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매력의 ‘멀릿’ 헤어
‘멀릿’. 짧으면서 길고, 이상하면서도 멋진 이 모호한 매력.
‘울프(Wolf) 커트’, 공식적으로 ‘멀릿(Mullet) 커트’라고 알려진 이 헤어스타일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자동 완성 검색어 리스트가 나열된다. ‘섹시’, ‘흉함’, ‘이상한’, ‘힙한’ 등등. 이런 단어만 봐도 얼마나 극단적으로 평이 갈리는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정수리와 옆머리는 얼굴 라인이 드러날 정도로 바짝 자르되, 목덜미로 내려오는 머리는 꼬리처럼 길게 연출해 보는 각도에 따라 머리 길이가 다르게 보이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이 헤어가 주는 인상이 얼마나 강렬한지, 오죽하면 미국 국회에서 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0년 이란에서는 이 헤어스타일을 금지했고, 3월 호주의 어느 학교에서도 ‘지저분하고, 미풍양속과는 거리가 멀다’는 시대착오적인 이유로 금령을 내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때가 있듯, 이러한 마니아적 취향도 인기다.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은 고객들이 새로운 스타일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 중이다. 1년 넘게 이어진 자가 격리와 ‘록다운’ 사태 때문인지 더욱 극단적이고 강렬한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다.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와도 같은 현시대, 기존의 헤어스타일은 그에 걸맞은 심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 슈퍼모델 지젤 번천의 금발 웨이브 헤어를 만들어냈고, 그 밖에도 많은 셀럽의 헤어를 전담하는 헤
어 스타일리스트 해리 조시(Harry Josh)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서 튀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어요. 그 수단으로 ‘멀릿 커트’만 한 게 없죠.” 유명 헤어 살롱 ‘트리하우스 소셜 클럽(Treehouse Social Club)’의 디자이너인 미샤 지(Mischa G) 역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멀릿 헤어는 남성이나 여성,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젠더리스 스타일이라 더욱 트렌디한 느낌입니다.” 최근 들어 일주일에 적어도 5~7회 정도는 이 헤어 커트를 고객에게 스타일링할 정도다. ‘멀릿 커트’ 역시 그 질감이나 길이에 따라 고상하거나 펑키하거나, 디테일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깃털인 듯 아주 가벼운 층을 내는, ‘멀릿’과 ‘샤기’ 헤어의 중간 정도인 일명 ‘셜렛(Shullet)’ 스타일 역시 인기가 높다. “픽시나 보브 커트처럼 깔끔하게 손질할 필요 없이, 무심할수록 더 멋지게 완성됩니다. 헤어 커트 후 한 번씩 거친다는 애매한 상태의 ‘거지 존’을 겪지 않을 정도로 6개월 후에도 쿨한 느낌을 유지할 수 있죠.”
세심한 관리가 따로 필요 없다는 점은 ‘멀릿 커트’의 인기가 폭발하는 결정적 계기다. ‘록다운’ 기간 동안 헤어 살롱에 갈 수 없어 스스로 셀프 커트까지 시도한 사람들은 온갖 창의력을 발휘했다. 날카로운 부엌용 가위부터 공예용 도구까지 활용했다. 모델 엘라 엠호프(Ella Emhoff) 역시 그들 중 하나. 집 안에 틀어박힌 동안 곱슬머리의 귀 양옆을 바짝 밀어버린 그녀, 마치 헬멧 같은 형태의 ‘멀릿’ 스타일로 잘라버렸다. “옛날엔 이상한 헤어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멀릿’이 주는 ‘어글리 시크’ 느낌에 완전 빠져버렸어요.” 그녀의 얘기다. 지난 2월 프로엔자 스쿨러 쇼에서그 색다르면서도 기이한 스타일을 선보인 적 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이번 F/W 컬렉션 중 오히려 ‘멀릿 커트’를 선보이지 않은 쇼가 극히 드물 정도다. 시몬 로샤는 런던에서 이 헤어의 르네상스를 시작했다. 돌체앤가바나 런웨이에서는 쨍한 레인보우 컬러로 물들인, 무겁게 떨어지는 뱅을 포인트로 한 멀릿 헤어가 등장했고, 페라가모 컬렉션에서는 좀 더 내추럴한 텍스처로, 스포트막스 쇼에서는 좀 더 에지 있는 트위스트를 더해 연출했다. 반면 라프 시몬스 쇼의 헤어 스타일링을 지휘한 앤서니 터너(Anthony Turner)는 1960년대에 비달 사순이 보여준 ‘무슈(Mouche)’ 헤어에 미세한 컬과 쇼킹한 핑크 컬러의 ‘옹브레(Ombré)’ 스타일을 더해 멀릿 헤어를 과감하고 미래적으로 재해석했다.
물론 멀릿이 최근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헤어 사학자 레이철 깁슨(Rachael Gibson)에 따르면 이 스타일은 이미 수백 년간 존재해왔다. 바이킹과 로마인 사이에서는 군인들이 가장 즐기는 커트였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의 체온 유지를 위해 목덜미는 길게 유지하고, 적군에게 잡아당겨지는 일이 없도록 앞쪽 모발은 짧게 유지한 것이다. 긴 세월을 돌아 이 헤어스타일은 다시 1970년대에 데이비드 보위의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의 강렬한 레드 멀릿을 통해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지난해에는 리한나, 마일리 사이러스, 트로이 시반 등 팝 스타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머리를 잘라야 했는데, 선택지가 하나뿐이었죠”라며 ‘록다운’ 기간에 엄마가 자신의 머리를 잘라준 에피소드를 농담처럼 말했다. 그녀의 엄마 티시(Tish)가 커트할 줄 아는 유일한 헤어스타일이 바로 ‘멀릿’. 마일리의 아빠이자 가수, 또 멀릿 커트의 아이콘이기도 한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의 머리를 잘라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베테랑 헤어 디자이너 샐리 허시버거(Sally Hershberger)의 손을 거쳐 지금 마일리의 처피뱅과 어우러진 멀릿 헤어로 발전했다.
엘라 엠호프는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멀릿 헤어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한번 해보고 나니 멀릿 헤어의 한계까지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번 촬영을 위해 젠더 뉴트럴 스타일을 추구하는 뉴욕의 헤어 살롱 ‘베이컨시 프로젝트(Vacancy Project)’의 디자이너 마사미 호소노(Masami Hosono)는 엘라의 모발 윗부분은 더욱 가벼운 질감으로 연출한 반면, 아래쪽 모발은 레이어링을 주면서 해파리 같은 형태의 멀릿 헤어를 완성했다.
SNS를 통해 더 확산되는 멀릿 헤어의 귀환을 전문가들은 꽤 반기는 눈치다. 최근 몇 년 동안 헤어스타일이 정체된 것은 아닌지, 전반적으로 침체된 기운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염색이나 스타일링이면 모를까, 언제부터인가 헤어 ‘커트’를 신경 쓰는 사람이 줄어드는 분위기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점이 또 다른 창의성을 낳기도 합니다. ‘록다운’ 기간에 훨씬 더 획기적인 스타일이 등장하고 있어요.” 헤어 사학자 레이철 깁슨은 말한다. 뮤지션 도자 캣(Doja Cat)의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이번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녀의 시크하면서도 섬세한 레이어의 비대칭 멀릿 스타일을 만들어낸 자레드 헨더슨(Jared Henderson)은 멀릿 헤어를 시도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스스로 마음먹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는 자신감 넘치고,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안 써!’ 같은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멀릿’의 컴백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새로운 것’과 ‘자신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 멀릿의 유행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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