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IYKYK: 엘리자베타 포로디나

2023.03.31

by Jane

    IYKYK: 엘리자베타 포로디나

    오늘날 패션 매거진의 주기는 월(Month)에서 일(Day)로 바뀐 듯합니다. 지면 커버가 공개되는 날에는 클릭 한 번에 전 세계로 이미지가 송출되죠. 서로 태그하는 인스타그램에서는 지금 가장 핫한 커버가 며칠째 최상단 피드에 남아 있습니다. 국가 간 트렌드의 경계도 없어졌습니다. 해외에서 오늘 핫한 이슈는 한국에서도 오늘 핫합니다. 패션 화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주류 패션 잡지에서 활발히 활약하는 포토그래퍼의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요즘 스타일’이 됩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단연 휴고 콤테(Hugo Comte) 스타일이 지배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스티븐 마이젤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그 ‘레퍼런스’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하고도 남지만 그의 인기는 젊은 포토그래퍼들 사이에서도, 매거진과 브랜드 사이에서도 대단했습니다. 휴고 콤테는 계산된 구도와 배치, 특유의 라이팅 기법으로 하나의 장르와 유행을 만들었고, 패션 화보를 다시 연극적으로 되살렸죠. 물론 지금은 살짝 시들해진 듯하지만요. 그렇다면 요즘 들어 ‘아, 이 사람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포토그래퍼는 누가 있을까요. 아래 사진을 보면 감이 곧 올 겁니다. 바로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포토그래퍼 엘리자베타 포로디나(Elizaveta Porodina)입니다.

    2022년 7월 <보그 이탈리아> 커버

    @elizavetaporodina

    2022년 8월 <지큐 US> 커버

    198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엘리자베타는 심리학자를 꿈꾸며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사진에 매료되어 홀로 카메라를 사서 이리저리 실험을 했죠. 심리학을 공부한 것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엘리자베타는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해주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보는 것 또한 심리학적 접근처럼 높은 집중력과 꼼꼼한 관찰력이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엘리자베타가 처음부터 최근의 사진 톤과 스타일을 구사한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녀의 스타일은 화려한 색채, 초현실적 구도, 흐릿한 실루엣, 중첩된 이미지, 뭉개진 색감, 드라마틱한 모델 표정으로 대변되지만, 2019년까지만 해도 대비가 진한 흑백사진 혹은 쨍한 컬러의 사진이 독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그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초현실적 상상력이 아닐까요.

    2019년 작품

    2019년 작품

    2020년 초기 작품

    최근 그녀가 작업한 클라이언트는 <지큐 US>, <보그 이탈리아>, <보그 스페인>, <보그 차이나>, <월스트리트저널>, <베니티 페어>, 장 폴 고티에, 조 말론 런던, 디올 등 쟁쟁한 매거진과 브랜드죠. 하지만 엘리자베타가 처음부터 패션 매거진의 러브콜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유독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가 심한 패션계에서 그녀의 사진은 브랜드나 셀러브리티에 적용되는 무난한 스타일이라기보다 실험적인 장르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녀도 과거 인터뷰에 밝힌 것처럼, 패션 사진계는 의자 뺏기 게임처럼 소수의 포토그래퍼만 의자에 앉을 수 있고 어떨 땐 그 게임에 참가하는 것마저 큰 장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판’에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죠.

    그렇기에 셀러브리티의 얼굴을 왜곡하고, 값비싼 런웨이 룩에 실제와 다른 색감을 입히는 그녀의 사진은 공신력 있는 업계의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그 첫 승인은 매거진 <The Cut>과 영화배우 클로에 세비니에로부터 시작되었죠.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초, <The Cut>은 5월호 커버를 뮌헨에 있는 엘리자베타에게 줌(Zoom)으로 진행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후반 작업과 색감이 중요한 그녀의 사진 스타일에 오히려 줌이라는 매개는 큰 제약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뻔하지 않은 스타일이 클로에 세비니를 고전 명화의 주인공처럼 변모시켰습니다.

    클로에 세비니 <The Cut> 커버

    그 후 젠데이아, 줄리아 폭스, 카렌 엘슨, 벨라 하디드, 이리나 샤크, 케이트 블란쳇 등 쟁쟁한 셀러브리티와 패션모델들이 그녀의 뷰파인더를 거쳤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강구하는 패션계는 매번 어느 정도 예상되는 패션 화보보다는 아예 새로운 비주얼을 선사하는 엘리자베타 포로디나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죠. 그리고 스스로를 ‘상업사진가’나 ‘패션 포토그래퍼’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아티스트’라 명명하며, 타협하고 적응하기보다는 굳건히 자신의 작업 세계를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벨라 하디드를 모델로 한 2022년 8월 <보그 스페인> 커버

    @elizavetaporodina

    엘리자베타가 직접 큐레이션한 그녀의 작품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아티스트가 처음 출판한 책 <Un/Masked>가 딱입니다.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방대한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 책이죠. “소셜 미디어에 부유하는 사진보다 좀 더 사적이고 진짜 보여주고 싶은 피사체와 주제를 담아냈다”라고 그녀가 직접 언급했습니다.

    그녀의 첫 책 <Un/Masked>

    엘리자베타 포로디나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실로 간단합니다. 지금 지배적인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천천히 만들어간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개성이자 큰 장점이 된다는 것. 그런 간명한 확신을 얻고 싶은 오디언스라면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방문해볼 것을 추천합니다.

    ‘If you know you know’는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션계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치는, ‘알 사람은 아는’ 인물에 대해 탐구하는 칼럼입니다.

    포토
    엘리자베타 포로디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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