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패션과 체격의 상관관계

2022.10.26

by VOGUE

    패션과 체격의 상관관계

    MIA KANG 미아 강에게는 20대 시절 무에타이를 접한 것이 엄청난 터닝 포인트였다. “난생처음으로 제 몸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가 굉장히 강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죠.” 스트레치 새틴 코르셋 드레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많은 디자이너가 다양한 체형과 사이즈를 포용한다. <보그>가 패션과 체격 간의 강력한 연관성에 대해 모델 7인과 대화를 나눴다.

    몸이 돌아왔다. 이 뉴스가 2022 S/S 런웨이로부터 날아왔다. 록다운 기간에 주로 입던 트랙 수트에 가려진 피부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디올 미니 드레스 밑으로 쭉 뻗은 다리가 드러났고, 낮게 늘어뜨린 미우미우 허리 밴드 위로 배꼽이 윙크를 날렸으며, 로에베부터 마이클 코어스까지 많은 브랜드가 선보인 브라, 크롭트 톱과 피커부 컷아웃을 통해 미드리프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안이 다 보이는 것이 하나의 테마였다. 모든 굴곡에 붙은 패브릭도 그랬다. 그리고 몸에 맞춘 앙상블은 탄탄한 모래시계 같은 실루엣을 여실히 드러냈다. 코로나로부터 결별하는 듯하던 시기에 디자인한 이 컬렉션은 낙관적인 느낌을 풍겼다. ‘문을 박차고 나가서 놀아보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보여줘!

    이것은 여러 면에서 일반적인 패션 트렌드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의 컬렉션은 패션쇼 무대에서 ‘보디콘(Body Conscious, 몸매가 드러나는 꼭 맞는 옷의 준말)’ 룩을 한결같이 제안했다. 유럽과 미국이 9·11 테러와 이라크 침공에 따른 침체에서 벗어나던 당시, 주로 남자 디자이너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런던에서 활동하던 크리스토퍼 케인이라는 뛰어난 신예 디자이너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나텔라 베르사체부터 수프리야 렐레(Supriya Lele)까지 그리고 사라 버튼부터 아니파 음부엠바(Anifa Mvuemba)까지 전 세계 여자들이 정말 담대히 이끌고 있다. 여성이 트렌드 변화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거리와 런웨이에 등장한 새로운 룩은 다양한 체격을 통해 자유를 느끼며 몸의 크기를 찬양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누군가의 몸이 사람들 앞에 보여도 충분히 ‘괜찮은지’ 불안감을 초래하는 듯하던 신체에 대한 이전의 인식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이제는 판도가 뒤집혔다. 그리고 패션은 이제 ‘연령, 젠더, 능력, 몸매와 상관없이 어떤 몸이든 다 괜찮다’는 새로운 세대의 인식을 이해한다.

    렐레가 설립한 레이블의 직접 매출이 지난 2년 동안 네 배쯤 증가했다. 이런 기록을 달성하도록 다양한 소비자를 사로잡은 애티튜드를 설명하면서 렐레는 “몸에 대한 자신감이 바로 그 애티튜드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에이 몰라, 나 그냥 이 옷 입었어’라는 의식이 있는 거죠. 사람들은 즐거움, 편안함, 재미를 원해요. 저는 제 옷을 입고 저 자신을 믿어요. 저는 말라깽이가 아니라, 가슴과 엉덩이가 제법 커요. 그리고 ‘그래, 이게 바로 나야’라고 말하는 거죠.” 렐레의 컬렉션이 신체 노출에만 중점을 두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지닌 인도인의 유산(사리, 드레이핑이 핵심 테마) 그리고 범스터 진(Bumster Jeans) 시대였던 Y2K에 맞은 그녀의 성인기. “이 두 가지로부터 받은 영감과 더불어, 비율과 실루엣, 여성성에 대한 아이디어의 탐구를 통해 ‘노출’이라는 부산물이 나왔죠.” 즉 그녀는 패션을 창작한다. ‘시크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발망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표현대로, 그동안 무시돼오던 것이 ‘체형을 통한 시크함’의 연합체가 됐다. “패션은 우아하고 멋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정관념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성이 특정 체형이 아니면 자신의 몸을 숨겨야 한다고 느끼게 만들었어요.” 루스테잉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거죠. 그런 점을 지적해준 소셜 미디어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패션업계에 ‘너의 거품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말하고 있어요.”

    자신 있게 몸을 드러내는 것은 어떤 걸까? 자신의 피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성에게 그 답은 노상 바뀐다. 때로 그 몸은 감각적인 기쁨의 원천이다. 때로는 뛰고, 춤추고, 끌고, 들어 올리고, 아이를 낳고, 스스로 치유하고, 음파를 음악으로 바꾸는 몸의 힘을 한껏 즐기기도 한다. 몸은 경이롭지만 문제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즉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면을 반영하는 거울 속 이미지가 문제다. 이를테면 밋밋한 가슴, 늘어진 허벅지, 안짱다리, 임신선, 삐뚤삐뚤한 치아, 아주 작은 키, 너무 높은 연령 등이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전직 육상 스타였던 제닐 윌리엄스는 모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지나치게 근육질 몸매’라는 말을 들었다. “올림픽 대표 팀에서 훈련하며 근육 하나하나를 사랑하다가 ‘아니, 저 아가씨 몸이 너무 튼실한데’라는 말을 들으니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이 기획을 위해 촬영한 놀라운 여성 일곱 명 중 한 명인 제닐 윌리엄스가 회상했다. “저는 그것을 도전 과제로 받아들였어요. ‘얼마나 살을 뺄 수 있는지 보자. 조깅만 하고, 빵이나 맛난 음식은 절대 안 먹을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결실을 맺었죠. 일을 많이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몸이 싫어지기 시작했어요. 애증이 생긴 거죠.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패션 산업이 그 역사와 함께 칭송해온 체형은 비밀이 아니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젊고, 튼튼하고, 시스젠더(Cisgender)인 몸을 찬양해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백인을 선호했다.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여성적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오랫동안 발전해온 표현적 특성과 관련해 본질적으로 옳은 것도 없다. 그런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심리적 대가는 다이어트, 미용적 보강, 안티에이징 치료를 확산하는 사업체가 얻는 수익으로 보면 대략 수십억, 어쩌면 수조 달러에 맞먹는 엄청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대가는 금전적인 것만이 아니라 윌리엄스가 말한 신체와의 애증 관계에 지배당하는 여성에게 부과된 정신적인 것으로도 치러진다. <보그>가 과거를 바꾸진 못한다. 하지만 뷰티에 대한 엄격한 이상을 강화하는 데 일조해온 과오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데 전념할 순 있다. 그 목적은 기사에서 더 다양한 얼굴과 몸매를 대의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과 관련한 걱정으로부터 여성이 해방되도록 돕고 그들의 본모습을 찬양하는 패션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것을 패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으로 봐야 합니다.” 에스터 마나스(Ester Manas)가 설명했다. 그녀는 발타자르 델레피에르(Balthazar Delepierre)와 함께 201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을 브뤼셀에서 론칭했다. “저와 비슷한 체격의 여성을 위해 이 브랜드를 만들었죠. 저는 유럽 사이즈 44~46 정도를 입죠. 그리고 몸이 그렇다 보니 저는 포함된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요.” 마나스와 델레피에르는 누구에게나 맞는 한 가지 사이즈의 지향적 컬렉션을 디자인한다. 마나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 옷은 임신해서도 입을 수 있을 만큼 여성의 몸에 맞춘다. 그것은 자유의 한 가지 형태다. 디자이너가 체중계와 줄자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지 않나. 그 외의 자유는 좀 더 개인적이다. 윌리엄스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자신의 탄탄한 신체를 매우 마른 몸으로 만들었고 딸이 태어난 후 사라지지 않는 군살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너무 우울했어요.” 그녀가 그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에게 젖을 먹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죠. 아기가 내 군살을 가지고 놀고 있더군요.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아이가 내 몸을 사랑하는데, 나는 왜 그럴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패션 잡지 또한 자유의 한 가지 수단이 될 수 있다. 센트럴 플로리다에서 성장하면서 나를 짓누르던 미적 이상은 고등학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곳에서 인기 있는 여자아이들은 모두 작고 둥근 코를 가진 아담한 체격의 금발이었다. 영화 <American Pie>에서의 타라 레이드(Tara Reid) 같은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보그>는 내가 나만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도록 도와주었다. 샬롬 할로우는 풍성한 헤어 컬, 기네비어 반 시누스는 강렬한 이마와 날카로운 턱선, 신디 크로포드는 넓은 어깨와 육감적인 몸에서 나오는 자신감 등 각자의 아름다운 면을 어필했기 때문이다. “머리 색이 갈색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저를 ‘이국적’으로 여겼죠.” 크로포드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제가 성장하던 시기의 모델들은 크리스티 브링클리(Christie Brinkley)와 셰릴 티그스(Cheryl Tiegs) 같은 금발 미녀였잖아요.” 그 시대 모델들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나는 독특한 얼굴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에 성장하는 축복을 누렸다. 그렇지만 1990년대 모델들은 하나같이 삐쩍 말랐다. 2000년대 초 패션계를 사로잡은 동유럽 여성만큼은 아니었지만, 내 폭신하고 탄탄한 체격이 비교적 거구로 보일 정도였다. 이것은 전혀 오해가 아니었다. 나는 꽤 여러 번,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살 빼면 모델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LA 세트장에서 만난 미아 강에게 이 일화를 얘기하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세상에나, 저도 너무 잘 알아요. 잠들기 전 ‘다음 날 날씬한 몸으로 눈 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리곤 했어요. 그래야 행복해질 테니까요.” 홍콩에서 어린 시절 뚱뚱하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미아는 13세의 나이에 거식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 굶음을 통해 보상을 받았다. “저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들이 데이트 신청을 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정말 날씬해지면서 모델로 스카우트됐죠.” 미아는 심각한 섭식 장애를 가진 채 모델 일을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성인다운 굴곡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장애가 더 악화됐다. 청소년기 체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그녀는 식욕을 억제하려고 줄담배를 피우고 설사약을 복용했다. 27세가 되었을 때 결국 한계에 부딪혔고 며칠 동안 유예 기간을 갖기로 마음먹고 태국으로 날아갔다. 길가에서 한 무에타이 도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수강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그곳에 갔고, 그다음 날에도 가서 훈련을 받았어요. 저는 그렇게 6개월간 그곳에서 지냈죠.” 강은 이제 무에타이로 대련을 한다. 그렇지만 킥, 펀치, 엘보 공격 그 이상을 터득했다. “그 체육관에 간 것은 하나의 계시였어요.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외모에 대한 생각을 멈췄죠. 난생처음으로 제 몸에 귀를 기울였고, 몸을 신뢰하면서 제가 얼마나 강한지 깨달을 수 있었죠.”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 이상적인 몸매를 좇지 말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것)는 오늘날 굉장히 트렌디한 용어다. 그렇지만 유용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말은 여성이 자신의 체형에 상관없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날씬한 몸을 가짐으로써 여성이 얻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보내는 문화에서, 맞는 말이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13세의 미아 강이 배울 수 있었던 다른 교훈은 무엇이었을까? 무에타이가 만들어낸 그녀의 변화는 ‘자기 몸 긍정주의’의 외모 강조에서 벗어나 철학자 셀린 르뵈프(Céline Leboeuf)가 말하는 ‘자기 몸 자신감’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건 자신의 몸을 좋아하는 것과 관련되죠. 몸이 어떤 느낌인지,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플로리다인터내셔널대학에서 강의하며 이 주제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하는 셀린 르뵈프가 설명했다. “지속적으로 자신을 하나의 물체로 여기고 자신의 몸을 미적 측면에서 판단할 때 ‘자기 몸에 대한 감각’, 즉 ‘Sense of Embodiment’를 잃게 되죠.” 자기 몸 자신감과 상반되는 것이 바로 ‘자기 몸 수치심’이라고 르뵈프가 말했다. 자기 몸 자신감은 완전히 개인적인 문제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을 통해 느끼는 꿈결 같은 순간이 그 근간을 이룬다. 하지만 자기 몸 수치심은 사회적 요구와 금기의 산물이다. 그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늘 공공 재화처럼 여겨졌고 비평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성의 신체에 대해 사소한 트집을 잡을 때마다 자기 몸 수치심이 생겨난다. 셀레나 고메즈는 살이 쪘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았다. 아델은 살이 빠졌다며 폄하당했다. 엄지를 치켜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며 한 여성의 몸을 평가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며 어떻게 평가할지 나도 모르게 자문하게 된다. 이에 따른 결과는 정말 치명적이다. “오랫동안 저는 제 몸이 걸림돌이 되는 일을 겪었죠. 이를테면 저는 제 몸과 정신을 각기 다른 개체로 생각했죠. 그리고 제 정신이 중요했죠.” 아리엘 니콜슨이 말했다. “저는 남들 앞에 몸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죠. 가능하다면 몸을 숨겼을 거예요.”

    “신체 이형증(신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교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증상)은 굉장히 힘들어요.” 이만 하맘이 말했다. “사진 속 제 모습을 보면 뚱뚱하다는 생각이 들죠. 저는 군살을 빼려고 먹지도 않고, 하루에 두 번씩 운동하고 거기에 비크람(Bikram) 핫 요가까지 하고 있죠. 여전히 제 몸을 만족스러워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팔로마 엘세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와 같은 여성, 즉 똥배가 있는 여성에게 동일시할 수 있는 한 측면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당당히 제 몸을 보여주죠. 그렇다고  매일 자기 회의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몸에 대해 정말 마음이 편해질 때는 혼자 있을 때뿐이죠. 그리고 몸에 솔직해지는 것이 제 기준을 가지는 데 제가 져야 할 책임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봐,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이런 세뇌는 굉장히 강력하죠.”

    니콜슨, 하맘, 엘세서는 상당히 다른 사회적 위치를 차지한다. 홀쭉한 니콜슨은 전형적인 기존 모델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인 그녀는 여성으로 보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야 했다. 하맘은 ‘삶의 기쁨(Joie de Vivre)’ 정신을 짙게 풍기며 많이 가려주지 않는 수영복을 입고 해변을 활보하도록 요구받는 슈퍼스타다. 애슐리 그레이엄(Ashley Graham), 프레셔스 리(Precious Lee)와 더불어 엘세서는 새로운 세대의 모델들이 런웨이, 잡지 표지, 광고 캠페인에서 권리를 주장하도록 만드는 데 앞장서도록 강요받아왔다. 그러나 그들 모두 어느 정도의 자기 몸 수치심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것을 이겨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예를 들어 하맘은 무에타이를 시작했고, 니콜슨은 자신의 커뮤니티에 지지를 호소했다. “자기 몸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라고 여성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르뵈프가 지적했다. “수치심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사회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엘세서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바뀔 필요 없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해!’라고 스스로 상기해야 하죠.”

    시스템을 바꾸는 방법은 뭘까? 구조적 인종차별, 계급주의, 능력주의, 여성 혐오, 안티 트랜스, (분명히 내재화된) 안티 지방(Fat) 편향의 해체라는 힘든 임무에 필요한 소프트 툴인 ‘대의적 표현’에 관한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물류 측면만 생각해보자. 패션의 체형 포용성도 공급 체인에 따른 문제이며, 그 체인의 첫 번째 연결 고리 중 하나가 바로 전시장 샘플이다. 전통적으로 디자이너는 피팅 모델을 활용해 런웨이에서 선보일 의류 샘플을 제작하며, 이 모델은 전통적으로 영국 사이즈 6 정도로 작은 편에 속한다.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매장에 납품하기 위해, 이 디자이너들은 패턴 제작자들과 협력해 옷을 다시 만든다. 패턴 메이킹이 더 큰 체격을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지만, 사이즈가 커질수록 변화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다른 문제는 더 큰 체형을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이즈 14의 여성이 키 182cm의 근육질 체형일 수도 있지만 159cm의 풍만한 체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해결 방안이 바로 신축성 있는 패브릭이다. 최근 니트웨어와 라이크라 혼방의 인기가 살짝 높아진 것에 주목해보자. 그렇지만 원래 사이즈 6에 맞춰 만든 샘플 재단을 큰 사이즈로 정확하게 재현할 경우 패턴의 재배치가 어렵고 비용이 더 들어간다. 이는 전형적인 영국 여성이 약 16 사이즈를 입을 때 하이패션 매장과 디자이너에게 큰 사이즈를 제공하도록 강요하는 데 순전한 자본주의 논리가 널리 먹히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

    가능한 한 가지 변화는 샘플링 과정의 진화다. 마나스와 델레피에르는 자신들의 패턴을 다양한 체형에 테스트한다. 누구에게나 맞는 한 가지 사이즈 의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가브리엘라 허스트 같은 디자이너는 다양한 패션쇼 모델의 캐스팅을 기대하고 특정 모델을 염두에 둔 채 룩을 개발한다. 그다음 패션 잡지 기자들과 유명인의 스타일리스트가 요청할 경우 그 옷을 빌려주기도 한다. “자신의 업무 흐름에 그 옷을 계획한다면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죠.” 허스트가 지적했다. “그리고 함께 일하게 될 공급업체를 찾는 거죠. 즉 우리는 신발을 유럽 사이즈 43까지 생산하고 있어요. 이것은 저희 방식대로 ‘이봐, 누가 여자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건 우리 일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죠.”

    테크놀로지 또한 패턴 메이킹의 숫자적 문제를 해결하고 리테일러에게 더 다양한 사이즈를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장 카산드라 딕스(CaSandra Diggs)가 지적했다. “발명가가 아니다 보니, 정확한 해결책이 뭔지는 잘 몰라요. 그렇지만 CFDA가 이런 노력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디자이너들이 큰 사이즈가 생산 차원에서 의미하는 바를 알아낼 수 있도록 그들을 지원하고, 교육하고, 자원과 연결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프라가 필요하죠.” 그러면서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인프라 구축이 변화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딕스는 패션 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힘을 합쳐 이 문제를 다룰 ‘유엔 스타일의 프레임워크’을 개발하자고 꾸준히 제안한다. 브랜드에서 컬렉션 중 일정 비율을 좀 더 넉넉한 치수의 샘플을 만드는 데 동의하고, 매장이 더 큰 사이즈를 구매하기로 약속하는 등의 약정을 마련해놓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그 프레임워크에 보편적인 사이즈 규격이 포함될 수도 있다. “달성하고자 하는 수준을 설정하면 책임감을 불러일으키죠.” 딕스가 지적했다.

    그런 프로그램은 복잡한 직소 퍼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일부 조각이 어떻게 누락됐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작고 뚱뚱한 사람들에게, 그런 논의의 상당 부분은 유행 중인 것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와 관련되어 있어요. 이를테면 ‘스웨트셔츠 사러 어디로 가야 하지?’ 같은 것이죠.” 오브리 고든(Aubrey Gordon)이 지적했다. 그녀는 다이어트와 웰니스 문화의 측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제공하는 인기 있는 팟캐스트 공동 진행자이자 저자로 활동한다. “제 몸무게는 154kg 정도예요. 그래서 ‘포용성’에 포함되기에는 체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2년 전 플러스 사이즈의 사람들은 ‘스트레이트’ 사이즈의 사람들이 선택한 옷 중 불과 2.3%를 확보할 뿐이었죠. 저처럼 26 사이즈 옷을 입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퍼센트가 더 적어지죠. 그런 점에서 말 그대로 인간으로 기능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예요. 일하러 갈 때 입을 옷이나 채용 면접에 입고 갈 옷을 사러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녀가 덧붙였다. “이것은 패션 캠페인에 대의적으로 등장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에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여기에는 형평성에 대한 실질적 문제가 있죠. 그리고 사회 정의라는 렌즈를 통해 이 문제를 보지 않으면, 자기 몸 긍정주의가 개인적인 애티튜드를 바꾸는 압박으로 전락하기 십상이죠.”

    여성적 아름다움의 이상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봄으로써, 우리 모두는 비현실적 규범에 얽매이려는 노력의 족쇄를 벗어버리고 우리의 육체를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거의 그렇지 않다. 나는 10대 때부터 그랬듯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재고 있다. 그리고 칼로리를 기록한다. 주름을 방지하고 싶은 마음에 비싼 세럼을 바르고 셀룰라이트를 줄일 신박한 방법을 고민한다. 나는 어김없이 운동을 한다. 하지만 내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 다이어트 중이야’라고 말하는 것. ‘웰니스와 건강’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자율 최적화(Self-optimisation)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좀 더 날씬했다면 모델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여전히 괴로워하는 여자라는 점이다. 이렇게 느끼는 것에 따른 기회비용이 발생했다. 뷔페 테이블을 시련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면 나는 더 많은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며, 미아 강이 말한 것처럼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신뢰하는 법을 알았다면 연인에게 영감을 받은 욕망을 내 욕망의 단서로 오해하는 것을 멈추고 그 관계를 더 빨리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들 모두 기회비용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바로 ‘여성이 스스로를 물건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인류 번영에 제동을 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도록 사회가 끈질기게 주장하는 것은 여성이 달성한 성취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깎아내리고 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우리가 로다테를 시작할 때 겪은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사람들이 계속 우리에게 ‘왜 우리의 옷을 입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었죠.” 케이트 멀리비가 말했다. “한참 후에야 그 질문이 왜 그렇게 저를 괴롭혔는지 알아냈어요. 남성 디자이너에게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로라 멀리비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이 남성이라면 패션을 예술의 한 표현 형태로 다뤄도 괜찮겠죠.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패션은 어느 정도 우리의 보여주는 모습과 관련이 있었던 거죠.” 로다테를 론칭한 2005년은 오늘날 문화 전반에 퍼진 거식증의 한 종류로 해석되는 런웨이 모델들의 깡마른 몸매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당시는 사이즈 제로 페티시즘과 더 비기스트 루저(The Biggest Loser, <도전! Fat 제로>라는 제목의 리얼리티 쇼)의 시대였다. 초창기 로다테의 패션쇼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았다. 그들의 캐스팅도 전형적이었다. 모델 에이전시가 당시 영입하던 수척한 소녀들에 의지한 것이다. 실제로 멀리비 자매에게 영감을 준 사람들에 관한 단서를 원한다면 그들이 옷을 빌려주었던 배우의 면면을 살펴보면 된다. 그들 중 상당수가 다소 큰 체격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저희 옷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입을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늘 포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케이트가 설명했다. 로다테의 캐스팅은 이제 그 관점을 더 잘 반영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보다. 변화는 소급하거나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허스트는 자신의 10대 딸들에게 애티튜드의 영구적 변화에 대한 시그널로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알려주자 그 아이들이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마이클 코어스는 고객으로부터 같은 반응을 들었다. “여성들은 더 이상 규칙에 관심이 없어요. 그들은 마음에 드는 것, 근사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을 입고 싶어 합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패션쇼와 광고 캠페인에서 다양한 체격의 모델을 캐스팅해온 것으로 잘 알려진 코어스가 말했다. “그리고 팔로마, 프레셔스,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같은 여성과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뽐내는 수많은 사람을 보는 것이 많은 사람이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아요.”

    이런 의식의 진화는 단지 젊은이들에게서만 비롯되진 않는다. 나와 동갑인 앰버 발레타는 이런 의식 확산에 놀라운 역할을 한 여성이며 1990년대부터 오랫동안 활동해온 패션계 스타 중 한 명이다. 당시 그녀에게는 다른 걱정거리가 있었다. 몸의 이미지가 그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슬림하게 타고났기에 살을 빼거나 운동을 해야 하는 압박으로부터는 거의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힙을 움켜잡고 ‘여기 살은 조금 더 빼면 좋겠네’라고 말하던 클라이언트를 비롯해 문제 있는 클라이언트가 일부 있기는 했다고 발레타가 말했다. “저는 그것을 극복했어요. 제 몸은 하나의 물건이고 상품이었죠. 그것은 제가 아니었어요.” 그녀가 곱씹으며 말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몸에 대한 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죠. 제 몸은 한 사람을 출산하고 키워내는 것이었죠. 나이 들면서 그 인식이 계속 바뀌고 있어요. 때로 지금 이 촬영 세트 같은 곳에 가서 더 젊은 모델을 보며 ‘세상에나, 나도 늙었네. 피부도 그렇고!’라고 깨닫게 되죠. 그렇지만 ‘이번 생의 여정을 이 몸과 함께하고 있지. 이 몸이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있어. 경험한 모든 것이 이 몸에 담겨 있어’라는 깨달음도 얻죠.” 발레타가 말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쓸어내리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제 몸이 제 인생 그 자체죠.” (VK)

    IMAAN HAMMAM “여전히 제 몸에 만족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이만 하맘이 말했다. 드레스는 알라이아(Alaïa).

    PALOMA ELSESSER “‘내가 바뀌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스스로 상기해야 합니다.” 팔로마 엘세서의 말이다. 비대칭 니트 드레스와 쇼츠는 필로소피 디 로렌조 세라피니(Philosophy di Lorenzo Serafini).

    JENEIL WILLIAMS “올림픽 대표 팀에서 훈련하며 근육 하나하나를 사랑하다 ‘세상에나, 이 아가씨 좀 봐, 몸이 정말 튼실해’라는 말을 듣게 되니 정말 충격 그 자체더군요.” 모델로 활동하기 전 스타 육상 선수였던 제닐 윌리엄스가 말했다. 피케 플레이 수트는 디올(Dior).

    AMBER VALLETTA 아들이 태어난 뒤 앰버 발레타는 “제 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한 사람을 출산하고 키워낸 몸으로 여기게 되었죠”라고 말했다. 모헤어 시스루 드레스는 릭 오웬스(Rick Owens), 수영복은 에레스(Eres).

    ARIEL NICHOLSON “제 몸이 걸림돌이 되는 일을 겪었죠.” 아리엘 니콜슨이 그때를 회상했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조젯 드레스는 발렌티노(Valentino).

    CINDY CRAWFORD 198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디 크로포드는 다른 종류의 기준과 기대를 극복해야 했다. “저는 처음부터 ‘이국적’으로 여겨졌죠. 머리 색이 갈색이었거든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크레이프 드 신 소재의 드레스는 알베르타 페레티(Alberta Ferretti).

      Maya Singer
      사진
      Zoë Ghertner
      스타일리스트
      Julia Sarr-Jam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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