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마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아파트

2022.08.09

by 김다혜

    마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아파트

    방과 색, 선택과 감정의 총체. 마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란체스코 리소는 자신의 아파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곳. 그의 말대로 ‘언제나 결국은 주방에 머물게 되는’ 그런 곳이다.

    부엌에 놓인 마르티노 감페르(Martino Gamper)의 테이블, 프랑코 알비니와 프랑카 헬그(Franco Albini & Franca Helg)의 루이셀라 의자, 그리고 오리지널 키아바리 의자.

    벳시 포들라크(Betsy Podlach)의 그림, 한스 아그네 야콥슨(Hans-Agne Jakobsson)의 그라운드 램프, 디미트리 오메르사(Dimitri Omersa)의 강아지 모양 가죽 오브제 사이에 주문 제작한 양털을 두른 비고 보에센(Viggo Boesen) 의자에 앉아 있는 프란체스코 리소의 모습.

    침실 한구석에 있는 디보르지아라 불리는 긴 의자와 콘크리트 테이블은 마리오 토레(Mario Torre)의 작품.

    가브리엘라 크레스피(Gabriella Crespi)의 거울과 침대, 1920년대 수납장, 휴 핀들터(Hugh Findletar)의 꽃병, 할리 위어(Harley Weir)의 조각품, 1960년대 램프.

    마르니의 프란체스코 리소(Francesco Risso)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담소를 나누면서 문득 <빈집은 누구의 것일까?>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글과 생각과 기억을 모은 책, 무엇보다 소트사스가 집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집을 구성하는 요소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모은 책이다.

    프란체스코의 느리고 분명한 말투에서 명암 감각을 잃지 않되, 사고에 분명한 형태를 부여하려는 정확한 의지가 느껴진다. 자신이 하는 이야기의 시적이고 입체적인 성격을 위해서다. 그는 자신의 집을 비롯해 집을 하나의 집합체로 설명한다. 방과 색상, 선택, 챕터, 움직임과 감정, 기능, 인상과 이유의 총체로 말이다. “집에 어떤 목적을 부여하는 것, 즉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으로 만드는 것 이상을 말합니다. 이런 감정은 집에서 작업할 수 있었던 특별한 기간, 그러니까 봉쇄 기간 덕분에 생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은둔 생활은 어떤 식으로든 창의력을 증폭시켰습니다. 사실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각 방이 가진 정서는 그 시간과 연결됩니다. 저는 커튼과 방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맨 먼저 작업한 곳은 서재인 빨간 방이었어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가장 내밀한 장소로, 글을 쓰고 읽는 공간이에요. 제일 먼저 그릴 필요가 있었죠. 그러다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집은 바깥보다 더 쉽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거실은 나중에 작업했는데 가장 어려웠어요. 딱 맞는 느낌을 못 찾는 바람에 친구와 함께 일곱 번이나 다시 칠했을 정도니까요. 계속 너무 컬러풀해 보이기만 했어요. 우리는 좀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찾고 있었죠. 제가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이미 채색되어 있었거든요. 우리가 칠한 색은 일종의 진화, 오버랩이라고 할 수 있죠.”

    색에 대해서 그는 소트사스를 인용하며 말했다. “분리된 색상, 분류된 색상, 팬톤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된 색상, 학술적 색상이라는 것은 제게 지금도 존재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제 인생에서 분류된 것이라고는 거의 없어요. 팬톤 컬러나 과학적인 것도 소수에 불과하죠.”

    ‘부동산’ 같은 고정된 구조물 외에도 집의 특징을 구성하는 데 ‘가구’가 하는 기본적인 역할이 있다. 공간을 채우거나 장식하는 것이다. “오브제 하나하나는 모두 연출된 느낌을 피하도록 선택했습니다. 어디든 원하는 곳에 ‘널브러져’ 있을 수 있죠. 아마 이런 오브제는 매우 제도적이면서도 중요한 집의 구조가 갖는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거예요. 1970년대 오브제 같은 것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을 보면 흥미로워요.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집에 있는 것이 더 좋으니까요.”

    그에게 이 환경에서 오로지 자기만의 것이라 생각하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게스트 룸이 있어요. 머무는 사람 모두가 결국 그 방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공간은 절대 내 것이 아니에요. 그 방은 약간 고치처럼 생긴 이상한 구조여서 안에 있으면 보호받는 느낌이 들죠. 저도 봉쇄 기간에 거기서 지냈어요.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서 절대적인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방이거든요. 사실 오롯이 저만의 것이라고 느껴지는 공간은 없어요. 오는 사람에 따라 다른 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주방은 종종 모든 사람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언제나 결국은 주방에 머물게 되죠. 하지만 때로는 식당이나 거실에 혼자 있기도 하고요.”

    소트사스도 일종의 매혹적인 경이로움을 갖고 주방의 미스터리를 탐구했다. “나는 주방을 신비로운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주방은 일종의 신성한 퍼포먼스, 삶의 지속과 존재의 소비에 관해 매일 반복하는 의식을 위해 재료를 준비하는 공간이죠.”

    ‘빈집’과 ‘가득 찬 집’의 차이를 정의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의례일 것이다. 사람과 감정, 생각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살아 있는 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언가를 생성하고 반영하고 응답하는 집. 자신의 집에 대해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집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저는 결코 만족하지 않죠. 이것이 제 존재 방식입니다. 어떤 공간을 특정한 방식으로 진화하게 만드는 것이 저로 하여금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하니까요. 집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VK)

    붉은색 소파와 콤파소 갤러리 다니엘레 로렌촌(Galleria Compasso Daniele Lorenzon)의 빈티지 키아바리 의자, 마르티노 감페르의 의자 조각, 지오 폰티(Giò Ponti)의 책상, 한스 아그네 야콥슨의 램프, 벽에는 난다 비고(Nanda Vigo)의 작품.

    두 개의 사무용 고가구 위에 두 마리 개 조각상(밝은색은 1890년 작품, 다른 하나는 1920년 작품)이 있다. 그 사이에는 장 콕토(Jean Cocteau)의 드로잉 작품.

    드 세데(de Sede) 빈티지 소파, 마르티노 감페르 테이블, 마리오 토레의 콘크리트 꽃병이 조화를 이룬다. 휴 핀들터의 꽃병과 맷 콜리쇼(Mat Collishaw)의 작품이 벽난로 위에 놓인 거실.

    난다 비고의 거울, 녹색 몽골리안 퍼를 씌운 18세기 의자 두 개와 벽에 있는 것과 동일한 모티브로 그려진 카펫.

    안데르스 베릴룬드(Anders Berglund)와 한스 요한슨(Hans Johansson)이 1966년 HI 21을 위해 디자인한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한 주방.

    에디터
    김다혜
    Jacopo Bedussi
    사진
    Francesco Dol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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