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상, 청춘의 마음
오랜만에 로맨스 드라마 <키스 식스 센스>를 촬영한 윤계상은 아직도 청춘의 마음을 지녔다.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그런 이유로 그의 성장 드라마를 지켜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음악 듣고 있었나 봐요. 어떤 곡 듣고 있었나요?
윤종신의 ‘오르막길’요. 원곡보다 정인 씨가 부른 버전이 좋아서 듣고 있었어요(웃음). 노랫말이 담백해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라는 부분이 좋아요.
성장 드라마를 좋아하죠. 인생을 영화나 드라마라고 가정한다면, 지금 자신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에 와 있는 것 같나요?
사건이 막 벌어진 순간이에요. 사건이 벌어져서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한 상태예요.
그럼 아직 성장하기 전의 청춘인 거네요?
네. 전 사실 똑같거든요. 저는 스무 살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변했더라고요.
어떤 식으로요?
나이가 많은 사람 대하는 느낌?(웃음) 다들 저를 예우해요. 왠지 제가 계산해야 할 것 같고요(웃음). ‘지금 뭘 더 알아야 하지? 더 늦게 알면 안 되는 건가?’ 싶어요.
예전엔 자신의 얼굴을 싫어했는데 지금도 그렇진 않죠? 혹시 좋아하는 과거의 얼굴이 있나요?
옛날 얼굴은 다 좋더라고요. 지금만 아니면 돼요(웃음). 그때는 제가 형편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좋은 얼굴을 갖고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자학하고, 자격지심에 숨어 다니고, 안으로 들어가기만 했어요. 더 솔직해도 괜찮았을 텐데 후회돼요. god 멤버들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노래를 부르다가 공황이 왔어요. 오랜만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니까 너무 공포스러운 거예요. 앙코르곡 몇 곡 더 해야 했는데 제 상태가 안 좋아서 결국 멤버들도 다 철수했어요.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영상을 봤는데 얼굴이 좋은 거예요. 괜찮았는데 왜 못 즐겼을까. 그러고 보니 저를 많이 찾아보네요(웃음).
얼굴이 좋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잘생겼다는 건가요?
잘생기기도 했고 에너지가 좋더라고요. 비주얼적인 에너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해 <유 퀴즈 온 더 블럭> 찍을 때도 너무 긴장해 패닉 상태가 돼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방송되기 직전까지도 무슨 말을 했을지 걱정돼서 힘들었어요.
전혀 긴장돼 보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는데요. 그렇게 카메라 앞에 자주 서는데도 두렵나요?
카메라의 무서움도 아니까요. 인기라는 게 손바닥 뒤집으면 없어지는 거잖아요. 호감인 사람이 비호감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고요.
한 캐릭터를 깊이 들여다보는 직업이라 사람에 대해서도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듯한데요. 보통 어떤 유형의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끼나요?
솔직한 사람요. 그런 사람들이 궁금하고 재밌어요. 보통 자기 위치나 상황에 맞춰서 움직이잖아요. 근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유니콘 같은 사람이 가끔 있어요. 과녁을 관통하는 느낌이에요. 10점을 맞히는 게 아니라 0점이어도 좋으니 과녁을 뚫어버리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진짜를 보는 눈이 생겨요. 저도 그러려고 하는데 쉽게 안 돼요. 저는 상대방에게 조금 맞추거든요. 예를 들어 인터뷰할 때의 저와 평소의 저는 조금 달라요.
디즈니+의 로맨스 드라마 <키스 식스 센스> 공개를 앞두고 있어요. 차민후 캐릭터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어벤져스> 같은 작품을 좋아해요. 아마존 프라임의 <더 보이즈>도 보고 있는데 재밌어요. 슈퍼히어로들이 나쁜 사람들로 나오고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대항하는 설정이잖아요. 시대에 대한 비판과 믿음의 이야기를 재밌게 잘 섞어놓았어요. 잘 알려고 하지 않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예요. 요즘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어요. 이 세상에 초능력자가 정말 없을까? 이 드라마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이야기잖아요. 초인적인 능력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있어서 선택했어요.
<범죄도시> 장첸의 긴 머리과 러시아 장교 스타일 외투, <크라임 퍼즐> 한승민의 짧은 머리처럼 <키스 식스 센스> 차민후의 외모와 관련해 특별히 설정한 것도 있을까요?
사실은 초반에 <크라임 퍼즐>과 겹쳐서 촬영하는 바람에 죄송했어요. 그렇게 거친 드라마를 찍고 가면 얼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촬영일이 겹치면 포기하는 게 맞는데 제가 욕심부린 것 같아 (서)지혜에게 미안했어요. 요즘 제 아내가 남주혁 씨 멋있다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는데요. 남주혁 씨 진짜 잘생기고 멋있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멜로를 해야 하는데 말이죠. 저도 마지막 멜로물이라고 생각하고 찍었어요.
로맨스 영화에서 좋아하는 클리셰가 있나요?
절대 못 만날 것 같은 두 사람이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한 번에 알아보는 클리셰 장면, 좋아해요. <첨밀밀>에도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1km도 더 떨어져 있는데 한 번에 알아보는 장면, 절대 못 만날 것 같은 두 사람이 갑자기 뉴욕에서 만나는 장면. 그런 장면 보면 찡해요. 운명 같은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감우성 선배님이 14부인가 15부인가에서 다른 사람과 결혼하잖아요. 그때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근데 결국엔 손예진 씨와 다시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 결말 너무 좋아요.
예전과 달리 요즘엔 봐야 할 게 많죠. 바뀐 환경으로 인해 고민하는 것도 있나요?
작품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TV를 잘 안 보잖아요. 제작되는 영화도 줄어들었어요. 대중과 주고받는 반응이 덜하다 보니, 요즘은 작품을 끝내면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에요. 제 작품을 뒤늦게 봤다는 사람들도 많고요. 지금 세상은 현재, 과거, 미래가 동시에 있는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같이 타고 갔다면 지금은 바람도 없이 혼자 덩그러니 헤엄쳐 가야 하는 기분이에요.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은 어떤 건가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요. 근데 그 이해라는 게 좀 무서워요. 그 역을 하다 보면 나쁜 사람도 이해하게 되는데, 그게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시간에 이미 답을 내리는 거죠. 그게 두려워요. 희한한 경험인데, 제가 누군가가 생각하던 것을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내 기억인지, 드라마 캐릭터의 기억인지 헷갈리는 거죠. 예전에는 그런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득이 될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득이 되지 않더라고요. 극 중에서 많은 일을 겪잖아요. 슬픔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슬픔을 겪은 건 아니잖아요.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맡다 보면 제 자신이 누군지 헷갈려요. 배우로서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맡는 것도 소중하지만 제가 살아가는 인생도 소중하다고 느끼는 중이에요. 제 인생도 살기 위해 노력해요.
진짜 나의 경험과 생각, 감정인지 캐릭터의 경험과 생각, 감정인지 헷갈린다는 거죠?
진짜인지 아닌지 착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극 안에서는 매번 누군가가 죽잖아요. 상상으로 슬픔을 겪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고통을 느끼거든요. 그러면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무뎌요.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그 시간을 더 소중히 슬퍼하면서 보내야 했는데, 나중에 후유증이 오더라고요. 할리우드 배우들은 역할 끝내고 나서 정신 상담을 받는다고 해요. 여기서는 그 발걸음을 떼기가 조금 어려워요. ‘내가 아픈가?’ 인정해야 하고요. 이제 깊게 들어가는 역할 후에는 상담을 받으려고 해요.
<범죄도시>의 장첸은 지독한 악인이라 촬영 이후 캐릭터의 영향이 상당히 컸을 것 같아요.
네. 최민식 선배님이 <악마를 보았다> 촬영할 때 반말로 좋게 이야기하는 경비 아저씨를 보고 ‘저 사람이 왜 나에게 반말하지?’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비슷했어요. 굉장히 날이 서 있었어요. 사람을 찌르면 비명을 지르거나 일그러진 표정을 짓잖아요.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나면서 ‘어떻게 죽여야 하지?’ 더 고민하게 돼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며칠 전에 진선규 선배를 만났어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프로파일러 역을 했잖아요. 프로파일러들도 살인범과 인터뷰를 하다가 점점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자신을 보고 무서울 때가 있다고 했대요.
항상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채찍질해요. 아직도 그렇게 연기가 잘하고 싶나요?
너무너무 그렇죠. 그래서 스스로를 괴롭혀요. 괜찮다가도 그 감정이 불쑥 올라와요. 무서운 직업이죠. 작업을 할 때는 열심히 하니까 끝나면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막상 쉬는 순간이 오면 불안감이 엄습해요. 날 또 안 써주면 어떡하지? 내가 잊히면 어떡하지?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두렵죠. 아침에는 밝았다가 저녁이 되면 어두워지고, 매일매일 그래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계속 같은 꿈을 꾼다고 했어요. 잠을 자면 누가 자는 모습을 찍는다고요. 요즘에도 그 꿈을 꾸나요?
지금은 괜찮지만, 촬영할 때는 항상 그 꿈을 꿔요. 두려운 마음과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힘들어요. 그 긴장감 때문에 망친 적도 많아요.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 과하게 되고 망치고 그랬어요.
<범죄도시>로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인정을 받았는데, 자신을 좀 믿어도 되는 타이밍 아닌가요?
진짜 희한한 게 그런 순간이 오긴 오거든요. ‘이렇게 하면 돼’ 하고 확신을 갖고 찍으면 영락없이 후회하게 돼요. 확신을 갖고 찍은 건 성에 안 차요. 오히려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 찍은 게 나아요. 지독하게 해야 ‘그래, 이 이상은 더 할 수 없어’라는 마음이 생겨요.
인생에 덤이나 공짜가 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절대 없어요.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해야 어느 정도 결과가 뒤따라온다고 생각하는 거군요?
네. 모든 일이요.
그렇게까지 잘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스스로를 계속 인정하지 못하고 괴롭히는 그 본질적인 이유는 뭘까요?
그 부분에 대해 그동안 솔직하지 못했어요. 저도 얼마 전에 그 생각을 했어요. 나는 왜 연기를 잘하고 싶을까? 아내와 그런 얘길 했어요. 왜 연기를 잘하고 싶냐고 해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어요. 그 인정이 뭐냐고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글쎄, 하는 순간 그게 뭔지 알았어요. 저는 상을 타고 싶은 것 같아요. 그 순간이 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막연했는데 제가 왜 잘하고 싶은지 알았어요. 예전에는 고귀한 척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연기를 잘해서 상을 받고 싶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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