리, 비피도박테리움 인판티스… 책에는 따라 읽기도 힘든 균종이 등장하고, 흔히 과도하게 분비되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히스타민도 시판 프로바이오틱스 영양제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며 자주 언급된다. 이에 대한 중앙대학교 소화기내과 팀의 답변은? ‘일반화 불가, 검증 내용 부족’.
“장내 유익균과 유해균을 구별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관련 연구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프로바이오틱스의 종류가 워낙 방대하여 그 결과의 일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죠. 같은 종의 균도 개인에 따라 기능이 다르게 작용할 수 있어서 기자님이 진행한 장내 세균 검사가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다고 보긴 어려워요.” 최창환 교수의 설명이다.
유산균 예찬론자의 간증은 차고 넘친다. 취재차 만난 더엘클리닉 서수진 원장은 프로바이오틱스의 종류, 용량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진다면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핵심은 모두에게 완벽한, 전지전능한 유산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는 비타민보다 안전한, 누구나 먹어도 되는, 부작용 없는 건강기능식품인 양 소개하는 과대광고와 허위 정보에 휘둘리지 말길. ‘전지전능한 유산균’은 틀렸다. 이제 ‘국민 유산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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