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 월드에선 누구나 호스트가 된다 – 라일라 & 나디아 고하 인터뷰
연말을 맞아 디너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라일라 고하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방문해야 한다. ‘음식도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 손님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줄 수많은 아이디어가 샘솟을 테니.
라일라는 10년 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셰프이자 푸드 아티스트였다. 그런 그녀가 2020년 화가이자 조각가로 활동하던 동생 나디아와 함께 설립한 브랜드가 고하 월드다.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테이블웨어를 선보이는 고하 월드는 지난해에만 구찌, 드리스 반 노튼과 협업을 성사시키며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미 요식업계에 자리 잡은 라일라, 절제의 미덕을 알고 있는 나디아의 합작품이다.
그렇다고 고하 월드가 단순히 아기자기한 테이블웨어를 판매하는 브랜드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나디아와 라일라의 목표는 고하 월드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식사 한 끼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일깨우는 것이니까.
바로 한 달 전, 뉴욕 라파예트 거리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한 고하 월드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청담동 한가운데 위치한 10 꼬르소 꼬모 3층이 고하 월드 제품으로 가득 찼다. 유난히 춥던 어느 11월 아침, <보그>가 나디아와 라일라 고하를 만나 테이블웨어, 가족, 호스트가 되는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첫 방한으로 알고 있다.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나디아 짧은 시간이지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전부 즐기려 한다. 어제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파티도 열었다.
고하 월드는 어떤 브랜드인지, 창립자들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싶다.
나디아 고하 월드는 홈웨어 브랜드다. 제품 대부분을 이집트에서 수작업으로 만든다. 우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공예와 시간이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장인과 일하는 것을 선호하고, 전통적인 방식과 가치를 지키려 노력한다.
아시아 진출은 처음이다.
라일라 고하 월드에 두 번째로 큰 시장이 바로 한국이다. 웹사이트 주문량 역시 늘 한국이 2등이었다. 예전부터 아시아 마켓에 고하 월드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한국을 첫 아시아 진출지로 선택했다. 지금이 한국 팬들을 직접 만날 적기라는 생각도 했고.
나디아의 말처럼 우리는 시간과 공예를 중요시한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고하 월드를 하나의 브랜드가 아닌 우주로 봐줬으면 한다. 시간과 공을 들여 완성한 고하 월드의 우주는 초현실적인 동시에 위트가 넘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지금도 닭발을 닮은 이어링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를 보며 웃음 지은 기억도 있는데.
라일라 맞다(웃음). 가공하지 않은 진주인데 닭발을 닮았다. 아주 드물게, 조개의 짝짓기 과정에서 이런 모양의 진주가 만들어진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테이블웨어와 식문화 중 흥미로운 것은 없었나?
라일라 한국에도 식사와 관련된 여러 의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식탁 예절이나 음식을 대하는 태도 같은.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식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지금은 테이블웨어를 주로 선보인다. 테이블웨어에 끌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라일라 식탁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싶다. 식탁이란 곧 몸과 같고, 테이블웨어란 옷과 같다. 식탁을 꾸미는 것은 옷을 입는 것과 다름없다. 스타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처럼, 식탁 역시 자기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나디아 고하 월드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호스트가 되는 것’이다. 친구를 초대하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호스트 말이다. 앞치마나 고무장갑 같은 액세서리를 선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2020년 설립된 고하 월드는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뤘다. 고하 월드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나디아 음식 관련 일을 오래 한 라일라의 팬이 많았다. 처음부터 팬이라는 탄탄한 기반을 갖고 시작한 셈이다. 가장 큰 차별점은 고하 월드가 단순히 테이블웨어만 판매하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컬렉션을 선보일 때마다 최대한 다양한 아이템을 많이 출시해 고하 월드만의 우주를 만들어나가고 있으니까.
라일라는 셰프이자 푸드 아티스트로 활동했고, 나디아는 토론토에서 화가, 조각가로 활동했다. 배경이 다르다 보니, 같은 사물이라도 다른 시선을 갖고 바라볼 것 같은데.
라일라 지금도 셰프이자 푸드 아티스트다(웃음). 요식업계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미학이 생겼고, 직접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푸드 아티스트로 일할 때는 실제 디자인 과정에 관여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디자인 면에서 마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디아는 좀 더 차분하고 절제된 디자인을 선호하고, 나는 화려함을 선호한다는 게 유일한 차이점이다. 가끔 내가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디자인을 나디아는 ‘투 머치’라고 여길 때도 있다(웃음). 드물게 의견이 충돌할 때도 금세 해결된다.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 뮤지션 혹은 패션 디자이너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디아 특정 인물이나 스타일을 꼽기보다는 순간순간 영감을 받는 편이다.
라일라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에 마주친 아름다운 순간이나 아름답지 않은 순간마저 늘 머릿속에 인상, 아이디어로서 존재한다. 디자인할 때는 그런 인상이 카탈로그처럼 펼쳐지며 영감으로 바뀐다. 특정 뮤지션이나 디자이너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영감은 일상에서 온다. 가로수 모양, 가게 표지판 같은!
유대감을 무척 중시한다. 브랜드 웹사이트에 주기적으로 레시피를 업로드하고, 소개란에는 ‘Family’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디지털 중심으로 흘러가는 세상이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
나디아 규모는 작지만, 고하 월드의 팀원들은 모두 오래전부터 함께해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자 역할이 달라졌지만, 모두 가족이나 다름없다. 매일 스튜디오 구성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라일라가 가끔 무엇을 먹었는지 레시피를 공유한다.
요리는 돌아가면서 하나?
라일라 요리는 나만 한다(웃음). 고하 월드에서는 모두가 가족이다. 스튜디오를 의도적으로 가정집처럼 꾸몄고, 고객 역시 가족처럼 대한다.
식구라는 단어가 있다. ‘먹다’는 뜻의 식(食)과 ‘입’을 뜻하는 구(口)가 합쳐져 가족이라는 뜻이 된다.
라일라 고하 월드의 정신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함께 앉아 밥 먹는 시간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
웹사이트에서 발견한 시간에 관한 짧은 시가 흥미롭다. “게스트를 초청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로 시작해 호스트가 되는 것의 의미에 관한 시였다.
라일라 아까도 말했듯이 호스팅은 고하 월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한국에서는 그런 식의 홈 파티가 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저녁 식사나 파티를 주최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음식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예쁜 집에 살지 않아도 괜찮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와 함께하려는 따뜻한 마음이다. 짧은 시에 적힌 것처럼,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할애하는 거다.
우리가 이집트 출신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이집트와 지중해 남부의 몇몇 나라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친구와 이웃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잦다. 존경과 애정을 표하는 방식이라고 할까?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려는 의도도 있다.
호스트 역할을 자처한 사람에게 고하 월드는 어떻게 도움이 될까?
라일라 좋은 질문이다. 고하 월드 덕분에 저녁 식사, 파티 준비 과정이 즐거워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날 분위기를 더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바보 같은 질문일 수 있지만, 음식과 테이블 세팅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라일라 선택지에 없지만, 애티튜드라고 답하겠다. 음식 맛은 물론 식기와 꽃, 과일보다도 마음이 중요하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마음을 열어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각자가 꿈꾸는 ‘완벽한 저녁 식사’가 궁금하다. 어떤 음식이 올라와 있으며, 식탁은 어떤 모습인가?
나디아 식탁은 오늘 팝업 스토어에 있는 나선형 테이블로 하겠다. 식기는 전부 고하 월드!
라일라 말 그대로 꿈같은 곳에서 식사를 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달처럼,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런 장소 말이다.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고하 월드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렇다면 게스트 리스트는?
라일라 게스트 리스트 구성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손님 성격도 고려해야 하고, 너무 많거나 적어서도 안 되니까. 또 내향적인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아무도 얘기를 안 하고, 외향적인 사람들만 부르면 피곤해진다. 나중에 뉴욕에 오면 우리 파티에 꼭 초대하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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