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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여성 신인 감독 3인

2022.11.10

by 이소미

    주목할 여성 신인 감독 3인

    한국 여성 감독들의 데뷔작이 연이어 개봉한다. 모두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갖고 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감독 김세인 | 주연 임지호, 양말복 | 개봉 11월 10일

    평단의 극찬이 쏟아지는 영화다. 주인공은 사이 나쁜 모녀다. 어느 날 마트 주차장에서 엄마가 딸을 손찌검하고, 딸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엄마가 탄 차가 딸을 덮친다. 엄마는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딸은 사고 재판에 출석해 엄마가 자기를 죽이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증언한다. 딸은 엄마의 사과를 원한다. 엄마는 딸이 힘들게 길러준 은혜도 모르고 자신을 원망하는 게 분하다.

    모녀 관계를 다룬 독립영화라면 느슨하고 소극적인 전개가 예상되지만 이 영화는 강렬함과 역동성으로 찬사를 받는다. 부산국제영화제 5관왕,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 초청,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부문 대상 등 영화제 이력도 화려하다. 어머니 역 양말복은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딸 역 임지호는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부산 올해의 배우상은 <거인> 최우식, <꿈의 제인> 구교환과 이민지, <죄 많은 소녀> 전여빈, <메기> 이주영, <아워 바디> 최희서 등이 받았던 상이다.

    김세인 감독

    감독 김세인은 2016년 첫 트리트먼트를 작성하고, 4년이 지나 결말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트리트먼트를 썼다. 첫 트리트먼트는 철저하게 딸의 입장이었지만 4년이 지난 후엔 조금 더 중립적인 시선으로 인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두 여자의 입장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모녀 관계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각기 다른 두 인물이 혈연의 굴레에서 충돌하며 발생하는 학습된 기대, 좌절, 영향에 깊이를 더했다. 감독은 “속옷을 같이 입을 만큼 밀착된 관계지만 모녀에서 두 여자로 분리되는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분리는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지독한 다툼으로 실행된다. 관객들은 일그러진 두 인물을 보면서 누구의 잘못이 큰가를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관계의 파편을 투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랜스> | 감독 도내리 | 주연 황정인, 윤경호, 김태영 | 개봉 11월 17일

    <트랜스>는 독립 장편 SF 스릴러다. 학교에서 괴롭힘당하던 소녀 민영은 같은 반 이태에게 ‘트랜스휴먼’에 대해 듣고 인류 진화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그러다 민영을 괴롭히던 마태용의 시체가 학교에서 발견되고 민영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민영은 타임 루프를 헤매며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한다.

    배급사가 공개한 감독의 기획 의도는 매우 야심 차고 심오하다. “우리는 세상에 실재하는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현실을 보고 있다. 마치 추상화를 그리듯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뇌의 구조를 반영한 플롯과 오브제를 통해 인간 해방 서사를 풀어보고자 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정말 존재하는가? 어떻게 인식하는가? 이는 결국 주관과 객관의 문제이고 철학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질문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짐작하겠지만 도내리 감독은 철학을 전공했다.

    <트랜스>는 세계 42개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뉴욕 호러 필름 페스티벌 베스트 SF 장편상, 제9회 SF어워드 영상 부문 대상, 춘천SF영화제 춘천의 시선상을 수상했다. 학원물과 SF, K-스릴러 감성, 해체적 플롯, 트랜스휴먼에 대한 문제 제기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아방가르드로 평가받는다. 저예산으로 어떻게 트랜스휴먼, 테슬라 코일 등의 비주얼을 완성했는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만인의 연인> | 감독 한인미 | 주연 황보운, 서영희 | 개봉 12월 1일

    12월 1일 개봉하는 <만인의 연인>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한인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주인공 유진은 고립된 청소년이다. 엄마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가자 유진은 스스로 삶을 꾸려가기로 결심하고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그의 인생에 등장한다. 유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학생 오빠와 자신을 좋아하는 동급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남자에 목매는 엄마를 못마땅해하지만 유진에게서도 연애로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가 보인다. 결국 유진이 새로 맺은 관계들은 일순간에 사라지거나 깨지고, 유진은 그 파국 속에서 한 뼘 성장한다.

    한국어 제목은 ‘만인의 연인’인데 영어 제목은 ‘Nobody’s Lover’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감독은 성적 호기심이나 욕망을 가진 10대 여성이 ‘만인의 여인’처럼 판타지로 비치거나 난잡한 여자로 비하되는 등 편협하게 대상화되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누구의 연인도 아닌 유진 자신의 이야기다.

    한인미 감독

    동서고금의 걸작 성장영화는 주로 남성의 이야기다. 여자 감독이 여자 성장영화를 만들면 ‘역시 여자 감독들은 소소하고 자전적인 얘기나 해서 상업성이 없다’고 욕을 먹는다. 하지만 여성 청소년들에게는 아직 발굴될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만인의 연인>이 제시하는 테마는 흔해 보이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는 분야다. 우리에게 더 많은 여성 창작자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리랜스 에디터
    이숙명(칼럼니스트)
    포토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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