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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은 정말 재미있는 걸까?

2023.03.31

by 강병진

    ‘먹방’은 정말 재미있는 걸까?

    지난 3월 24일 방영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 박나래, 이장우로 구성된 ‘팜유’ 멤버들은 건강검진 후 ‘오리백숙’을 먹었다. 이들의 ‘먹방’은 전혀 신기한 게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내시경 검사 후 주로 가벼운 죽 정도를 먹던 입장에서는 ‘굳이 저렇게까지 먹어야 하나’란 의문을 느꼈다. 실제 몸의 보양을 위해 먹는다기보다는 관찰 예능의 필수 요소인 ‘먹방’을 위해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MBC ‘나 혼자 산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3월 26일. tvN에서 방영한 <현지인 브리핑, 지금 우리나라는>(<지금 우리나라는>) 12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맥락이기는 했지만) 비슷한 질문을 가졌다. <지금 우리나라는>은 한국의 연예인이 특정 나라를 방문해 그곳에 사는 현지인과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12화에서는 배우 배다빈이 뉴질랜드의 퀸스타운을 방문했다. 시간은 오후 1시. 출연진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가를 돌아다닌다. 그런데 점심 장사를 하는 식당이 없다. 이들은 결국 식당이 저녁 장사를 시작할 무렵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현재 뉴질랜드가 겪고 있는 인력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동안 뉴질랜드는 취업 비자를 받고 온 외국인 노동자에 크게 의존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물가와 주거비가 상승하자, 이곳까지 와서 일하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그래서 점심 장사까지 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내용이었다.

    tvN ‘현지인 브리핑, 지금 우리나라는’

    다른 관찰 예능이었다면, 또는 <로드트립>이나 <톡파원 25시> 같은 해외 탐방 프로그램이었다면 보여주지 않았을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의 앞선 회차를 찾아보니 “그 나라가 안고 있는 진짜 실상과 생생함을 전달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는 태국과 튀르키예에 가서도 ‘먹방’에 불편한 진실을 더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셰프 누스레트 괵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이스탄불 본점에서는 한 끼에 14만원 정도인 식대와 50만원 정도인 튀르키예 최저임금의 간극을 이야기했고, 동시에 그 정도의 식대도 외국인에게는 저렴하지만, 현지인에게는 비싼 ‘인플레이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태국 방콕에서는 현지 상류층이 주로 가는 루프톱 레스토랑에서 ‘하이쏘’로 불리는 태국 상류층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찰 예능을 만드는 제작진의 입장뿐 아니라, 이국의 풍경을 원하는 여행자의 시선에도 불필요한 정보일 것이다. 여행을 떠난 연예인의 일상을 비추는 관찰 예능이라면 그의 먹방은 오로지 먹방일 뿐이어야 하고, 이국의 명소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그곳의 음식은 그저 그곳에 가면 꼭 한 번 먹어봐야 하는 음식에 그치면 그만일 테니 말이다.

    나는 지금 한국의 관찰 예능에서도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떠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먹는 연예인의 모습과 이전의 여행 먹방과는 다른 색깔로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던져준 ‘먹방은 과연 재미있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말 예능은 관찰 예능이고, 관찰 예능은 곧 먹방 예능이다. 이건 이미 오래전에 자리 잡은 주말의 TV 편성표다.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이 소재이고, 사람의 일상에서 먹는 행위는 빼놓을 수 없으니 ‘먹방’은 당연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길게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볼 정도로 재미있는 걸까? ‘먹방’이 이렇게 지속되어온 데는 시청자와 제작진, 출연진 모두가 어느새 암묵적으로 지켜온 약속이 있는 게 아닐까? 매력의 전제는 당연히 연예인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를 시청자가 궁금해하고 그들이 먹는 모습을 꽤 집중해서 본다는 맥락일 것이다. 이때 관찰 예능 제작진 입장에서 ‘먹방’은 저렴하고 빠르게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장면을 담을 수 있는 치트 키가 된다. 또 출연진 입장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은 촬영이 된다. 그렇게 모두가 어느 정도 만족해온 ‘먹방’의 가성비가 생겨났고 그래서 여전히 먹방이 실제 가치 이상으로 재미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니겠냐는 의심이다.

    그래서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다. 당장 다음 달부터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먹방’을 금지한다면? 또는 ‘먹방’ 장면을 기존보다 짧게 요약한다면, 그렇게 비워진 분량은 어떤 장면이 채우게 될까? ‘먹방’보다 더 재미있는 게 생겨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제작진과 출연진은 더 피곤해지고 시청자는 낯설게 여기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에 목숨 거는 방송국 사람들이라면 결국 먹방’보다 더 눈길을 끄는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을까? 솔직히 볼 만큼 봤다. 그래서 이제는 ‘먹방’의 만족감보다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 루틴이 깨지면 당장은 아쉽지만, 또 다른 루틴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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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나 혼자 산다', tvN '현지인 브리핑, 지금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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