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의 대세, 스무 살 이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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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대세, 스무 살 이영지

2021-03-19T12:26:18+00:00 2021.03.19|

Z세대를 압축한 스무 살 영지.

블랙 톱은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본인 유튜브에서 족발을 먹으며 다이어트를 선언했죠. 이영지다웠지만 다이어트를 할 줄 몰랐어요. ‘자존감’ 하면 이영지잖아요. 미용 목적만이 아니에요. 20대가 되면서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었어요. 대중에게 시각적 변화를 주고 싶었죠. 무엇보다 살이 찌면서 일할 때 체력이 달렸어요. 금방 숨이 가쁘고 피곤해져서 안 되겠다 싶었죠. 마침 다이어트 제품의 모델이 되기도 했고요. 여러 이유가 있죠.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전에는 몰랐던 체력의 한계를 느낀 거군요.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이 없어지면서 집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래퍼라는 직업 특성상 밤에 몇 시간이고 앉아 음악 만들고 야식 시켜 먹고 또 앉아서 작업하고 바로 잠들었죠. 사람 만날 일도 없어 활동량이 줄고 불규칙한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체중이 확 불었어요. 이럴 때가 아니다 싶었죠.

뮤지션은 왜 야행성이 많을까요? 저뿐 아니라 주변 아티스트도 새벽 4시, 6시에 작업하고들 있어요. 일반화할 수 없지만 다들 새벽 감성을 타나 봐요.

자카드 소재 재킷과 쇼츠는 민주킴(Minjukim), 샌들은 율이에(Yuul Yie).

10kg 이상을 감량했는데 만족하나요? 아니요. 체중은 평균보다 아래지만 일명 ‘눈바디’라고 하죠? 군살 정리하고 근육을 키우고 싶어요. 다른 부분은 엄청 만족해요. 목의 탁한 기운이 줄었어요. 밤에 야식을 안 먹으니 달고 살던 역류성 식도염이 완화됐거든요. 그 전엔 목도 자주 쉬고 염증도 있었는데, 역시 맵고 자극적인 음식, 야식 후 취침은 앞으로도 안 하려고요.

배달 음식 하면 이영지인데 말이죠. <고등래퍼>의 상금 중 절반을 배달 음식 플렉스 했잖아요. ‘배달의민족’을 안 쓴 지 몇 개월 됐네요. 밀가루 친구들이 그립지만 장점이 더 많아요. 오늘 <보그> 촬영에서도 다양한 핏을 입을 수 있어 좋아요. 언제까지 이 싸움을 지속할까 싶지만 체질이 변할 때까지 악착같이 하려고요.

이영지는 한다면 하는 인물이잖아요. 제가 그 타이틀에 목매고 있어요. 한다면 하는 양반! 일명 한량!

영지식 ‘한량’이군요. 다들 저보고 한량같이 산다고들 하는데, ‘한다면 하는 양반’이란 중의적 의미를 추구하고 있어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퍼프소매 체크 셔츠와 플리츠 스커트, 체인 벨트는 록(Rokh).

스무 살이 되자 ‘성인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많이 물어보죠? 고등학교 때는 버킷 리스트가 있었어요. 클럽 공연하며 테이블 부수기, 술에 취해 길바닥에 널브러지기. 막상 20대가 되니 그보다 훨씬 기상천외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보그> 촬영 같은 거. 하하. 재미난 일이 계속 일어나는 중이라 여한이 없어요. 더 바랐다간 큰일 날 거예요.

어떤 재미난 일이죠?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거, 유재석 님과 예능 프로그램 <컴백홈>의 MC가 된 거죠. 또 내가 한 말이 기사화되고, 추천한 음식을 사람들이 따라 먹는 걸 보며 나의 마케팅 효과를 체감해요.

직접 만든 휴대전화 케이스를 ‘완판’해 수익금 2억4,000만원을 기부한 것도 그중 하나죠.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나가지 말라면 나가지 마’라는 글귀를 넣은 케이스였죠. 디자이너의 ‘ㄷ’ 자도 모르는 제가 그림판으로 끄적인 걸 좋아해주셔서 놀랐어요. 케이스를 판 돈이 제 돈이라고 여겨본 적 없어요. 가끔 주변에서 “네가 쓸 수 있는데 아깝지 않냐”고 하는데 한순간도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처음 목표 금액은 1,000만원이었고, 이보다 덜 모이면 사비를 투자해서 기부하려고 했어요.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나요? 당연하죠. 인생의 큰 교훈을 얻었어요. 돈을 안 가져도 이렇게 마음이 풍족하구나, 뿌듯하구나. 스무 살 때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보셨는데, 기부에 뜻이 많아요.

체크 크롭트 톱과 비즈 장식 마이크로 미니스커트는 미우미우(Miu Miu).

기부해본 사람만 그 기분을 안다죠. 매우 벅차요. 카이스트에 766억원을 기부하신 할머님 계시잖아요. 처음엔 어떻게 저런 플렉스를 하는지 온전히 이해 못했어요. 후손을 위해 쓸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사회 공헌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줘요. 금액을 떠나 너무너무 할 만하고, 해야 할 일이죠. 이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고 싶어요.

스무 살에 큰 깨달음을 얻었군요. 술 먹고 눕기와 비할 바 아니네요. 그러니까요. 클럽 테이블 부셔보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요.

이런 욕구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기부는 직접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음악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죠. 선한 가치관을 노래한다기보다, 통찰하기 어렵고 마주하기 두렵고 이해가 안 되는 오묘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영지의 음악 철학인가요? 철학이라기보다 통계를 내보면 그런 음악을 해왔어요. 말로 표현 못하는 감정을 운율을 담아 표현해 긁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내 감정을 계속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검열하고 검토해야죠. 저도 아직 모르겠거든요.

‘타협’의 뮤직비디오는 실제 살던 오래된 연립주택에서 촬영했죠. 본인 아이디어인가요? 맞아요. 전형적으로 유복한 풍경의 집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19년을 편히 보냈어요. 연예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실과 타협할 일이 많았어요. 돈에 대한 타협, 관계에 대한 타협, 실제의 나와 보이는 나에 대한 타협 등. 그것에서 가장 자유롭던 공간에 가서 찍은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놀고 학원 숙제 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때, 아무 타협 없이 보는 그대로를 따라갔던, 내가 원하는 바를 하면 됐던 곳.

타협하지 않던 시절을 상기하고 싶었나 봐요. 완전히 순수했던 그 시절을 조금만이라도 다시 가져오고 싶었어요. 물론 그때의 태도와 현실을 잘 섞어야죠. 어느 정도의 타협은 필요하니까요.

현재는 다른 자췻집을 얻었죠? 엄마, 할머니는 아직 그 집에 살고 계세요. 올해 이사하게 해드리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가능해야죠.

니트 톱과 데님 팬츠는 그레이스 엘우드(Grace Elwood).

집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겠다고 하자 엄마랑 할머니 반응은 어땠나요? 더러운 데 왜 찍냐, 집 치워야겠다 이러셨는데, 제가 촬영 팀이랑 불시에 쳐들어갔어요.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나왔어요.

살림은 내보이기가 껄끄러운데 혼났겠어요. 괜찮아요. 결과물을 보시더니 만족하시던데요?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해요. “내가 미끄럼틀도 있는 엄청 잘사는 부잣집에 살다가, 일곱 살 때 여기로 이사 온 거야. 그때는 부도 모르고 명예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잖아. 집에 들어와서 첫마디가 뭐였는지 알아? ‘할머니 여기 두더지가 사는 집이야?’ 이랬어.” 만감이 교차했어요. 하지만 이내 ‘나 너무 대단한 거 했는데?’ 성취감에 젖었죠.

‘타협’의 가사가 쉽지 않아요. 주변에도 워낙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직관적으로, 더 쉽게 풀어서 쓰려고 연습하고 있어요.

어떤 식으로 노력하나요? 내 생각과 감정을 날것 그대로 담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공감하게 약간의 가공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단어를 쉽게 바꾸고, 중구난방으로 튀지 않고 맥락이 이어지도록 노력 중이에요.

메모는 어디에 하죠? 주로 스마트폰에 해요. 얼마 전엔 이걸 적었어요. “나는 모두의 유흥이다. 그리고 잠깐의 눈요깃거리다. 나를 똑바로 바라봐주지 않아도 되니까 유영하는 형체 그 자체로 즐겨달라.”

지금 영지의 마음인가요? 나는 모두의 유흥이고 눈요깃거리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대중은 연예인을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대로 판단하잖아요. 사람들은 얘는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쉽게 말해요. 그런 것에 끊임없이 회의가 들지만 바꿀 수 없다고 직감했어요. 내가 용쓴다고 되지 않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난 유흥이니까 그 자체로 즐기라고, 나를 유영하는 형체 그대로 보라고” 얘기하고 싶었나 봐요. 허탈했나 보죠. 지금 보니 왜 저렇게 썼는지 모르겠어요.

영지는 젊은 세대에게 가장 친근한 래퍼 같아요. SNS, 유튜브로 스스럼없이 소통하죠. 인스타 라이브도, DM에 답장도 많이 해요.

직접적으로 팬들과 부딪쳐서 그런 기분이 더 들지 않았을까요. 일부 연예인은 성에 들어가서 눈과 귀를 닫고 자신을 지키거든요. 사람들과 저는 상호 작용하는 관계죠. 나는 자유롭게 나를 드러내고,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취하고 마음대로 ‘쟤는 저럴 거다’ 상상하죠. 스스로 나를 소비자에게 제공한 거잖아요. ‘이영지의 본모습을 제대로 인식시켜야지’ 하기보다 ‘나’라는 매체를 자유롭게 소비하도록 열어두고 있어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아요. 물론 제게 주신 관심은 너무나 감사하고요.

언제 이렇게 정리했나요? 방금 정리했어요. 하하.

데뷔 초기엔 힘들었을 거 같은데요. 아주 징얼징얼 난리가 났죠. 어릴 때였으니까 나를 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웠는데 의미 없더라고요.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까 내가 태도를 달리해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관계로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데뷔 3년 차에 빨리 방법을 찾았군요. 지구 정복이 목표기 때문에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해요.

유튜브를 정말 마음대로, 일기장처럼 써요. 잘 짜인 것만 보다가 시원해요. 소속사에 처음부터 말했어요.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고. 아니면 안 할 거라고. 거짓되게 하면 오래 못 가거든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아요. 한 인터뷰에서 “<고등래퍼 3>가 래퍼로 진로를 굳혀준 계기가 됐다. 원래는 MC나 예능인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그 꿈은 유효한가 봐요. 한쪽에 큰 모빌이 달려 있으면 기울잖아요. 완급 조절을 해야 하지만 현재는 정신없이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고 있어요. 앨범도 만들면서 예능 프로그램 제안도 계속 받죠.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니 얼른 도장 깨기를 한다는 심정이에요. 웹 예능 프로그램 <영지전능쇼>, <영지발굴단>은 혼자 북 치고 장구 쳐서 힘들지만 그것이 발판이 돼서 유재석 님과 <컴백홈> MC 자리를 얻었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열심히 해야죠. 누가 알아요? 나중에 <엘런 쇼>를 할지요. 결국엔 예능 프로그램으로 나를 모르던 분들도 알게 해서 내 음악을 듣게 만들고 싶어요.

코믹한 이미지가 커지면 음악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일부 래퍼는 예능 프로그램만 너무 해서 그의 음악을 잘 안 듣게 돼요. 그런 경우가 있긴 해서 두렵기도 해요. 완급 조절책을 찾는 중인데, 우선 앨범이 빨리 나와야 할 거 같아요.

앨범 계획은요? 되는대로. 하하! 말 그대로 후딱 내는 것이 계획입니다. 열등감에 관한 싱글이에요.

<고등래퍼> 이후 큰 소속사에서 러브콜이 많았을 텐데 작은 소속사를 선택한 이유는요? 생각보다 문의가 별로 없었어요. 하하. 저는 한마디만 했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세요.” 갑자기 라이브 방송을 켜고, 휴대전화 케이스를 만들어 팔아도 나를 믿어주는 회사가 1순위였어요.

소속사에서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고 만류한 건 없었나요? 아직까진.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요. 인생에서 성실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가요? 인생의 모토기도 하고, 제가 그러지 못해 세뇌하는 거예요. 성실하자고 말해놓고 게으르면 누군가 돌을 던지잖아요. 다그칠 사람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두려나 봐요.

성실이 전통적 신조라면, 요즘엔 반대 경향을 추구하는 이들도 많아요. 요령을 추구하는 것은 반 핑계, 반 포기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성실이 답이에요. 성실은 좋은 결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태도죠.

언제 직접적으로 깨달았나요? <고등래퍼> 때 더 콰이엇, 코드 쿤스트 선생님이 성실, 꾸준함을 강조하셨어요. 그 두 가지가 뭐든 만든다고요. 당장 결과물을 내놓진 못해도 지속해나간다면 1개월, 5년, 10년 뒤 나를 미친 듯이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요.

성실하려고 정해둔 규칙이 있나요? 강박을 가지면 아름다운 결과물이 안 나오니까, 성실을 기본 세트로 깔고 살아요. 하루에 무조건 한 번은 작업하고, 관심 없는 분야의 음악도 많이 듣고 다양한 사람과 작업하려 해요.

가장 근거리 목표는 뭔가요? 나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을 때 얼른 EP 앨범을 내놓는 거죠. 제 음악을 듣고 보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주셨으면 해요!

화이트 펀칭 레이스 드레스와 프린트 양말은 시몬 로샤×에이치앤엠(Simone Rocha×H&M), 벨트는 미우미우(Miu Miu), 슈즈는 마린 세르×지미 추(Marine Serre×Jimmy Ch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