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오늘, 미술관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절한도슨트

2023.05.13

by 정윤원

    오늘, 미술관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친절한도슨트

    미술 시장의 경기는 작년만 못하다지만 여전히 인산인해인 전시장 한가운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현대미술이 요즘처럼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나의 시간을 미술을 찾아가고, 보고, 생각하는 데 이만큼 할애한 적 있었던가. 미술관이 이토록 편안하고 친숙한 공간인 적이 있었던가. 그런 면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이는 <젊은 모색 2023>전(오는 9월 10일까지)의 시도는 꽤 시의적절해 보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이 신인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 ‘젊은’뿐 아니라 ‘모색’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죠. 이들의 시선이 현대미술에 머물지 않고 그 근간이 되는 미술관, 그리고 이를 즐기는 관객의 존재에까지 가닿는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그간의 유서 깊은 <젊은 모색>전과 스스로를 차별화합니다.

    국립현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이는 ‘젊은 모색 2023’ 전시 모습.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국립현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이는 ‘젊은 모색 2023’ 전시 모습.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국립현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이는 ‘젊은 모색 2023’ 전시 모습.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젊은 모색 2023>은 부제 ‘미술관을 위한 주석’을 통해 정체성을 더 명확히 합니다. 미술가뿐 아니라 건축가, 디자이너, 문학가의 언어로 번역된 다양한 주석이 미술관 곳곳에 자리하는 거죠. 이번 전시는 크게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시의 무대가 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공간에 대한 주석, 매번 다른 주체인 작가들을 통해 진화하는 전시에 대한 주석, 그리고 미술관 공간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경험에 대한 주석. 생각해보면 미술관은 물리적 건축과 그 내부를 채우는 전시, 그리고 이를 작동하는 작가와 관람객에 의해 비로소 살아 있는 유기체적 존재가 됩니다. 올해의 <젊은 모색>은 그동안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거론되지 않은 미술관을 둘러싼 유무형의 관계를 짚어냄으로써, 오늘날 미술의 역할과 가능성을 환기합니다.

    김경태, ‘일련의 기둥 1’, 2023, PVC에 잉크젯 프린트, 300 × 800cm, ‘일련의 기둥 2’, 2023, PVC에 잉크젯 프린트, 가변 크기, ‘일련의 기둥 3’, 2023,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0 × 105cm(×9).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씨오엠, ‘미술관 조각 모음’, 2023, 합판과 혼합 재료, 가변 크기.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정현, ‘명명된 시점들’, 2023, 60 × 45cm(×24), 양면 액자, 가변 크기.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백종관, ‘섬아연광’, 2023, 2채널 프로젝션, 컬러, 사운드, 5분, 17분, 혼합 매체 설치, 가변 크기.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전시의 시작을 미술가가 아니라 젊은 시인들에게 맡긴 신선한 시도는 꽤 성공적인 듯합니다. 박세미, 김리윤, 임유영 시인이 제시하는 세 편의 시는 우리가 서 있는 미술관 공간을 공감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둡니다. 김경태, 이다미, 김현종, 황동욱, 씨오엠이 제안하는 과천관의 건축적 요소들은 40여 년간 존재해온 이 오래된 공간에 미술적 서사를 더하죠. 김동신, 오혜진, 정현은 미술관의 역사를 직조해온 아카이브를 분석해서 본 적 없는 전시 형태로 제시합니다. 한편 백종관, 박희찬, 추미림, 조규엽, 뭎은 미술관을 둘러싼 다채로운 경험을 제시할 뿐 아니라 이들의 작품에 관객인 나의 또 다른 경험을 덧입힙니다. 각 분야 작가들의 이런 작업이 미술관의 과거를 복기함은 물론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되는 건 실로 당연합니다.

    뭎, ‘내 사랑, 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 당신은 그저 다른 삶으로 넘어간 거였는데’, ‘천왕문’, 2023, 철판, 목재, 아연도각관, 영상, 사운드, 420 x 480 x 330cm, ‘용광로ABFF’, 2023, 철판, 목재, 사운드, 동작 감지 센서, 228 x 2880cm, ‘제단’, 2023, 철판, 목재, 영상, 사운드, 동작 감지 센서, 228 x 70 x 240cm.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김현종, ‘범위의 확장’, ‘확장’, 2023, 철판, 370 × 454 × 387cm, ‘변화’, 2023, 무늬목, 370 × 220 × 220cm, ‘해체’, 2023, 거울, 370 × 398 × 171cm.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조규엽, ‘바닥 부품’, 2023, 합판, 금속, 가변 크기. Courtesy of MMCA, Photo: Kim Joo-young

    물론 모든 이들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혁명적인 방법으로, 예컨대 장 뤽 고다르의 1964년 영화 〈국외자들〉에서 루브르 미술관 내부를 내달리던 배우들처럼 미술관을 경험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이 비전형적 공간을 산책한다는 것만으로도 ‘젊은’ ‘모색’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젊다는 건 나이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나이와 경력은 꽤 들쑥날쑥하니까요. 결국 젊다는 건 단지 나이가 젊은 게 아니라, 익숙한 모든 것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질문을 던진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오래된 미술관의 공간, 전시, 작가는 급변하는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이곳을 찾는 관객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미술관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과 단서를 이리저리 조합하다 보면 나만의 ‘미술관을 위한 주석’, 바로 내가 발견한 주관적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젊은 모색 2023>전의 의도는 바로 여러분을 이 모색의 결정적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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